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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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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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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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남자들의 세계는 다 그런 겁니다

DUMMY

관청의 수장을 비롯해 관군들을 창고에 우겨 넣었다. 다음 날 물자를 실은 관군들의 배가 오면 탈취해 화적들은 덕물도를 떠나 명으로 갈 계획이다.




*




덕물도에서의 밤이 깊다. 화적들은 틈틈이 쪽잠을 자고 있지만 꺽쇠는 잠이 오지 않는다. 반 년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아내가 죽었고 화적이 되었으며 막란은 양반집 여인과 혼례를 했다. 반정을 해서 나라를 뒤집었고 그 일로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자신은 언제 죽어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 막란과 산채 식구들 그리고 모지리의 아내 덴년이 형수만 무사하다면.......


덴년이가 술 한 병과 고기를 들고 꺽쇠에게 다가온다.



“먹어라....... 먹고 한 숨 자둬.”



놓고 가려는데.......



“형수....... 이름이 뭐요?”



꺽쇠는 덴년이의 이름이 궁금해 졌다. 지금껏 천민들은 신체의 특징을 살려 그대로 이름처럼 불렸다. 화상자국이 있어 덴년이라 불리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덴년이가 술을 따라 마신다. 반 쪽 화상 얼굴에 가려진 그녀의 기구한 인생만큼, 나머지 고운 얼굴에도 사연이 숨어 있을 듯하다.



“이여혜(李麗暳)....... 아비가 반짝이는 별처럼 온화하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다.”



어쩐지....... 양반집 규수의 이름이다. 모르는 글자가 없을 정도로 글공부를 많이 했다고 느꼈었는데 역시 근본이 양반이다. 그런데 이(李)씨 성을 가지고 있다. 왕가의 후손인 것이다.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답을 듣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역적가문이 되어 친족 외족 모두 죽임을 당했고 그녀는 얼굴이 곱상하여 창기로 팔렸을 것이다. 양반들에 의해 노리개가 되었고 또 그들에 의해 얼굴이 상했다. 기구한 인생의 끝을 보려는데 모지리를 만나 산으로 들어와 지금껏 삶을 지탱하고 있었을 것이다.



“형수....... 고맙수.”


“미친놈....... 밑도 끝도 없이 뭔 개소리여?”



막란이 상처를 치료해 주고 산채 적응하지 못할 때 그녀가 잡아준 것을 꺽쇠는 알고 있었다. 윤서와 혼례를 치를 때에도 자기 일인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하며 뒤를 봐줬다. 죽은 꺽쇠의 아내가 못 다한 일을 그녀가 정성으로 다해 준 것이다.



“오래 사슈.”


“걱정 말어....... 니놈 노망들어 똥 칠 할 때 까지 살 것이여.”


“나 노망들면 형수가 내 목숨 끊어내요. 부탁하오.”


“.......미친 놈! 내가 누구 땜에 목숨 부지하고 사는데 그딴 헛소리여! 네놈 명이 다하는 날....... 나두 한 많은 세상 하직하는 날이다!”



덴년이의 마음을 꺽쇠는 받아주지 못한다. 모지리의 아내라 그런 것이 아니다. 언제 관군에게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



“알았소. 내 노망들지 않고 덴년이 형수보다 오래 살거요.”



“이제 정신이 드냐? 나 남겨놓고 먼저 뒤지면 뼈도 추리지 못 할 줄 알아라. 노망이 들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내 시중을 받아보고 그래도 죽고 싶으면 그때 죽어라.”



덴년이의 빈 잔에다 꺽쇠가 술을 따른다. 고기 안주를 꺽쇠가 먹어본다. 이미 식어버려 차디찬 고기이지만 맛있게 느껴진다.




*




강화 유배지에서.......

폐세자 아버지 광해를 만나러 윤서가 왔다. 바깥에서는 막란이가 관군들과 함께 술판을 벌이고 있다. 유배지에서는 모든 물자가 부족하다. 유배 온 사람들도 스스로 먹거리를 해결해야 한다. 이들을 감시하러 온 관군들도 충분하지 못한 보급품에 항상 굶주려야 했다.


