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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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문가비
작품등록일 :
2024.07.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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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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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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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현현(顯現)

DUMMY

“잠시만요.. 그 대단한 악신을 옮기는데 같이 살기만 하면 된다구요?”


연서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세..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과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지.. 그 부분은 말해줄 수 없네. 알아서 좋을 게 없어. 나도 가물가물하고..”


최선을 다해서 어떤 악수를 써서든지 옮겼다. 이 말인 거다. 


연서는 ‘니가 사람 새끼냐!’ 이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그래도 한참 어르신이라 참았다. 사람 새끼가 아니니 그 짓을 한 거겠지.


“나도 그 비방이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방법이 없었어. 그런데 그게 통한 거야..”


그때에 최원철은 권자영에게 더 큰 액수의 돈을 현찰로 한 번에 받았다고 한다. 최원철은 그때부터 유흥에 더 빠져들었다.


아들 김유범의 굿을 해주고 받은 돈이 차고 넘치면서 최원철은 유흥과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펑펑 써도 몇 년은 권자영이 굿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최원철은 그리도 증오하던 가난에서 벗어나자 돈을 뿌리고 다녔다. 도박은 재미로 시작했다가 중독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권자영이 최원철에게 자신이 도박장을 열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 도박장을 드나들게 되었다. 돈을 잃어도 채워질 돈이라 생각하니 재밌기만 했었다. 그렇게 다 잃은 날에는 도박을 더 하기 위해 권자영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면서.


그 더러운 굿을 하고자 최원철을 찾던 손님들은 꾸준히 있었다. 권자영이 아니어도 돈 줄은 이미 잘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도 망가져버린 생활이 이어지자 조금씩 무업과 멀어져 갔다.


그나마 김유범의 굿이 이어지고 있을 때에는 유흥과 도박이 취미생활 정도였다면 김유범이 결혼한 후에는 유흥과 도박이 인생의 전부였다. 


최원철의 재산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권자영에게 마지막까지 돈을 빌려 가면서 도박을 이어왔던 그는 권자영이 도박장을 완전히 없애면서 오갈 데가 없어졌다. 


그제야 자신의 현실을 깨달았고 고향이던 이곳으로 내려와 조용히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후 서울에서 고향으로 갈 준비를 하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신을 차렸을 땐 새까만 어둠 속의 차도 위였고 이미 덤프트럭은 그의 눈앞에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중간의 기억은 없다. 눈을 뜨니 시야가 흐렸고 밝은 실내였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보기 위해 집중을 했을 때 제일 먼저 보인 사람이 권자영이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 병원이구나 했다고 한다. 마지막 트럭이 눈앞에 있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깨어나 권자영에게 들은 것은 새까만 밤 도로 한가운데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고 트럭은 브레이크를 밝았지만 가속이 붙어 브레이크 파열로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오른쪽 팔과 왼쪽 눈이 망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긴 병원 생활의 비용은 모두 권자영이 지불했다고 한다. 동정이나 연민보다는 마지막 의무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고향에 가서 정착하라며 돈을 쥐여 주고 그녀는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 이용 가치가 다해져 버려진 것이겠지만. 


연서는 이야기를 듣고 최원철에게 질문을 했다.


“권자영이 운영한 도박장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고 계시나요?”


“잘은 몰라. 다만 고향에 내려와 조용히 지내며 대략 짐작만 했지. 내가 좋을 일을 만들어 줄 사람이 아니야. 덫이었을 것이라는 생각 정도는 했어.”



김유범의 한숨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듣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본 연서는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때 도윤이 먼저 나섰다.


“그 도박판은 당신을 잡기 위해 짜여진 도박판이었습니다. 같이 화투를 치던 사람들도 타짜였구요. 사기도박에 제대로 물리신 거죠. 그렇게 돈을 싹 가져가고 다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올려서 받아내고.. 당신이 권자영을 통해 불렸던 재산이 권자영에게 다시 돌아간 거예요.”


최원철의 긴 한숨이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그랬구나.. 하는 표정으로 먼 산만 보았다.


김유범의 상태도 만만치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어머니와 지금 우리의 대화는 아예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혼란스러움이 머리에 꽉 찬 김유범의 모습을 본 연서도 속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엄마에게 나쁜 남편이었던 것은 맞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때의 김유범은 사람 새끼가 아니었다. 연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권자영이 하라는 대로 살아온 인생에서 그만큼 의지했던 어머니의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일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박 선생님도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누구든 이 이야기를 들으면 웬만한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에 끔찍함을 느꼈을 테니.. 


“그러면 그 이후에 저희 엄마의 이야기나 다른 소식은 접하지 못하셨던 건가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최원철의 모습은 불과 몇 시간 전의 모습보다 10년은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나도 연락하지 않았고 그쪽도 나를 찾지 않으니 그 집안이야 알아서 살겠거니 하고 지냈지.. 아들이 이 지역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정신줄을 놓은 줄만 알았던 김유범이 한 가지를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저와 한수정 씨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것이 선생님과 관련이 있습니까?”


“아닐세. 그 이후로는 내가 관여하지 않았어. 혹시 결혼 후에도 어머니가 부적을 챙겨주시던가?”


“네. 챙겨주셨습니다. 일이 잘 풀리는 부적이라고 하셨죠.”


최원철은 마른 입술에 입맛을 다시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아마 다른 무당에게 받은 부적일 게야. 어떤 부적인지는 나도 모르고. 정말 일이 잘 풀리게 하려는 부적일 수도 있지. 자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이야. 일 잘 풀리라고  주는 부적 정도야 해줄 수 있지.”


