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백면서생, 중원을 제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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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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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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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고를 열었으니 우리 이야기도 끝나나보오 

DUMMY

선묘고는 총관 뒷산의 동굴에 있었다.

총관에는 단주 대행 이인암과 호법 권한궁이 기거하였고, 총관 뒷뜰의 문이 선묘고로 통하는 입구였다. 

보통 때에는 경계하는 사병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인암이 권한궁과 함께 원나라 사신들과의 연회로 자리를 비웠으므로 총관은 한적하였고, 사병들도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경계가 삼엄하지 않았으므로 잠입은 어렵지 않았다.

또한 시하가 길을 잘 알았으므로, 둘의 신묘한 경공으로 순식간에 선묘고 앞에 도달하였다.

선묘고의 문을 처음 본 태현이 놀랐다.

문은 두터운 만년한철로 이루어져 벨 수도 부술 수도 없었다. 


시하도 놀랐는지 숨을 들이켰다.

“나도 실제로 온 것은 처음이오.

정 단주가 이 곳에 올 때는 나를 모시고 오지 않았소.

들은 말로는 이 문의 두께가 두자가 넘는다 하오.

그러니 수백명이 밀어도 꿈쩍하지 않으며, 수만번을 망치로 내려쳐도 조그마한 생태기조차 낼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일 것이오.

그런데 문에 글자들이 적혀 있구려.“


시하의 말대로 문에는 이백자 가량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한시들이었다.

“이 시들은 내가 좋아하는 두보의 시요.

그나저나 만년한철에 이렇듯 시를 새기다니 정말 대단한 공력이오. 

나는 바위에 글을 새기고 지울 수는 있으나 아직 수련이 부족하여 한철에 글을 새길 수는 없단 말이지.“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며 문을 살피던 태현이 한시가 적힌 글귀 가운데 낯익은 문양을 발견하였다. 

골똘히 기억을 더듬던 태현이 문양을 생각해 내었다.


“저 문양은 분명 광개토 대왕의 단검 손잡이와 검날의 경계인 코등이의 문양이오.

내가 단검을 살필 때 특이한 문양이라 생각하여 한참을 보았으니, 정확히 맞을 것이오.

또한 향진방주께 들은 바, 전 단주께서 이 단검이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 하셨다 했소.“


태혀이 문 앞에 앚아 한시를 읽어 내려갔으며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유 공자. 모르겠으면 그만 갑시다. 

길이 없을 때는 포기하는 것도 전략이요.

가서 정보를 더 모아 봅시다.“


미동도 없이 몇시진이나 한시를 읽고 또 읽어 내려가던 태현이 고개를 들었다.

“왠지 문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 같소. 

설 장로에게 이 소식을 전하여 얼른 이인암을 단주 자리에서 끌어내려야겠소.“


“공자는 왜 이리 급하오?

첫째, 아직 문을 여는 방법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잖소.

둘째, 문을 연다한들 공자 역시 이인암과 같은 단주 후보일 뿐이오.

아무리 공자가 선묘고의 문을 열었다 한들 이미 세를 불린 이인암이 단주가 될 확률이 높소. 

그렇게 되면 선묘고의 보물들은 몽땅 이인암의 차치가 될 것인데 그래도 좋소?

셋째, 공자는 단주 자리에는 관심이 없는 것 아니오?

보명단은 이미 사라졌고 일부는 공자가 복용했으니 공자가 문을 급히 열 이유는 없소.

그러니 우선 문이 열리는지 확인하고, 이인암이 정단주를 해하였다는 증좌를 찾고, 진해를 불러 온 후 개방하는 것이 순서요.“

태현이 시하의 말에 동의하였다.


다음날 둘은 다시 서경으로 말을 달렸다. 

향진방의 총관에 도착하자 태현을 알아본 사람들이 태현을 극진히 맞았다.

시하가 태현을 툭 치며 물었다.


“나 모르는 사이 향진방의 귀한 고객이라도 된거요?

어찌 사람들이 하나같이 공자에게 깍듯하오?“


태현이 사실대로 말하기 무엇하여 얼버무리는 사이 방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내일의 일을 약조한 것은 아니라 하나, 나를 만나는 자리에 여인을 데리고 오는구나.

낙제감인 것이 분명하다.“


태현이 고개를 숙였다.

“방주님. 제게 대왕의 단검을 빌려 주십시오.

제가 아무래도 선묘고의 비밀을 알아낸 듯 합니다.

제가 알아낸 것이 맞는지 확인만 하고 돌려드릴 터이니 잠시만 빌려 주십시오.“


방주가 반색하였다.

