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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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문가비
작품등록일 :
2024.07.19 09:49
최근연재일 :
20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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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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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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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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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천왕 대신 할머니

DUMMY

아. 여기가 목적지였구나.


<이런.. 시XXX. 이것들이 전국 팔도를 돌려고 하나! 시X.>


‘야. 의미 없다. 어디 갈 때마다 백날 천날 급발진 하는 거 지겹다. 이미 온 걸 어쩔 거야.. 작작해.’

악령은 매우 흥분한 듯 보였다. 연서의 몸에서 느껴지는 악령의 기운이 더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엄마 어릴 때부터 예뻐해 주셨던 이모야. 외할머니랑 친하신 분이시고.”


좁고 짧은 길을 들어가니 낡은 한옥이 보였다. 어머니는 한옥이 보이자 소리쳤다.


“이모~ 나 왔어요~ 희숙이~!”


대청마루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어머니를 보시더니 버선발로 나와 맞이했다.


“아이고~ 희숙아 오느라 고생했다. 어쩜 니는 니 엄마 젊을 때랑 이렇게 똑같나~. 아이고 이쁜 내 새끼. 잘 왔다 잘 왔다.”


“이모~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는 천왕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구.. 여전히 이쁘다.. 형님 가셨을 때 보고 얼굴 보기 힘들겠다 했는데 이렇게 다 보고. 나는 이제 여한이 없다 여한이 없어..”


천왕 할머니는 그렇게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잊지 않으려는 듯 글썽이는 눈으로 애틋하게 바라보셨다. 피로 이어지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어진 가족. 가족이란 이런 것이겠지.



도윤과 연서도 천왕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도윤은 한 번 뵌 적이 있는 터라 할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하는 연서의 손을 잡은 천왕 할머니는 연세에 맞지 않게 기운이 펄펄 넘치는 느낌이었다.


“니가 연서가? 얘도 엄청 이쁘다야. 니는 어찌 이리 맘이 곱나.. 니는 하늘에서 굽어 살피는 자손이다. 걱정 마라. 다 될 거다. 다 될 거야.. 안으로 들어가자.”


**


방으로 들어가니 푸짐한 한상이 차려져 있었다. 시골의 향기가 가득한 할머니표 밥상이다. 도윤은 남자라고 밥그릇이 넘치도록 밥을 얹어 주셨다. 안 그래도 출출하던 셋은 맛있게 마지막 남은 밥풀 하나마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와 시골 밥상 너무 좋아. 진짜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러게 엄청 잘 먹더라 너. 보기 좋아. 더 먹고 살 좀 더 찌자. 너무 말랐어.”


도윤과 연서가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고 셋은 본격적으로 신당에서 천왕 대신과 마주 앉았다.

천왕 대신은 방울을 들어 흔들었다. 방울 소리를 들은 연서는 속이 좋지 않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연서야. 니 지금 속이 안 좋지? 괜찮다. 써글 것이 지랄 염병을 하는 거다. 요것이 보통이 아니네..”

다시 방울을 내려놓은 천왕 할머니는 연서의 눈을 빤히 보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 내 대강 들었다. 이 흉헌 것이 다 듣더라도 어쩔 수 없다. 들으려면 들으라고 놔두고~ 연서 니가 아는 거를 다 말해봐라.”


연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천왕 할머니께 들려드렸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천왕 할머니는 연서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 끝까지 연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 했지? 여기까지 먼 길을 오라고 한 거는 와서 내 두 눈으로 봐야 확실히 알 거라고. 맞다, 저 잡것은 신 줄타고 내려온 악귀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저게 세습무라는 거다. 그렇다고 또 무당은 아니다. 그 집 핏줄이 세서 감겨있는 거다. 반 무당인 거지.”



그렇다면 권자영도 무당이었다는 말인가. 권자영의 집안이 세습무 이거나 김유범의 집안이 세습무라는 것인데. 김유범 집안은 대대로 의사 집안이다. 그러면 권자영의 집안이 세습무라는 얘기다.


천왕 할머니의 말을 듣고 연서는 오늘 보았던 굿을 하는 모습을 설명드렸다. 이 내용까지 다 들으신 천왕 할머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다.



“이게 뭐꼬.. 뭐 이런게 다 있나! 희숙아. 니 형님한테 저주 굿하는 무당 얘기 들은 적 있나?”


“그런 무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어요.”


“저거.. 저주 굿하고 사람 죽이는 굿을 하는 집안이야. 그러니 이리 독하지 독해.. 그 줄 타고 내려온 건데 안 독할 리가 있나! 악신을 받고 모시는 집안이다. 이거 조상 타고 쭉 올라가면 *염매도 했던 악독한 인간들이다. 돈에 미치고 환장한 것들이다. 그리고 연서 니가 봤던 거는 악한 것을 옮기는 굿이다. 이 흉헌 것이 그걸 옮겨 받은 귀신이다.”



천왕 대신의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아연실색한 얼굴이었다. 악신을 모시는 세습무. 그리고 악신을 옮기는 무당. 낯익은 기시감이 뭔지 연서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염매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 단어다. 연서는 천왕 할머니께 염매가 뭔지 여쭸다.



