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가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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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신
작품등록일 :
2024.07.22 11:54
최근연재일 :
2024.08.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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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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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화. 꼬여버린 운명(8) ]

DUMMY


강우가 방을 나가고.


혹여 울음소리라도 밖으로 새나갈까 입을 베개로 막고 오열을 하는 희원이었다.


그녀는 불과 몇 시간 전 일을 떠올렸다.


난데없이 윤석과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이 밤에 찾아온다니.


희원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방문한다는 그 아이나, 그런 그에게 방문을 허락한 강우나.


그러나 필시 어떠한 사정이 있겠지 싶어 허락하였다.


희원은 그 친구에게 주려고 직접 따뜻한 차를 우렸다.


자신이 취미로 만든 쿠키도 몇 조각 담아서 쟁반에 싣고 내가는데.


“어?”


희원은 깜짝 놀라 쟁반을 바닥에 떨구었다.


뜨거운 차가 희원의 발에 떨어져 화상을 입었지만 아픔조차 못 느꼈다.


희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방문한 이의 얼굴을 보고 급히 몸을 숨겼다.


분명 그 아이였다. 진성현.


가끔씩 저 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 도로를 지나가는 척 멀리서는 봤었지만.


이렇게나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일부러 저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조차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썼건만.


간간히 걸려왔던 연락은 애써 받지 않으려고 했다.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걸기도 했었는데.


희원은 계속 저 아이를 오래도록 눈에 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와 숨죽인 채 울었다.


너무도 서럽게 흐느끼는 희원의 모습은 한 마리의 가냘픈 새와 같았다.


비에 날개가 흠뻑 젖은 채 날개를 움직일 수조차 없는 처량한 모습.


그러다 이내 희원은 끝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아보려 애를 썼다.


‘끄윽. 끄윽.’ 딸꾹질 같기도 한 소리가 희원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겨우 눈물이 진정시켰을 때, 희원은 방문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는 밖의 저들의 대화에 온 신경을 쏟아 부으며 귀를 세웠다.


저 둘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아야만 했다.


어떻게 저 아이가 이 집에 온 건지, 강우하고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 건지 혼란스러웠다.


제발 희원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저들이 자신의 정체와 모든 사실들을 알게 되서는 안 되었다.


그래야,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다쳐서는 절대, 절대로 안됐다.


자신이 어떻게 지켜온 것인데. 자신이 어떤 인생을 바쳤는데.


그토록 고통스럽고도 가슴을 짓이기는 아픔을 참아왔다.


희원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을 꾸욱 참았다.


멀리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원은 다시금 터져 나오려는 눈물에 입을 틀어막았다.


강우는 왜인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무조건 경계하고 보는 저이가 말이다.


희원은 그것도 놀라웠지만, 성현의 사람을 휘어잡는 뛰어난 언변에 놀랐다.


저 아이가 어느새 저렇게나 성숙하게 자랐단 말인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제 나이에 비해 조숙하였고, 생각도 똑 부러져 보였다.


성현은 자신의 남편 강우의 마음을 단 몇 마디로 녹이는 중이었다.


대화의 맥락을 들어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성현이 자신과 강우와 계획한 일을 아는 거 같았다.


강우의 계획은 곧 희원 자신의 오래된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였다.


강우의 전 장모인 미연의 세력을 회사에서 몰아내고 그녀를 무너뜨리는 것 말이다.


그래야지만 미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되찾아올 계획이었는데.


희원은 남몰래 강우의 일을 도왔었다.


회사에 방문해 부회장을 만나러 온 척 그를 기다리면서,


증거서류들을 부회장 영식의 사무실 책상 밑에 붙여놓은 것도 그녀였다.


그래야 남들의 의심을 덜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강우에게 자신이 하겠다고 한 거였다.


희원은 성현이 이 계획을 실행하려고 하는 어른들에 실망할까봐서 무섭기도 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건가 싶기도 하여 의문도 쌓였다.


그리고 저렇게까지 이 일에 대해서 말리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성현의 다른 간접적인 피해자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도 잘 와 닿았다.


‘저 아이가 저렇게까지 싫어하면. 그만두는 게 맞지.’


저 아이에게 이 이상의 실망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강우도 성현의 설득에 어느 정도 넘어간 것처럼 들렸다.


강우와 같은 사람을 쥐락펴락하다니. 성현이 참으로 대단하다 생각되었다.


그렇게 계속 숨죽이며 밖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희원이었다.


그러다가 성현의 말이 희원의 귀와 가슴에 콕 박혀왔다.


‘할머니랑 저랑 제 동생이 밥을 굶는 일이 많았거든요.’


밥을... 굶었다고? 대체 왜?


이어 들려오는 성현의 말은 희원의 가슴에 큰 대못을 박는 듯했다.


‘만일 그 도움이 없었더라면, 저는 굶어 죽었을 수도 있었던 거니까요.’


뭐? 굶어 죽었을 수도 있다고?


희원은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 사람이 분명히 약속했었다.


배는 곯지 않게 간간히 들여다 봐주겠노라고.


그래서 적어도 밥은 굶지 않을 줄 알았다.