“비밀을 알아내다니, 자네가 아주 낙제감은 아닌가 보네.

그를 확인하고 또다시 돌려주러 여기 서경까지 언제 온단 말인가?  

같이 가세.“


다시 말을 달려 개경으로 향했다.

향진방 개경 분원에 도착하자 이미 향진방주와 몇몇 수하생들이 도착해 있었다.

태현이 향진 방주가 건네준 대왕의 단도를 받아들었다.

“방주님. 여기까지 오셨으니 같이 가시지요.”


“선묘고에 천금이 쌓여있다 한들 그것은 내것이 아니네. 

보물이 있다한들 그것은 정단주가 뜻이 있어 모은 물건들일테지.

하지만 실제로 보물을 영접하면 나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나?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게나.“


밤이 되어 이인암과 호법이 원나라 사신들과의 연회에 가자 태현과 시하는 선묘고로 향했다. 

선묘고 앞에서 태현이 긴 함숨을 내쉬자 시하가 채근하였다.

“궁금해 죽겠소. 

뭐라도 해보시오. 

대체 뭘 알아냈다는 말이오?“


태현이 일어나더니 瞞(만)자를 찾아 손바닥으로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현이 심법을 읆어 기를 모은 후 다시 한번 瞞(만)자를 누르자 瞞(만)자가 두치 뒤로 밀려났다.


태현이 시하를 보며 웃었다.

“우리가 찾은 것이 손자병법의 1책 만천과해 (瞞天過海), 4책 이일대로(以逸待勞), 18책 금적금왕 (擒賊擒王), 28책 상옥추제(上屋抽梯) 그리고 33책 붕우요고근 적인갱요고근 (朋友要靠近,敌人更要靠近) 이지 않소?

지난번 여기 앉아 시구를 가만 들여다보니 우리가 찾은 손자병법 구절들의 첫글자가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소.

하여 순서대로 눌러볼 것이오.

처음에는 1책의 첫글자인 만자를 눌렀으니 이제는 4책의 첫글자인 以(이)자를 누르겠소.“


以(이)자 또한 두치 뒤로 밀려났다. 

곧이어 18책의 擒(금), 28책의 上(상), 33책의 朋(붕)자를 눌러 밀었다.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았다.

시하가 역정을 내였다.

“왜 열리지 않는 것이오?

광개토 대왕의 칼은 어따 쓰는 것이오?“ 


태현이 대왕의 단검을 만년한철의 문양에 맞추어 찔러 넣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현이 단도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리자 단도가 소리도 없이 회전하였다.

‘철컥’

만년한철로 된 선묘고의 문에서 소리가 났다. 


태현이 온 몸의 기를 집결하여 문을 밀자, 문이 소리없이 열리고 검은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횃불을 켜자 마치 보물 전시관 같은 선묘고가 모습을 드러냈으며, 태현이 숨을 삼키었다. 

시하가 태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선묘고를 열었으니 우리 이야기도 끝나나보오.”


옛 고조선의 유물부터 삼국의 보물이 눈에 띄였고, 중국의 진과 송, 그리고 한나라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도 꽤 많았다. 

하나같이 비싸고 귀하며 선묘한 것들이었다.


수많은 보물들을 스쳐지나며 만독보명단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태현이 왼쪽 선반의 맨 끝 아래쪽에서 약재들을 발견하였다. 

“시하, 이리 와 보오.

여기 김윤호 대방이 말씀하신 백년설삼이 있는 듯 하오. 

이름 모를 약재들이 즐비하니 여기서 찾아 봅시다.“


곧이어 시하가 제목도 없는 얇은 소책자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만독보명단을 만드는 제조법인 듯 하오.

여기 필요한 약재와 제조 방법이 적혀 있소.”


책자와 약재를 비교하니 보명단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스물여섯가지의 약재 중 네가지가 없었다.

“6장이 넘는 상어의 말린 간, 백화련의 곷잎 다섯장, 청단목의 가는 뿌리, 황금옥의 가루 이렇게 네가지가 없소. 

상어를 제외하고는 이런 이름의 약재는 들어본적도 없구려. 

예전에 서역의 상인에게 들었는데 서역에는 검은 모자를 쓰고 코가 긴 할머니들이 이상한 약재들을 무쇠 솥에 끓이며 저주를 건다하오. 

선묘단은 똑같은 방식으로 명약을 만드는가 보오.“


태현의 말에 시하가 책자를 접어 태현에게 주었다. 

“이건 여기에 두지 말고 공자가 보관하는 것이 낫겠소.”

