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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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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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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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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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DUMMY

이 때 또다시 그들의 내기가 시작된 거야.



아르네이즈의 집으로 달려가는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누가 더 빨리 집에 도착하는가 견주어보기라도 하는 듯이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어. 결국에 한 사람이 뒤쳐지고 말았지. 그러자 오르베스쿠가 앞서가는 아르파니엘한테 소리쳤어.



'네놈이 속도에서 이겼을진 몰라도 이걸로 날 이길 순 없을 걸!'



하더니 오로지 온몸의 힘만을 이용해 손으로 땅을 짚고 한 바퀴 구르는 재주넘기만 써서 아르네이즈의 집으로 가겠노라 호언장담을 하는 거야.


아르파니엘도 질 수 없다고 그럼 자기는 오리걸음으로 아르네이즈의 집까지 가겠다고 소리쳤지.


하지만 그것들 역시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적어도 수십 번은 쉬어줘야 했거든.


어쨌든 두 사내가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에 밤이 늦기 전에 아르네이즈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어. 그런데 아르네이즈가 집에 없었던 거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여자를 기다릴 겸 집 안에 들어가서 쉬기로 했던 거야. 하지만 이 둘 중에 오르베스쿠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그냥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래서 지 혼자 물구나무 선 채 2층 계단으로 올라가겠다고 했어. 그것이 여인의 명예를 드높히는 일이라는 거였지. 아름다운 아르네이즈의 방으로 올라가려면 그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옳다는 거야.



완전히 의표를 찔린 셈이지. 아르파니엘은 물구나무를 설 줄 몰랐거든. 이에 응수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마땅히 할 고행이 생각나지 않았었나봐. 그래서 절망에 빠진 채로 이리저리 맴돌다가 벽에 붙은 벽돌 하나를 빼고 자기는 아르네이즈를 위해서라면 이 벽돌도 씹어먹을 수 있다고 말했지.



'정말 할 수 있겠냐 아르파니엘? 헹, 그 따위 허세를 부리려고?'



그렇게 비웃던 오르베스쿠도 진짜로 생 벽돌을 씹어먹는 모습을 보면서 호승심을 느끼게 된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아르파니엘은 이빨이 온통 부러진 채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웃고 있었어. 이걸 이기려면 보통의 고행으로는 안 될 것 같았지. 어떻게 해야하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게 남편 플로베르가 밭일하고 나서 부엌에 잠시 놓아둔 쇠낫이었네."



"헉!" 악마가 숨을 삼켰다. "설마 그걸 먹었나요?"



"아니. 대신에 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 거야. 자네도 알겠지만 이렇게 긴 쇠낫은 보통 건초를 벌초할 때 쓰는데 슥 데기만 해도 잘 잘리라고 아주 날카롭게 갈아놓거든. 사람의 귀나 코 같은 건 당연히 싹뚝이지. 오르베스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잘라낸 자기 두 귀와 코를 아르파니엘한테 던져버렸어. 네놈이 이것보다 더한 걸 할 수 있겠냐는 조롱이었지.



그러자 아르파니엘의 두 눈에 귀기가 번뜩이게 된 거야. 그 순간만큼은 나도 아르파니엘을 사람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지.



'이 새끼, 그래놓고 나한테서 이겼다고 할 셈이냐!'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어. 이 두 남자가 미친 것처럼 집안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가잿도구들을 부수어대기 시작한 거야. 그놈들은 먼저 벽들을 허물기 시작했어. 마치 경쟁하듯이 말이야. 아르네이즈는 이제 뒷전이었지. 부수고 있는 게 아르네이즈의 집이긴 했지만 어쨌든. 아아, 사람의 마음이란 참 어떻게 된것인지 서로를 배짱에서 이기겠다는 심정 하나만으로 앞뒤 안 가리고 난폭하게 변해버린 거라네.



나는 잠시 빠져나와 구멍 사이로 그 모든 광경을 볼 수 있었어. 벽돌을 박살내고, 기둥을 물어뜯고, 바닥을 깨어먹고, 절구과 절굿공이에는 이빨과 피가 들어차고 사방에는 잘린 손가락이나 사람의 피부가... 어우! 더 이상은 말 못하겠구만. 흠씬 피바다가 되었단 말이야. 더 이상은 못 보겠더라구. 나는 지옥을 나온 지 꽤 되서 이제는 사람이 망가지는 건 질색이거든! 어쨌든 사람 못지않게 집 역시 산산조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거야.



