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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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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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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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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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들 (1)

DUMMY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세 사람은 동시에 잠들었다. 그날 밤은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깨어나보니 바실리쿠스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서 알아봤는데 지금껏 돼지우리가 아니라 마굿간에 있었다는 것이다.



"술이나 먹고 남의 집 가서 잠이나 자고 잘하는 짓이다."



돈가(豚家)사람들이 달려가 보았는데 세상 모르게 코를 골면서 벌렁 자빠져 있었다. 마가(馬家)사람들이 쓰러진 바실리쿠스를 툭툭 치면서 아무리 깨워도 소용이 없다고 웃어댔다. 그 옆의 칸막이 안에는 몸도 못 가구는 클리셰가 사람들 온 것도 모른 채 쓰러져서 냉수만 핡고 있었다. 물어봐도 "난 몰라요." 이랬다. 말레이카가 가장 먼저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무사한 것만 알면 됐다고 흩어진다. 사라만 혼자 남아 흔들었지만 전혀 깨어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저 멀리 익숙한 풍모가 눈에 들어왔다. 분노에 휩싸인 쿠미누스였다. 사라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예상하고 근처에 숨어 지켜보기로 했다.



이날도 새벽같이 일어나 기도한 뒤 몸단장하고 아침 예배를 집전한 쿠미누스는 제단 칸막이 뒤에서 사람들이 모인 걸 보다가 바실리쿠스가 없는 걸 발견하고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상태였다. 끝나자마자 돼지우리로 달려갔으나 보이는 건 돼지들뿐. 혹시나 하고 그 돼지들 속에서 바실리쿠스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어젯밤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거다.



'분명 딴 길로 셌다가 어디 깡패같은 놈들을 만나고 진탕 마셔 뻗었겠지.'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마침내 마굿간 앞에 이르렀다. 시선을 내려보니 바로 아래 문지방에 인사불성이 된 바실리쿠스를 발견하고 걷어찼다.



"이놈아, 너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바실리쿠스의 뚱뚱배는 반 바퀴 구르다 무거운 오뚜기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배꼽에 못생긴 털이 나있었다. 이렇게 때가 낀 배꼽이라니! 달려들어 몽땅 뽑아버렸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이번엔 두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이 화염에 튀겨죽일 놈아, 지옥의 똥구더기 주정뱅이야! 니가 나를 죽이는구나. 너 같은 놈은 악마가 물어가야 해! 너는 지옥의 4계에 끌려가서 냄새나는 소시지와 베이컨이 되어버려야 해. 너의 고름 찬 내장과 더러운 지방은 악마는 커녕 개도 안 먹을 거야. 죽음과도 같은 순례를 떠나야 정신을 차리지! 이 한심한 놈아!"



그러자 바실리쿠스도 조금씩 눈을 뜨는 것 같았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멍한 흐린눈으로 사제의 얼굴을 보더니 일어나 구석으로 달려가서는 어제 먹었던 것을 토했다. 그리고 다시 개처럼 기어와 아까 그 자리에 눕는 것이다. 고통으로 긴 신음소리를 내면서 흙바닥에 구르는 모습을 보더니, 사제는 이제 화가 나기보다도 가슴이 참 미어지는 것이다.



그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가슴에 연신 성호를 그으며 하늘에 대고 높으신 자비를 강구했다.



"이야말로 죄악이다. 바실리쿠스는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어. 추하디 추한,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종, 폭음, 폭식이다! 그리고 이건 나에 대한 도전이야! 지금까지 몇번이나 말했어.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참되게 살으라고, 또 한 번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어서는, 아침예배든 뭐든 빼먹고 한량처럼 살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그럼에도 너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 바실리쿠스, 이게 바로 나의 헌신에 대한 너의 대답이야!"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돌연 감동하여 소리쳤다. 청명한 가을이다.



"아아 높으신 분이시여, 지금 바실리쿠스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나이다. 지금 우리가 내버려두면 나중에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이 다 모두 당신의 높으신 뜻으로 알겠습니다. 세상이란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지요."



바실리쿠스를 위해 자비를 갈구하는 자신에게 깊은 감동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러한 일이 허용되는 이 세상을 향한 것인지, 어쨌든 두 눈에서 짙고 짠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가 사람들은 아침댓바람부터 쿠미누스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나 목을 쭉 빼고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뒷곁에서 말똥 치우던 마굿간지기가 달려나왔다.



