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백면서생, 중원을 제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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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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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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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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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무릎꿇린 자는 반드시 일어서는 법이오

DUMMY

‘그르렁’ 소리에 뒤를 돌아 보았다. 

몸이 황소만한 흑곰 한마리가 생선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씰룩이며 한걸음씩 다가왔다. 


태현이 왼손에 커다란 돌멩이를 들고는 오른손에 잡은 자갈과 맞부딪혔다.

내공을 실어 부딪힌 자갈과 돌이 찢어지는 듯 한 굉음을 내며 산산히 부서졌다.


곰이 멈칫하더니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태현이 또다른 돌멩이들을 부딪혀 한번 더 굉음을 내자 곰이 머리를 돌려 그대로 사라졌다.


“보았소?

저 집채만한 곰이 나의 만류귀심에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모습을?

이래도 내가 중원에 도착하기 전에 죽는다는 말이오?“  


태현의 자랑에 시하가 코웃음 쳤다.

“보면 철산마제도 참 안타깝소. 

어렵게 연을 맺은 제자가 기껏 전수한 무공을 물고기를 잡고, 곰을 쫓는데나 사용하니 말이오.

왠만하면 악당을 차벌하는데도 써 보시오.

아니면 저잣거리에서 재주를 펼쳐 돈이라도 벌든가.“


그래도 생선을 배불리 먹고 쉬니 기력이 회복되었는지 발길을 옮기는 것이 훨씬 수월하였다.

몸이 가벼워진 것이 반씩 나누어 먹은 용혈초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태현이 말하는데, 시하가 몸을 낮추고 멈추어 섰다. 

“쉿!.  말발굽 소리가 들리오.”


둘은 숲의 나무 위로 올라 몸을 숨겼다.

“이인암이 기어코 또 쫓아왔나 보오.

이번에 지면 약도 없으니 가급적 피해야겠소.“


태현의 말에 시하가 발끈했다.

“공자는 배알도 없소?

그렇게 처맞고 또 몸을 사린다는 말이오?

여기 나무 위에 숨어 있다 그 자를 급습합시다.

혹시 독 같은 건 없소? 암기도 좋고.“


그러나 이인암 대신 긴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맨 앞에서 원의 장수가 말을 타고 이끌었고, 그 뒤로 10여기의 기병들이 뒤따랐다.  

그 뒤 세대의 마차에는 쌀이 실려 있었고, 그 다음 마차들에는 상자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개 숙인 여인들을 태운 마차들이 뒤를 따랐다.

등과 어깨에 하나 가득 짐을 진 고려인들이 마차 뒤를 따라 걸었고, 맨 뒤에서 원의 기병들 10여기가 고려인들을 독촉하였다. 


앞과 뒤, 그리고 마차의 옆에서 호위를 하는 기병들을 모두 합하면 오십기가 넘었다. 

마차에 탄 고려의 여인들이 삼십여명, 짐을 진 고려인들은 백여명 정도였다. 


짐을 진 늙은 고려인 하나가 기침을 하며 뒤로 처지자 원의 기병이 창끝으로 다리를 쿡쿡 찔러대며 독촉하였다.

하지만 너무 깊이 찌른 탓에 고려인이 짐을 진채 엎어졌다.

원의 기병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고, 독촉하던 기병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엎어진 고려인의 등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너무나 가볍고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의 생명은 원 기병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산산히 부서졌다.

그의 짐은 다른 고려인들이 나누어졌고, 그의 시신은 길 옆으로 굴려졌다. 


태현이 흥분하여 주먹을 꽉 쥐자 시하가 만류했다.

“어쩌려고 하오? 정면 승부라도 할 거요?

저들은 무공은 약할지 모르나 훈련을 받은 정규군이요.

직업이 전쟁인 자들을 얕보면 아니되오.

또한 한두놈이라도 살아 나가 고려인이 고려인을 도왔다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원의 보복은 몇배로 돌아올거요.

그러니 신중해야 하오.“


산 위쪽에서 작은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가죽으로 된 짧은 상의를 입은 남자 둘이 몰래 숨어 행렬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참동안 행렬을 살피다가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말갈족의 병사 같소. 

원나라 놈들에 말갈족까지 나타났으니 잠시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야 할 듯 싶소.“


태현과 시하가 공녀 운송 행렬을 따르며 동태를 살피는 동안 행렬은 고려의 국경을 넘어섰다. 

말이 국경이지 성곽은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으며, 지키는 이 하나 없었다. 


공녀와 공물의 행렬이 풀이 무성한 벌판에 들어섰다. 

어디선가 화살 서너발이 날아와 그 중 하나가 원 기병의 가슴을 꿰뚫었다.

순간 풀 숲에 숨어 있던 말갈인들과 말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원 기병들을 급습하였다. 

말갈인들은 70여명이 넘어 보였고, 그 중 반이 기병이었다. 

원의 기병들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였으나 금방 전열을 가다듬고 마차를 등지고는 공격에 대응하였다.


기병과 기병의 창이 얽히고 칼이 부딪혔다. 

