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최근연재일 :
2024.08.22 20:35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620
추천수 :
26
글자수 :
426,357

작성
24.08.11 22:25
조회
4
추천
0
글자
11쪽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DUMMY

"그러는 게 좋겠군."


"그렇게 하자!"


"어서 가자! 땡중들이 미쳐서 우릴 다 죽이려고 한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그중에서 일곱 명이 즉시 밖으로 튀어나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식으로 괴성을 지르고 뿔피리를 불면서 수도원을 빠져나갔다. 피와 살육으로 거의 광증에 치달은 수도승 무리는 침입자들을 죽이려고 길길이 날뛰는 것들과 도대체 이 무슨 추태냐며 말리는 무리로 양분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유명한 성인과 성모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하늘을 향해 쟁기나 부엌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중에는 이때다 싶어서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놈을 흠씬 때려버리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식료품 창고에 칩입해서 먹고 싶었던 것들을 마구 잡아먹거나, 혼란을 틈타 으슥한 구석으로 여성, 혹은 남성을 끌어들이는 사람 또한 있었다.



이 혼란에 끼여는 사람 중에는 일전에, 바실리쿠스가 감방에 갇혀있을 때 배신 모함이다 하면서 소리를 지르던, 동료 수사의 모함으로 감금되었던 53화의 그 미친 수사 역시 있었다. 사실 그는 꽤나 애달픈 사연을 가슴에 품고 있다. 어떻게 한 건지 철창으로 둘러싸인 독방을 빠져나와 지금은 분노에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성한 손으로, 어디서 주워왔는지 사람 죽이는 몽둥이를 들고 배신자를 찾아 수도원을 떠돌아다녔지만, 동쪽에서 여명이 동터오자 문득 정신을 차려 둔기를 내던지고 담장을 넘어 북쪽을 향해 도망쳤다. 나중에 이 사내는 뜻밖의 상황에서 모두와 재회하게 되지만 아직은 나중의 일이다.



이 때 원장은 뭘 하고 있었을까? 로드렉이 들보에 기름을 바르기 전으로 돌아가보자. 에레디오스는 재판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외부에서 오는 잡잘한 편지는 일단 치워놓으라고 분부해놓은 터였다. 맘놓고 재판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개인보좌는 그 일을 성심껏 처리했다. 다른 지방의 주교, 고명한 수사, 원장들, 기라성같은 군주와 영주, 고관대작들의 편지를 제외한 나머지 서신들은 그 중요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분류하여 나중에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처리해놓은 것이다. 원장은 잠시 숨을 돌리러 집무실에 돌아와서 가장 중요한 편지만 확인한 다음 답장을 어떻게 써야 할 지 지시하고는 다시 재판장으로 악다구니 하러 떠났다. 보좌는 책상에 앉고 원장이 시키는대로 했다.



이 때 원장이 직접 보았다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편지 한 통이 대문을 통해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편지를 보낸 전령은 오만하고 젊은 기사였는데, 설렁설렁 말을 타고 달려와서 마님이 보낸 편지라며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마룻바닥을 처 밟듯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당장 답장을 가지고 돌아가야 하니 원장을 불러오라고 채근했다. 보좌는 기분이 나빠져서 원장님은 지금 바쁘니까 편지만 주고 그냥 가라고 했다. 전령 역시 기분이 나빠져서.



"어이, 승, 지금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이렇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들도 공연히 말싸움 하지 않을 만큼의 분별은 있었다. 아무튼 전령은 혼자 욕을 씹으며 소득없이 돌아가고 전령은 전령 나름대로 그 불쾌한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서랍 아래 처박아버린 것이다.



원장이 그 사실을 안 건 헨나프리데가 오기로 한 날의 늦은 점심때, 발라리가 공연한 반항심에 증언을 뒤집고 일부러 바보 연기를 하면서 화를 돋군 직후의 일이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솔직히 말하면, 전 그냥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해댔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밥을 먹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 씨근거리면서 쌓인 편지들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맨 아래쪽 서랍을 열다가 처음 보는 편지를 발견하고 이게 뭐냐고 보좌를 추궁하게 되었다. 필사인을 거치지 않은 고풍스러운 필체에 상당히 교육받은 듯한 단어배열, 화려하지 않게 보통 종이지로 쓰인 간단한 편지였다.



'당신의 영원한 친구, 헨나프리데.'



원장은 침침한 눈으로 발신인을 확인하더니 길길이 날뛰면서 건방진 보좌를 구석까지 몰아세웠다. 그리고 여름 한날의 땀내와 고귀한 사람의 이빨냄새를 냈다. 곰에 붙들린 원숭이 꼴이었다.



"이건 네놈이 나를 파멸시키려고 꾸며낸 계략이 분명해. 아니면 나를 미친놈이라고 불러도 좋아. 진작에 네놈을 쫒아냈어야 했는데. 온몸의 옷을 벗기고 괴로운 황야에 내던져버려야 했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나는 너를 믿고 맡겼는데 네놈은 기어이 그 믿음을 배신으로 갚았지! 너처럼 기만을 부리는 자에게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오오, 어떻게 지끔껏 모를 수가 있었을까? 지금껏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숨쉬던 악마의 존재를 어찌 모를 수 있었을까?"