희원은 분노와 배신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장이라도 그 사람을 찾아가서 모든 것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아니지. 이 모든 게 다 자신의 탓이었다.


힘없고 깡도 없는 채 너무나도 나약한 겁 많은 자신.


간간이라도 들여다보고 사정을 살폈어야 했는데.


다른 이를 시켜서라도 돈이라도 꾸준히 보냈어야 했는데.


조금의 소식을 알게 되면 보고 싶어 제어가 안 될 자신이 두려웠다.


그래서 귀도 눈도 마음도 모두 막았다.


그저 없는 사람처럼 죽은 듯이 살아왔다.


감정도 저버린 채 스스로를 옭아매며 기계처럼 만들었다.


한 번 터지면 홍수가 난 둑처럼 막기 어려울 거 같았다.


강우에게조차 자신의 속마음이나 감정을 비춰주지 않았다.


그게 자신이 겨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낼 수 있던 방법이었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자고 가는 게 어떻겠니.’


강우의 목소리에 이어 곧바로 성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싫습니다. 저는 가해자의 집에 한시라도 있고 싶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도대체 무슨 말이지.


그 후 강현은 성현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 같았다.


추측해 보건데 윤석의 이름이 들리는 것으로 봐선 그 애가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었다.


희원은 잠시 자신이 윤석을 돌보았던 적은 있지만 한 번도 정을 주진 않았다.


그 대신 같은 나이의 윤석에게서 성현을 비추어 보았다. 그래서 잘해준 것 뿐 이었다.


그런 윤석이 성현을 건드렸다니.


희원은 답답한지 가슴을 툭툭 쳤다.


자신이 저 애 옆에서 지켜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였다.


희원은 가슴을 더욱 세게 내리쳤다. 무언가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조여 오는 듯 했다.


마음을 아려오는 통증이 너무도 커 가슴을 내려치는 아픔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지키려고 저 애 곁을 떠나왔는데. 도리어 저 애를 지옥 속에 빠뜨렸다.


희원은 스스로가 미숙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저 애를 잃을까봐 무서워서 도망쳤다.


아니 사실 그건 핑계일 뿐이었다.


희원은 스스로가 견디기에 벅차 도망쳤던 것이었다.


살아가기 힘들고 벅찬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뿐이었겠지.


그리고 남편을 잃은 마당에 더 이상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내 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 상황을 맞이할게 될까봐 두려워 달아났다.


희원은 자신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든 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정한 엄마로서 살게 하며 생때같은 자식을 떼놓게 한 그녀의 얼굴을.


희원은 날이 밝자마자 그녀를 찾아 가야겠다 생각했다.


가만히 참고 산 세월이 무색해지며 허무감이 밀려왔다.


성현이 이렇게까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자신은 참 어리석고 너무도 순진했다.


희원의 가슴에 죄책감과 그리움의 감정이 솟구치듯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가서 성현을 껴안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늘 사랑했고 사랑한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희원은 뭔가에 홀린 사람마냥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는 발소리를 들킬세라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아주 무겁고도 쉽게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마치 가시밭을 지나듯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는 희원.


분명 손님방이라고 했지.


희원은 한발두발 움직이며 마침내 성현이 자고 있을 방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소리가 날세라 조용한 움직임으로 방문을 열었다.


끼기긱. 다행히 곤히 자고 있는 건지 안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창문으로 달빛이 잔잔하게 들어오며 방 내부를 고요히 비쳤다.


희원은 많이 곤했는지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 성현의 옆에 섰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혹시나 깨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던 희원은 성현의 볼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이 아이를 만진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희원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툭툭.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이 성현이 누워있던 침대보를 적셨다.


희원이 성현의 이마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는데.


“으음...”


성현이 잠결에 뒤척이며 몸을 돌리고. 깜짝 놀란 희원이 몸을 움찔거렸다.


다행히 깨진 않은 듯한 성현에 희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아...빠...”


꿈속에서 죽은 자신의 아빠를 만난 듯 읊조리는 성현.


이에 버튼이라도 누른 것 마냥 왈칵 희원의 눈물이 샘솟아 올랐다.


그러다가 다시금 나지막이 성현이 중얼거렸다.


“...마”


꿈속에서조차 부르기 힘든 듯 인상을 찡그리며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성현.


“...마... 엄....마...”


희원은 와르르 쏟아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체할 수 없이 억장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아파오는 가슴과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눈물은 희원을 흠뻑 적셨다.


희원은 소리라도 새나가서 자는 성현을 깨울까 양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구슬픈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갔고.


희원은 감정이 폭발함에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거 같아 방을 뛰쳐나갔다.


성현의 얼굴을 더 보고 싶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들킬 것이었다.


희원에 후회와 절망 섞인 울음은 한동안 그칠 줄을 몰랐다.


칼로 잔인하게 난도질되는 듯 마음이 가리가리 찢겨나갔다.


저 아이는 이미 희원을 포기했을 것이다.


증오와 원망을 넘어 남이라고 생각한지 오래겠지.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자신을 보러오지 않은 매정한 엄마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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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32화. 꼬여버린 운명(2) ] 24.07.23 99 1 10쪽
31 [ 31화. 꼬여버린 운명(1) ] 24.07.22 10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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