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백면서생, 중원을 제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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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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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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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1

DUMMY

외공을 오래 연마한 듯 팔이 두껍고 근육이 꿈틀거리는 사내였다.

덮수룩한 수염 아래 턱은 강인하였고, 짙은 눈썹 아래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가죽 상의를 입은 것으로 보아 말갈인이나 선비인처럼 보이기도 하였으나 중원말 또한 자연스러웠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아마도 삶은 개고기일 터였다.


태현이 포권하여 예를 취하고 사과했다. 

“대협. 저는 오백년 후 천년 후에는 이런 저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실없는 상상을 한 것 뿐입니다.

대협을 모욕할 뜻은 전혀 아니었으나 사과드리겠습니다.“


“뺨을 후려치고는 때릴 의도가 아니었다 말하면  아픔이 사라진다더냐?”


“제가 사과의 뜻으로 대협께 술을 사겠습니다.

향기로운 술과 함께 노여움을 푸시지요.“


근육 사내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탁자에 앉은 동료들과 객잔의 점원에게 소리쳤다. 

“여기 이 예쁘장한 샌님들이 우리에게 술을 사겠다한다. 

내가 그래도 길림 여진의 족장인데, 어찌 남의 술을 거저 얻어 먹겠는가?

이 자들에게도 공편한 기회를 줘야겠다.

여기 가장 독한 술을 가장 큰 동이 째로 가져와라.“


태현과 시하를 마주하고 근육 사내와 또 한명의 거대한 근육덩어리가 마주 앉았다.

마치 돼지처럼 살이 오른 것도 같고 멧돼지처럼 근육으로 뭉쳐진 것도 같은 사내였다.

그들 옆으로 커다란 술 동이가 놓여졌다. 


근육 사내가 바가지로 술을 퍼 네사람 앞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술을 그냥 얻어 먹을 수는 없지. 

이제부터 술을 한잔씩 마셔서 끝까지 마시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지는 자가 술값을 내는 것이다. 

우리에게 모욕감을 주었으니, 내기마저 빼지는 않으렸다.

첫 잔을 비워라.“


태현과 근육 사내, 그리고 근육 돼지가 단숨에 술잔을 들이켰다.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지는 자는 술값을 내고 이긴 자에게 뺨을 맞기로 합시다.

나는 여기 유공자에게 걸겠다.“


시하의 말에 태현이 시하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여기 이 공자의 부친은 술을 과하게 드시다가 큰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

하여 아버님의 유지에 따라 술을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지요. 

그러니 공자의 술은 내가 대신 마시리다. 

어차피 내가 엎어지면 우리가 지는 것이니 내가 이 공자의 잔까지 마셔도 되겠습니까?“


근육 사내가 껄껄 웃었다. 

“아주 샌님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남자같은 모습도 있구나. 

좋다. 네가 두배로 마셔라. 


잠시나마 술친구가 되었으니 내 소개를 하마. 

나는 길림 여진의 후르가족 족장인 타이친이다. 

중원어로는 태진이라 한다. 

여기 이 사내는 기르하치다. 

너희가 내기에서 지면 기르하치가 뺨을 칠 것이다.

기르하치는 쌀 다섯가마니를 어깨에 얹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여러번 반복할 수 있으며, 양손에 쌀 가마니 하나씩을 잡고는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즐겨하는 장사이다.

그렇게 몸을 단련한 기르하치에게 뺨을 맞으면 얼굴이 찢어지고 이빨이 부서질 것이다.

그러니 취하지 말고 꼭 이기거라.

한잔 더 마시자.“


타이친과 기르하치가 술을 마셨고, 태현이 두잔의 술을 한숨에 마셨다.

“나는 유태현이라 합니다. 

여기 이 공자는 정시하이지요. 

우리는 고려인인데 큰 나라를 보고, 큰 뜻을 품기 위해 중원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이리 좋은 분들과 연을 맺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제가 한잔 따르겠습니다.

드시지요.“


세 남자가 술을 마시자 시하가 태현을 쿡 찔렀다.

“내가 유심히 보니 타이친이라는 자가 딱 사내답게 생긴 것 같소.

공자도 턱을 좀 넓히고 수염을 기르며, 눈썹을 붓으로 짙게 그려 넣으면 어떻겠소?

지금보다는 훨씬 사내답고 잘 생겨 보일 듯 하오.“


칭찬받은 타이친이 크게 웃으며 모두의 잔에 술을 따랐다.

“난 그대들이 마음에 든다. 

부디 기르하치가 술에 만취해 그대들의 뺨을 살살 치기만을 바라겠다.

그러니 기르하치가 취할 때까지 반드시 버티어라.“


모두가 술을 털어넣는데 객잔의 문이 벌켝 열렸다.

원의 복색을 한 관리가 원의 병사 몇명를 끌고 객잔에 들어섰다.. 

원의 병사는 고려인 노인 한명의 옷깃을 움켜쥐고 있었다.

