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가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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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2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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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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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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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화. 꼬여버린 운명(5) ]

DUMMY


강우의 집 내부는 생각보다도 깔끔했고.


늘 텔레비전 속으로 보던 전형적인 재벌 집 풍경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성현은 강우와 거실 소파에 마주 앉은 채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강우는 자신이 내민 핸드폰 속 사진을 보고 있었다.


재은이 부회장 영석의 사무실에까지 숨어들어 몰래 찍었던 그 사진을 말이다.


잠시간 핸드폰 속 증거사진들을 확인한 강우가 입을 열었다.


“남의 회사 부회장실에 숨어든 것도 모자라. 문서 유출이라니. 마음만 먹으면 자네는 물론 자네의 친구들한테까지 고소장이 날아갈 수 있는 것을 아나?”


“예, 압니다.”


성현은 다소 침착한 듯 말했지만. 사실 벌벌 떨고 있는 그의 손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우는 성현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참. 처음 봤을 때부터 신기하다 싶었는데.”


“네?”


“자네 말이야. 어쩐지 낯설지 않더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꼭 내 젊은 시절을 보는 거 같달까. 그 패기 말일세.”


“아...”


성현은 강우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저게 과연 긍정적인 반응인지 부정적인 반응인지조차 도통 가늠이 가질 않았다.


그런 성현의 긴장감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강우가 정곡을 찌르며 말했다.


“보통 강단이 있지 않고서야. 그 어떤 고등학생이 감히 이 시간에 그것도 대기업 총수의 집에 덜컥 쳐들어올 생각을 하겠나. 안 그런가?”


강우는 그저 던져본 말일수도 있었지만, 말에 콕 박힌 가시는 날카로웠다.


성현의 심장은 덜덜 떨리다 못해 요동을 치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주욱 흘러내리며 그 물줄기가 느껴졌다.


“갑작스레 연락드린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어쨌건 매우 실례되는 행동이었으니 성현은 일단 사과부터 건넸다.


하지만 곧이어 주저하지 않고 본론을 꺼내어 물었다.


“하지만 직접 여쭙는 게 좋을 거 같았습니다. 이런 일을 계획하신 이유요. 무슨 연유이신건가요.”


“어째서 내가 일을 계획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물증도 없이 심증으로만 추측을 벌이고 있군.”


“맞습니다. 그 어디에도 회장님이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죠. 그저 석우그룹의 부회장을 지목하는 일련의 증거들만 있을 뿐.”


“그게 어째서 나까지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나야말로 그 이유를 좀 들어보고 싶군.”


“회사에 주가조작현황이 드러나면 가장 이득을 볼 게 누군가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장은 석우그룹의 경쟁회사들이겠지요. 하지만...”


“하지만?”


“이 일은 전반적으로 부회장님이 직접 벌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있죠.”


“그렇겠지. 부회장실에서 그 증거들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직접적으로 증거를 대놓고 남겨놓는 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전환해봤지요. 당장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석우그룹 부회장과 그 세력들이 타격

을 입으면 좋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고요.”


“그게 왜 나라는 건가. 나는 석우그룹의 총수인데. 괜히 일 잘하고 있는 우리 회사의 멀쩡한 부회장을 쫓아낼 이유가 뭐가 있지?”


강우는 성현의 말에 태연한 척 발뺌했다.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대체 성현이 이 모든 예측을 어떻게 한 것인지 놀라웠다.


물론 성현이 한 발언들은 모두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는 심증들에 불과했지만.


아직 고등학생이고 어린 그가 이 정도까지 생각하고 추측을 한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강우는 이어지는 성현의 대답에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회장님과 부회장님 사이에 감정의 골이라던 지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감정의 골이라. 날 단지 사소한 감정 때문에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을 벌이는 파렴치한으로 본건가.”


“단지 예를 들어본 것뿐입니다. 그 이유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회장님께서 사소한 이유 때문에 그러실 분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뭔가 더 중한 이유가 있으시겠지

요.”


“아예 나를 확정된 범인으로 지어놓고 말을 하는군. 성현 군 자네는.”


갑자기 말문이 턱하고 막힌 듯 성현이 말을 멈추었다.


물론 성현은 미래의 결과들을 알기에 이렇게 까지나 예측과 확신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설명을 할 수 없는 지금으로선 성현의 말은 강우의 언질대로 억측에 가까웠다.


성현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모든 게 추측으로만 이루어진 것들이라 정말 면목이 없을 따름입니다. 감히 회장님을 의심하니 격노하실 것도 알고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여쭙고 싶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정말 관련이 없고 결백하신건지를요.”


만약 결백하다고 한다면 여기서 성현의 할 일은 더는 없었다.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부회장실에서 가지고나온 증거자료들을 경검찰에 제출하는 것밖에.


그렇게 되면 회귀전과 마찬가지로 부회장은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을 테고.


잠깐 징역을 살다 보석금으로 풀려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태 때문에 많은 기관들과 개미 투자자들의 피해자들이 대거 생겨날 테고.


