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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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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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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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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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DUMMY

지독한 모순을 해결하려면 처음부터 악마따위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수 밖에 없다. 이는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에레디오스는 주저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악마를 내세워 사람을 괴롭혀왔던 그가 아닌가?



그러던 차에 모퉁이를 돌다가 불 붙은 축사에 정신없이 물양동이를 붓고 있는 바실리쿠스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인기척에 고개를 들더니 어린애처럼 눈물로 퉁퉁 불어난 얼굴이 드러났다. 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었을까?



아까 바실리쿠스는 쿠미누스와 헤어지고 나서 수도원을 돌아다니던 중에 그만 실수로 수사 한 사람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한손에 칼을 든 채로 뛰어가다가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수사의 아랫배에 칼날을 꽂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 수사는 온몸을 뒤틀며 비명을 지르다가 죽어버렸다. 그 뒤로 말레이카와 늑대아이가 차례차례 뛰어왔는데 그들은 손에 하나씩 손도끼를 들고있었다.



그 전말은 이러했다. 그들은 수사들에게 산적들이 처들어왔다는 소식만 알리고 안전하게 몸을 빼려고 했다. 그런데 돌연 금남의 구역에 찾아온 여인의 몸매를 보고 군침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새부턴가 그들은 뭇 사람들의 추적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한 수사가 이 사실을 알고는 본인만이 아는 장소에 데려다 준 후 처음엔 물빵을 가져다 주면서 잘해주는가 싶더니 사태가 진정되자 본색을 드러내며 밖에서 문을 잠궈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 있으면 나갔던 수사들이 돌아와 너희들은 어떤 꼴을 당할 지 모르는데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으면 뭘 해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답을 말하라고 하였다. 마침 그 헛간 안에는 도끼자루가 두 개 있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말레이카가 도끼자루를 들고 문간을 부수기 시작하자 아이도 옆에서 거들고 판자를 쪼개버린 다음에 수사놈을 쫒아 손에 하나씩 도끼를 들고 죽이겠다고 달려갔다.



그 수사는 수도원의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다가 말했듯이 바실리쿠스의 칼날에 복부를 관통당하고 만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혹시 누가 봤을까 너무 무서워서 구석에 숨어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뒤이어 따라온 늑대아이가 이를 보고 쪼그리고 앉아 쿡쿡 찔러보았다.



"잡았어?" 뒤쫒아온 말레이카가 숨을 헐떡이면서 물었다. 대답이 없자 본인도 쿡 찔러보았다가 살덩이가 물컹거렸다. "죽었어?"


"죽은 거 같은데요."



아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여기 배에 칼이 꽂혔잖아. 산적한테 당했나봐."



수사가 비명을 지르자마자 바실리쿠스가 확 놓아버렸기 때문에 여전히 칼날은 배에 박혀있었다. 조용히 있던 말레이카가 말했다.



"내가 죽이겠다고 도끼를 들고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그건 이 사람이 진짜로 죽어버리길 바란 건 아니었어! 난 그저 겁이나 좀 주려고 했을 뿐이라고. 따지고 보면 이건 우리 때문에 죽은 거나 다름이 없잖아."



늑대아이가 이게 왜 우리 때문에 죽은 것이며 그렇다 해도 죽어도 싼 놈이 아니냐고 반박하기에 말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 바실리쿠스가 일어났다. 하지만 자기가 죽인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진 못하고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가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여인들은 비척비척 문밖으로 멀어져갔다. 남은 바실리쿠스는 주저앉아 죽은 사내를 바라보다가 서러워 눈물을 쏟았다.



그 때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달아난 줄 알았던 로드렉이었다.



"또 사람을 죽였구나 바실리쿠스야."



말 그대로 뒷덜미를 잡힌 격이었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도망가자."



