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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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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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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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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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것들 (1)

DUMMY

인간의 기억이란 꽤나 흐리멍텅한 것이다. 사실 바실리쿠스의 어쩌면 납치라고도 볼 수 있었던 이번 감금사건은 신분의 차이를 막론하고 가레랑의 영지 뮈쉬나 안에서 꽤나 떠들썩한 주제가 되었는데, 이렇게 바실리쿠스가 돌아왔고 또 다들 농번기에 바빠서 그런가 술 몇 잔 건배하며 부어라마셔라 해대다보니 그냥저냥 지나간 모양이다. 아무리 가마욱스가 청승맞은 사람들의 고장이라 하더라도 이는 너무 심하다 볼 수 있겠지만, 막상 사람들은 그냥 아무렇지 살고 있는 듯 하니 그저 좋은 게 좋은 걸지도... 그게 어느정도냐 하면 이 사건의 주동자인 게랙탱마저 번듯하게 돌아와서는 어느새부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삯 받으며 일을 했고, 이따금 바실리쿠스와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고 개울에 들어가 수영을 하던가 하면서 단숨에 일상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 사이에 모종의 화해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전말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 술이 문제다.



그 후로 몇달이 지나도록 바실리쿠스가 본인의 자리에서 벗어나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돼지치기 자리에 있게 해주었다. 그것이 본인의 바람이었고, 온 숲과 산맥이 갈색으로 바짝 마르고 쿰쿰 익어가는 가을의 계절이 깊어가면서 바실리쿠스는 화장실에 가는 중에도 휘파람을 쌕쌕 불고 있었다.



"아저씨는 돼지치기인데 그렇게 기분이 좋으세요?"



누군가 달려와서 이렇게 묻기에 보니 성아랫마을 변방 가까이에 사는 가스파르라는 아이였다.



"응, 돼지치기니까 기분이 좋지."



웃으면서 대꾸했더니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돼지치기인데 왜 기분이 좋죠?" 하고 말했다.


"항상 돼지들을 볼 수 있으니 기분이 좋지."


"왜 돼지랑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죠? 같은 뚱뚱이라서?"



바실리쿠스가 발을 콱콱 굴렀다.



"너 같은 녀석은 성 조르주님 이름으로 악마가 잡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거야. 내일 아침까지 쉬지않고 꿀밤을 맞고 싶어서 그런 소릴 하는 거지?"



그 말에 아이가 벙글벙글 웃으면서 재빨리 몸을 내뺐다.



"그건 아니고요. 아저씨랑 같이 사는 애하고 같이 놀려고 찾아온 건데요. 아저씨 조카딸이요."



그러면서 온몸을 꽈배기처럼 배배 꼬는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늑대아이를 두고 말하는 것임을 대번에 알아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알아서 찾아가면 될 걸 나한테 말 거는 이유는 뭐냐?"


"어떻게 남의 집에 떡 하니 처들어가서 튀어나오라고 할 수 있겠어요. 당연히 보호자의 허락을 구한 뒤 정식적으로 데려와야 인간 도리, 예의가 되는 거죠."



바실리쿠스는 걸어가다 말고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아주 괘씸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이 못된 양아치 같은 녀석아, 누가 네놈 속을 모를 줄 아느냐? 뭐, 정식으로 데려가? 발랑 까져서는 눙치는 수작이 제법이로구나! 하마터면 깜박 넘어갈 뻔했어. 너 같은 꼬마애를 한두번 상대하는 줄 아냐? 이 바실리쿠스님에게 그런 못되먹은 수작질은 성공을 맺지 못하지. 그래, 그 아이의 이름이 뭔지는 제대로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들어본 적은 없는데, 말씀주시면 지금부터 세겨듣지요."


"어떻게 친구의 이름을 모를 수가 있지?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건 터무니없는 주장인걸?"


"이유를 물으시면 당연히 저는 설명을 못 해요. 애들이 지들끼리 모여서 노는 데 이름이 필요했던 적이 언제 있었다고 그런 말을 하세요? 아저씨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 테니 한 번 생각해보라고요. 저 애는 어느 마을에 사는 앤가 물어물어 보다가 돼지치기인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아저씨의 조카딸이다 해서 여기까지 애써 찾아온 거예요. 어쨌든 저 역시 이름도 모르고 애를 데려가는 건 탐탁지 않으니 이름을 알려주시면 정식으로 데려가지요."



그놈의 정식으로 데려간다는 건 뭔지. 헌데 듣고보니 바실리쿠스본인도 아직까지 애 이름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가 이름이 뭐였지?"



늑대아이는 방금 잠에서 깼는지 침대에 일어나 앉아있었다.



"제 이름은 사란데요."


"사란데..."


"사라요."


"사라야, 니 친구가 밖에 와있네."


"알겠어요." 늑대아이는 일어나 양말을 신다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껏 궁금해하지도 않더니 제 이름은 갑자기 왜요?"


"밖에 네 친구가 와있는데 걔가 묻던데."


"그래요? 알았어요."



그러더니 빙긋 웃는 것이다. 이제부터 사라가 된 아이는 밖으로 나가 대얏물에 세수를 하면서 아이를 힐끗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더니 함께 손을 잡고 언덕 아래로 망아지마냥 달려나갔다. 바실리쿠스는 그걸 보니 왠지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어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이따금 흘깃 쳐다보면서 감시하더니 숲 어귀까지 돼지들을 끌고간 뒤 저녁이 되어 돌아오는 와중에도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돌아와도 아이가 보이지 않자 불안감은 배가 되었다.



'내가 망할 꼬마 요물을 키웠구나!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이래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단 말이냐? 설마 이 잡것들이 벌서부터 발랑 까져가지고 오직 하느님만이 알 만한 그런 장난을 막 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 애들은 둘째치고 내 명예까지 박살이 나고 말 거야.'



