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백면서생, 중원을 제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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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큐브
작품등록일 :
2024.07.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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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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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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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비급은 언제나 주인공 손에 (1)

DUMMY

“시하. 시하.

보시오. 죽으면 아니되오.

제발 정신 좀 차려 보시오.“

가냘프게 들려오는 태현의 목소리에 시하가 눈을 떴다.

태현이 제 입으로 시하의 입에 공기를 불어 넣으며 깨우려 애를 쓰고 있었다. 

태현을 밀어내고 고개를 둘러보니 앞쪽으로는 거대한 폭포가 굉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었고, 뒤에는 검은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머리 위 가느다란 바위 틈으로 빛이 새어들고 있는 것을 보니 아침이 된 듯 싶었다. 

​시하가 몸을 일으켜 근육을 늘려보고 뼈를 펴보았으나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다.

“우리가 살았나 보구려. 

그런데 여기는 어디요?“

시하의 목소리가 폭포의 굉음에 묻혔다.


“우리가 아마도 폭포수의 뒤편으로 떨어졌나 보오.

앞으로 나가 보려 했으나 폭포의 위력이 너무 강하여  나갈 수 없으며, 바위 틈으로 기어 올라가기에는 그 틈이 너무 비좁소.

아무래도 뒷편의 동굴 쪽으로 올라 가야겠소.“

태현이 폭포 소리를 이겨내고자 내공을 실어 이야기했다.

동굴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자 폭포 소리가 점점 잦아들더니 마침내 조용해 졌다.


어둠 속에서도 잘 볼 수 있어 앞서 걷고 있던 시하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여기 횃불대가 있소.

아니, 옆에는 부싯돌도 있구려.

여기 사는 사람이 있거나 나가는 길이 있 보오.

우리는 이제 살았소.“

부싯돌로 불꽃을 일으켜 횃불에 불을 밝히고 한참을 위로 올라가니, 대여섯평 남짓한 넓다란 공간이 나타났지만 길은 거기에서 막혀 있었다. 


태현이 기겁했다. 

“여기 사람의 백골이 있소. 

이곳은 아무도 나갈 수 없는 곳인가 보오. 

우리도 이제 죽나 보오.“ 


시하가 바닥에 주저 앉았다.

“죽는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젖은 옷을 말리고 몸을 추스립시다.

몸은 춥고 배는 고프며 피곤하고 졸립소.“

태현이 시하 옆에 앉아 행낭을 풀었다. 

“공자가 입에 물고 끝끝내 가져왔던 행낭이오.

안에 먹을 거라도 들어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시하의 여인복, 외투에 쌓여진 옥대, 그리고 육포 몇개가 전부였다. 


횃불의 열기로 옷을 말리면서 물에 젖은 육포를 씹고, 한참동안을 꾸벅꾸벅 졸고 나니 어느정도 원기를 회복했다.

탈출할 곳을 찾아 동굴의 벽면을 이리저리 살피던 태현이 의아한 듯 손으로 벽면을 한참동안 더듬었다.

벽면에 켜켜히 쌓인 이끼와 먼지를 털어내고 횃불로 벽을 비추자 바위에 새겨진 글귀가 나타났다.

태현이 놀라 한걸음 물러섰다.

“이 글씨는 끌과 정으로 파낸 것이 아닌 듯 하오. 

설마 내공을 실어 손으로 썼단 말인가?

얼마나 깊은 내공과 무공을 지녔기에 이런 단단한 바위에 글을 새길 수 있단 말인가?“


시하가 흥미롭다는 듯 벽에 씌여진 글을 읽어 내려갔다.

“나 서대황은 절산마제 흑요충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천하십절 중 하나로 강호에 이름을 떨쳤으며, 나의 심법과 장법을 결합한 만류귀심경을 창안함으로써 십절 중 가장 으뜸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고향인 고려의 산 중에서 이 동굴을 발견하였으며,수련을 거듭하던 중 각자가 가진 내공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이 심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본좌는 이 심법을 정심단법으로 이름지었다.

만류귀심경을 체득한 자가 정심단법을 깨우친다면 만류귀심경의 수행력을 몇배로 증폭하여 장법과 지법만으로 만년한철에도 능히 글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만류귀심경과 인연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점심단법을 익히고 깨우치면 체내의 모든 기혈을 원활히 하여 내공을 크게 증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급을 창안하였으므로 제자를 구하여 후세에 전함이 마땅하나, 제자를 서둘러 구하다보면 자칫 악인을 제자로 골라 고려와 강호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웠다.

하여 비급을 바위에 새기어 전하니, 후세에 인연이 있는 자가 익히어 바른 길에 활용하기를 바라노라.