노인의 낯이 익어 유심히 보니 태현과 시하가 구해낸 공녀 행렬 속 고려인  중 하나였다.


“모두 보아라. 

오늘 송나라의 잔당 놈인지, 말갈놈인지 모를 놈들이 우리 원의 병사들을 살해하고 원의 재물을 약탈하였다.

수상한 자를 본다면 바로 우리에게 알려야 할 것이야.

보고도 알리지 않는다면 우리 대원 제국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여겨 멸문할 것이다.“

원의 관리가 병사와 고려 노인과 함께 탁자를 돌며 일일히 확인하며 돌았다.


“잘 보아라. 

아까 대원의 전사들을 공격한 자가 있는지 찬찬히 살피어라.“ 


태현의 탁자에도 원의 관리 일행이 도착하였다.

“타이친, 내일 있을 기마 격구는 포기한 것인가?

이리 술을 마신다면 내일도 우리가 또다시 이길 것이 분명하겠구나.“


타이친이 원의 관리를 노려 보았으나, 원의 관리는 개의치 않고 고려 노인에게 말했다.

“여기 이 놈들이 그 놈들이냐?”


고려인이 한참을 태현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현령 어른. 원의 병사를 해친자는 키가 구척에 수염이 덮수룩하고, 얼굴이 검은 자입니다. 

이 자들이 아닙니다.“

긴장한 듯 눈을 내리깔고 있는 태현을 타이친이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원의 관리가 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천하의 대원제국 기병들이 이런 서생 따위에 당하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너희는 지금것 본 적이 없는 자이니 확인을 해야겠다.

호적이나 여행증명서를 꺼내어라.“


태현은 원을 여행할 때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에 심히 당황하였다. 

원의 관리를 일장에 제압하고 도망가는 것이 어떨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타이친이 벌컥 화를 내었다.

“나와 술을 마시고 있으니 응당 후르가족의 일원이 아니겠는가?

어찌 감히 우리를 모욕하려 하는가?

내가 내일 기마 격구에서 너를 박살내어 이 모욕을 백배로 갚아주마.“


“클클클, 지금껏 세번을 겨뤄 한번도 이기지 못한 자가 말은 호기롭구나.

내일 술에 취해 말에서 떨어지지나 말거라.“

웃음 소리와 함께 원의 관리가 다른 탁자로 옮겨갔다.


원의 관리와 병사들이 나간 후 태현이 인사하였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여행 증서를 가져오지 않아 낭패였는데, 족장께서 도와 주셔서 창피를 모면하였습니다.” 


“하룻밤 술친구라 한들 친구 아니겠는가?

아까 고려 노인과 자네들의 표정을 살피니 자네들이 그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이 틀림 없을 것이야.

원은 우리 여진의 적이며, 적의 적은 친구와 다름없으니 도운 것이네.

우리는 마저 내기를 마치세.“


술동이가 비워지고 새로운 술동이가 들아왔다.

근육 돼지 기르하치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두번째 술동이가 비워질 무렵 타이친이 의자에서 떨어져 코를 골았다. 

뒤에서 구경하던 일행들이 타이친과 기르하치를 떠메고 사라졌다.


다음날 태현과 시하가 조반을 먹고 있는데, 타이친이 들어와 태현 옆에 앉았다.

타이친은 아직도 얼굴이 붉었고 입에서는 술냄새가 진동하였다.

“우리가 졌네. 

약속은 약속이니 내 뺨을 때리게, 

기르하치는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내가 두대를 맞겠네. 

우선 뺨을 맞고 술값을 치르도록 하지.“


태현이 일어나 인사했다.

“어제 저희를 친구로 대하여 도와주셨는데 어찌 내기의 승부가 중요하오리까?

술값은 어제 제가 치렀으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런데 오늘 기마 격구 시합이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기마 격구라 하면 말을 탄 채  기다란 몽둥이로 직물로 둥글게 감싼 공을 쳐 상대 진영의 천막에 넣는 경기가 아닙니까?“


“그렇다네.

열심히 싸우고는 있지만, 번번히 놈들에게 지는 터에 부족원들을 볼 낯이 없다네.“


시하가 벌떡 일어나 없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여기 유공자가 소싯적 기마 격구의 영재 소리를 들었지.

무릇 격구 내기라면 제대로 걸어야 맛이 아니겠소.

유공자가 참가하여 후르가족이 이긴다면 부탁 하나를 들어주시오.

만약 진다면 우리도 부탁을 들어 드리지.“


“유 공자같이 희고 여린 사내가 격구에 능하다니 믿음이 가지 않네만, 어제 술 내기에 참패하였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네.

만일 유공자의 도움으로 오늘 격구 시합에서 우리가 승리한다면 자네의 부탁이 무엇이든 내 이름을 걸고 들어주겠네.

일단 이기기만 해 보시게.


그리고 어제 도망친 고려인 중에 잡힌 것은 걸음이 느린 늙은이 둘과 여인 하나가 전부라 하네.

