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최근연재일 :
2024.08.22 20:35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605
추천수 :
26
글자수 :
426,357

작성
24.08.18 10:42
조회
5
추천
0
글자
12쪽

네놈을 파괴할 거다

DUMMY

그렇게 얼마간 바람을 쐬다가 들어갔더니 다들 곯아떨어져 있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로베르는 가족들과 함께 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갔다. 바실리쿠스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그냥 앉아서 쉬기로 했다. 로베르가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억지를 부려서 강제로 떠밀어 집으로 보내놓고 자기는 아까 그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로베르 아저씨가 저 멀리 언덕 위의 흐릿한 점으로 보일 때까지 지켜보았다.



"미안하다, 바실리쿠스야. 너를 저놈들 사이에 두고 가기는 싫은데."


"걱정 마시고, 가세요. 예? 가요, 아저씨."



뒤에서 흐느적흐느적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려서 바닥에 대고 연거푸 두 번이나 토했다. 바실리쿠스는 아직 젊은 사람이라 어리석게도 가능한 토를 덜 내면서 취기가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역효과를 냈다. 그의 위장은 '야, 기다려봐 많이 남았어.' 하는 듯이 온몸을 뒤틀면서 안에 든 것들을 오리처럼 꽉꽉 쥐어짰다. 무릎으로 명치를 꿀떡꿀떡 짓누르는 것 같았다.



'이놈아, 남들이 준다고 넙죽 받아먹지 말고 조절을 해가면서 먹으란 말이다.'



쿠미누스 사제님이 등을 두드리면서 하는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러다 질식하겠다 싶어서 억지로 고개를 들었는데, 저 멀리 로베르가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조용한 밀밭에 흔들거리는 허수아비 같았다.



목에 밤바람을 한 번 넣어주고 한 번 더 외쳤다. 로베르는 비척거리다 사라졌다.



그리고 바실리쿠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슬며시 뒤를 돌아보았는데 구토하는 바실리쿠스 주위를 개랙탱과 롤마르 두 사람이 맴돌면서 지켜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본인은 집으로 갔다.



바실리쿠스는 토한 자리 옆에 주저앉아 어지러운 게 날아갈 때까지 연거푸 힘든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몇 번 더 토를 하고 말았다. 썩은 담즙을 뱉어낸 셈이다. 한결 맑아진 기분으로 위를 올려보았더니 온 천지에 별들이 흐붓하게 떠있는 바람에 이도저도 못하고 앉아있게 되었다. 우와아 하면서 들판에 코스모스가 핀 만큼 하늘에 작은 알알이가 가을맞이를 했다. 강아지풀이 까불거린다. 그중에 몇 개를 뜯어서 줄기를 비비 꼬던가 씨앗을 비벼 던지던가 하면서 추운 바람을 계속 맞았다.



"저게 바로 내가 태어났다던 돼지자리의 별자리야."



듣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 우리의 바실리쿠스는 단단히 취했거나 말동무가 필요한 것이 분명했다.



가을밤이 히이이, 히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먼 산에 고라니가 울고 있었다. 그는 언덕 너머로 작은 발굽만을 남긴 채 훌적 넘어가는 돼지자리를 읊어보았는데, 어째서 하늘 위에 온전히 떠있지 않고 저 너머로 사라져만 가는지, 혹시 이게 나쁜 징조는 아닐까 싶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요사스러운 기운이 넘치는 밤에는 사람의 체액이 어지럽게 되어서 보지 못할 것을 보게 되고 이전에는 없었던 기이한 요물들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더니만, 아까 개랙프리드가 말했던 것도 그렇고 참 이상한 밤이야.'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한숨을 쉬었더니 하얀 입김이 나오는 것을 보아 이제 슬슬 추워지겠구나 하면서 바실리쿠스는 숲속에 도토리가 얼마나 쌓여있을까 기분이 좋은 한 편 마음이 심란해졌다.