막란이 술과 고기를 갖고 찾아왔으니 물 만난 고기처럼 주는 대로 먹고 마셔서 관군들은 이미 뻗어 있다. 막란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판소리를 술에 취해 부르고 있다.


윤서의 이야기를 듣는 광해의 얼굴이 심각하다.



“세자가 나한테 할 이야기가 뭐란 말이냐?”


“직접 뵙고 말씀드리길 원하십니다.”


“세자는 지금 살리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다.”


“.......세자마마는 삶과 죽음에 초연하신 듯합니다.”


“살리고 싶다. 세자 ‘이지’를 살리고 싶어.......”


“마마가 설득하십시오. 뼈를 깍는 아픔이 있어도 살아 남으라고요.”


“.......”



광해는 윤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자신이 설득한다고 목숨을 포기한 세자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세자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


막란은 소리를 하고 있고 관군들은 취해 자고 있다. 관군들이 깨어나면 막란이 또 술을 먹일 것이다. 막란의 주사가 이렇게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덕물도의 밤이 깊었다. 달도 그믐이라 천지가 캄캄하다.

약속된 장소로 가자 세자가 벌써 나와 있다. 가시덤불 속 자신이 땅굴을 뚫은 길로 나왔을 것이다.



“아바마마 그간 옥체가 얼마나 상하셨는지요? 불효자식 안부 올립니다.”



폐세자가 광해한테 큰 절을 올린다. 재위시절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광해는 사라지고 자식을 걱정하는 연약한 아버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그토록 풍채가 좋았던 네가 피골이 상접하니 이 죄 많은 아비의 죄가 하늘과 같구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아바마마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역적 놈들에게 궁궐을 내 주게 된 것이 천추의 한이 됩니다.”


“그래.......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땅굴을 파서까지 나를 만나려던 연유가 무엇이더냐?”


“아버님은 사십시오....... 끝까지 살아남아 이 죄 많은 자식 놈의 한을 풀어주세요.”


“살아도 니가 살아야지. 이 무슨 소리야!”


“전 언제 죽어도 죽은 목숨입니다. 듣자하니 씨를 말리기 위해 세자인 저를 죽이려, 언제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들었습니다. 죽어도 저들의 손에 죽기는 싫사옵니다.”


“넌 도망쳐 살아야 한다. 살아서 아비의 한을 풀어야한다?”


“제가 도망치는 날에는 아버님을 사사(賜死)한다고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그러고도 남을 놈들입니다. 하여 아버님만은 살아남으시어 저의 억울한 죽음을 천배 만 배로 갚아 주시옵소서.”


“내 어찌 너를 죽게 하고 나를 살릴 수 있단 말이냐....... 세자야 네가 살고 내가 죽을 것이야.”


“제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버님까지 돌아가신다면 우리 부자의 죽음으로 저들의 웃음소리만 더 커질 것입니다.”


“웃음거리가 되면 어떠냐....... 세자야 같이 죽자. 같이 죽어 저승에서라도 함께 살자.”



비가 내린다. 천둥이 치며 여름비가 이들 부자의 몸을 흠뻑 적신다.


윤서는 떨어지기 싫어하는 광해를 잡아끈다. 덕물도의 아침이 얼마 남지 않아 속히 돌아가야 했다.


세자는 다시 보지 못할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큰 절을 한다. 이후로 세자는 자결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




덕물도의 선착장에서.......

화적들은 세곡(稅穀)을 운반하는 대형 조운선(遭運船)을 탈취했다. 관군들의 선박은 인근 섬 지방을 돌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곡식을 거둬들였는데 그 양이 상당했다. 꺽쇠와 화적들은 이 점을 노려 배를 빼앗은 것이다. 명나라에 가서 자리 잡는 밑천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여름비답게 상당한 양의 비가 내린다. 덕물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공도 이렇게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리는 것은 처음 본다고 한다.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장대비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진 관군들의 배라도 출항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도망치기에는 이만한 날도 없다. 죽음을 무릅쓰고 화적들을 쫒는 지방 관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꺽쇠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금 배를 출발해야 하는지 아니면 폭풍우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형님! 죽을 일 있소. 기다렸다 가야 하오!”