과연 원의 기병들과 말갈인들은 말을 잘 다루었으며 달리는 말 위에서 창과 칼을 쓰는 것이 익숙하였다.

말을 제 몸처럼 다루니 공격이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그들은 말을 달리며 활을 쏘고, 달리는 말에서 내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고는 다시 말등에 올라 칼을 휘둘렀다.

때로는 말을 거꾸로 타며 활을 쏘고 칼로 베기도 하였다. 


말갈인들의 수가 많았으나, 그들의 진법은 원 병사들에 미치지 못했다. 

원의 기병 열기가 짝을 이루어 공격하는 듯 퇴각하고, 피하는 듯 달려들어 적을 어지럽혔는데, 진열의 정교함과 변화의 빠르기가 놀라웠다. 

결국 말갈인 열 몇명이 죽고, 열 몇명이 넘어지고 쓰러져 포로가 되자 말갈인들이 말을 돌려 퇴각하였다. 

원의 병사들 또한 네 다섯명이 죽고, 두세명이 부상을 입었다. 


풀숲에 숨어 동태를 살피던 태현이 가만히 일어나 죽은 말갈인의 모자와 상의를 벗겨 입은 후 말갈인의 칼을 들고 괴성을 지르며 원의 병사들을 공격하였다. 

포로로 잡은 말갈인들을 포박하려던 원의 병사들이 놀라 뒷걸음질쳤으며, 그 중 두 놈이 태현의 칼에 맞아 쓰러졌다. 

태현이 원의 기병들의 말 등을 날아다니며 기병들의 목을 베었다. 


포로로 잡힌 말갈인들도 일어나 칼을 잡고 원의 병사들을 협공하였다. 

피가 튀고 비명이 흘렀다. 

원의 기병들은 태현의 칼에 베이고, 말갈인들의 칼에 목을 잃었다.

말갈인들 또한 원 기병들의 창과 칼에 꿰어지고 찔렸다.


고려인들은 마차 뒤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는 끔직한 살육의 광경에 떨어야했다.

결국 원의 병사 대부분이 죽임을 당하자 살아 남은 기병 몇이 말을 달려 도망갔다. 


남은 것은 태현과 말갈인 셋이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말갈인이 태현에게 손짓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갈어로 뭐라 했다. 

순간 원나라의 창이 말갈인 대장의 등을 관통하였다.

말갈인들이 놀라 뒤를 돌아보니 시하가 웃고 있었으며, 돌아본 찰나 태현의 칼에 죽었으니 시하의 환한 미소가 그들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묶여 있는 고려인들을 풀어주고, 마차의 문을 부수어 감금되어 있는 여인들을 꺼내었다.

시하가 말 잔등에 올라서 말했다.


“우리는 원나라와 싸우고 있는 남송의 사람이야.

남송은 고려와 원한이 없으니 너희 고려인은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아. 

그리고 오늘 당신들이 본 것을 설명해 줄테니 잘 들어.

댁들을 끌고 가던 원의 병사들을 말갈인들이 급습한거야.

서로 얽혀 정신없이 싸우다가 모두 상대의 손에 죽어버린 상황인 것이지.

댁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 죽고 당신들만 남은 터라 서로 묶인 줄을 풀어주고 도망친 것이야.

그러니 어여 훠이훠이 도망쳐라. 훠이!“


뒷걸음질치는 고려인들을 태현이 불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 상자에 금자들이 들어 있으니 몸에 지니고 달리기에 어려움이 없을만큼만 가져가십시오. 

곧 원의 병사들이나 말갈인들이 다시 올 것입니다.

욕심을 부려 발길이 늦어지면 포로가 되거나 죽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서두르십시오.“

고려인들이 금자를 각각 몇냥씩 챙겨 온 길을 달리듯 되돌아갔다. 


발을 재촉하는 고려인들의 뒷모습을 보며 시하가 읊조렸다.

“과연 이것이 옳은 선택인지 모를 일이오.

저들이 살아서 고려도 돌아갈 수 있을지, 돌아간다해도 다시 되잡혀 오지는 않을지, 혹은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모진 문초를 당할지 누가 알겠소?

또한 나라가 허약하여 고려 스스로 공녀와 공물을 보내고 있는데, 한 무리를 구했다하여 바뀌는 것이 있을지 모르겠소.“


“그렇다고 눈앞에서 고통 받는 고려인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소?

또한 스스로 무릎 꿇은 자는 일어설 수 없으나, 억지로 무릎꿇린 자는 반드시 일어서는 법이오.

고려 또한 힘이 약해 이 수모를 겪고 있으나, 기회가 되면 떨쳐 일어날 것이오. 

나는 워낙 스물다섯에 죽을 운명이었는데, 잘하면 더 살게 될지도 모르지요.

덤으로 받은 인생은 고통받는 고려인을 위해 살아 볼까하는 마음도 생겼다오.“


“우선 나를 위해 살아 보시오.

힘을 썼더니 배가 몹시 고프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사겠소.“

시하가 공물 상자에서 빼낸 금자를 양손 가득 들고 싱그럽게 웃었다.


태현이 마차에서 말을 풀어 튼튼해 보이는 두마리를 제외하고 볼기를 때려 도망치게 하였다.