지금 그의 두 눈동자에는 거의 몇 년 만에 다시 보이는, 기이한 광채가 다시 발현되어 있었다. 40년 전, 사람 죽이는 물건을 들고 동굴에 누운 알몸의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그 때의 눈빛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편지에 적힌 대로라면 헨나프리데는 저녁 늦게 도착하도록 되어있었다. 서둘러 식료계 집사계 도서계 약초방 등등 누구 할 것 없이 요직에 있는 자들은 총원 집합시켜 고귀한 손님 맞을 준비를 엄명했다. 그리고 사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우선 제수씨 일행이 묵을 방을 직접 점검하여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털고 처음부터 끝까지 배치를 다시 짰다. 이곳은 여름에도 비교적 선선하고 부정도 타지 않은 깨끗한 곳이었다.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신성한 제의는 빠짐없이 다 하고 향기로운 꽃과 마른 꿀풀로 잠자는 내내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한 뒤 곳곳에 정성껏 성수를 뿌리고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한참을 노려보다가 겨우 나갔다. 그제서야 기립해 선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다음은 식당의 차례다. 원장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한 건 프레뎅 남작에게 대접하느라 좋은 재료들은 떨어지고 말았다는 변명에 호통치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당장에 소를 도살하든 어디 가까운 데 가서 꾸어오든 원내 재산을 탈탈 털어도 좋으니 절대 다른 때에 비해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을러놓았다. 식료계 수사는 연신 조아릴 뿐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동안 바실리쿠스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혀지고 말았다.



원장은 모든 준비를 철저히 끝내고도 초조한 마음에 연신 자리를 오락가락하면서 지시했던 것들을 두어번씩이나 더 확인했다. 그리고 이 때 아까 그 전령이 달려오면서 쉬레 백작부인이 잠시 후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정문으로 들어온 헨나프리데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를 맞고 많이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그리고 대접받은 귀족사람 특유의 언짢은 눈초리로 자신을 대접하는 사람들의 몸짓을 하나하나 가늠하며 같이 온 사내의 손을 잡고 마차를 내려왔다. 얼음장같이 뻣뻣하게 굳어있던 여인의 근육은 늙은 에레디오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말았다. 마차 안에는 혼기가 찬 나이의 질녀가 얼굴을 베일로 가린 채 내리지 않고 앉아있었다. 형제수녀원 수녀들이 산에서 잠시 내려와 아이를 데려가고 헨나프리데는 원장과 함께 접견실로 이동했다.



헨나프리데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저 아이는 막냇동생의 딸아이인데 그 집은 딸만 많이 낳은 집안이었다. 가문의 전통대로 월경이 시작하는 나이가 오면 아이들은 수녀원으로 보내져 어느정도의 교육을 받고 오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저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가장 받는 아이라 응석을 부리면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모르고 교양도 부족해 이런 나이가 되어서야 몇 달이라도 좋은 수녀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의 영지 인근 수녀원에는 이미 왠만한 딸들은 다 보내놓았고 나머지 자잘한 수녀원은 성에 차지 않아서 헨나프리데에게 부탁해 좋은 곳이 있으면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녀는 마침 남편도 죽고 아이들은 장성하여 혼자만 있으려니 심심했기 때문에 냉큼 받아들고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동생이 셀레미즈 수도원의 이름난 원장이니 그쪽으로 추천을 받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는 아이를 데리고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런저런 안부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돌연 밖에서 괴상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더니 방안으로 수사들이 들이닥쳤다.



"주여 우리를 보호하소서! 원장님, 대체 이게 무슨 악마의 계략인지, 지금 원내 곳곳에 불이 붙었습니다. 걷잡을 수가 없어요!"



원장은 당황하지 않고 일단 헨나프리데를 안심시켜 숙소로 보낸 다음에 현장으로 출발해 화재진압을 진두지휘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저 멀리서 "불이야," 하고 지르는 소리에 "산적이야, 산적!" 하는 소리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뭔 소리야."



저 먼 쪽을 보니 한 무리 폭도들이 온갖 연장을 든 채로 이쪽저쪽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자들이 하나같이 "산적! 죽여라!" 하고 외치는 소리였다. 에레디오스는 근처에서 열심히 물동이를 나르던 오리넨을 붙잡고 가서 알아보고 오라고 시켰다. 잠시 후 달려온 오리넨이 이마에 땀을 닦더니 지금 원내에 호반트 산적 무리가 처들어온 상황이라고 화마 열기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아룄다. 그리고 한동안 원장을 쳐다보더니 다시 물동이를 나르러 뛰어갔다. 잠시 후 또 보고가 들어와 지금 들어온 산적놈들이 모두 빠져나갔고 몇놈은 산 채로 생포했다고 아룄다. 얻어맞다가 죽어버린 산적은 원장에게 들키기 싫어서 몇몇 수사들이 성벽 밖까지 데려가 땅을 깊게 파고 묻어버렸으니 그대로 잊혀지고 말았다.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시절에는 자연재해나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의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관점이 혼재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원장은 당연히 이 모든 게 하느님이 내리는 심판이라고 굳게 믿는 쪽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심란해졌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 막혀오더니, 모든 것이 그의 손을 떠나 제멋대로,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은 혼자 힘으론 당해낼 수 없는 거대한 현상 앞에 서면 갑자기 겸손해지고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정답을 구하는 법이다. 그래서 에레디오스도 그렇게 했다.



"지난 며칠에 걸쳐 연달아 이 같은 재앙이 일어나는 건 필시 우리 안에서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야. 하느님이 노하셨다. 그게 뭐였을까? 하느님은 이로써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려 하시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주여, 도대체 제가 지금 모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항상 그렇듯이 답은 내려오지 않았다. 일단은 당장에 떠오르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1 여우들 (2) 24.08.22 2 0 13쪽
80 여우들 (1) 24.08.22 5 0 12쪽
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5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6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6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6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6 0 12쪽
»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5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