허나 바실리쿠스는 그럴 수 없었다. 이대로 죽은 사람을 들개와 파리 사이에서 썩어가게 둘 수는 없다는 게 첫째고 이대로 사라져버리면 자신만 의심받게 되리라는 것이 둘째였다. 그렇다고 이 시신을 어디다 묻어줄 수도 없었다. 이만한 땅을 파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데다 지금 당장에 삽도 없었다.



"아,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고민을 하다니! 너도 정신을 놓아버린 게 분명하군."



잠시 후 로드렉이 묘책이 났다는 듯 호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들었다.



"아예 흔적도 안 남게 태워버리면 되잖아!"



바실리쿠스는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 나니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은 말레이카와 늑대아이가 버리고 간 도끼를 들어 축사 건물의 나무 중 잘 마른 것들을 모아 시체 위에 쌓아놓고 그 위에다 불을 질렀다. 중간에 시신을 꺼내서 잘 타도록 도끼로 조금 토막을 내주었다. 불은 밝고 따뜻했다. 바실리쿠스는 땀을 흘리고 차가워진 몸을 말렸다. 그런데 옆에서 로드렉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이 부족해. 불이 부족하다고."



그는 불안한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가다간 들킬 거야. 더 큰 불이 필요해. 그래야 시체도 더 잘 타지."



그러더니 말없이 도끼를 들고 축사 건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바실리쿠스가 뭐하냐고 소리를 질러도 무시하고 불 위에다 자꾸만 장작을 쏟아부었다. 뚫린 벽 사이로 마소들이 불안하게 울면서 뒷발질을 했다. 바실리쿠스가 어깨를 때리면서 멱살을 잡으니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실실 웃으면서 이마에 땀을 닦았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봐. 용서해줘. 더 이상은 이상한 짓 하지 않을게. 이것 좀 놔주라. 나도 이제 정신 차렸어."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소리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이 부족한 것 같단 말이야!"



하면서 도끼를 들고 어둠 속으로 달려나갔다. 바실리쿠스가 뒤늦게 쫒아가보았지만 어찌나 빠른지 잡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적어도 이곳에 돌아와 나쁜 짓을 벌이지나 못하도록 지키고 있는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후 로드렉이 묵직한 항아리를 들고 돌아왔는데 그곳에서는 기름 냄새가 났다. 바실리쿠스가 달려가 막았지만 로드렉이 "이거 놔라!" 하며 뿌리치자 다리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단념할 때까지 로드렉을 때려버리는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후 로드렉이 알았으니 이제 제발 그만 때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바실리쿠스는 기름통을 빼앗고 바닥에 쏟아버렸다. 이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받은 뒤에 뒤를 돌아보니 축사 전체에 불이 붙어있었다. 로드렉을 때리는 동안 시체가 있는 장작더미의 불이 어찌나 컸는지 그냥 축사에 옮겨붙은 것이다.



그들은 일단 축사에 갇힌 가축들부터 대피시키고 양동이를 가져와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지금 사람들을 불렀다간 사람을 죽이고 몰래 태우고 있었던 정황이 들킬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열심히 물을 뿌리면서도 혹시 누가 올까봐 가슴을 졸이는 바보같은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때쯤 하여 안개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실리쿠스의 얼굴은 땀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변하고 콧잔등에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면서도 동물은 살려주었어. 또다시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도르헤 영감님 경우는 실수였다 쳐도 이번에는 내 손으로 직접 칼날을 꽂아버리고 말았잖아. 어쩜 이렇게도 멍청한지!'



죄책감으로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절망에 빠진 에레디오스였다.



에레디오스는 온통 땀투성이에 비안개로 젖어있었고, 살갖은 검게 그을린 채 멍한 눈으로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바실리쿠스를 지나쳐 불 붙은 축사로 가까이 다가갔다. 다시 불이 붙은 건 그렇다치고 왜 감옥을 빠져나온 바실리쿠스가 도망치지 않고 여기서 이런 선행을 하고 있는 걸까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는 악마숭배자가 아니던가?



