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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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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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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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송곳

DUMMY

“김부사 대감....... 임금님 묶으세요. 궁으로 데려가게!”


“임금님이십니다. 함부로 대하시면 안 됩니다.”


“괜찮네 김대감. 어서 묶으시게.”


“서두르세요. 관군들이 들이닥치면 더 험한 꼴 당합니다.”



김부사가 눈물을 흘리며 임금을 묶는다. 십 육년 동안 모신 임금이다. 세자시절부터 따지자면 삼십 년이 넘는다. 임금과 함께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잠시도 떨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수족처럼 자신을 여겼고 궁에서 유일하게 김부사를 의지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남들은 폭군이라 말해도 김부사에게 임금은 한없이 외로운 사람이다.



“어서 서두르세요. 관군들이 옆집을 털고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막란이가 귀를 세우며 관군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다.



“전하 마지막 인사 올립니다.”



묶여있는 임금에게 김부사가 큰 절을 올린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 임금을 끌고 막란이 나간다. 김부사는 임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큰 절을 한다.




*




궁궐에서.......

막란이가 최이척과 능양군 앞에 임금을 꿇어앉힌다. 윤서도 소식을 듣고 급히 와서는, 최이척 옆에 서서 막란을 향해 잘했다며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막란이도 윤서에게 손을 흔들며 주위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고한다.



“제가 못된 임금을 잡아 왔습니다.”



가장 천민인 노비 막란에게 잡혀 온 것이다. 잡혀온 임금은 치욕적인 일이지만 능양군에게는 이보다 더한 복수는 없다. 저 놈에게 외조부 가문이 풍지박살이 났고 식솔들은 노비로 세상을 떠돌고 있다. 이젠 역으로 노비에게 잡혀와 폐위될 처지가 된 것이다.


최이척은 인목대비의 교지를 읽어 임금이 폐위되었음을 알리고 능양군이 새로운 왕으로 추대함을 공포한다. 이 날이 삼월 열나흘이다. 모든 사람이 능양군을 향해 엎드려 절하며 예를 표한다.


신분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했던 막란에게 윤서가 어느새 다가와 팔짱을 끼고 있다. 최이척이 눈살을 찌푸리지만 개의치 않고 더 적극적으로 막란에게 붙어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막란을 뺏길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최이척은 윤서에게서 꼽추를 떼어 놓으라는 인목의 연락을 받았다. 기회를 봐서 없애야겠는데 저렇게 윤서가 붙어 있으니 방법이 없다. 억지로 떼어 놓으면 또 윤서 성격에 방방 거려 피곤하다.


서자 출신의 왕을 쫒아내고 능양군을 새로 임금으로 추대했으나 그 역시 아비가 서자출신이다. 적통이 아닌 자를 무리해서 왕으로 앉혀 논 것이다. 할 수 없었다. 적통인 자는 전부 죽거나 어딘가 모자라고 그나마 인목이 능양군을 제일 마음 들어 했다. 최이척 또한 말을 잘 듣는 능양군이 이용가치가 높아 임금을 만드는데 적임자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통성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화적들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다는 말은 백성들 사이에서 돌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화적들을 없애고 윤서에게서 막란을 떼어 놓기로 한 것이다. 새로 추대된 임금이 폐위된 임금 앞으로 간다.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


“각오하고 있다! 어서 죽여라!”


“내 동생과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널 찢어 죽여도 시원찮다.”


“마음대로 해! 그러나 임금은 그런 자리다! 죽이고 싶지 않아도 죽여야 하고, 죽이고 싶어도 살려야 하는 그런 자리란 말이다!”


“알았다! 넌 죽이고 싶으나 살릴 것이야! 살아라! 살아서 니 아들의 죽음과 니 처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다!”



죽이고 싶지만 죽일 수는 없다. 폐모살제(廢母殺第)의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킨 것이다. 다시 그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없기에 분하지만 살려야 한다.