겉잡을 수 없었지.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지기만 하고 있었어. 이대로 가다간 집은 물론이고 두 사내는 몸과 살이 무너지는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생긴 거야.



이 사태를 결론지은 게 뭔지 아나? 바로 밀가루 푸대였어."


"농담도 심하십니다. 어떻게 밀가루가 두 미친 사람을 막을 수 있었다는 거죠?"


"자네 분진폭발이라고 아나?"


"그게 뭔데요?"


"가루에 불이 붙는 거야. 그런데 그 가루가 온 집안에 퍼져있으면 온 사방이 큰 불에 휩싸이고 말거든. 가끔 사람없는 방앗간에 갑자기 불이 나는 바람에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악마를 저주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 그 집안이 바로 그런 상태였어. 전날 아르네이즈가 방앗간에 가서 밀이며 보리며 호밀 같은 것들을 막 갈아서 푸대에 담고 천장에 매달아두었거든. 이 지방에서는 쥐새끼들을 피하려고 곡식가루들은 거실 중앙 천장에 매달아놓고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칭칭 감아놓는단 말이야.



이 미친놈들이 끝내 무기를 들고 사방으로 휘두르며 집을 부수어대고 있으니 푸대가 갈라지고 거기서 나온 가루가 사방으로 퍼져나갔어. 또 놈들이 2층이며 1층 화장실 할 것 없이 뛰어다녔으니 가루가 구석구석 잘 퍼져나갔음은 당연해.



일대는 삽시간에 안개에 휩싸인 듯 하였네. 그리고 철과 철이 강열하면서 막 세게 부딪히는 거야. 분진 속에서 번개가 퍽퍽 튀었지! 도끼와 망치, 쇠스랑, 고기 잡는 막칼이며 번철에 솥까지! 그 집안에는 잡고 휘두를 쇠가 아주 많더라고.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불똥들이 바닥마루에 옮겨붙으면서 미세한 연기가 나기 시작했어. 그리고 난로에서는 아르네이즈가 꺼놓은 잔불이 여전히 온기를 품고 있었네.



그래서 어떻게 됐겠나? 쾅! 온 집안에 분진폭발이 일어났어. 나는 미리 사태를 짐작하고 밖에서 구경하고 있었거든. 창문이며 벽돌을 헐어서 난 구멍이며... 마치 번개가 나는 것처럼 펑 하고 불꽃이 터져나왔단 말이야.



그 위력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두 사내 역시 "우아아악!"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튕겨져나왔어. 사람뿐만이 아니었지. 부수어진 가재도구들의 잔해, 곡식이며 먹을거리며 가구들, 아기가 쓰던 요람이며 장난감 시어머니가 짜준 잼잼이 꼬까옷까지 모두 까만 숫불이 된 채로 터져나왔단 말씀이야. 다행히 아기는 부모님과 함께 외출해있어서 죽진 않았지만 어쨌든 집이 잿더미가 된 게 아니겠나?



그게 이 이야기의 결말이야. 오묘한 것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던 현장에 범인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아르네이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 그 사내들이 그 여자를 보지 못한 게 벌써 3년은 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지."


"그 두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당연히 죽었겠죠?"


"아니. 기적적으로 살아났어. 참 신기한 일이지? 이러니 하느님을 믿지 않고 베길까. 어떻게 그런 부상들을 입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할 거야.


일단 분진폭발이 일어났을 때의 그 가공할 만한 열기가 두 남자의 몸뚱이를 복날에 닭 태우듯이 튀겨버렸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지? 그런데 그 화상이 놈들의 상처를 지혈해버렸단 말이지.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더니 뒤늦게 찾아온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또 기이하게 망가져버린 본인들의 겉모습을 저주하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던 거야. 그놈들이 어느 어두운 동굴에서 터를 잡고 주변의 지네, 들쥐, 민달팽이 따위를 잡아먹으면서 비루하게 살고 있는지는 이제 하느님만이 알게 되었어."



후배 악마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그 두 사내의 파멸에 기여했다는 말씀이신지요?"



선배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


"예에?"



선배 악마가 하늘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그놈들이 하는 짓이 너무 웃겨가지고 옆에서 배가 아프도록 웃기만 했었거든. 내가 한 짓이 바로 그거야. 나는 그저 악마로서 그놈들 행동의 죄악을 상징하는 듯이 바로 옆에 존재해주기만 하면 됐던 거라고."



