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SET : 인류 영속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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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무
작품등록일 :
2024.07.24 16:35
최근연재일 :
2024.09.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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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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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자의 의무

DUMMY

“헉! 쿨럭!”


담화를 TV로 지켜보고 있던 최부장이 사례가 들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물 한잔을 떠다 주는 사람이 없었다.


택호는 한 입 베어 문 샌드위치를 내던지고 급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계속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자동 응답기는 같은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 와중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가방을 챙겨들고 사무실을 나가고 있었다.

택호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최부장이 마지막으로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전화를 걸었다.


급하게 나섰던 직원들은 모두 지하 주차장에서 패닉과 같은 상태의 교통혼잡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혼잡은 지상의 도로에서 더욱 심하게 발달하며 모든 공간들이 주차장화 되어 가고 있었다.



대통령의 담화가 벙커에도 생중계 되었고 밖의 세상도 마찬가지겠지만 벙커 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에 휩싸였고 곳곳에서 울음소리와 탄식 섞인 한숨 소리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다른 것은 세상의 멸망 한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두고 온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일상, 나름대로의 행복들이었다.

거기에다 자신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해 강제로 모든 것들과 헤어지게 된 것이었다.


아마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멸망이 다가오는 세상에 남겨지는 것을 택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벙커 안의 모든 이들은 가장 잔인하고 사악한 지옥에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지옥...




오른 손목에 검은색 팔찌를 찬 백 명 정도의 사람들이 벙커의 어느 장소에 모여 있었다.

수연의 추정대로 라면 자신을 포함하여 벙커 안의 주요 인물로 구성된 것으로 보였다.

선택 받은 사람들 중에서 또 다시 선택된 이들은 아마 엄청나게 큰 책임과 의무를 부여 받게 될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쭈욱 훑어보니 대부분이 의외로 담담해 보였지만 수연은 아직 패닉에 빠져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실 수 있을 때 마셔두자.”


정국이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정국은 이 사태에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수연은 자신을 가르치고 키워주던 듬직한 예전 사수였던 정국을 떠올렸다.


수연이 가볍게 고마운 인사를 건네고 잔을 넘겨 받자 정국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놈의 담배...”


수연이 인상을 쓰며 쏘아 붙이려 하자 정국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이것도 필 수 있을 때 펴두는 거지 뭐...”


한 자리 건너의 남자가 정국을 바라보자 정국이 그에게 담배 한 가치를 건넸고 그 남자는 크게 반색하며 담배를 받아 들었다.

의외로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우리를 여기 왜 모은 걸까요?”


“브리핑 같은 걸 하겠지.”


“브리핑?”


“이곳의 시설, 상황, 조건, 어떤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는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건가 등등...”


정국이 무덤덤하게 대답하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여기 대피소를 책임지고 있는 윤태현입니다.”


언제 올라왔는지 한 사람이 단상 앞에 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지금 상황이 많이 혼란스러우실 거라 생각됩니다.”


윤태현의 말에도 사람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여야 합니다.”


“무슨 의무를 말하는 거요?”


한 사람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윤태현이 강한 눈빛으로 그 사람을 한참 보다가 입을 떼었다.


“살아남는 겁니다. 벙커 밖의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살아남는 겁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살아남아서 인류의 다음을 기약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고 종말을 맞이할 99.9%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입니다.”


일순간 숙연함이 회의실을 휘감았다.


“흑...흑...”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전염되듯이 회의실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울지 마십시오. 지금은 슬퍼하고 울고 있을 시간도 모자라 보입니다. 모두 벙커장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수연 앞의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환기시켰다.

울음소리가 쉬이 잦아들지 않았지만 윤태현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이 대피소에 대해 설명을 드릴 테니 각 자 소지하고 계신 태블릿을 켜고 대피소 현황이라는 폴드를 열어주십시오.”


벙커장 윤태현의 말에 사람들이 잠시 웅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SAFETY3’으로 명명된 곳이며 우리는 그와 별개로 편하게 ‘둥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피소가 만들어지고 운영하게 된 배경은 이제 모두 아시게 되셨으니까 생략하겠습니다. 둥지는 암반층 아래 약650m에 조성되었습니다. 지하 12층 규모의 연면적 약 90,000제곱미터에 이릅니다. 아직도 일부 공간은 계속 확장 중에 있으며 이 공간에는 주거 시설과 의료 시설, 각 종 생산 시설, 영농 시설 등 지상에서 가능한 거의 모든 시설이 소규모나마 들어와 있습니다. 이곳의 발전 시설은 소형 원자로가 담당하고 있으며 앞으로 일 년 후에는 지열 발전기가 가동 될 것입니다.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인원이 5년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이 비축 되어 있으며 식수는 지하수와 순환 시스템을 통하여 안정되게 공급될 것입니다. 당연히 철저한 배급 규칙을 준수해 주신다는 가정 하에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이 놀란 것은 대피소의 규모와 시설이 아니라 1년, 5년이라는 기간 때문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알 수 없습니다.”


대피소 책임자 윤태현은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고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벙커는 SUB1, SUB2 두 개의 예하 벙커와 연결되어 있으며 예하 벙커에는 차후 벙커의 확장과 보수, 더 나아가 지상의 복구 작업에 필요한 중장비와 자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생각하시는 것보다 규모가 상당하니 브리핑이 끝난 후 관련 책임자분들은 예하 벙커를 참관하시게 될 겁니다. 우리 둥지에는 3,500여명, 정확하게는 3,512명이 있습니다. 의료진 150명, 의료진에는 심리상담전문가 20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치안과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과 군인 150명, 가장 중요한 생존을 책임질 각 종 생산, 산업기계 유지, 보수, 관리 인원 2,500명, 중, 고등학교에서 선발된 각 분야의 영재 청소년 500명, 마지막으로...”