"어휴, 사제님, 이제 얘기가 통하는 분이 오셨네요. 이 천벌받을 주정뱅이를 데려가세요. 그리고 한 사흘은 독방에 가둬놓고 물빵만 주어야 합니다. 이제껏 한 짓에 비하면 그것도 자비로운 처사죠."


"이 녀석은 하느님의 자비를 충분히 받고 있네. 그러지 않으면 지금쯤 죽었을 테니까. 그것이 내가 바실리쿠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점이지."



고개를 들어 마굿간지기를 보았는데 완전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자네는 누군가?"


"마구간지기죠."


"자네가 마굿간지기라고? 언제부터 그랬지?"



마굿간지기는 주변을 쓸다말고 피곤과 냉소에 찌든 얼굴로 조곤조곤 대답해주었다.



"제가 '원래' 마굿간지기였죠. 저번에 가벼운 감기에 걸리고 부모님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간에 사제님이 협의도 없이 이 게으른 놈 바실리쿠스를 제 마굿간에 꽂아넣지 않으셨어요? 그 바람에 저는 일도 못 하고 냉큼 쉬면서 밥버러지 소리나 들었다고요. 그러다 일이 생겼다고 어딜 갔는데 알고보니 성 짓는 현장이라 몇 달 간 세빠지게 벽돌이나 날랐지 뭡니까. 물론 사제님 들으라고 싫은 소리 하는 건 아니에요. 이미 다 지난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래놓고 제 얼굴 하나 못 알아보시는 건 참 섭섭하기 그지없네요. 사제며 교회라 하는 분들은 다들 그렇죠. 그래놓고 학식이며 배움이며 다 무슨 소용이에요? 오늘부로 저한테 공경이나 존경 같은 건 바라지도 마셔요."



쿠미누스는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뒤늦게 이 젊은이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실수를 무마하려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잠시 기억이 이상했었나봐. 다 늙어서 그런 거지 어디 자네를 업신여겨 그랬겠나? 자네 이름이 오도리키 맞지? 음, 수염을 잘랐구만. 사내란 수염이 있고 없고가 인상에 참 많은 영향을 주는 건데, 그래 깔끔하게 잘라놓으니 훤칠하고 보기 좋아졌어. 전보다 잘 생겼고만 뭘, 그래놓고 나더러 왜 못 알아보느냐고 항의하는 건 이 사람아, 이치가 아니잖아?"



그러면서 마굿간지기의 어깨를 툭 쳤는데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래, 그간에 어떻게 지냈어."


"사제님 말을 들으니 이번에는 넘어가드릴게요. 제가 지금 사제님 같은 분들을 대놓고 욕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참 대단한 경험을 했거든요. 제 수염 말이죠. 사실 그 감기란 놈이 참 지독하게도 저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분명 재채기를 잘못한 바람에 악마가 콧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이런 놈들은 코에서 목을 타고 내려가서, 사람의 폐부와 내장을 텃밭에 달팽이들처럼 느릿느릿 갉아먹죠. 그런 거예요. 느릿느릿한 죽음! 살아난 게 기적이죠. 저희 어머니 덕분에, 사제님 이게 참 신비롭다 이겁니다. 저희 어머니가요, 시장바닥에서 얘기를 듣고 오신 겁니다. 어느 나라 어느 고장의 훌륭한 성인 분이 온몸에 털이란 털은 다 밀어버리니까 악마가 달아났다는 얘기를 듣고 오셔서는, 정말로 제 몸의 털이란 털은 다 깎아버리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 때 제가 말했죠. "아이고, 어머니!" 눈물이 줄줄 흐르더랍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요. 머리는 팽팽 돌고 목은 아파 죽겠고 음식 하나 물 한 모금 넘기기가 힘든데 어머니는 옛날에 갓난애기들 돌보듯이 제 몸을 훌렁 벗기고 온몸에 털이란 털은 다 자르겠다며 가위를 들이대고 이 빼빼마른 팔다리를 이렇게 막 이리저리 하는 게 아니겠어요. "어머니, 아들을 치욕 속에 죽게 하시려고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이놈아! 이렇게 안 하면 죽는다 안 하니!" 아아... 그러시는데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어머니들은 정말 대단하시죠. 저를 다시 민둥몸으로 만드셨습니다. 태어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요. 그런데 제 엉덩이 털까지 자르려고 하시길레..."