태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품에서 선덕여왕의 그림이 담긴 나무통을 꺼내어 그림과 함께 책자를 넣었다.

그리고는 서역의 것으로 보이는 나무통 옆에 툭 던져 놓았다. 


“저 서역의 나무통은 필시 먼곳을 볼 수 있는 원경일 것이오. 

대단한 물건이나 보기에 볼품이 없으니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오.

본디 중요한 물건은 숨기는 것보다 저리 아무렇지 않게 놓아두는 것이 상책이라오.

이미 제조법은 내 머리 속에 있으니 여기에 두는 것이 안전할 듯 하오.“


“알겠소. 

선묘고에 들어왔으나 정단주 죽음의 단서도, 나를 되돌릴 방법도 찾지 못했구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래도 문을 열었으니 한발의 전진은 분명하오.

누가 올지 모르니 일단 나갑시다. 

나가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상의 합시다.“


횃불을 끄고, 밖으로 나가 조심스럽게 광개토 대왕의 칼을 돌려 빼자 만년한철의 문이 스스르륵 닫혔고, 눌려 들어갔던 글자들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향진방주에게 칼을 돌려주자 방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문이 열렸는가?

거기에 만독보명단이 있던가?“


태현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방주님.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보명단은 없었습니다. 

대신 제조법을 찾았는데, 보도 듣도 못한 약재들이 적혀 있는터라 진위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보도 듣도 못한 약재한 무엇을 말하는가?”


“4장이 넘는 상어의 말린 간, 백화련의 꽃잎 다섯장, 청단목의 가는 뿌리, 황금옥의 가루라는 것인데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백화련은 워낙 귀한 약재이고, 황금옥은 중국의 사막지역에서만 나는 희귀한 보석이라 고려에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네. 

구하려면 낙양이나 장안에 가서 수소문을 해야 할 것이야. 

4장 넘는 상어라면 내가 구하여 주겠네. 

간을 빼어 잘 말려 놓는 것까지 해주지. 

그러나 청단목이라는 나무는 나도 처음 듣네.

그러면 자네는 이제 원으로 갈 것인가?

그래 그래 무릇 사내란 큰 나라에서 견문을 넓히고 뜻을 품어야 하는 것이지.

문유를 지방으로 심부름을 보낸터라 자네에게 배웅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구나.“


설장로 또한 태현이 원에 다녀 오기를 바랐다.

“유 공자가 이미 많은 도움을 준 터라 더 부탁하기도 면구스럽네.

그러나 조금만 더 힘써 준다면 정말 고맙겠네.

나는 이 곳에서 어떻게든 이인암이 선묘단의 보물을 다 팔아버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겠네. 

반드시 전 단주의 일주년 제사가 돌아오기 전에 약재와 정진해 소협을 데리고 와주시게.“


“알겠습니다. 

제가 여행 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장로님께만 선묘고를 여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태현의 제안에 설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선묘고는 유공자와 정소협이 와서 열면 되네. 

만약 공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때는 차라리 아무도 열지 못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네.

오랜 시간 모아온 보물들이며, 훗날 원과의 싸움에 큰 힘이 될 물건들일세.

그런 물건들이 이인암 손에 넘어가게 할 수는 없네.“


다음날 태현이 시하에게 청하였다.

“선묘고 안에 당신이 몸을 되찾는 방법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되었소.

혹시 보명단을 만들면 되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함께 약재를 찾으러 가면 어떻겠소?

나 혼자 가면 위험하기도 하고, 적적하기도 하니 같이 가주지 않으리오?

이번에는 금자를 넉넉히 챙겨 고기와 생선을 먹는데 하등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하겠소. “


시하가 품에서 은박에 쌓인 작은 환약 하나를 꺼냈다.

“용혈초단이라는 약을 찾았소. 

어쩌면 이 약을 먹고 몸을 되찾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오. 

그러나, 공자와 함께 유랑을 좀 더 하는 것이 꼭 나쁜 선택은 아닐 듯 하니 같이 가 주겠소. 

또한 아직 정단주의 죽음에 대한 비밀 조차 풀지 못했으니 임대증을 따라 길을 떠나 봅시다.

굶기지 않겠다는 약속은 꼭 지키시오. 

그런데 공자는 원나라 말은 할 줄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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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 1 24.09.09 38 1 12쪽
40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2 24.09.06 42 1 11쪽
39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1  24.09.05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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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묘고를 열었으니 우리 이야기도 끝나나보오  24.08.26 5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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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1 24.08.22 5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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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1 24.08.20 5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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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1) 24.08.18 4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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