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백면서생, 중원을 제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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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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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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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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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2

DUMMY

시하가 전유협의 말을 끊었다.

“내기를 하자면서 내기의 종목을 일방적으로 정한다면 그 또한 공정한 내기가 아니지 않겠는가?

객주가 두번을 정했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은데...“


“낭자의 말이 이치에 맞네.

좋네. 어떤 내기를 하면 좋겠는가?“


“내가 다른 무공에는 그닥 관심이 없지만 경공은 자신이 있어.

특히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쫓는 것을 무척 좋아한단 말이지.

객주의 허리에 일장의 줄을 묶고 줄 끝에는 천 조각을 매단 후 객주는 도망가고 나는 쫓는 내기는 어떤가?

천을 떼어내면 내가 이기는 것이고, 떼이지 않는다면 객주가 이기는 것이지.

다만 이 방을 벗어나지 않고 하는 것이 재미있을 듯 한데.“


“줄을 매고 뛰어다닌다니 다소 망측하기는 하겠지만 재미는 있겠네.

그리하세.“


푸른 비단 조각을 매단 전유협이 앉은 채로 몸을 날려 방의 오른쪽 구석으로 움직이더니 시하에게 손짓했다.

시하가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다가가자 전유협이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벽이 바닥이라도 되는 양 빠르게 달려 빙빙 돌아대었고, 시하는 천정의 모서리에 매달려 기회를 보아 달려 들었다. 


그 때마다 전유협은 탁자를 밟아 책장 위로 이동하거나, 병풍 뒤나 천정의 대들보에 몸을 숨겨 시하의 공격을 피하였다.  

몇번의 공격이 무위로 끝나자 시하가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이 방은 객주의 방이니 구석구석을 다 알아 공정하지 않아.

불을 끄고 방을 어둡게 한 후에 제대로 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대신 아까처럼 향 한자루가 다 탈때까지로 시간을 제한해도 좋을 듯 하고.“


방에는 창이 있었으나 날이 저물어 가는데다, 두터운 천으로 가리자 빛이 차단되었다.

방 안의 촛불들을 끄자 방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묻혔다. 


칠흙 속에서 시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시작.”


태현이 눈에 기를 모아 눈을 밝혔더니 어렴풋하게 시하와 객주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으나, 객주 등에 매달린 천조각까지는 볼 수 없었다. 


객주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한결 조심스러웠다. 

경공의 기술을 뽐내지 않고 시하와 삼장의 거리를 유지하며 시하의 움직임에 따라 비단 조각을 빼앗기지 않을 만큼만 반응하였다.  


시하가 양팔을 벌려 달려들자 전유협이 벽을 차고 대들보 위에 올라서는 시하를 내려다 보았디.

시하가 탁자 위에 올라 몸을 웅크리더니 몸을 날렸다. 


전유협이 시하를 피해 방의 모서리로 몸을 날리자 시하가 순간적으로 몸의 방향을 회전시키며 나풀거리는 천조각을 잡아 채었다. 

하지만 천조각은 시하의 손을 스쳐지나갔을 뿐이었다. 

수차례의 공격에도 결국 시하는 천조각을 손에 넣지 못하고 향은 재가 되었다. 


불이 켜지자 전유협이 흠칫 놀랐다. 

등에 매달렸던 푸른 비단 조각은 시하의 손톱에 사정없이 찢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래서야 내가 이겼다고 말하기에 면구스러운 지경일세. 

이번 내기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네. 

결국 첫판을 진 후 두판을 비겼으니 내가 진거로구만. 

하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즐거웠네. 

여기 술상과 음식을 내어오게. 

나는 탐혜선을 가지고 오겠네.“


삶은 양과 구운 소, 모래에 파묻어 통째로 익힌 돼지가 들아왔다.

찌고 굽고 삶은 새와 물고기도 식탁에 올려졌으며 한켠에 이국의 과실들도 자리잡았다.


시하가 태현의 손을 꼭 잡았다.  

“객주가 오기도 전에 손을 뻗어 음식을 탐할 것 같소.

그러지 못하도록 내 손을 꼭 잡고 있어 주오.

심장이 두근두근하여 참기가 어렵소.“


객주가 부채와 술병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부채는 식사 후에 줄 터이니, 우선 술이나 한잔 받게.

서역의 상인들에게 구한 술인데 보리를 싹트게 한후 진흙으로 만든 탄으로 익히고 발효시켜 만든 술이라 하네.

그들은 생명의 물이라 부른다는데 독하고 향기로운 것이 중국의 술에 비견할 만 하네.“


태현이 술잔을 받아드니 과연 달콤하고 매콤하며 향긋한 술의 향이 코를 찔렀다. 

먹고 마시니 태현도 시하도 객주도 몹시 즐거워져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객주가 시하에게 부채를 내밀었다.

“이것은 본디 정단주의 물건이었네. 

돌려주겠네.

이 부채를 꼭 구하고 싶어 정단주님께 애걸복걸하였다네.