“비가 그치면 관군들이 떼를 지어 득달 같이 달려들 것입니다. 지금 출발해야 안전해요!”



화적들도 의견이 갈렸다. 웬만하면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는 화적들의 회의였지만, 이번에는 첨예하게 갈라져 꺽쇠의 판단에 맡겼다.



“꺽쇠야 심각할 것 없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다. 나는 앉아 죽는 것 보다 서서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덴년이는 폭풍우를 뚫고 가자는 것이다. 꺽쇠의 생각도 같았다. 섬에 갇히면 관군들에게 포위된다. 산 속이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섬에서는 변변한 무기 없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물이 많고 깊다하여 덕물도라 할 정도로 배를 출항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바다 위에서 폭풍우를 뚫고 항해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그러나 꺽쇠는 출항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폭풍우 속에서 항해를 하려면 필요 없는 짐은 버려야 한다. 화적들의 수가 이 백이 넘어가니 그 무게가 상당하다. 세곡은 당분간 요기 꺼리만 남기고 전부 버린다.




*




강화도의 선착장에서.......

막란은 술을 깨지 못해 아직도 해롱거린다. 어차피 폭풍우 때문에 배가 뜨질 못하니 인근 민가에서 하루 묵기로 한다. 세자를 죽이라는 임금의 어명은 본의 아니게 수행한 것 같다. 세자를 살려달라는 광해의 약조는 지키지 못했다. 이래저래 똥 누고 밑을 닦지 않은 기분이다.


폭풍우가 밤이 되니 더욱 거세졌다. 술 먹고 뻗은 막란서방이 잠을 깰 정도니.......



“부인 물을 주시오....... 물을!”



물 한 바가지를 붓고 싶으나 그래도 서방이라 참았다.



“정신이 드십니까? 어째서 술이 들어가면 개가 되십니까?”


“부인이 관군들을 꼬셔 주위를 돌리라 하셨잖아요.”


“주위를 돌리라 했지 주위를 잊으라 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부인은 몰라요....... 남자들의 세계는 다 그런 겁니다.”


“모르긴 뭘 몰라요. 양반이 됐으면 체통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드시다니요! 한번만 더 고주망태가 되면 너 죽고 나죽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딥니까. 한양입니까?”


“강화도라구요. 정신 차리게 뺨을 한 대 세릴까요!”



하는데 윤서를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수하들과 비를 쫄딱 맞고 강화목사 사촌 오라버니가 서 있다.



“오라버니....... 여긴 어떻게?”


“윤서야 덕물도에서 화적이 배를 탈취했다는 봉화가 올라왔다!”



덕물도라면 산채식구들이 면천이 되어 살러 간 곳이다. 그곳에서 화적이라면 그 사람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답답하여 배를 탈취했다는 것인가?



“오라버니 화적들이 탈취해서 섬에서 도망가기라도 했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혹시 몰라 동서와 네가 관계된 것이 아닌지 이렇게 부리나케 왔다만.......”


“저희 시아버님 식구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날씨에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할 사람들은 아닙니다.”


“아버님이 화적들과 동서를 잡아먹지 못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고 들었다. 맞느냐?”


“네....... 백부님은 은혜도 모르고 제 서방님과 그 분들을 해하려고 했습니다.”


“폐세자도 자결을 했다. 이 일은 너희와 무관치 않은 것이냐?


“폐세자의 죽음은 임금의 일입니다. 본의 아니게 엮이게 된 것입니다.”


“윤서야....... 너는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날 사람으로 대한 가족이다. 도와주겠다. 이 섬을 뜨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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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3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5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2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2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8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5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6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7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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