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긴 했다. 김주성을.
“뭐? 악령의 모습? 아.. 잠깐만.. 말이 안 나오네.. 어떤 모습을 보여준 거지?”
“아마도 사람이었을 때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아니면 귀신의 모습일 수도 있긴 해.”
연서는 추가로 카드를 뽑았다.
[Ace of Cups, The Tower, Knight of Pentacles]
[에이스 컵스. 16번 타워 카드, 나이트 펜타클]
엄마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까짓 거울로 뭘 어쩌려고. 설마 아닐 거야. 이런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손거울을 통해 보여진 것은 그 희망을 철저하고 처절하게 무너트렸다.
설마 하는 생각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기대마저도 와르르 무너지게 만든 타워 카드. 곧 악령의 모습일 것이고 이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 방법 외에는 다른 선택지도 없을 인생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손거울을 보게 하고 싶은 건가?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 이 화경의 진짜 숨은 목적은 나이지 않을까. 그러나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뭐 하러 봐 니년 면상을.
“으아~! 과부하다~ 머리를 좀 쉬게 해야겠어! 도윤아 우리 아이스크림 사러 가지 않을래?”
“오. 좋지~ 아이스크림 지금 우리한테 필요해. 하하. 마실 다녀오자.”
그래. 이따가 다시 생각해 보자. 그나저나 그 아이 이름은..지.. 뭐였지? 아. 너무 궁금해지지만 일단정지.
아이스크림으로 수혈을 하면 집 나간 기억력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
그 이후로 연서와 도윤은 다른 단서들을 찾고 모아서 정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시간은 매몰차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흘러가고 있다.
악령은 꾀를 부리는지 보여주는 화경들에서 더 이상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계약을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다그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연서가 보이고 느끼는 것들과 도윤이 보는 것들, 그리고 두 사람의 꿈까지 끊임없이 맞춰보며 며칠이 흘렀다.
나머지 가족들은 어머니가 구미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계속 기도에 들어가셨다. 하루 종일 밤낮없이 결계에 들어갈 그때까지를 목표로 기도에 집중하시고 있다. 아마 가족들마다 기도하면서 받은 표적이나 느낌들이 있을 것이다.
결계에 들어갈 때가 되면 그때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을까.
*******
강 실장은 이 원장님의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다. 선후배 모임이 있었다고 한 지 벌써 이틀이 지났는데 아무 말도 없는걸 보면 잊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강 실장님 잠깐 이것 좀 봐주세요.”
갑자기 이 원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일에 문제 될 만한 게 없는데.. 뭘 봐달라는 거지.. 당황한 강 실장의 표정을 보고 이 원장은 살짝 ‘저쪽으로’라는 사인을 보내듯 고개를 옆으로 까딱했다.
“아! 네네.”
드디어 김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려는 모양이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지.. 강 실장은 첩보 영화를 찍듯 주변을 살피며 탕비실로 들어갔다. 이 원장은 누가 올세라 바로 본론을 얘기해 줬다.
“그저께 그 선후배 모임에서 그 사람 좀 물어봤어요. 친하거나 그런 라인은 없었는데 후배 중에 한 명이 김주성이라는 사람에 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요? 뭐라고 하시나요?”
김주성은 이 원장과 같은 스카이 의대 출신이라고 한다. 한때 유명했고 잘 나갔던 사람이라 선배들 사이에서는 종종 소문이 돌곤 했었다고.
선배들 말로는 김주성의 와이프가 상당한 재벌이어서 성형외과를 차려줬다는 소문과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갑자기 불미스러운 일로 수감되었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다. 출소 후에는 숨겨둔 재산을 가지고 필리핀으로 갔다는 얘기까지만 들었다고 한다.
강 실장은 바로 송민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송민진은 수녀님에게 뭔가 도움이 될만한 게 있을지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그때 메시지가 왔다. 강 실장이었다.
“오~ 강 실장님!”
아쉽게도 김주성의 소문을 들은 원장님의 후배가 있기는 했지만 직접 알지 못한다는 것과 출소 후 필리핀으로 떠났다는 내용까지다. 필리핀 이후의 소식은 전혀 모른다고 한다.
뭔가 더 핵심적인 걸 잡기를 기대했던 송민진은 실망했다. 강 실장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원하는 소식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딘가. 어렵게 알아봐 주신 강 실장님께는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에 맛있는 거 사드려야지.
그건 그렇고.. 김주성이 필리핀에 갔다니.. 일단 수녀님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김주성에 대해 알아본 내용을 메시지로 보냈다.
***
‘띠링’
수녀님이다.