하지만 단주께서는 이 부채를 귀하게 여겨 주지 않으셨지.

결국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를 상대할 때 사용했던 병법을 기록했던 귀갑도를 구하고 나서야 부채와 맞바꿀 수 있었네.


귀한 보물을 사고 파는 것이 부끄럽다 하시면서 임대의 형식으로 빌려주셨지. 

대신 단주가 돌아가신 후에는 소유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네. 

이제는 자네들의 것이네.

원의 낙양에 여행 중인터라 단주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여 송구하기 그지 없었는데, 부채를 돌려주니 마음이 한결 낫네.“


시하가 부채를 받아들고 활짝 펼치자 붉은 비단에 황색의 범과 푸른 용이 수 놓아져 있었다.

시하가 가진 우산의 문양과 똑 닮은 범과 용이었다.

접선이었으나 대나무가 아닌 한철로 만들어진 것도 우산과 닮은 꼴이었다.


태현이 부채를 받아 자세히 살피자 맨왼쪽 살에  上屋抽梯  (상옥추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지붕 위로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운다.

또 다시 손자병법이 적혀 있구려. 이번에는 28 책이오.“


전유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적을 유인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궤멸시킨다는 손자의 전략이지.

이 부채는 고구려 초기의 명장 부분노 장군의 부채라고 알려져 있다네.

그는 선비족을 토벌할 때 고구려의 병사들은 약하고 겁이 많다 소문을 낸 후 늙고 약한 군사를 보내어 적을 유인했다네.

선비족이 고구려의 병사를 우습게 여겨 뒤를 쫓자 퇴로를 막아 기습공격을 감행해 그들을 궤멸시켰다더군.

장군은 만년한철을 다듬어 살을 만들고, 서역의 금사로 천을 붙여 이 부채를 만들었네.

부채를 펼치면 날아오는 화살을 능히 막아낼 수 있으며, 부채를 접으면 마치 몽둥이처럼 적을 때릴 수 있지.

또한 부채살의 끝은 매우 뾰족하므로 적을 벨 수 있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네.

이 탐혜선은 장군의 권위와 지혜를 상징하면서도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보물인게야.

   

또한 자네들도 눈치챘 듯 우산과 부채는 한쌍이라네.

부분노 장군이 그의 정인에게 똑같은 재질로 만들러진 우산을 선물한 것이지.

나는 만금을 주고 이 우산을 구하였지.

그래서 이 우산과 짝을 이루는 부채도 욕심을 내었네. 


부채를 얻고 나서는 이 우산을 내가 마음에 둔 여인에게 선물하였다네.

그 여인이 예인 이승현이었어. 

그녀는 부분노 장군의 보물을 받아들고는 뛸듯이 기뻐하였지만, 노류장화인 기녀라는 이유로 나의 마음은 받아주지 않았다네.

하여 의미가 퇴색한 이 부채를 처박아 두게 된게야. 

그런데 이 우산을 자네들이 가지고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여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내가 준 선물을 도둑맞았는지 아니면 내다 버렸는지내 별 생각을 다 했지 뭔가?

그래 이 우산을 어찌 얻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는가?“


“소생이 여주께 큰 은혜를 입었으며, 작은 도움을 드렸습니다. 

작은 도움에 선물을 주시고자 하셨으며, 저희가 만휴루에 간다 하자 이 우산을 택하여 선물해 주셨습니다.“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전유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 여주는 우산과 부채가 다시 만나 짝을 이루기를 바랐나 보네.”


“세상의 길이 수만으로 갈라지더라도,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라 들었습니다.

여주과 객주의 마음이 서로 닿은 듯 합니다.“


태현의 말에 전유협이 그리움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이 여주가 나에게 자네들을 잘 도와주라는 의미로 우산을 주었는지도 모르겠군.

이 여주의 마음을 받아 자네에게 선물로 부채춤을 보여줄테니 잘 보게.“


전유협이 태현에게 부채를 빌려 일어서더니 붉은 수염 사내에게 대금을 불게 했다.

손가락을 하나 펴서 보여주고는 대금의 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그러나 절도가 있고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부채가 펴지고 접히며 때로는 막고 때로는 찔렀으며, 장과 함께 펼쳐지기도 하였다

태현은 그것이 춤이 아니라 천부 12장의 제1장임을 깨닫고 하나의 동작이라도 놓칠세라 뚫어져라 보았다.


손가락이 두개 펴지더니 아까와는 사뭇 다른 복잡한 동작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태현이 잘 볼 수 있도록 천천히 반복하여 시전하였다.

이윽고 열두개의 장법을 마친 전유협이 부채를 접어 태현에게 주었다.


태현이 감사한 마음에 일어나 절하려 하자 전유협이 태현을 막았다. 

“춤을 추었다고 절을 받는 사람은 없네. 

객잔 주인 따위가 제자를 둘리도 없지.

다만 오랜 시간 부채를 지니고 다닌터라 나의 장법과 연결하여 춤을 춘 것 뿐이라네.