“날 먼저 죽게 해라! 살을 떼어내고 뼈가 갈리는 고통을 받아도 원망 하지 않겠다. 세자 대신 날 먼저 죽여 달란 말이다!”


“세자가 아닌 폐세자다! 니 아들놈은! 그래 인정하겠느냐! 아들놈이 폐세자라는 것을!”


“시키는 대로....... 말 하라는 대로 다 하겠다. 난 임금이 아니고! 내 아들도 폐세자다!”


“그렇지. 그래 개처럼 잘도 말을 듣는 구나! 그렇게 개처럼 굴면 아들은 더 살게 해주마! 앞으로도 내 말을 잘 듣겠느냐!”


“반정을 도운 화적들이 있다 들었다! 그 놈들 모두 죽여준다면 죽을 때까지 개처럼 살겠다.”



막란이 배신을 당한다. 화적들 살려달라는 대가로 아들 놈을 살려준다고 했더니....... 당장 뛰쳐나가 놈을 죽이려는데 윤서가 옷자락을 잡아끌어 몸만 바둥바둥 댄다.



“뭐라고 했느냐! 화적들을 죽이라고!”


“그렇다. 그 놈들만 아니면 오늘 같은 치욕은 없었을 것이다. 그 화적 놈들을 죽여 이 한을 풀고 싶다!”


“이 놈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어! 내가 아직 니 신하인 줄 아느냐! 네가 말한다고 내가 그대로 따를 성 싶더냐! 화적들은 살릴 것이다. 살려 네 놈이 죽을 때까지, 억울해서 오장육보가 뒤틀리는 맛을 보게 해 줄 것이다!”



어라....... 죽이라는 데 살려 준다는 것이다. 막란은 지옥에 들어갔다 천당으로 살아 돌아온 느낌이다. 잡아온 임금이 머리가 좋은 것인지, 자기가 머리가 나쁜지 헷갈린다.


폐위된 임금은 능양군의 성격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서서 무엇도 할 수 없으나 자존심이 있어 남의 말은 잘 듣지 않는 사람이라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말해야 화적들을 살릴 것이라 생각했다.


막란의 의도대로 산채 식구들은 살았다. 이제 자기만 살면 된다. 임금도 잡아왔으니 설마 죽이기야 할까? 막란의 생각이다. 자기가 살아야 폐위된 임금의 아들을 구해 준다는 약조를 지킬 수 있는데....... 임금이 막란과 윤서를 부른다.



“최이현의 여식 최윤서라 합니다.”


“막란이라 합니다.”


“최이현의 대감은 내 스승이기도 하셨다. 평소에 마음가짐은 몸에서 배우라 하셨지. 그래서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한 옷을 입어 항상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너의 남편은 어떠냐? 보기에는 등이 굽어 하늘을 보기 어렵고, 피부는 거칠고 어두워 삶의 고달픔이 느껴지는데,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게야?”


“저는 천하게 태어나 어렵게 살아왔지만.......”


“잠깐만! 내 너에게 물은 것이 아니다. 최이현 대감의 여식에게 물어본 것이야.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다. 너를 서방으로 맞은 여인의 마음을 알고 싶다. 어떠냐 이 사람을 남편으로 맞은 니 마음은?”



정해진 답을 말하라는 것이다. ‘마음은 평안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는....... 이 임금이라고 깝죽거리는 놈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저 입을 다물게 해 줄 수 있을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말이지요. 제 낭군은 대신들이 다 숨어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을 때, 산채 사람들과 함께 역신들을 잡아 쳐 죽인 반정의 일등 공신입니다. 이 사람을 지아비로 맞은 저의 마음을 물어보셨습니까? 마음은 항상 불편합니다. 불안합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는데 물이 새는 돛단배에 타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이 제 마음입니다.”


“.......”



막란이 감동하여 윤서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윤서가 이럴 분위기가 아니라면서 막란의 손을 민다.



“최이척 대감....... 저 둘을 건들지 마세요! 스승님이 딸 하나는 잘 키웠어요.”