“이곳에 아이들도 있다는 말입니까?”


누군가가 브리핑 도중 소리 질러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걱정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겠으나 아이들은 심리상담사들이 각 심리안정프로그램을 총 동원하여 혼란과 동요를 최소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력 할 것입니다.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윤태현의 동의를 구하고 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인류 문화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예술 분야 예술인과 시설의 관리 인원 512명입니다. 이 모든 인원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주력하셔야 합니다. 어느 한 곳에서 혼선이 일어날 경우 대피소의 안정적인 생존은 어렵습니다. 반드시 관련 분야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셔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 벙커의 최우선 과제는...”


또 다시 누군가의 질문에 브리핑이 중단되었다.


“이 넓은 시설에 겨우 3,500명이라니. 열 배는 더 수용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제가 있는 수경 재배 시설만 해도 규모가 엄청난데요.”


윤태현은 잠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가 들고 있는 생수병의 상표가 어쩐지 너무 반가워 보였다.


“우리 벙커의 최우선 과제는 생존입니다. 당연히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구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의구심이 들겠습니다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단기간의 생존이 아니라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생존입니다. 충돌 후 지구의 생태계가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 만큼 복원되는데 얼마나 걸릴지 관련 자료는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벙커 안의 모든 시설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 생산과 보수, 유지로 생존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계획되었습니다. 만약 최대치를 초과한 수용을 하였을 경우 벙커의 시설, 자원들이 버터 내지 못할 것이며 인류의 미래 또한 보장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철저하고 냉철하게 수용 인원이 결정 된 것입니다.”


“지상 생존자들의 구조 작업도 벙커의 임무이지 않습니까?”


정국이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총력을 기울이겠으나 저희는 낙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충돌 이후에 음~ 과연 우리가 구조할 사람들이 남아있을까요? 당연히 최선을 다하겠지만 우리는 항상 벙커 안의 사람들 생존이 일 순위입니다.”


생존 자체가 비극 상황인 상황에서도 미래의 생존을 이야기해야 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에서 회의는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냉철해졌고 어느 순간 일방적인 전달식이 아닌 양방향 소통으로 의논과 대책 마련을 계속 논하기 시작하자 브리핑은 끝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연대장 윤석주는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이전에 간부들을 불러 연대의 모든 무기들을 상황실과 또 다른 빈 숙소에 모두 모으게 지시를 내렸다.

개인 화기와 중화기, 탄약을 포함한 각 종 폭약으로 가득 찬 숙소 몇 동에는 아예 병사들의 접근을 막았다.

전차를 비롯한 각 종 기갑차량을 비롯하여 모든 차량들의 키도 모두 모아 움직이지 못하게 조치를 취하여 두었다.



담화문 발표 다음 날


“1대대 병력 712명중 이탈 인원 233명, 중대장 1명과 소대장 5명, 하사관급 12명이 포함되었습니다. 현재 잔류 인원 479명입니다.”


1대대장이 마지막으로 보고를 마쳤다.

굳이 탈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룻밤 새 연대 병력의 1/3이 이탈하여 사라졌다.


“음...”


윤석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상황실의 다른 간부들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병사들의 사기는 어떤가?”


긴 침묵을 깨고 연대장이 물었으나 ‘사기’란 말이 무색한 상황에 어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연대장님. 다녀왔습니다.”


상황실을 문을 열고 지원 장교가 들어오며 경례를 했다.

인근 도축장에서 소 다섯 마리와 돼지 스무 마리를 어렵게 공수해서 오는 길이었다.

당연히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기는 하였으나 도축장 직원들을 협박이나 마찬가지인 부탁으로 이루어낸 것이었다.


“우선 병사들을 배불리 먹여둡시다.”


윤석주가 일어서며 간부들에게 말했다.


“예.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모두 동원하겠습니다.”


입대 전 호텔 주방에서 요리사로 일하였다는 군수장교가 웃으며 지원 장교와 함께 상황실을 나섰다.


윤석주도 상황실을 나서서 병사들이 있는 숙영지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마치 화생방 연막 같은 자욱한 담배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이제 우리 군인들의 의무는 무엇일까?’


윤석주의 고뇌가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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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반격을 위한 진화 1 24.09.05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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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지상으로 가는 열쇠 24.09.03 13 0 12쪽
29 그들? 24.09.02 12 0 10쪽
28 메모리 24.08.30 13 0 9쪽
27 붉은 색 인식카드 2 24.08.29 13 0 10쪽
26 붉은 색 인식 카드 1 24.08.28 12 0 12쪽
25 철민과 민희 24.08.27 13 0 10쪽
24 추방자들 2 24.08.26 11 0 11쪽
23 추방자들. 1 24.08.23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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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1 24.08.21 17 0 9쪽
20 선민 2 24.08.20 14 0 15쪽
19 선민 1 24.08.19 15 0 11쪽
18 PICKER 24.08.16 17 0 11쪽
17 여장부 24.08.14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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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FTER RESET 24.08.11 23 1 9쪽
13 그 날이 오다. 2 24.08.09 22 1 11쪽
12 그 날이 오다. 1 24.08.09 23 1 11쪽
11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2 24.08.07 21 1 14쪽
10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1 24.08.06 23 1 11쪽
9 정의의 사도 24.08.05 2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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