어디 나의 춤이 얼마나 기억에 남았는지 보여줄 수 있겠는가?“


태현이 부채를 들고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하며 천부 12장의 움직임을 마음에 새겼다.

만류귀심경의 장법과 다른 듯하나 닮아 있는 것들을 이해하며 장법들의 오묘함에 감복하였다. 

태현이 채 기억하지 못한 부분을 천유협이 다시 바로 잡아 주며 긴긴 밤이 깊어 갔다. 


아침이 되어 길을 떠나기 전 태현이 전유협에게 삼배를 하였다. 

“객주께서 아둔한 저를 만류하시나, 제게는 스승이십니다.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제자라니? 아니 될 말이네. 

자네들이 큰 뜻을 펼칠 때 이 여주도 함께 한다 하였으니, 나 또한 자네들을 따르겠네.

작은 힘이라도 필요하면 알려주게.“


다음 목표는 서경이었다. 

태현이 새로 익힌 천부 12장을 만류귀심경과 결합하여 시전하는 방안을 고민하며 하루 종일 묵묵히 생각에만 잠겨있자, 시하가 심심하였는지 말을 걸어왔다.


“여행 초기에 공자는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쉴새없이 떠들어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는데, 이제는 하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구려.

나와 여행을 다니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재미나지 않는게요?

권태기요?“


“시하 당신과 여행을 떠난 후 참으로 많은 보물을 볼 수 있었소. 

말로만 듣던 환두대도며, 신라의 금관에 옥대에 반가사유상도 보았지.

더구나 범에게 쫓겨 폭포로 떨어졌고, 지네에게 물려 죽을 번도 하였소.

내 안에 독을 치료하기도 하고 새로운 무공을 배울 기회도 있었지.

하루하루가 이렇듯 흥미진진한데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 있겠소?

어제 배운 천부12장과 만류귀심경을 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인데, 이를 깨우친다면 잔치기에서 시하 당신을 능히 이길 수 있을 듯 하오.

오늘 밤 잔을 섞을 테니 얌전히 기다려 주시오.

그나저나 우리는 서경에서 누구를 찾아 가는 것이오?“


“단주의 임대증들 사이에 사뭇 형식이 다른 종이가 한 장 끼어 있었소.

종이에는 ‘서경 임가, 대왕 단검’ 이라고만 적혀 있소.

임가가 누구인지, 대왕은 누구이며, 단검은 또 무엇인지 아무 단서도 없구려.

또한 이를 빌려주었다는 것인지, 팔았다는 것인지도 종잡을 수 없소.

그러니 서경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임가를 아는 이가 나타날 때까지 물어 봅시다.“


맨땅에 머리를 부딪히자는 시하의 말에 말문이 막힌 태현이 헛헛한 웃음을 터뜨렸으나 시하는 개의치 않았다. 

어느덧 서경에 도착하였으나 날이 저물었으므로 객잔에서 머물며 다음날부터 임영학을 찾기로 하였다.


짐을 풀고 객잔의 대청에서 술과 고기를 주문하여 먹고 있는데, 한 여인이 허락도 없이 태현와 시하 사이에 불쑥 앉았다. 

태현이 놀라 바라보니 스물 정도의 앳되고 아리따운 낭자였다. 

낭자는 한숨을 폭 내쉬며 시하 앞에 있는 빈 술잔을 가져와 술을 따라 한 입에 털어 넣었는데, 정작 시하는 크게 놀라지도 개의치도 않았다.    


태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제가 아시는 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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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 2 24.09.10 32 1 12쪽
41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 1 24.09.09 38 1 12쪽
40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2 24.09.06 42 1 11쪽
39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1  24.09.05 42 1 11쪽
38 나는 뱀들의 제왕이다 24.09.04 40 1 12쪽
37 고려인을 괴롭혔으니 죽을 자리를 고려하라 24.09.03 48 1 12쪽
36 나는 거식좌가 아닌 미식좌라네 24.09.02 37 1 12쪽
35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2 24.08.30 46 1 12쪽
34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1 24.08.29 42 1 12쪽
33 억지로 무릎꿇린 자는 반드시 일어서는 법이오 24.08.28 43 1 12쪽
32 중원아 기다려라. 통째로 씹어 먹어주마. 24.08.27 44 1 13쪽
31 선묘고를 열었으니 우리 이야기도 끝나나보오  24.08.26 52 1 12쪽
30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2 24.08.23 57 1 12쪽
29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1 24.08.22 52 1 11쪽
»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2 24.08.21 46 1 12쪽
27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1 24.08.20 50 1 12쪽
26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2) 24.08.19 48 1 11쪽
25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1) 24.08.18 48 1 12쪽
24 나에게도 목표라는 것이 생긴 듯 하오 24.08.16 60 1 11쪽
23 내가 절망하지 않으면 이자도 죽지 않는다 24.08.15 55 1 12쪽
22 악의 나무가 자라기 전에 뽑아내는 것이 정의  24.08.14 5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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