정심단법을 다 익히거든 지법과 장법으로 바위에 적힌 귀결을 지운 후 바위를 부수어 이곳을 나의 영면을 위한 안식처로 만들 것을  부탁하노라.  “


경외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태현과 달리 시하는 비웃음을 흘렸다. 

 “뭐라는 거야? 이 할아버지는?

당장 동굴에 갖혀 오도가도 못하고 굶어 죽게 생겼는데 나가는 길이나 알려줄 것이지, 먹지도 못하는 비급은 왜 남긴거야?

혹시 자기도 길을 못 찾고 굶어 죽어서 여기서 뼈만 남긴 거 아냐?“

태현 역시 육포 한조각을 먹은 것이 다 인지라 배가 몹시 고팠으므로 시하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둘은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다시금 폭포 쪽으로 내려가며 혹여 발견하지 못했던 길이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 보았다.

그러나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동굴에는 길이 없었고, 동굴 입구에서 가느다란 햇살을 보여주는 바위의 틈은 너무나 비좁아 비록 고양이라 할지라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가뭄이라도 들어 폭포의 수량이 줄지 않는 한 이 곳에서 나가기 힘들겠구료.

우리는 꼼짝없이 굶어 죽겠소. 

시하 공자는 날래고 고양이로 화할 수 있으니 살길을 찾을 지도 모르겠소만.

그래도 맑은 물이 이리 넘치니 목마르지 않고 죽을 수 있어 다행이오.“

허기를 달래려 물을 실컷 마신 태현이 멍하니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데 은빛 물고기 한마리가 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시하도 보았는지 물로 첨벙첨벙 뛰어들어가더니 물고기를 손으로 낚아 채서는 가져왔다.

팔뚝만큼이나 커다랗고 살이 올라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물고기가 일각이 지나지 않아 세마리 더 잡혔다. 

폭포를 거꾸로 오르는 물고기가 힘이 다하거나 방향을 잘 못잡아 폭포 뒤 작은 웅덩이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아 죽음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나 보오.”

시하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물고기를 낚아와서는 족족 구어 대었다. 

살이 단단하고 달며 껍질은 고소하여 네마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태현은 배가 부르니 문득 흑요충의 심법이 궁금해졌다.

“우리 흑요충 선배의 심법을 수행해보지 않겠소?

이제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오.

혹시 아오? 심법을 수행하다보면 살길이 생길지 말이오.“

“나는 싫소. 

만류귀심경인지를 깨우친 자가 심법을 익혀야만 바위라도 부수어 길을 낼 수 있다지 않소.

우리는 만류귀심경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맘 편히 심법이나 익힌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그래도 공자는 심법으로 독을 다스리고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 여기서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 위에 올라가 심법을 익히는 것도 좋을 듯 하오. 

나는 여기서 옥대의 비밀이나 연구할테니 공자는 가서 심법을 수행하든 낮잠을 자든 마음대로 하시오.“


태현이 홀로 동굴로 돌아가 귀결을 거듭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두번 세번 읽으니 그 뜻이 신묘함을 깨닫게 되었다.

가부좌를 틀고 귀결을 읊으며 심법이 가르치는 대로 체내의 기를 이리저리 이동시켜 보았다.

시하가 보명단의 기운을 불어 넣어준 후 태현의 막혀 있던 혈이 일할 정도 열려 기를 운행하였었는데, 심법을 운용하니 열려진 혈을 따라 때로는 시원하고 때로는 따스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귀결을 운행할수록 혈이 점점 더 열리는 듯 더 시원하고, 더 따듯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태현은 신이 나 몰입하여 운기를 계속하였는데 갑자기 단전에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차가운 기운이 올라오더니 온 몸의 혈을 돌아다니며 세차게 휘몰아쳤다.

태현이 놀라 운기를 멈추었으나 이번에는 가슴에서 델 듯 뜨거운 기운이 차갑게 식어 있는 혈들을 관통하였다.

차가운 기와 뜨거운 기운이 서로 번갈아 태현의 몸을 헤집으니 입을 악다물고 고통을 참던 태현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실신했다.


폭포 아래서 옥대를 만지작 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 시하에게 태현의 비명소리가 전해졌다.

시하가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올라가보니 태현은 실신했다가 깨어나서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다가 다시 실신하고 다시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거듭하고 있었다.

시하가 실신한 태현의 품을 뒤져 일전 김윤호에게 받았던 구진단을 꺼내어 제 입으로 조금씩 씹어 태협의 입에 흘려 넣었다.

구진단의 탓인지 태현의 비명과 실신의 간극이 조금씩 길어지더니 이윽고 태현이 깊이 잠들었다.

시하가 남은 구진단을 마저 태협의 입에 흘려 넣어주고는 체내에 남아 있는 보명단의 기운의 일부를 풀어 태현에게 전해주었다.