혹시 궁금할까 싶어 알아보았네.“


해가 중천에 뜨자 기마 격구 시합이 시작되었다.

구름같은 구경꾼들을 향해 시합의 판정을 맡은 심판관이 크게 외쳤다. 


“이제부터 대원제국의 길림성 전사들과 길림성 후르가족의 네번째 격구 시합이 있을 것이오.

각 열명씩 참가하며, 죽거나 부상을 당한다해도 충원하거나 대체할 수 없소. 

모든 선수들은 격구봉 외에 다른 무기를 소지하여서는 아니되며, 격구봉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반칙이오.

다만 손발을 이용한 공격은 제한이 없이 허용되오. 

공을 손으로 만져서는 아니되오.

시합은 전반경기를 반시진 동안 진행한 후 일각을 쉬고 후반경기를 반시진 진행하여 최종 점수로 승부를 가릴 것이오.

시합에 임할 전사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태현이 늠름히 말에 올라 타이친 옆에 섰다.

사실 태현은 기마 격구를 해본 적이 없었으나, 어릴적 부터 격구 시합을 많이 구경한데다 지금은 검술과 경공 등의 무공을 익힌터라 자신이 충만했다.

심판관의 외침에 따라 시합이 시작되었다. 


타이친이 공을 몰더니 태현 쪽으로 공을 쳐 주었다.

태현이 격구봉으로 공을 멈추려는데 상대의 격구봉이 태현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허리를 뒤로 젖혀 피하였으나. 어느새 공은 상대에게 넘어갔다. 


태현이 급하게 말을 몰아 쫓았으나 원의 전사는 태현을 놀리듯 이리저리 공을 굴리며 피하였다.

공은 원의 전사들 사이로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후르가족 진영의 천막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구경꾼들의 함성이 터졌다.

“대원 전사 1 점 득점이요.”


말을 몰아 태협의 옆으로 다가온 타이친이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정말 격구 영재가 맞는가?

공을 다루는 것이 어째 서툴고 어색해 보이네.

뭐, 아직 몸이 차가워 그런 것이라 생각하겠네.

얼른 몸을 데워 실력을 보여주게나.“


태현이 상대 진영의 천막 근처로 말을 내 달렸다. 

몸이 가늘고 날렵한 후르가족 전사가 공을 몰고와서 태현 쪽으로 쳐주었다. 


태현이 격구봉을 높이 들어 치려는데 허리에 둔탁한 통증이 전해졌다.

원의 전사 하나가 심판관의 눈을 피하여 격구봉으로 태현의 등을 가격한 것이었다.

태현이 충격으로 허리를 부여잡은 사이 공은 원의 전사에게로 넘어갔다.

원의 구경꾼들에게서 함성이, 후르가 구경꾼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졌다.


태현이 경기장의 한편에 혼자 외로이 서 있으니 멀리서 타이친이 공을 날려 주었다. 

격구봉을 들어 실력을 보여주려는데 어느 새 원의 전사가 공을 가로채 사라졌다. 

그 후로 전반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태현에게 공을 주지 않았다.


심판관이 외쳤다.

“대원 전사는 4점을 득하였고, 후르가 전사는 1득점을 하였소.

1각을 쉬고 후반 경기를 치르겠소.“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 태현을 시하가 비웃었다.

“공자를 믿고 추천했건만, 아무래도 운동 신경이 남들보다 떨어지나 보오.

남들을 피해 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툭 차넣으면 득점인데, 그게 그리 어렵소?

후반에도 정히 안된다면 차라리 격구봉을 버리고 상대편 놈들을 패시오.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 편에 기여를 좀 해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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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 1 24.09.09 38 1 12쪽
40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2 24.09.06 42 1 11쪽
39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1  24.09.05 41 1 11쪽
38 나는 뱀들의 제왕이다 24.09.04 40 1 12쪽
37 고려인을 괴롭혔으니 죽을 자리를 고려하라 24.09.03 48 1 12쪽
36 나는 거식좌가 아닌 미식좌라네 24.09.02 36 1 12쪽
35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2 24.08.30 46 1 12쪽
»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1 24.08.29 42 1 12쪽
33 억지로 무릎꿇린 자는 반드시 일어서는 법이오 24.08.28 42 1 12쪽
32 중원아 기다려라. 통째로 씹어 먹어주마. 24.08.27 44 1 13쪽
31 선묘고를 열었으니 우리 이야기도 끝나나보오  24.08.26 51 1 12쪽
30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2 24.08.23 56 1 12쪽
29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1 24.08.22 51 1 11쪽
28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2 24.08.21 45 1 12쪽
27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1 24.08.20 49 1 12쪽
26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2) 24.08.19 47 1 11쪽
25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1) 24.08.18 4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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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내가 절망하지 않으면 이자도 죽지 않는다 24.08.15 55 1 12쪽
22 악의 나무가 자라기 전에 뽑아내는 것이 정의  24.08.14 5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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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과거지사로 눈물을 허비하지 말게 (1) 24.08.12 5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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