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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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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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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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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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므딘의 어쌔신 (1)

DUMMY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정말 우스운 내용을 하나 완성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나는 그이를 쫒고, 그이는 당신을 쫒고, 당신은 나를 쫒고 하면서 이렇게 세 사람이 평생 뱅글뱅글 서로의 꽁지만 쫒아다녔던 것이죠.



사실 이 이야기는 제 가슴 속에만 묻어두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어요. 그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지만, 이 일이 여전히 에레디오스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저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당신의 눈빛을 본 거예요. 산적들이 처들어 온 날 당신이 제 방문을 열고 들어왔던 그날이요. 제가 당신의 눈에서 항상 보아왔던, 그 오해와 확신으로 가득찬 무서운 눈빛말이죠. 그 눈빛을 보자마자 이 문제가 아직까지도 에레디오스 당신을 괴롭히고 있었다는 생각이 번쩍 든 겁니다ㅡ]



다 읽고 원장은 웃었지만, 한편으로 편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 일로 날 괴롭힐 생각인지...'



에레디오스는 거기까지만 읽고 고개를 들었다. 옆 책상에서 편지를 쓰고 있던 보좌에게 자기 눈빛이 그렇게 무서워 보이드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는 말만 돌아왔다.



화재가 있고 며칠 뒤 돌연 영적인 충동이 발현하여 모든 것을 벗어지고 암자로 들어갔던 원장은 세 달 쯤 되니 그런 생활이 몸에도 안 맞고 힘들어서 꽤나 고생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휘하 수사와 후원자들이 동굴로 들어와 이만 돌아오라고 재촉하니 몇 번 튕기다가 못 이기는 척 돌아오고 지금은 또 몇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원장이 전과는 달라졌다고 수사들끼리 수근대는 소리가 그를 기쁘게 하면서, 어쩌면 이는 천성이었던지 에레디오스는 다시 예전과 같이 살찌우고 호통치는 생활로 돌아왔다.



원장은 다시 편지를 보았다.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대놓고 그녀를 미워하는 것도 검연쩍은 일이다. 활활 타는 벽난로에 편지를 던져버리고 생각에 잠긴 채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판사 대리가 다가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부터 농촌 사람들끼리 마녀와 이단의 고발을 남발하여 골치아프게 하는데 이곳 수도원에도 몇 사람들이 들어와 있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원장이 듣고 대답했다.



"뭐만하면 흙일하는 사람들이나 부여잡고 악마란 것들이 그래 할짓없는 놈들이란 말인가? 난 더 이상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까 자네들 알아서 관례대로 처리하게. 적당히 알아보는 채를 하다가 그냥 보내주면 될 거야. 그렇게 가자고."



그러던 차에 다시 원장은 그 화재가 있던 날을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한 가지 깨달음에 도달했다.



'그러보고니 바실리쿠스 그 녀석은 언제 그렇게 감옥을 빠져나왔던 거지? 괘씸한 놈 탈옥을 시도하다니!'



그렇다고 다시 불러서 뭐라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식당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오리넨이 옅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년은 틈만나면 애처럼 칭얼거리기만 하죠."



칼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칼끝이 바닥을 긁는 소리. 오른발에서 다섯뼘 뒤쪽에서 나고 있었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쪼개진 돌조각이 벽에 날아가 부딪혔다. 돌이 유리처럼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맞았다면 지금쯤 두 발목이 피를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마스터 우굴 (36화에서 석굴에 갇힌 테레사를 꺼내주었던 그 사람. 이 자가 바로 성 아래 까마득한 굴속에서 암약하는 느므딘 어쌔신들의 수장이다) 의 말씀대로 '징징 짜는 어린애처럼' 두 손으로 상처를 부여잡았으리라.



"입을 다물게 하였더니 이제는 배로 소리를 내는군요."


"소녀는 굶는 법을 익혀야 한다."



