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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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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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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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DUMMY

다만 그때마다, 바다와 해일이 몰아치는 우울한 날에도 그 탑마루의 꼭대기에서 쉼없는 종소리처럼 울려오는 그때 그 시절 헨나프리데의 울음소리가 빗속에 나룻배 타고 오는 사공들이 보고 놋대를 다잡는, 끄덕없는 등대가 되어주었다. 추억을 수정하려는 무의식적인 손길은 단숨에 엎어져 내려가고 남은 건 앞날을 향한 전진, 추억의 액자에 악마라는 금박을 간편하게 붙이는 일이었다.



그 말을 듣고 헨나프리데가 딸꾹질을 했다. 에레디오스의 처방에 따라 그녀는 손바닥에 십자가를 여러번 세겨삼켰다. 딸꾹질이 멎었고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에레디오스는 속으로 답을 갈구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칩시다, 헨나프리데. 그렇다면 그건 뭐였소? 왜 그날 밤 나를 찾아왔던 겁니까?'



가장 핵심적인 물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들이 그녀 자신의 말로 인하여 산산히 무너져내린다 하더라도 눈물을 흘리며 홀로 자신을 찾아왔던 헨나프리데의 모습과 이마의 멍자국을 생각하면, 에레디오스는 얼마든지 그녀의 늙은 기억이 잘못되었고 모든 것은 어긋나지 않았노라 자신있게 말할 생각이었다.



"그년들이 나를 얼마나 업신여겼을지 생각해봐요. 그 창녀같은 년들이..."



헨나프리데는 갑자기 이상한 말들을 했다. 울면서 기댈 어깨를 찾는 눈치였다. 에레디오스는 눈치챘지만 왠지모르게 짜증이 치밀어서 일부러 외면했다. 한 번 시작된 딸꾹질은 금방 멈추지 않았다. 방안에 깃드는 침묵이 불쾌함에 몸을 뒤척였다. 딸꾹질을 멈춘 그녀는 두어번 숨을 들이마신 뒤 점점이 끊어지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창녀같은 여자들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했겠어요? 에레디오스, 나라고 다른 수가 있었는 줄 아세요? 나도 여자에요, 그 때만 생각하면 난 지금도 잠을 못 자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창녀라니요?" 뜬금없는 말에 에레디오스가 놀라 물었다. "형이 집안에 창녀들을 불렀다고요?"


"남의 씨를 훔쳐서 뱃속에 처넣으려는 게 창녀가 아니고 뭐겠어요. 날마다 가슴이며 어깨가 파인 옷들을 입고 악기와 노래를 부르면서 시도때도 없이 몸뚱이를 흔들어대는 년들이 있었다고요. 부끄러움도 없이 돈과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냄새를 맡고 옷가지를 훌렁 벗으려고 몰려들지요. 그런데도 지체가 높답시고 보이는 남자마다 유혹하려 들지요. 가장이라는 사람이 그 미친것들을 내쫒지도 않고 함께 놀아날 생각만 했어요."



에레디오스가 좀 더 자상한 사람이었다면 기대어 울만한 어깨를 빌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머리가 몸에 닿는다면 그 부분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만 울게 내버려두었다.



"처음에는 그저 전쟁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전쟁이 그 사람을 망쳐버린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만 낳아준다면 다시 돌아와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더군요. 그이가 얼마나 호색한 사람이었는지, 성에서 살던 시절에는 그런 천성을 숨긴 채 살아왔는지 알면 놀랄 겁니다. 제가 아이를 못 낳고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성 안에 여자들을 불러들인 거예요. 그리고 호시탐탐 아이를 낳아줄 새 여자를 찾고 있었어요. 그 눈빛을 제가 모를 리 없지요. 어머님은 그걸 알고도 저를 못 본 채 했어요. 당시는 저도 만만찮은 성격이라 그 사람을 욕하고 밀치고 심지어 촛대로 때리기까지 했었어요. 그런데도 오프레드는 본인 성격을 고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형이 때렸습니까?"



헨나프리데는 고개를 숙였다.



"그 부분은 부정하지 않을게요. 그 사람은 남자고 나는 여자이니 공연히 누가 더 심하게 맞았는지는 물어보지 말아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오프레드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매일 밤 맞은 부위를 감싸안으면서 울고있으면 오프레드가 침실로 다가와 저에게 울면서 용서를 빌곤 했었지요. 그럼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리다가 잠에 들었어요. 다음날이면 다 잊은듯이 여자들을 불러 밤까지 술을 마시고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지만, 어찌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에레디오스는 그날 밤 동굴 안에서 헨나프리데가 부렸던 교태를 떠올렸다. 지금 이 눈앞의 피부 늘어진 여자와 빗대어보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이 결정타였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걸요."


"그래요, 다들 그렇게 살지요."



에레디오스는 화가 났지만, 그 이유를 언어화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공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다만 빈정거리는 말로 감정을 삭일 뿐이다. 애써 설명하려 하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헨나프리데 역시 본인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을 그에게 설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헨나프리데가 그렇게 멍청해보일 수가 없었다. 에레디오스는 본인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변화였다. 언제부턴가 눈물도 쏙 들어가고 말았다.



"나를 용서해줘요, 에레디오스.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오프레드가 때린다고 말했던 건 거짓말이었어요."