이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쿠미누스 사제를 찾아간 건 우리들 눈에 정말 크나큰 실수로 보이겠지만 본인에게는 이런 말을 털어놓을 사람이 그 사람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사제는 언제나 기막힌 학식과 성령으로 바실리쿠스의 고민을 하느님 계신 곳으로 날려주었으니 말이다.



사제 역시 사라를 아끼는 마음이 요즘 들어 커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바실리쿠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두 손으로 책상을 쿵 쳤다.



"그래, 너는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두 손 두 발 다 놓고 있었다는 말이지!"



바실리쿠스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이제보니 사제는 얼큰히 취해 있었는데, 그에게는 하느님 두려운 줄을 모르고 막 해대는 미풍양속의 해침이야말로 그 어떤 죄악보다 공동체를 향한 굴지의 위협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어린애라니! 바실리쿠스가 조금 과장한 면도 있어서 그의 분노는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쿠미누스는 양 손을 모아쥔 채 연신 바실리쿠스를 설교하면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애들은 자라나고 배우는 게 미덕이야. 부모님께 순종하고 교회에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역할이다. 길가에 떠도는 개처럼 흘레붙어서는 안된단 말이야! 애들은, 흘레붙는 개가 아니란 말이다, 이 못된 것들! 못된 것들! 발랑 까진 것들!"



쿠미누스는 바실리쿠스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바실리쿠스 너 보았지? 자식이란 이런 거다. 힘들여 먹여주고 키워주고 재워주고 했건만 그 고생도 몰라주고 부모의 마음에 큰 대못을 박아버리지. 아담이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느님 역시 그런 심정이셨다. 그분은 눈물을 머금고 우리를 동산에서 추방할 수 밖에 없었어. 우리가 이렇게 피땀흘려 고생하고 있는 건 다 그런 배은망덕한 것들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자네는 이해하지?"


"이해합니다, 사제님, 이해해요!"



평소에 사제 말이라면 끔뻑 죽는 바실리쿠스라 그 말을 들으니 마음속에 분노만 더해갔다. 갑자기 "헉!" 하면서 사제의 얼굴에 두려운 빛이 떠오르더니 만면이 온통 하얗게 질려버렸다.



"바실리쿠스야, 나는 지금 너무나도 두렵다. 왜냐하면, 그 애들이 벌써 되돌릴 수 없는 짓을 저질렀으면 어쩌지? 하느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했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 애를 더 이상 사람으로 볼 수가 없어!"



바실리쿠스가 벌떡 일어났다.



"제 생각엔 아직 늦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모르시겠나요? 늦지 않았다구요! 그 어린 것들이 이 이상 못된 짓거리를 벌이기 이전에 선수를 치고 현장을 덮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각 행동에 들어간다. 쿠미누스는 법복을 벗고 더러워져도 되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얼굴에 복면을 쓰고 한 손에는 호신용 몽둥이를 들었다. 바실리쿠스 역시 얼굴에 두건을 뒤집어쓰고 복대를 둘러 뚱뚱한 배를 가렸다. 그리고 밧줄과 애 하나가 들어갈 만한 포대기를 챙겼다. 누가 보면 '쟤들은 바실리쿠스랑 쿠미누스 사제님 같아 보이는데 왜 저런 우스운 꼴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날 만큼 허접한 분장이었지만 저녁 어스름에 힘입었고 또 저들끼리만 보니 나름 괜찮은 위장인 것 같아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워했다. 거기다 쿠미누스는 지금 좀 취해있었다.



그들은 나가다가 저 밖에서 저 멀리 영주의 시종인 바르간트 (7화에서 게랙탱과 한바탕 치고받은 바실리쿠스를 나무랐던 그 사람. 그 일 때문에 바실리쿠스는 아직도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저 얼굴을 보니 게랙탱과의 일도 갑자기 생각나서 바실리쿠스는 심기가 불편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가 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쿠미누스 사제님이랑 바실리쿠스가 아닙니까? 이밤에 그런 옷을 입고 뭘 하시는 거예요? 지금 무슨 축제 기간인가요?"



두 사람은 그 말에 크게 당황하여 교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충분한 위장을 더한 뒤 다시 나왔다. 바르간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대답도 없이 들어가서는 옷을 껴입고 나오는 거예요? 당신들끼리 재미난 놀이라도 하고 있으면 나도 끼워줘봐요.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 나한테도 꺼내서 보여달라고요. 그러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다시 들어갔다가 옷을 한 겹 더 껴입고 나왔다.



"나는 우리가 친구인 줄 알았는데요?"



그들은 다시 들어갔다가 바실리쿠스와 사제보다는 차라리 미친놈으로 보일 정도로 옷을 껴입고 다시 나왔다. 바르간트가 모른 채 하며 바닥에 침을 뱉고 돌아가자 그제야 됐다 싶어서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제가 애들이 모여서 평소 시시덕거리는 장소를 몇 군데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요즘은 가을이고 날씨가 쌀쌀하니 아마 땅을 파서 안에 있는 곤충이나 겨울잠 자는 짐승을 잡아먹거나 개울가에 개구리 미꾸라지를 잡아먹거나, 사과맛이 조금 난다는 길가의 찔레, 부들부들하고 들큼한 삐비, 빨갛고 작은 딸기 열매를 한움큼 따먹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놀고있겠죠. 제가 그런 장소를 잘 압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두 덩치가 뒤뚱뒤뚱 언덕을 내려가 산과 들판이 얽매인 골짜기를 향해 서둘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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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6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 못된 것들 (1) 24.08.15 6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6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6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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