눈앞의 현장을 믿을 수가 없어 뒤를 돌아보고 물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니?"



바실리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명지르는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원장은 생각했다. 본인이 이 더러운 돼지치기를 만만찮게 괴롭혔던 것을 그도 부정하지 않으니 이놈 역시 자신 그리고 이 수도원에 상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음이 타당해보였다. 그런데 이 무엇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수도원을 지켜야 할 수사들은 광증에 휘말려 모두 나가버리고, 본인에게 악마로 몰려서 모두에게 업신여김을 당한 바실리쿠스 비스콘티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수도원을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는 선의를 행하고 있었단 말이냐?'



뭔가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유월비가 온 산의 침엽수를 두드려 가져오는 맑은 향내가 콧속으로 토도독 걸어들어오는 것이다. 폐속으로 맑게 뛰어드는 미욱한 향내에 에데리오스의 사지는 힘빠지고 추욱 늘어졌다.



눅눅한 구름 사이로 여명이 쏟아지면서 그들은 쏟아지도록 눈물을 흘리는 서로의 얼굴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스럽게도 기막힌 감정의 감웅이 일어났다. 원장은 바실리쿠스의 눈을 보고 바실리쿠스는 원장의 눈을 보았다. 선한 일이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며 차라리 죄를 피하는 것만이 상책이라는, 집단적인 기만이 세상에 횡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선보다도 악을 쫒아다니고, 눈앞에 놓인 악마를 사냥하는 것 만이 그나마 인류를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순간, 에레디오스는 본인이 그런 무리 속에서 완전히 놓여났음을 깨달았다. 비록 오해로 비롯된 것이지만 뚫린 듯 가슴이 환해지고 모든 답답함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거세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선의를 향한 믿음이 솟아오른 것이다.



"가라." 원장이 바실리쿠스의 양 어깨를 잡았다. "가라, 바실리쿠스."



더 이상 그의 눈에 악마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바실리쿠스는 시체 태우던 것을 들켰으니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저를 그냥 보내주시는 겁니까?"



에레디오스는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애초에 이런 곳에 올 놈이 아니었구나."



이녀석이 어떻게 감옥을 빠져나왔을까 하는 생각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그는 헝클어진 덥수룩한 머리와 굳게 다물리는 버릇을 표현하는 입술, 입가에 난 뾰루지와 팔자주름을 다시 한 번 세세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너에 대해서 잘못 판단하고 있었어. 정말로 눈이 삐었었나봐! 제발 나를 용서해주렴! 너에게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다. 네 앞에 나는 고개를 들 수도 없는 죄인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마구마구 울었다.



"제가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바실리쿠스 역시 울면서 외쳤다. "너무나도 큰 죄를 짓고 말았어요. 사람을, 사람을!"



마지막 말을 마치기도 전에 원장이 맞서서 소리쳤다. 빗줄기가 그의 아랫입술로 떨어지고 있었다. 육중한 뱃살에 저장된 울림통은 대단했다.



"닥쳐! 네가 용서받을 게 뭐 있다고 감히 그런 말을 해?" 그가 포옹을 풀고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용서받아야 할 건 나야. 지금 당장 그 입을 다물어, 넌 아무 잘못도 없단 말이야! 이렇게 하자. 네가 너를 용서할 테니 너는 그 두 배로 나를 용서해줘. 아무것도 모르는 너에게 못되게 굴어서 정말 미안해! 너는 지금 당장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이나 격하게 서로를 얼싸안고 하늘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울었다. 원장은 이곳은 자신에게 맡기고 너는 그만 어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 작별인사도 없이 대문을 빠져나오면서 바실리쿠스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말레이카와 늑대아이를 만나고 함께 산을 내려갔다. 어느새부턴가 로드렉도 합류해있었다. 그들은 얼마간 내려가다가 저 앞에서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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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6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6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6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6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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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5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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