태현이 눈을 뜨니 몸안의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이 서로 얽히고 융합해 기분좋은 따스한 기운으로 변하여 몸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지개를 펴는데 모로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시하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시하를 보자 자기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꼭 안아주던 시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켠이 뭉클했다.

“내가 걱정되어 나를 간호다가가 잠이 든 모양이구나.”

애처로운 마음에 흐뜨러진 머리를 쓸어 올려주는데 시하가 눈을 떴다. 


태현이 시하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 인사를 표했다.

“고맙소. 시하.

내 고통에 힘겨워할 때 공자가 나를 꼭 안아 위로해 주던 모습이 선하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모르겠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꿈이라도 꾸었소?

몸부림 치는 사람을 건드렸다가 괜히 손과 발에 채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건드린단 말이오?

나는 공자가 신음하고 괴로워할 때 행여 나에게 피해가 될까 싶어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였소.

다만 공자가 실신했을 때 김윤호에게 받은 구진단을 먹여 준 적은 있소.

구진단이 효과가 있는지 고통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더이다.“


“내가 꿈을 꾸었든, 아니든 공자가 나를 도와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 아니오.

나는 저 귀결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걸려 죽는 줄로만 알았소.

아니 공자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오.

공자께 인사를 한 후 마음으로라도 김윤호 대방에게도 인사를 드려야겠소. 

구진단의 덕을 단단히 보았나 보오.“

태현이 거듭 고개를 숙이자 시하가 만류했다.

“그만 하시오. 

일의 순서를 따지자면 개경 집에 얌전히 있던 공자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것도 결국 내가 아니오.

그러니 인사 치례는 되었소. 

그리고 굳이 김윤호에게 인사를 할 필요는 없소. 

구진단을 준 것은 김윤호이나 공자의 품에서 구진단을 찾아낸 것은 나고, 실신한 공자가 넘기지 못할까봐 조금씩 잘게 씹어 입에 흘려 넣어준 것도 나요.

또한 구진단이 효과가 없을까 싶어 내게 남아 있는 보명단의 기운도 애써 풀어 공자께 넣어준 것도 나요.

내 보명단의 뭉친 기운을 풀어내느라 힘이 들어 잠이 들지 않았겠소?

그러니 인사를 하려거든 나에게나 두배로 하시오.

우리가 여기서 나간다면 공자는 인사의 의미로 필히 삶은 고기를 열접시 사시오.“


태현이 시하의 말을 듣고는 구진단을 흘려 넣어주었다는 시하의 입술을 슬쩍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으나, 시하는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괜시리 민망해진 태현이 어색함을 지우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펴자 온 몸의 뼈마디에서 우드득 소리가 울렸다. 

시하도 소리를 들었는지 태현을 바라보았다.

“왠지 공자의 몸이 조금 커진 듯 하오. 

전에는 버들강아지처럼 여리여리하여 계집인지 사내인지 모를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어깨가 살짝 넓어지고 가슴도 알게 모르게 두터워진 듯 하오.

영락없이 보통 사내의 몸으로 보이오.

내 전에는 공자의 외모를 중하로 여겼는데 이제는 중중이라 해도 될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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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 1 24.09.09 38 1 12쪽
40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2 24.09.06 42 1 11쪽
39 무당은 언제든 소협의 편에 설 것이오 1  24.09.05 41 1 11쪽
38 나는 뱀들의 제왕이다 24.09.04 40 1 12쪽
37 고려인을 괴롭혔으니 죽을 자리를 고려하라 24.09.03 48 1 12쪽
36 나는 거식좌가 아닌 미식좌라네 24.09.02 36 1 12쪽
35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2 24.08.30 46 1 12쪽
34 내기는 제대로 걸어야 맛있는 법이지 1 24.08.29 42 1 12쪽
33 억지로 무릎꿇린 자는 반드시 일어서는 법이오 24.08.28 42 1 12쪽
32 중원아 기다려라. 통째로 씹어 먹어주마. 24.08.27 44 1 13쪽
31 선묘고를 열었으니 우리 이야기도 끝나나보오  24.08.26 51 1 12쪽
30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2 24.08.23 56 1 12쪽
29 여인들이 꼬리 친다면 꼬리를 잘라내지요 1 24.08.22 5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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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두 마음이 만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 1 24.08.20 50 1 12쪽
26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2) 24.08.19 47 1 11쪽
25 돈 놓고 돈 먹기가 나의 특기요 (1) 24.08.18 4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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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내가 절망하지 않으면 이자도 죽지 않는다 24.08.15 55 1 12쪽
22 악의 나무가 자라기 전에 뽑아내는 것이 정의  24.08.14 5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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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과거지사로 눈물을 허비하지 말게 (1) 24.08.12 5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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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살려는 드리리다 1 24.08.09 6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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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급은 언제나 주인공 손에 (1) 24.08.07 6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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