오줌을 좀 싸고 돌아왔더니 세 사람은 아까 그 자리에 여전히 엎어져있었다. 등어리를 들썩거리는 걸 보니 아직은 숨을 쉬고 있다. 바실리쿠스는 난로에 이탄을 쑤셔서 불을 키웠다. 조금 밝아졌다. 밖은 바람 부는 소리 외엔 조용했다. 사람 셋이 신명나게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옆구리가 좀 시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주변의 먼지쌓인 돌벽과 쓸데없이 자루만 남은 농기구, 나무가 썩은 부분에서 기어나오는 자벌레, 천장에 다 쓰러진 다락의 쏠아먹힌 철심 그늘과 쥐에 파먹힌 키가 비스듬하게 결려있는 것 등을 보더니 결국 픽픽거리는 촛불을 희떠보면서 천천히 잠에 들었다.



잠시 후, 먼 들판에서 심장이 쪼그라들 만큼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지창조 이후로 한 번도 이 가마욱스 지방에서는 난 적이 없는 악귀의 소리, 사람이 악에 받혀서 끽끽거리며 비명 비슷하게 우는 비참한 소리였다. 다친 고라니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바람이 나무때기나 바위틈 사이로 비집어 들어가면서 내는 그런 건줄 알았는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뭉툭하게 풀을 밟는 소리와 함께 헛간 문앞에 이르렀다.



닫힌 빗장이 덜컥거렸다. 그 소리에 놀라 깨어난 바실리쿠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랙탱과 롤마르 개랙프리드 셋 모두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코골이만 빼면 마치 죽은 것처럼 잘만 자고 있었다. 그렇다고 로베르가 돌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촛불은 모두 꺼지고 이탄불도 사그라들어서 어느 순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셈이다. 그는 뚫린 지붕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빗장이 닫힌 걸 겨우 확인하고 자는 척을 했다.



빗장이 얼마간 더 덜컥거리다가 열리지 않자 이제 이를 어쩌나 하며 엉엉 우는 소리가 나면서 돌아가는 발걸음이 들려왔다. 바실리쿠스가 안심하고 한숨을 내쉬는데 돌연 빠르게 터벅터벅 소리가 들리더니 밖에서 문을 확 붙잡았다.



"왜 우리를 무시하십니까?"


"당신 한 분은 깨어있잖아요. 왜 자는 척을 하세요?"



술이 화들짝 깨는 것 같았다. 겁에 질린 바실리쿠스가 문 밖에 있는 저것들에게 말을 걸어야 할 지 말 지 고민하는 동안 대답이 늦어졌다.



"나는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라고 하는데요." 목소리가 꺽꺽거렸다. "그러는 당신들은 누구길레 그 밖에서 그렇게 울고 계시죠?"



목소리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맞아요, 사람이었죠.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빚어주신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끝났습니다. 모두 끝나버렸어요."


"이제 남은 건 파멸... 오로지 파멸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절망과 파멸... 그리고 악마와 지옥의 유황불... 당신은 모르시겠죠."


바실리쿠스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양반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이해할 수가 없네요. 무슨 억울한 일이 있길레..." 참 희한한 일이 다 있다. 무슨 장난일까?



그가 말끝을 흐리자 문 밖의 사람들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실리쿠스는 이들이 바로 개랙프리드가 죽여버렸다는 그 괴물들임과 동시에 개랙프리드가 어느정도의 거짓말로 자신들을 속였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온 건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개랙프리드가 가져간 본인들의 머리를 돌려받기 위함이었다. 그걸 찾아달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밤새도록 따라다니면서 괴롭힐 거라고 협박해왔다. 어쩔 수 없이 바실리쿠스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머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을 짜내다가 썩어가는 걸 늦추려고 술이 조금 남은 술통에 담구어버렸다는 것을 뒤지면서 알게 되었다. 옆에 있는 개랙프리드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이놈이 잠에서 깬 다음에 남은 사람들을 추궁하면 어쩌지? 에잇, 모르겠다. 일단 나부터 살고보자!'



혹시나 해서 그 안으로 손을 쑤욱 넣어보았는데 찐덕찐덕한 보리맥주 거품 속에 맨들맨들하고 공 같은 덩어리 두 개가 만져졌다. 혹시나 그것들이 손을 깨물지 않을까 싶어서 황급히 손을 뺐다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넣었다.



닭다리를 먹을 때 뼈 사이에 잡히는 혈관과 힘줄이 느껴졌다. 그것들로 촘촘히 싼 공을 만지는 것 같았다.



"찾았습니까?"



그들이 물었다.



"네, 여기 있네요." 그가 대꾸했다. "이게 여러분들의 머리가 맞다면요."