말을 달려 출발했는데 시하는 쌀과 공물 상자가 든 마차를 그대로 두고 떠나는 것이 아쉬운지 몇번을 되돌아 보았다.


“저것이 금자만 해도 수백냥이 훌쩍 넘는데다 비단과 옥을 더하면 평생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재물인데 우리가 가져가면 안되겠소?

아니면 나만 잠시 되돌아가서 금자 몇냥과 비단 몇필만 말에다 싣고 오겠소.

공자는 같이 가지 않아도 되오.

나만 휙하니 바람같이 다녀올테니 지금 속도로 그저 가고 있으시오.“


“곧 도망친 원의 병사들이 구원병을 몰고 달려올 터이니 이 자리를 빨리 피하는 것이 상책이오. 

또한 저렇게 재물이 든 마차들을 그대로 놔두어야 원의 병사들이 재물을 챙기느라 고려인들을 덜 쫓지 않겠소.

그러니 어서 갈길을 갑시다.“


어느덧 원나라의 동쪽인 길림의 백암에 도착하였다.

오는 길에 여러번 원의 병사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태현은 몹시 긴장하였으나, 시하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때로는 중원어로 때로는 몽골어로 쉴새 없이 떠들었다.   


어느덧 백암의 객잔에 도착하였다.

고려와 원의 경계 근처이며 말갈과 선비 부족 또한 가까운 곳에 있기에 객잔에는 다양한 복색과 언어가 뒤섞여 활기가 넘쳤다.


태현과 시하도 자리를 잡고 삶은 닭과 구운 소를 주문하였다.

“닭은 있소.  당장 내 드리지요.

소는 없소이다. 귀한 소를 누가 구워 먹는다는 말이오?

대신 삶은 개와 노루는 있소.

개는 싸고 노루는 비싸오. 

무얼로 드시겠소?“


삶은 노루를 주문하고, 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개와 고양이는 모두 사람과 교감하고 정을 나누는 동물들인데, 어찌 이리도 개들을 잡아 먹는지 모르겠소.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너무 한것 같지 않소?

기껏 주인을 도와 토끼를 잡게 해주었더니 이제 쓸모가 다했다고 삶아 먹다니 말이오. 

훗날 분명히 개를 귀히 여겨 친구로 삼아 일생을 함께 할 날이 올 것이오.“


“인간은 고양이를 제외하면 가장 영특한 생물 중 하나인데, 어찌 저런 하등한 동물 따위와 친구가 된다는 말이오?

먹을 것이나 밝히고 그저 꼬리나 치며 멍청한 표정으로 짖기는 하는 저런 동물과 친구가 된다니 우습기 그지 없소.

그러면 개를 마치 고양이처럼 집 안에서 귀하게 보살피고, 음식을 봉양하기라도 한다는 말이오? 

기근이 닥쳐 배를 굶어도 개를 잡아 먹는 대신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는 거요?“


“물론이오. 개를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금지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오.”


태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듣다듣다 정말 못 들어줄 말을 지껄이는 구나.

보아하니 중원 놈들이 분명하렸다. 

쌀과 곡식이 넘쳐나며, 가축이 풍요로운 네놈들이야 개를 삶아 먹든 귀여워 하든 내 상관할 바가 아니나, 이 곳 길림에서는 배가 고프면 개를 잡아 먹는다.

어찌 그것이 부끄러워할 일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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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욕망을 감추면 선이고, 표현하면 악이 되는가 1 24.09.11 30 1 12쪽
42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 2 24.09.10 32 1 12쪽
41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 1 24.09.09 38 1 12쪽
40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2 24.09.06 42 1 11쪽
39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1  24.09.05 42 1 11쪽
38 나는 뱀들의 제왕이다 24.09.04 40 1 12쪽
37 고려인을 괴롭혔으니 죽을 자리를 고려하라 24.09.03 48 1 12쪽
36 나는 거식좌가 아닌 미식좌라네 24.09.02 36 1 12쪽
35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2 24.08.30 46 1 12쪽
34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1 24.08.29 42 1 12쪽
» 억지로 무릎꿇린 자는 반드시 일어서는 법이오 24.08.28 43 1 12쪽
32 중원아 기다려라. 통째로 씹어 먹어주마. 24.08.27 44 1 13쪽
31 선묘고를 열었으니 우리 이야기도 끝나나보오  24.08.26 52 1 12쪽
30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2 24.08.23 57 1 12쪽
29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1 24.08.22 52 1 11쪽
28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2 24.08.21 45 1 12쪽
27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1 24.08.20 50 1 12쪽
26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2) 24.08.19 47 1 11쪽
25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1) 24.08.18 4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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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내가 절망하지 않으면 이자도 죽지 않는다 24.08.15 55 1 12쪽
22 악의 나무가 자라기 전에 뽑아내는 것이 정의  24.08.14 58 1 12쪽
21 과거지사로 눈물을 허비하지 말게 (2) 24.08.13 57 1 12쪽
20 과거지사로 눈물을 허비하지 말게 (1) 24.08.12 5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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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살려는 드리리다 1 24.08.09 6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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