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로맨스

새글

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2,103
추천수 :
25
글자수 :
378,411

작성
24.08.12 10:00
조회
18
추천
0
글자
12쪽

숟가락과 젓가락

DUMMY

막란은 화적들의 안전을 위하여 임금을 볼모로 삼을 생각이다.


삼월 열사흘 새벽, 도망가지 못하고 남아 있던 궁녀와 내시들은 인정전 앞마당에 관군들에 둘러싸여 무릎 꿇려져 있다. 관군들이 불을 놓아 궁 안의 건물이 불길로 휩싸여 있다.


드디어 능양군이 최이척과 그의 아버지 정원군을 대동하고 궁 안으로 들어온다. 윤서는 최이척 바로 뒤에서 따라온다. 원래는 능양군 바로 옆에 서서 입궁하려 했는데 최이척의 제지로 어쩔 수 없이 뒤에 선 것이다.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이들을 향해 허리를 반으로 꺽어 예를 갖춘다. 능양군이 걸음을 멈추고 궁을 둘러본다. 외할아버지와 막내 동생이 역모에 죽임을 당하고 어머니 인목대비는 폐비가 되어 갇혀 살았다. 자신은 얼마나 숨죽여 살아 왔던가. 당장이라도 임금을 때려죽이고 싶다.



“임금은 잡았는가?”


“도망갔습니다. 추격중입니다!”



최이척은 도망간 임금을 막란이가 쫒는다고 들었다. 임금을 잡아 폐위시키기 전에 능양군을 왕으로 세울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반정은 결과적으로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관군들을 총 동원해서라도 도망간 임금을 잡아야 한다.



“어서 잡아들이게!”


“도성 안의 집들은 모두 수색 중이니 곧 잡힐 것입니다.”



윤서가 듣기로는 돈두와 솔개의 말에 의하면 도망간 임금을 추격중이 아니라, 막란이가 일부러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최이척이 알게 되면 대역 죄인으로 참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이 없는 서방이지만 그 정도로 앞 뒤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분명히 뭔 뜻이 있을 텐데 이놈의 서방은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윤서야 인목대비마마께 능양군 마마의 입궁을 알려드리도록 하거라.”


최이척 자기 때문에 반정이 성공했다는 것을 인목대비에게 고하라는 것이다. 윤서는 인목대비에게 사실은 백부가 한 일은 살생부만 넘겨 준 것이 다이고, 정적들을 모두 없애 무혈입궁이 가능하게 된 것은, 막란 서방과 화적들의 공이라고 말할 생각이다. 그래야 공을 인정받아 살 길이 열릴 것이다.




*




종묘에서........

능양군이 입궁한 소식을 듣자마자 인목대비는 종묘를 찾았다. 도망간 임금이 그나마 잘한 일이라고는 임진년 왜란 때 소실된 종묘를 복구한 일이다. 아마도 적통이 아닌 서자 출신이라 정통성을 잇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려면 종묘사직을 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아들까지도 모두 임금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서궁의 석어당에서 딸과 함께 십 여 년을 인목은 갇혀 살았다. 죽지 못해 살았으며 살기 위해 죽은 척을 했다. 가슴에 항상 칼을 품어 원수를 깊이 새겼으며, 잠자리에 가시를 놓아 살을 찢는 고통으로 복수를 잊지 않으려 했다.


능양군이 입궁한 날 기쁨보다 서러움이 밀려든다. 먼저 간 야속한 남편의 위패 앞에서 한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이제 복수할 일만 남았는데 왜 이렇게 서럽고 서러운지 모르겠다. 윤서가 가까이 온다.



“마마 이제 나쁜 일은 생각지 마옵소서. 새날이 밝았습니다. 기뻐할 일만 남았습니다.”


“임금은 잡았느냐!”


“제 지아비가 열심히 쫒고 있을 것이니 곧 잡힐 것입니다.”



윤서를 보고 뭐라 말 하려다 그만둔다. 노비 화적을 서방으로 둔 그녀가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윤서도 이런 그녀의 심경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오늘 같은 기회도 없기에 작심한 말을 해본다.



“산채 사람들이 수고가 많았습니다.”