"방금 전까지 형님에게 맞고 사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했죠. 하지만 거짓말이었어요. 그건 사실이지만, 당신에게는 거짓말이었어요."


"그건 헨나프리데 님이 진실을 써서 나를 속이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레디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돌아다녔다. 어둠 속에서 에레디오스는 심문하는 사람처럼 헨나프리데를 노려보았다.



"그 여자들이..."


"여자 이야기는 이제 됐습니다."



에레디오스는 다시 원장으로 돌아가 권위적인 말투를 되찾았다. 헨나프리데는 그에게 숙명과도 같았다. 동경하던 여인의 치부를 공격한다는 이 가학적인 매력이 온몸에 힘을 솟게 했다.



"그래서요? 왜 저에게 거짓말을 한 거죠? 거짓말을 했던 동기는? 그게 거짓인 이유는?"


"오프레드는 자꾸만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사람이 저에게 품었던 감정은 동정과 어린 시절의 추억에 가까웠죠.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본인이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거예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해냈지요. 당신들 두 사람이 서로 뜯어먹는 천성을 이용해야겠다고요. 우리 사이에 다시 에레디오스가 끼어들면, 그 사람도 옛날처럼 나를 구해주러 올 지도 모른다고요. 오프레드도 다시 형 노릇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고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가 다그쳤다.



"그래서 저에게 거짓말을 했다고요? 그렇다면... 그날 그렇게 찾아왔던 것도, 그 먼 길을 오는 동안 나를 이용하려는 생각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었다는 겁니까? 나의 악마적인 심성을 이용해서 형에게 사랑을 다시 받으리라, 그렇게 결심했다는 건가요? 에레디오스 저놈은 조그마한 자극만 주어도 곧장 형에게 달려가서 나를 위해 행패를 부릴 놈이다 이렇게 생각해왔습니까?"



에레디오스는 헨나프리데의 이마에 맺혀있던 멍자국을 생각했다.



"당신이 그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제가 그렇게 행동할 줄 몰랐었다뇨."



물어도 대답하지 않기에 재차 다그치자 그제야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저희가 있는 동굴에 찾아오신 걸 봤어요."



에레디오스는 온몸이 굳어버린 듯 입을 열지 못했다.



"언제..."



겨우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말이 아닌 격렬한 헛구역질이었다. 즉시 창가로 달려갔다. 헨나프리데가 달려와 등을 두드려주었다.



"저는 그 때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당신인 걸 알았어요. 당신은 동굴에 누운 우리에게 다가와서. 내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왜 그런 선택을...."


"내 몸에 손 대지 마시오."



에레디오스는 일어났다가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이 여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답시고 실은 본인을 비웃고 힐난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 자리에 몇번 버둥거리다가 일어날 수 없었는지 주먹으로 힘껏 탁자를 내리쳤다. "에잇, 빌어먹을!" 그의 얼굴에는 몹시 두려운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헨나프리데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 방안 구석으로 물러났다. 이를 보고 에레디오스가 역정을 냈다.



"왜 도망치는 거야! 왜!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이 때 밖에서 엿듣고 있었던 시녀들이 마님을 살리겠다고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에레디오스가 그들을 밀치면서 방안을 뛰쳐나와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쫒아오지 못할 장소까지 도망치고 나서 구석에 몸을 숨기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내 그의 마음속에 증오가 치밀면서 얼굴에 눈물범벅을 한 채 다시 계단을 쿵쿵 올라가 헨나프리데가 있는 방으로 들이닥쳤다. 시녀들이 혹시 몰라 무거운 것으로 문을 막고 있었는데 에레디오스가 힘주어 밀자 힘없이 밀려났다. 헨나프리데는 침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인만 좋자고 나를 속여먹었다고? 나를 이용하고, 겉으로는 귀여운 동생이다 챙겨주었으면서, 속으로는 나의 천성을 비웃고 멸시하고 있었다고? 여인이여, 그것이 자네가 내게 고하는 진실인가? 지금 나에게 그 죄를 용서해달라 비는 것이야?"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헨나프리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앞에 섰다.



"아직 내 이야기는 끝나지도 않았고요. 아직 형님에 대한 이야기가..."


"집어치워, 이 개같은! 듣기 싫어!"



에레디오스가 괴성을 치르면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1층 반 정도 높이가 아니었다면 어딘가 부러지거나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레디오스는 타고난 몸이 튼튼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바닥에 철푸덕 엎어져 울부짖고 있을 때에도 여인들은 위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뒤에서 헨나프리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에레디오스는 진흙탕을 벗어나 전력으로 도망을 쳤다. 수치와 부끄러움이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든 것이다. 뒤에서 헨나프리데가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에레디오스는 숨을 곳을 찾아 달렸다.



이제 어찌해야 좋을까. 악마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에레디오스의 삶을 결정짓는 지침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어린 시절의 철모르던 추억으로부터 왔다.


그런데 불청객 같은 헨나프리데가 그녀 자신에 관련된 에레디오스 자신의 추억을 산산조각내고 만 것이다.


그러자 드는 생각이 평소 그의 논리대로면 그간 자신의 인생을 괴롭혀왔던 악마는 헨나프리데가 된다.


그런데 에레디오스가 헨나프리데를 악마로 몰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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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5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5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5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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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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