"염매라 하는 것은..... 엄청 잔인하고 사악한 사술이다..... 어린애를 제물로 삼고 부잣집에 병을 옮기고 그거 나으려면 그 무당을 찾아가야 하니 그걸로 돈을 벌고 그런 잡것들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야. 거기까지만 알아라. 깊이 알아서 좋을 게 없어. 끔찍한 것이지..... 아주 옛날 옛적 우리 조상님들 시절에 그런 미친 짓으로 명맥을 이어가던 무당이 있었다."


**


권자영.


여자아이들 중 첫 번째 아이와 중년의 무당이 꽤나 닮았었다. 그리고 20대로 보이는 여자도 무당도 그 첫 번째 아이와 닮았다. 아마도 무당은 권자영의 할머니가 아닐까. 첫 번째 아이는 권자영으로 보인다. 저 아이가 나이가 들면 권자영처럼 생길 것 같다 싶은 얼굴이었다. 두 번째 아이는 많이 닮지 않았다. 악신을 옮길 대상으로 지목된 아이였을 것이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나.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이다. 사람 목숨을 쥐고 흔들고 저주를 한다니. 하늘은 왜 지켜보기만 하는 건지. 원망스러웠다.


“내가 보이는 것은 마지막으로 저 흉헌 것이 지가 목숨 줄 놔버린 거다. 잡귀신들이 다 들러붙어서 혼자 가버렸다. 쟤도 딱하지만 그렇다고 인간 몸에 기생해 버리면 안 되지! 지도 지  갈 길 가야지.”



천왕 할머니는 물을 한 모금 드시면서도 연서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호통이 이어졌다.


“이 흉헌 것이 어디 사람을 탐하나! 어디 갈 데가 없어서 여기서 자리를 잡고 지랄이고! 니 야가 누군지 아나? 하늘에서 돌보는 아이다. 선녀야 선녀! 니도 아니까 붙어서 안 떨어 지려고 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나! 하늘도 노하셔서 니 절대로 좋은데 안 보내준다 하신다. 니도 알지? 어디서 사람 행세를 하려고! 좀 더 있으면 장군 신들이 니한테 몰려올 거다.”



악령에게 드잡이를 하시는 동안 연서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신이 달래 주시는 걸까.


27년의 인생이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흔히들 불러 대는 엄마, 아빠 소리를 한 번 못해봤다. 가끔은 어린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 안기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났다. 너무 예뻐서. 사무치게 예뻐서. 그리워서. 알지 못하고 겪어 보지도 못했던 그것이 너무 예쁘고 그리워서 눈물을 훔치며 걷고는 했다.



서러움이 내 안에 이렇게나 깊이 쌓여 있었던가. 나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괜찮다, 행복하다, 이 정도면 그냥 감사하자.. 그렇게 어린 내가 어린 나를 어르고 달래며 어른이 되었다.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우는 내가 안타까우셨는지 천왕 할머니는 다가와 안아주셨다. 천왕 할머니의 손이 내 몸에 닿는 순간 천왕 할머니도 펑펑 우셨다. 잘 버텼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잘 버텼다고. 우리 아가 착하다 착하다 하시며 함께 우셨다. 도윤도 어머니도 그저 감정에 충실하게 큰 소리로 울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사실 나는 정말.. 너무 살고 싶었다. 나도 평범해지고 싶었다. 사랑을 받고 사랑도 주고 싶었다. 


나는 단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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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9 아빠의 편지 (완결) 24.08.31 9 0 10쪽
58 소멸(消滅) 24.08.31 9 0 10쪽
57 지영아. 신지영. 24.08.31 9 0 9쪽
56 무너진 모래성 24.08.31 8 0 10쪽
55 우리 다시 만나요 꼭 24.08.31 10 0 11쪽
54 악신의 현현(顯現) 24.08.30 10 0 10쪽
53 벌전 (罰錢) 24.08.29 10 0 10쪽
52 거의 다 와간다 24.08.29 11 0 10쪽
51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24.08.29 10 0 10쪽
50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4.08.29 9 0 12쪽
49 결계 3 24.08.28 10 0 10쪽
48 결계2 24.08.28 12 0 10쪽
47 결계 1 24.08.28 12 0 11쪽
46 세치 혀 24.08.27 12 0 11쪽
45 그래도 악은 악이다 24.08.26 10 0 10쪽
44 하얀 종이 한 장 24.08.26 12 0 10쪽
43 권자영 그리고 최원철 24.08.25 11 0 10쪽
42 화투 패를 손에 쥔 뱀 24.08.25 12 0 10쪽
41 씨가 다른 아이 24.08.24 14 0 9쪽
40 순이네 수퍼마켙 24.08.23 12 0 10쪽
39 박수무당의 이름 24.08.22 12 0 9쪽
38 또 다른 계약자. 나의 엄마. [Four of Cups] 24.08.22 12 0 10쪽
37 찾긴 했다. 김주성을. 24.08.21 15 0 10쪽
36 손거울의 비밀 [The Tower] 24.08.21 13 0 11쪽
35 김주성 찾기 24.08.20 12 0 9쪽
34 그 아이의 이름은 24.08.20 13 0 11쪽
33 아픈 새끼손가락 24.08.19 11 0 11쪽
32 실종 2 [Strength] 24.08.17 15 0 10쪽
31 실종 1 24.08.16 14 0 9쪽
» 천왕 대신 할머니 24.08.16 1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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