듣기 싫은 말이다. 그리고 비밀로 해야 될 말이다. 화적들에 의해 반정이 성공했다고 알려지면 능양군의 정통성에 흠이 생기는 것이다.



“최이척 대감이 약조한 걸로 알고 있다. 그대로 지켜질 것이야.”


“그래도 대비마마의 윤허가 필요한 일입니다. 교지를 내려 주세요.”


“신분을 바꾸는 일이라면 내 뜻이 아니라 새로 등극하게 될 임금의 뜻이 될 것이다. 기다려야 할 게야.”


“임금님도 바꾸는 마마의 권위십니다. 이런 작은 일을 못하시다니요. 마마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인목이 하기 싫어하는 것은 윤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끝장을 내야 한다. 수백의 목숨이 달려 있지 않은가.



“최이현 대감이 왜 제명에 못 죽었는지 알 것도 같구나. 윤서야....... 세상에는 돌아가는 이치가 있다. 숟가락은 국과 밥을 떠야 하는 것이고 젓가락은 찬을 집어야 하는 일이다. 이 둘을 서로 대신 할 수 없는 법이다.”


“저는 숟가락에 일자로 된 홈 두 개를 넣어 젓가락 노릇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분리되어 있지 않느냐? 어찌 서로 합치려고 그래!”


“마마님 돌려 말씀하지 마시고....... 살려주세요.”


“.......”


“마마님처럼 죽은 듯 살 것입니다. 반정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죽어서도 입 밖에 내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


“.......”


“윤서야 넌 니 자리로 돌아와라. 그래야 만 해.”



막란과 떨어지라는 말이다. 그래야만 산채 사람들을 살려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윤서는 막란과 살고 싶고 산채 식구들도 살리고 싶다.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인목은 어떤 걸 택할지 역으로 묻고 싶다.



“마마님은 돌아가신 선대왕과 같이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다른 가족 분들하고 재미지게 살고 싶습니까?”


“물론 가족들하고 함께 살고 싶지....... 죽은 서방이 살아 돌아온다면 내 손으로 다시 죽이고 싶다.”



어. 이게 아닌데........



“예시를 잘못 들었습니다. 저는 지아비 하고도 살고 싶고 다른 사람들도 살리고 싶습니다.”


“.......윤서야 넌 총명하고 사리가 밝아 내가 참 아끼는 아이다. 널 잃고 싶지가 않다.”



인목에게 처음 듣는 섬뜩한 말이다. 여차하면 윤서도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그녀의 협박이다. 보란 듯 윤서 앞에서 궁녀 한 명을 불러들인다.



“끌고 오너라!”



얼마 전 서궁에서 인목에게 아들 영창대군처럼 죽을 것이라 막말을 했던 궁녀이다. 그동안 윤호산의 첩자노릇을 하면서 인목을 얼마나 괴롭혔던가....... 도망가지 못하고 잡혀온 것이다.



“네 이년! 날 죽이겠다고 협박 했으렸다!”


“마마님 제가 뵈는 게 없어 그랬습니다. 죽여 주십시요!”


“그래 당연히 죽여주지! 어떻게 죽여줄까! 니년의 아가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놓아 오장육보를 녹여줄까! 아니면 온 몸을 갈가리 찢어 줄까!”


“마마님 용서해 주세요! 자비를 베풀어 좋은날 공덕을 쌓으십시요!”


“네 이년 아직도 찢어진 입이라고 살기를 바라느냐! 여봐라 뭣들 하느냐! 저년을 홀딱 벗겨 살점을 갈가리 찢어 소금에 절이도록 하여라!”



인목은 자비가 없었다. 그동안 참고 살았던 분풀이였다. 잔인한 것을 싫어하는 윤서도 말릴 수가 없다. 아니 인목은 윤서 앞이라 더 잔혹함을 보였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누구든지 저렇게 될 거라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줄행랑을 친 임금은 지아비가 반드시 잡아올 것입니다. 그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년을 젓갈로 만드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더냐?”



잔인하다 못해 끔찍한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 애가 들어섰다면 놀라 사산이라도 될 일이다.



“싫어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애가 놀랍니다.”


“.......뭐라 그랬느냐? 임신을 한 게야?”