⌜고마워 민진아. 찾기 힘들었을 텐데.. 알아보느라 고생했겠다.. 내가 나중에 고기를 쏘겠어! 너무너무 고마워~ 싸랑해~ ⌟
인간적으로 이런 부탁이 강 실장한테는 민폐일 수 있다. 하지만 수녀님이 아니, 지윤이가 이런 부탁을 할 아이가 아니라서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그래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도와주고 싶다.
이지윤은 송민진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늘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던 친구다. 괴롭고 죽고 싶을 때마다 손을 놓지 않고 민진이 충동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날이 새도록 지켜주던 친구였다. 그래서 이런 거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우리 수녀님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고기도 먹을 겸.. 나미아미타불..”
어릴 적 성당에 잘생긴 신부님이 계시다는 얘기를 얼빠인 이지윤에게 전했던 송민진은 불자다.
*******
‘띠링 띠링’
도윤의 휴대폰에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1번 채팅방이다. 수녀님이 친구를 통해 김주성에 대해 알아본 것을 올렸다.
‘필리핀?’
연서와 도윤은 거실에 앉아서 계속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는 중이었다. 휴대폰의 메시지를 본 도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연서야. 이거 1번 방에 수녀님이 올리신 건데 복사해서 보내줄게. 한 번 읽어 봐.”
연서는 도윤이 보내 준 메시지를 확인했다.
“필리핀? 뭐야. 튄 거야? 의사면허도 취소됐을 거고.. 나이도 좀 있을 테니 재기하기는 쉽지 않긴 하겠지만. 웬 필리핀이래? 후.. 김주성에 대한건 여기서 막히는 건가..”
휴대폰으로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던 도윤이 연서의 말을 듣고선 대답했다.
“아니. 아직은 포기하긴 이르네. 후훗. 목사님이 필리핀에 선교하시는 분들 많이 아셔서 그쪽에 물어보신다고 하시네. 으아~ 다행이다~ 그리고 그쪽 한인타운은 소식이 금방이잖아. 기다려보자.”
“오오~ 하긴 김주성 같은 사람이 갑자기 한인타운에 혼자 등장하면 쉽게 소문도 돌고 그럴 수는 있을 거 같아.”
그래도 생산적인 뉴스에 연서는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노트들의 글씨가 심란하기만 했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연서에게 다시 화경이 보인다.
***
또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는 혼자 있는 집에서 다짜고짜 화를 내고 있었다. 끊임없이 외치며 화를 내는 엄마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그렇게 묻는다는 건 아마도 악령에게 하는 말이겠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약속을 안 지키냐, 네 말만 믿었는데, 어떡할 거냐, 약속한 세 달이 지났는데, 도대체 언제 약속을 지킬 거냐 등의 말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연서의 화경은 거기서 끝났다.
***
그리고 노트에 그 장면을 적었다. 다 적고 나서 훑어보니 내용이 이상했다.
[왜 약속을 안 지키냐, 네 말만 믿었는데, 어떡할 거냐, 약속한 세 달이 지났는데, 도대체 언제 약속을 지킬 거냐]
이게 뭐지? 무슨 말이지? 돈이라도 빌렸나.. 세 달이라..
*******
“필리핀?”
도윤의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목사님께 되물었다.
“웬 필리핀 이래요? 꽁쳐 놓은 돈이 있으면 한국에서도 살 수 있지 않나? 범죄자긴 하지만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사건도 아니었고.. 이렇게 마음먹고 찾아도 정보가 없었는데.. 거길 왜 갔데.. 하긴 돈 있으면 한국보다는 더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기도 하겠네.”
목사님은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그럴 수 있지. 아마 그런 생각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심리적으로 한국을 뜨고 싶었을 수도 있고. 만약에 그렇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누리고 살만한 곳으로 필리핀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을 거 같네요.”
목사님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생과일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필리핀으로 갔다는 게 우리한테는 다행이네. 여보 그 배용재 선교사님 기억하지요? 그분 지금 필리핀에 계세요. 그리고 현지에 계신 목사님, 선교사님들도 몇 있으시고. 그분들한테 여쭤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네.”
어머니는 목사님의 말에 마침 잘 됐다며 좋아하셨다. 필리핀으로 쫓아갈 수도 없는 마당에 하나님이 도우신다며 목사님께 어서 연락을 해보라고 재촉하셨다.
목사님은 휴대폰의 전화번호를 훑어 보셨다. 그리고 메시지 앱도 함께 찾아보셨다. 다른 분들의 연락처도 좀 있는 편이었다.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우선 배용재 선교사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샬롬~ 선교사님~ 어떻게, 잘지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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