윤서가 눈물을 흘리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네 서방은 공을 인정해 모든 죄를 사하고 양반으로 면천시켜 주마. 그러나 벼슬은 기대하지 마라. 벼슬까지 준다하면 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다 어쩐다 하는 놈들이 많으니 그 정도로 만족해라.”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막란이라 하였느냐? 이 모진 세월을 살아오다니 나와 닮은 점이 있어....... 칼도 다룬다고 하지?”


“백정 일도 했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과거 일은 이제 입 밖에 내지 말거라. 칼을 잘 쓰다니 보기보다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제 서방님은 군계일학입니다.”


“내 눈엔 학처럼 보이지 않는구나.”



최이척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노비 화적 출신의 꼽추를 조카사위로 맞게 된 것이다. 왕비 둘을 배출했으며 재상이 일곱이나 나온 가문이다. 그런 집안에 노비가 들어앉게 생겼다.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 댈 것이며 대신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가문의 명예와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임금은 최이척과 인목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인목은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백성들의 정신적인 지주이고, 대소신료들에게 있어 그녀의 의견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 최이척은 최이현과 이판대감이 죽은 이후로 서인들의 대표가 되었으며, 정적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 명실공이 최고 권력자가 된 것이다.


노비 막란을 죽이지 않고 윤서의 남편으로 인정한다는 뜻은 최이척의 명예와 권력에 흠을 내기 위해서다.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는 최이척은 이번에 반정을 일으킨 것처럼, 언제 또 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을 내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왕이 된 능양군은 폐위된 임금 광해에 의해 어린 동생이 역모에 엮여 죽임을 당한 뒤로, 세상을 등진 것처럼 입은 다물고 귀는 막고 살았다. 아마 이러한 점이 인목과 최이척의 눈에 들었을 것이다. 욕심이 없고 권력에 뜻이 없는 왕족의 씨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살기위해 바보처럼 행동했을 뿐이지 권력욕은 광해보다 더 했다.


화적들도 살려 준 이유는 광해의 입놀림에 당한 것이 아니라, 성공한 반정의 공을 최이척에게 전부 돌리지 않기 위해서다. 언제든 이를 빌미로 최이척 세력을 약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막란과 윤서가 돌아갔다. 최이척은 임금에게 불만이 많다.



“전하 나라에는 근본이 있습니다. 그 근본을 헤치면 종묘사직 또한 남아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의 질녀입니다. 스승님 최이현 대감의 여식입니다. 그대 가문의 명예보다 더 소중한 조카딸입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 하지 않습니까.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



이놈은 지 조카 아니라고 함부로 지껄여 댄다. 누구 때문에 왕이 됐는데....... 싫은 건 싫은데....... 앞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얼굴을 마주 대할지 화끈거려 미치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폐위된 임금과 폐세자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강화로 유배 보내세요. 둘은 서로 시차를 두고 따로 떠나게 하세요.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을 모르게 해서 평생 그리워하며 살게 하세요.”



죽일 수는 없어도 고통은 주고 싶었다. 광해가 죽인 막내 동생을 평생 그리워하고 있듯, 지척에 있어도 어디에 있는지 몰라, 죽을 때까지 그리워하라며 같은 유배지로 보내는 것이다.




*




화적의 산채.......

화적들은 죄가 없어지고 양인으로 면천을 받았다. 그러나 덕물도(덕적도)에 가서 죽은 듯 살아야 한다. 육지 사람들은 누구도 만나지 못하며 누구도 나오지 못한다. 그것이 조건이다. 막란은 예외적으로 양반의 신분을 얻고 어디서 살든 자유롭다.



“서방님은 어디서 살고 싶으세요. 덕물도에 산채 분들하고 가셔도 저는 따라 갈 겁니다.”


“강화에 가야 합니다. 폐세자가 거기로 유배 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구해 준다고 약조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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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5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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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2 1 12쪽
57 王八! 24.09.03 13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8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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