윤서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말이 헛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임신했다면 막란이 무사할 것도 같다.



“요새 속이 메슥거려 먹지를 못하는 토덧을 하는데도 가래떡을 먹고 싶은 것이 아무래도.......”


“틀림없어....... 애가 들어선 게야.”


“서방님을 살려주세요.”



때는 이때다 싶어 잽싸게 부탁한다. 인목도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다. 자식을 잃은 사람이다. 그러기에 누구보다 자식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있고 없음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인목은 알 것이다.



“애는 내가 키워 주겠다. 애비는 없어도 돼....... 걱정 말고 애를 잘 낳아라 윤서야.”



이 정도 했으면 윤서의 부탁도 들어줄 만한데 인목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막란이 이해된다. 위험을 감수하고 임금을 붙잡고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금이 어디선가 살아있으면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기에 반드시 찾아 폐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어디 있을까....... 임금과 이놈의 서방은?




*




김초시 판내시부사의 양아들 집.......

도성 안의 집들은 관군들이 이 잡듯 샅샅이 뒤지고 있다. 김부사의 양아들 집도 곧 들이닥칠 기세다. 세자가 숨어있다 붙잡혔다는 소문을 들은 임금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안절부절 한다.



“김부사 어쩌면 좋소? 의금부 대장에게는 연락이 갔소?”


“이미 반정세력에게 세상을 달리했다는 첩보입니다.”


“윤호산 대감은요? 그 양반이라면 능히 군사를 일으킬 수가 있을 것이오!”



죽은 이들만 찾는 한심한 임금에게 막란이 쏘아 붙인다.



“임금님만 살아있습니다. 모두 죽고요!”


“모두? 우의정대감이나 대제학 대감도?”


“벼슬이름은 모르나....... 하여튼 사그리 다 우리가 죽였습니다.”


“자네들이? 그런데 난 왜 살려두는 것인가?”


“김부사 대감의 은혜도 있지만 반정에 참여했던 산채식구들을 살리려구요.”


“산채식구들이라면.......”


“화적입니다. 도적들 중에서 제일가는.......”


“내 측근의 대신들을 모두 죽였다면....... 세자를 살려주게....... 세자만큼은 살릴 수 있을 거야. 그 아이를 살려준다면 내 뭐든 할 것이네. 혀를 깨물고 자결하라면 할 것이고, 뒤주에 갇혀 햇빛 한 번 보지 못해도, 죽을 때까지 있으라면 있을 것이네. 그러니 세자를 살려주게.”


“전 화적입니다. 그런 권한이 없어요. 전 새로운 왕에게 임금님을 넘기고 식구들을 살려달라고 할 겁니다.”


“사람을 죽였으니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제발 부탁이네....... 세자를 살려주게.”



왕권을 위해 그동안 수많은 목숨을 빼앗았던 임금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굴해지고 나약해진다. 한편으로 불쌍하지만 협상이 끝나면 임금을 넘겨주어야 한다.



“세자는 잡혔다 들었습니다. 이미 끝난 상황입니다.”


“자네들이 구해준다는 약조만 하게. 거짓 약조라도 상관없어....... 그러면 내가 희망을 놓지 않고 죽을 수 있지 않겠나. 그러니 제발.......”


“약조하겠습니다.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말하게....... 뭐든 말해. 다 들어 주겠네.”


“저들이 하라는 건 뭐든지 한다고 하세요. 우리 화적들 살려준다는 것을 내걸고요.”



어차피 폐위될 임금이지만, 윤서말 대로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임금을 이용하려든다면 순순히 말 잘 듣는 임금을 원할 것이다. 그 조건으로 화적들을 살려달라고 요구한다면 못해 줄 것도 없을 것 같다. 화적들의 안전이 확보되면 세자를 유배지에서 빼내오는 건 일도 아니다.



“하겠네. 세자 목숨만 부지할 수 있다면 뭐든 못하겠나.”


“김부사 대감....... 임금님 묶으세요. 궁으로 데려가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망나니의 아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일 아침 10시에 업로드 됩니다. 선호작(★)과 추천을 꾸욱 눌러 주세요~~~ 24.07.26 56 0 -
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7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6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9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6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8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