그 말에 쿠미누스가 못 참고 웃음을 터뜨렸다. 바닥에 누워있던 바실리쿠스도 웃었다. (사라도 마굿간 뒤에서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사실 이놈은 아까부터 깨어있었다. 그것이 언제냐 하면 열받은 쿠미누스의 장광설을 들었을 때부터다.



실은 이렇게 된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눈을 뜨기도 전에 성난 쿠미누스 사제의 목소리를 먼저 들었다. 일어나보니 마굿간이었다. 해를 보니 늦잠 잔 건 당연하고, 대가리도 깨질 것 같다.



그런데 마굿간 뒷칸에서 오도리키 이놈이 나와서는 엉덩이 털을 자른다네 마네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인사불성이 되어서는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웃지 마세요, 사제님. 웃으면 안됩니다."



오도리키가 입가를 벌렁거리며 외쳤다.



"웃기지 않아요. 전혀 웃기지 않다고요."



그들과 함께 오도리키도 웃기 시작했고, 하도 웃는 바람에 숨이 넘어갈뻔했다.



사제는 웃다가 바실리쿠스를 보고 표정이 바뀌었다.



"웃기냐? 웃겨? 발로 차고 물을 뿌려도 안 일어나더니 재미난 이야기는 좋다고 벌렁 일어나는구나. 그동안 모두 자는 척이었다 이거지?"



그러더니 억센 한 손으로 바실리쿠스를 잡아올려 왜 오늘 아침예배에 나오지 않았냐고 을러댔다. 멀리서 마리에뜨가 물동이를 이고 걸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왜 아침부터 사제님은 사람 멱살을 잡고 계셔요?"



멜대에는 버터만들고 남은 유청이 들어있었다. 마님이 남는 건 수녀원 가져다주라고 해서 가는 길이다. 수녀들은 유청이 오면 그걸 넣고 과자를 굽는데 호두와 말린 월귤을 넣는다.



뒤따라오던 하녀가 못 보고 부딪혀 성을 냈다.



"아, 왜 가다가 멈추고 난리야?"



그들은 같이 멜대를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지금 사제님이 생사람을 잡고 있잖아. 그러면 하느님이 화내요, 화내. 오늘 아침에도 사람 때리지말라고 설교하셨으면서, 왜 그래 애를 잡고 계셔요?"



그 뒤에 따라오던 그로가네는 많이 피곤해보였다. 이들은 모두 우연히 만난 것이다. 그는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사제가 붙잡았다.



"이것 보아, 자네는 내 말 좀 듣게. 이 바보는 사람이 술을 주면 사양할 줄을 모르고 퍼먹는단 말이야. 자넨 그걸 아는데도..."


"제가 얘랑 술을 마신 건 그저껜데요. 사제님, 그날은 분명 적당히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고요. 제가 어디 그럴 놈입니까. 저도 만취는 싫어한다구요. 전 어제 얘가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도 몰랐는걸요."



그렇게 뒤로 가서 바실리쿠스와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마리에뜨가 끼어들었다.



"사제님, 왜 제 말은 무시하세요? 먼저 말한 건 전데요. 왜 공연히 그로가네 아저씨를 잡는 거예요? 하녀라고 업신여기는 거죠?"



사제는 뒷짐지고 대꾸했다.



"내가 언제 무시했다고 그러니. 그냥 말하다보니 그래 된 거지!"


"사제님."


"왜."


사제가 대답하자 볼 속에 웃음을 숨기며 물었다. "제 이름이 뭔지는 아세요?"


"알지."


"뭔데요."


"마리에뜨잖아."


"네, 맞았어요."



그래놓고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가버리고 말았다. 쿠미누스는 뒤늦게 여인들이 교회의 사제를 놀렸다며 화를 냈다. 잠시 후 수녀원에 유청을 갖다주고 돌아와 받아온 과자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어느새 사라도 옆에 끼어 과자를 갉아먹고 있었다. 아이를 보더니 사제도 자연 수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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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5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5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5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3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5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6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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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4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5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5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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