이 부분은 아직 미스터리다. 이것의 답은 권자영만이 알고 있겠지.


이제 최원철에게 들을 것은 다 들었다. 마지막 권자영을 만나야 한다. 연서와 도윤은 김주성에 대한 소식을 김유범에게 전해야 할지 고민했다. 둘의 생각은 같았다. 알리지 말자. 


어머니인 권자영의 이야기 만으로도 김유범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할 것이다. 거기에 아버지까지 더해지면 정말 견뎌내기 어려울 수 있다. 덮자. 우리도 모르는 것으로 하자고 결론을 지었다.


최원철과의 대화가 끝나고 모두 일어났다. 그때 최원철이 연서와 김유범에게 마지막으로 모든 게 다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최원철은 연서에게 있어서 용서의 대상이 아니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나 해야 할 말이다. 연서는 최원철에게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이제는 그의 존재 자체가 연서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과는 나와 관계없다. 그러나 당신은 사과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미안하다는 말은 남은 평생 끊임없이 그 자신에게 갇혀 맴돌길 바랐다.


김유범은 아무 말도 없었다.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을 참는 것인지 분노를 참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주먹을 꽉 쥔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박 선생님은 영혼이 빠져나간 종이 인형 같았다. 그도 아무 말 없이 뒤돌아 나왔다.


내려가는 길은 박 선생님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보조석에는 김유범이, 뒷좌석에는 연서와 도윤이 탔다. 아무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깨고 말을 꺼낸 사람은 도윤이었다.


“김 선생님. 많이 혼란스러우실 거라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권자영씨를 만나야 합니다.”


“네..”


“아까 들으신 것처럼 연서의 몸에는 악령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이 악령이 연서의 영혼까지 잠식시키기 전에 우리는 꼭 권자영씨를 만나야 해요. 연서의 어머니와 같은 상황은 두 번 다시 만들면 안 됩니다. 도와주시죠.”


김유범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마른 세수를 했다. 그렇게 잠시의 호흡이 흘러가고 그가 입을 떼었다.


“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지금 병원에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김유범은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처를 찾는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뒷자리에 앉은 연서는 휴대폰의 연락처를 볼 수 있었다.


[이빛 요양병원]


그리고 드디어 그가 통화 버튼을 겨우 눌렀다. 잠긴 목소리를 털어내고 면회 예약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시간이 늦어져서 어렵고 내일 뵐 수 있다고 합니다. 시간은 11시예요. 아침에 저희 의료원 앞에서 10시까지 뵙는 건 어떠신가요?”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도윤이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은영이네’식당 앞에 세워둔 차가 있는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연서는 김유범과 잠시 둘만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김 선생님. 괜찮으세요?”

연서의 말에 김유범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 괜찮을 리가 있겠습니까..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사실.. 연서 양을 보는 것도 괴롭죠.. 지은 죄가 있으니.. 정말 미안합니다..”


연서는 김유범이 혼란스러움 속에서 찾아 꺼낸 말이 진심임을 안다.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 일을 어찌할 도리가 없음에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안다.


김유범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러니까 더.. 제가 마지막까지 도와야 하겠지요. 저도 어머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아졌네요..”


연서 또한 진심을 다해 김유범에게 말했다.


“버텨주세요. 버티셔야 해요. 그래야 속죄할 수 있어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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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9 아빠의 편지 (완결) 24.08.31 9 0 10쪽
58 소멸(消滅) 24.08.31 9 0 10쪽
57 지영아. 신지영. 24.08.31 8 0 9쪽
56 무너진 모래성 24.08.31 8 0 10쪽
55 우리 다시 만나요 꼭 24.08.31 10 0 11쪽
» 악신의 현현(顯現) 24.08.30 10 0 10쪽
53 벌전 (罰錢) 24.08.29 9 0 10쪽
52 거의 다 와간다 24.08.29 11 0 10쪽
51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24.08.29 9 0 10쪽
50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4.08.29 9 0 12쪽
49 결계 3 24.08.28 9 0 10쪽
48 결계2 24.08.28 11 0 10쪽
47 결계 1 24.08.28 12 0 11쪽
46 세치 혀 24.08.27 11 0 11쪽
45 그래도 악은 악이다 24.08.26 10 0 10쪽
44 하얀 종이 한 장 24.08.26 11 0 10쪽
43 권자영 그리고 최원철 24.08.25 11 0 10쪽
42 화투 패를 손에 쥔 뱀 24.08.25 11 0 10쪽
41 씨가 다른 아이 24.08.24 14 0 9쪽
40 순이네 수퍼마켙 24.08.23 11 0 10쪽
39 박수무당의 이름 24.08.22 12 0 9쪽
38 또 다른 계약자. 나의 엄마. [Four of Cups] 24.08.22 12 0 10쪽
37 찾긴 했다. 김주성을. 24.08.21 15 0 10쪽
36 손거울의 비밀 [The Tower] 24.08.21 13 0 11쪽
35 김주성 찾기 24.08.20 12 0 9쪽
34 그 아이의 이름은 24.08.20 13 0 11쪽
33 아픈 새끼손가락 24.08.19 11 0 11쪽
32 실종 2 [Strength] 24.08.17 14 0 10쪽
31 실종 1 24.08.16 14 0 9쪽
30 천왕 대신 할머니 24.08.16 1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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