하급악마가 부복을 풀고 무릎에 먼지를 털었다.



"에, 그렇다면 이야기가 너무 싱거운데요. 제가 어떻게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겠어요. 그건 전혀 악마답지 못해요. 그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얻은 것뿐이잖아요."



선배악마가 화가 났는지 씩씩거렸다.



"소악마의 얕은 소견으로 어찌 대악마의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지독하도록 오만하군! 아직 나는 이야기를 끝마친 게 아니야. 기가 막힌 부분은 바로 이제부터라고! 자네 가레랑의 동생 개랙프리드를 알고 있지?"


"그 망나니 말이죠. 유명합디다."


"그래, 바로 저기 걸어가는 저 망나니 말이야!"



그 말에 후배악마는 실눈을 뜨고 들판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옅은 불빛이 희뜩거리는 쿡시 가문 성채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을까요? 본인의 집과 작은 땅뙈기가 있는 놈인데."



잠시 후 그가 다시 말했다.



"손아귀에 뭘 들고 있네요."



사내는 양 손에 거대한 트롤의 쌍방울처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덩어리 두 개를 하나씩 들고 들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선배 악마가 똑같이 저쪽을 바라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의 입꼬리에는 아주 기막힌 속셈이 희번떡거리고 있었다.



"친구여, 잘 보시게나. 저게 바로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의 모가지야. 직접 볼 생각은 하지 말게. 눈만 버릴 테니."


"그럼 저 친구가 두 광인을 죽인 게로군요!"


"저자에게 놈들의 위치를 알려준 게 누구라고 생각하나?"


"이 모두 선배님의 소행입니까?"


"그럼 당연하지! 저자에게 두 미친놈의 위치를 알려준 게 바로 나야!"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하신 거예요?"


"여기에는 나름의 기막힌 사정이 있지. 한 번 들어봐.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은 상처가 모두 아문 뒤에도 끔찍한 몰골이었단 말이지. 그래서 사람들을 피해 동굴에 사는 은자처럼 생활하기 시작했어. 놈들이 본인들이 저지른 짓거리들을 참회한답시고 매 순간 하느님을 찾으며 기도를 하고 무슨 영광이니 구원이니 하는 지랄을 갈구하는 모습은 꼴사납기 그지없었지.



그런데 참 기막힌 게 무엇인지 아나? 이 두 사내가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기막힌 일이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내 알바 아니지. 아무튼 이 두 녀석은 아주 끔찍하게,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고 손가락이며 손발 코 귀때기 눈깔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는데 전신화상이 이 모든 걸 한 데 엮어버린 괴물이나 다름없었네. 하늘의 저주를 받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하게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옆을 보면 지랑 비슷한 처지인 놈이 하나 있었거든. 그러자 이놈들이 하늘에 대고 기도를 올리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한 거야!



때마침 이 암자 근처를 개랙프리드와 그 똘마니들이 지나가고 있었단 말이지. 나는 지나가는 고승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녀석들에게 접근했어. 그리고 저 동굴 속에 사람의 도리를 잊어버린 괴물 두 마리가 비역질하며 살고있노라 말해주었네. 모험을 찾아다니던 개랙프리드가 단숨에 안으로 들어가 놈들과 대면했지. 그래서 어떻게 됐을 것 같나?"


"개랙프리드가 칼을 휘둘렀겠네요."


"두 자식의 목을 댕강 잘라버렸어. 처음에 그들은 대화를 시도해보았지. 하지만 본인들의 혀를 잘라먹고 이빨을 부수어버린 아르파니엘, 오르베스쿠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나. 다른 똘마니들이 겁 먹고 달아나버리자 수적인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놈들이 겁없이 칼을 든 개랙프리드를 제압하려고 달려든 거야. 죽어도 싸지, 죽어도 싸! 개랙프리드한테도 몹시 잘된 일이고 말이야."


"아니, 하찮은 놈들의 모가지를 자른 게 어떻게 개랙프리드한테 도움이 되었다는 겁니까?"


"그래서 자네가 평생 하급악마 신세를 전전하는 거야. 개랙프리드의 토끼같은 아내가 며칠 전 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도 몰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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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여우들 (1) 24.08.22 5 0 12쪽
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5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6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5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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