"우리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요."



목소리들 중 하나가 말했다.



"맞는 것 같은데요."


"같은데요는 안됩니다. 우리는 코도 없고 귀도 없는데다, 혀도 없고 이빨도 없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온통 불에 타버렸죠. 제대로 확인해봐요."


"피부도 모두 벗겨지고 그 자리에는 지독한 화상으로 지혈받았어요. 성한 자리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바실리쿠스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한 번 맥주통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이 통이 어딘가에서 서리해온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어느 집에서 서리해온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왜 지금 그런 생각이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밖에서 채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손을 잘 놀려서 그것이 사람 머리가 맞는지 자기 얼굴을 만져가면서 이목구비의 빈 자리와 헌 자리를 비교해보았다. 확실히 물렁하고 미끈거리면서 좁은 구멍이 난 부위가 몇 개 있는 것 같았다. 입으로 추정되는 구멍에까지 손을 넣어서 이빨이 모조리 부러져 나간 것도 확인했다. 진흙과 돌 같은 것도 만져졌다. 바실리쿠스는 입술이 있어야 할 부분에 얇은 피부조각만 만져지자 이상해서 얼마간 문질러보다가 뒤늦게 이게 진짜 사람의 머리통이라는 확신이 들자 구역질이 몰려와 구토를 쏟을 뻔했다. 간신히 참지 못했다면 지독한 시신의 모독이 됐으리라.



잠시 후 양손에 맥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통 두 개를 든 채 정신이 없는 바실리쿠스가 빗장을 열고 호들짝 빠져나왔다. 계단 아래에는 머리의 주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 없는 처참한 몸뚱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자마자 바실리쿠스는 양 손아귀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달빛 아래, 헐벗은 두 악마의 잘린 목 단면, 기도로 이어지는 검은 구멍 속에서 숨과 죽은 위액과 괴상한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아 달빛 아래, 괴물들이 소중한 머리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그들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져 계단 아래를 구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머리를 바로 찾지는 못하는지 환호성을 지르면서 짐승처럼 바닥을 더듬거리다 마침내 찾아들더니 작별인사도 없이 본인들이 기어나온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바실리쿠스는 멍 하니 서있다가 대답도 없이 문을 쾅 닫고 빗장을 질렀다. 세 사람은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그도 이대로 자고 싶었으나 눈은 공포에 젖은 뜬눈이었다. 몇 분이 지나도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을 깨워야 할까 고민하는 찰나에 다시 그들이 빗장을 잡아당겼다.



"뭡니까?"



바실리쿠스가 소스라치며 물었다. 벽판자의 틈으로 달을 가리는 놈들의 그림자가 마루에 창살처럼 그려졌다.



"이 머리는 맥주로 더럽혀져 있잖아요."



그들이 말했다.



"냇가에 가서 좀 씻어주세요."


"본인 머리는 알아서 씻어요."


"이 몸으로 어떻게 냇가를 찾겠습니까. 머리가 있는 곳도 느낌 삼아 겨우겨우 찾아온 거란 말입니다."


"이대로 해가 뜨면 우리도 어떻게 될 지 몰라요. 제발 도와주세요. 오줌냄새까지 난다구요."



바실리쿠스는 더 이상 죽은 사람의 머리통을 만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저놈들이 아침이 오면 산새처럼 사라질 유령 귀신이기를 바라면서 눈귀입코를 전부 다 꼭 막을 뿐이다. 그 뒤로도 몇번이나 애원해도 매번 딱 잘라 거절하자 놈들도 태도를 싹 바꾸더니 귀신처럼 소리를 지르며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야! 이 개새끼야, 네놈을 파괴할 거다, 왜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이냐! 이제 알겠다. 우리 머리에 오줌을 싼 게 네놈이구나!"


"복수해주마! 반드시 복수하겠어! 사탄의 지옥 밑바닥에서 네놈이 끌려 내려오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겠다!"



마치 우리는 네놈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듯이 바실리쿠스의 이름을 막 부르면서 어머니 뱃속에서 피 묻히고 나오는 아이처럼 억울하고 꾀악한 비명을 질러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1 여우들 (2) 24.08.22 2 0 13쪽
80 여우들 (1) 24.08.22 4 0 12쪽
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4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5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5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3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4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5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6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5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4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5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5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