한순간에 나락이 된 주가 때문에 돈을 잃게 된 그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겠지.


심하게는 인생을 비관하며 자살까지 하는 이들이 발생할 것이었다.


정말 끔찍하고도 비참한 일이었다.


그리고 성현은 이 모든 것을 가만히 눈뜨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었다.


회귀전과 비슷한 상황과 일들이 흘러가고, 같은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정말 만일, 강우가 자신이 관여된 일이라 시인한다면.


성현의 예상이 들어맞았고, 강우가 이를 인정해주며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그때는 좀 더 다른 결말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성현은 다시 한 번 말에 힘을 주어 강우에게 물었다.


“정말 회장님은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신 건가요?”


성현의 또렷한 눈망울이 강우를 향했다.


강우는 그 눈망울이 어쩐지 자신을 추궁하는 것만 같아 조심스럽게 시선을 피했고.


한동안 둘은 중앙에 탁자를 가만히 응시하며 침묵하였다.


그렇게 정적과 침묵만으로 한참의 시간이 흘러갔다.


강우도 성현도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이내 강우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니라고 계속 발뺌할 수도 있지만.”


강우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정리를 마친 듯 보였다.


성현은 이어지는 강우의 말을 기다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강우에게도 들린 것만 같았다.


“어쩐지 자네한테는 솔직해 지고 싶군. 이렇게까지 내가 이 일을 벌였다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고. 그 확신은 도무지 깰 방법이 안 보이는군.”


강우는 신중하게 그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성현은 고개를 들어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슬퍼 보이는 강우의 눈망울에, 순간 자신이 착각한 것이 아닐까 했지만.


이어지는 강우의 말에서 그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난 것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석우그룹의 딸과 결혼했고, 이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


강우는 모든 것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꼭 필요한 내용만 간추리자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런 얘기조차 성현에게 들려줄 이유 따위조차 없었지만.


어쩐지 눈앞에 앉아있는 자신과 똑 닮은 아이가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정말로 그냥이었으니까.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저 앞에 앉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의 진심을 내비치고 싶었다.


그리고 이해받고 싶었다. 자신의 사정을 납득해주길 원했다.


40대 중반의 나이의 대기업 총수가 오늘 처음 본 고등학생에게 말이다.


“결혼하고부터 데릴사위로서 차근차근 석우그룹의 주요직을 밟아갔고. 몇 년이 채 되기도 전에 평소 지병이 있으셨던 장인어른의 뒤를 이어 회장직에 올랐지. 아주 젊은 나이

에 회장이 된 거야.”


어디 가서 절대 먼저 꺼내지 않던 데릴사위란 단어.


심지어 누군가 데릴사위라고 떠들어대면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강우는 성현의 앞에 그 싫어하던 단어마저 입에 담으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도 반발도 많았고 많이 힘들었다. 자리를 잡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으니까. 하지만 곧 나는 내 능력을 통해 증명해냈지. 그리고 점차 석우그룹을 전대 회장 때보다

도 더욱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어.”


성현은 강우의 신화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주 젊은 나이에 회장이 된 만큼 강우에 대해 세간에서는 늘 화재였으니까.


그것도 적임 후계자가 아닌, 한순간에 재벌 딸의 사위로서 굴러들어온 이로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에 따른 고충이 참 많았겠다고 그저 예상만 할 뿐이었는데.


이렇게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새삼 신기하고 다시 한 번 존경스러웠다.


주윤석의 아버지임을 다 떠나서 말이다.


강우 자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성현의 존경스러운 눈빛을 읽은 걸까.


강우가 헛기침을 한번 크음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갔다.


“회사에 실질적 권력자이자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장모님은. 그런 나를 못마땅해 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내 의견마다 방해하셨다.”


오늘 처음 본 애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강우의 입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모님 역시 기업가의 딸로. 그 집안 일가가 석우그룹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고, 나는 허수아비처럼 그들에 이끌려 다니며 살아왔다. 내 의사 따윈

없는 채로.”


성현은 자신의 앞에 앉은 강우가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굳이 바닥과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까지 내비치면서 대체 자신에게 뭘 얻겠다고.


그냥 이 일을 눈감아달라고 하는 건가. 사정에 호소하면서까지?


하지만 석우그룹 회장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대단하고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할거 같진 않았다.


그저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건가라는 생각이 성현을 스쳐지나갔다.


회귀 전의 자신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으니까.


유독 모르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그런 날들이 간간히 있었다.


자신의 과오나 치욕스러운 부분까지 다 털어놓고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은 그런 날.


그게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불혹의 회장님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다 괜찮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스스로가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증오스러웠을지언정,


그냥 단 한사람에게서라도 나 자신을 이해받고 싶었던 모순적인 마음.


성현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강우의 말을 경청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성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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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32화. 꼬여버린 운명(2) ] 24.07.23 99 1 10쪽
31 [ 31화. 꼬여버린 운명(1) ] 24.07.22 10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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