테레사 (22화에서 테시데리우스와 에릴돈나에게 납치당한 가레랑의 딸아이) 가 지하에 떨어진 이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느므딘의 어쌔신들은 아이 교육에 엄격했다. 어쌔신들은 '아직은' 그녀를 집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대신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 원인모를 자갉거리는 소리가 벽 사이에서, 바닥에서, 천장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미궁 속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 그날부터 이곳이 그녀의 집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부터 굶주림은 소녀의 삶이 될 것이다. 그대의 삶 앞에는 오로지 고난과 역경만이 놓여있다. 굶주림에 감사할 날이 올 것이다."



배고파서 칭얼거리는 그녀의 말에 마스터 우굴이 한 대답이었다. 고작 배고픈 것쯤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허기가 이틀 넘게 지속되니 몸이 휘청거리고 전처럼 힘이 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억지로 몸을 움직일 때면 우선 배 쪽에서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자신을 잡아먹는 것이라고 우굴이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너무 배고파요." 그녀는 마스터의 주의를 돌리려고 일부러 말을 걸었다. 훈련 중에는 속임수가 허용된다. "여러분이 저를 굶겨 죽이려 한다는 걸 이제는 똑똑히 알겠어요."



어쌔신들은 그녀에게 어두운 곳에서 잘 듣는 법과 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소리없이 발끝으로 걷는 방법과 최소한의 목소리만으로 들려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말을 속삭이는 어둠 속의 기술을 전수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테레사의 선천적으로 타고난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우굴의 숨소리가 한 차례 낮아진 순간이 있었다. 그녀는 도발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굴이 말했다. "우리는 분명 그대에게 하루 두 끼를 주었다. 지하의 식량은 진귀하다. 우리는 그대에게 우리의 보물을 주었다. 그대가 배고픔을 호소하는 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본인의 식량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년은 지금도 우리 모두를 업신여기고 있어요."



아까부터 빈정거리는 소리가 말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마스터 우굴과 함께 아까부터 그녀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죠. 아직도 본인이 귀족인 줄...!" 이 순간 테레사는 얇은 칼날이 방향을 바꾸어 빛에 반사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칼끝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배꼽을 향해 쉭 날아왔다. 재빨리 몸을 틀자, 살점을 가르지 못한 쇳날의 아쉬운 소리가 공기 중에 진동했다. 배 앞에서 불과 몇 뼘 거리였다. "...아는 거에요..."



그들로부터 몇 걸음 도망쳤다. 마스터 우굴의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대열을 유지하라!"



테레사는 쉬지 않고 청각을 집중했다. 이제는 그녀의 방향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 불규칙한 호흡을 가다듬으려는 억센 소리. 다음으로 칼날을 찌를 방향을 가늠하는 소리. 아잘이 들리지 않게 이년저년 욕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줄게..." 우굴에게 닿지 않도록 테레사에게만 보내는 그녀의 기술이었다. 방금 전의 회피가 자존심을 자극한 게 틀림없었다. 우굴이 그런 미묘한 소리조차 감지해낸다는 사실도 잊은 듯했다.



"소녀가 잘 피한 거야. 너는 좀 더 칼의 소리를 죽이도록 하라."



그들은 우굴이 칭찬의 방심 뒤에 항상 독을 숨긴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언제든 위로 튀어오를 준비를 했다.



쇠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이번엔 두 개였다.



'두 개...?'



두 개의 소리가 들려온 건 처음이었다.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 테레사는 마스터가 칼을 두 개 들었음을 깨닫고 다시 소리에 집중했다. '내 상대는 둘이라는 걸 언제나 기억해야 해.'



옆에서 먼저 튀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잘은 적어도 여섯 걸음 너머에 있었다. 그녀가 공격을 피하면서 이쪽까지 튀어오를 가능성이 있을까? 명백하다. 테레사는 어둠 속의 두 공격을 피해 달아나야 했다. 소리의 근원, 공격의 근원지만 알면 그곳으로부터 날아오는 궤도를 알 수 있다. 남은 건 그만큼의 거리를 움직일 힘이 남아있냐는 것 뿐이다. 테레사는 최적의 궤적을 생각하고 그쪽으로 튀었다. 잠시 후, 돌조각이 벽에 부딪혀 조각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칼날에 벽에 부딪혀 미끄러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제기랄..." 아잘이 욕지기하는 소리였다. 테레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녀의 공격을 피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돌연 찾아온 고통에 테레사는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몇날 며칠간 하루에 수시간씩 이어온 어둠 훈련으로 땅바닥을 이루는 사암 벽돌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스터 우굴은 예리한 강철 손톱같이 생긴 칼을 들어서 바닥을 깎아 뾰족한 돌조각을 던지는, 단순한 공격을 반복해왔다. 몇날 며칠에 걸쳐 조금씩, 여러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가 밟으면 살찌르는 함정을 만들어냈다.



테레사는 그들의 공격을 피해 옆으로 튀어 달아났고, 발끝이 땅에 닿자마자 이 아래가 온통 함정임을 깨달았다. 즉시 몸의 중심을 바꾸어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깜짝 놀란 비명은 숨길 수 없었다. 이날의 훈련은 이걸로 끝났다.



아잘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멍청한 것." 이번에는 속삭임이 아니었다. 마스터 우굴은 언제나 그랬듯이 소리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잘도 그렇게 돌아갔다. 그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테레사를 울퉁불퉁한 바닥 아래 홀로 남겨두었다. 첫날에는 그들이 자기를 버린 줄 알고 훌쩍거리며 구석에 숨어있었다. 모든 어쌔신들은 알아서 자신의 집을 찾아가야 한다는 규율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그녀는 묵묵히 일어나 벽을 짚어가며 자신의 좁고 어두운 방으로 돌아갔다.



테레사는 그들을 위해 어쌔신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느므딘의 어쌔신들은 본인들이 이루어야 하는 숙원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질문을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다. 단지,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녀가 자신들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만을 암묵적으로 표시할 뿐이다. 그들의 태도, 행동, 말씨, 훈련의 강도, 몸짓 발짓을 통해서.



그리고 어쩌다 한 번 아잘이 경솔하게 내뱉는 몇 마디를 통해서.



이곳에 온 첫날, 아잘이 그녀의 밥을 뺐어갔다. 배가 고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인이 배가 부른 날에는 오물통에 쏟아부어서 못 먹게 만들고 웃었다. 테레사는 알 수 있었다. 저 애는 이유없이 날 싫어한다는 걸. 그날 대거리했다가 얻어맞고 부어오른 얼굴이 그 후 며칠간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아잘은 어둠 속에서도 정확하게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붙잡고 그녀의 얼굴을 여러번 가격했다. 볼에 닿는 주먹의 굳은살이 느껴졌다. 마스터 우굴에게 말하자 우굴은 끌끌 혀를 찼다.



"그대가 직접 보았는가?"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어째서 그녀가 소녀를 괴롭혔다고 고자질하는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지, 아잘이 소녀를 괴롭힌 걸 목격한 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어째서 아잘이 소녀를 괴롭혔다 확신하고 고자질 할 수 있는가?"


"그냥..." 이 때의 테레사는 엉엉 울고 있었다. "그냥 알아요. 왜 내가 나를 때리는 사람을 모르겠어요."


"그러면 왜 소녀는 그걸 알고도 스스로 대적하지 않았는가?" 잠시 후 마스터가 말을 이었다. "대적하고 싶다면 소녀는 어쌔신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오직 그뿐이다. 마스터 우굴은 스승도 아니고 선생도 아니다. 오직 이곳에는 어쌔신이 있을 뿐이다. 어쌔신은 가르칠 뿐 교정하지 않는다. 소녀에게 숙원을 이룰 운명이 있다면... 그 외엔 아무것도 상관이 없다. 너의 목숨도... 그 머리카락도."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레사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깨진 사암조각이 날아와 어깨를 스쳤다. 손가락에 찝찔한 피가 만져졌다.



"그것을 피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또 한 번 바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더듬거리다가 묵직한 단검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테레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치렁치렁한 소녀는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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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4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4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5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5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5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3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4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5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6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5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5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4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5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6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5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5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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