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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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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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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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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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고문 (1)

DUMMY

몇 시간만에 돼지를 여자처럼 다루는 자로 낙인찍히고 말았으니 하인은 억울함에 눈물을 꺽꺽 흘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다들 저를 돼지 범하는 놈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장님, 이런 모욕을 당하면서 사람은 살 수 없는 겁니다. 이 소문이 정정되지 않으면 저는 유서에 모두의 이름을 쓰고 확 죽어버릴 거예요!"


"이 새끼! 어느 안전에서 감히 죽는다 어짼다 한단 말인가? 당장 취소하지 못해!" 원장이 더 크게 호통을 쳤다. "주님이 주신 몸을 스스로 끊어내는 자살이야말로 육신과 영혼 모두에게 상처입히는 대죄임을 원내에 사는 니가 모르느냐? 지금 당장 그 입을 닥쳐!"


"하지만 원장님, 정말로 여자를 보았단 말입니다. 제가 취하지도 않았는데 여자와 돼지를 구분도 못 하는 천치이겠습니까?"



듣고보니 그의 말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은 사람을 시켜 방안에 돼지와 성모상을 가져다놓고는 어느 게 돼지고 어느 게 여성인지 구분해보라고 했다. 하인은 이게 뭔 짓인가 싶다가도 원장 성격을 아니까 그냥 시키는대로 했다. 그런 다음 자리를 바꿔서 다시 한 번 시켰다. 두 번 모두 맞혔다. 원장은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괴어놓고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하늘 위로 양 손을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이리하여 분명해졌다!"



하인은 눈시울이 붉게 변한 채 올려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다. 모든 의심점이 연결되었어!"



원장이 말하면서 천장의 줄을 당겼다. 커다란 팔레트에 작전지도가 펼쳐졌다. 그는 얇은 지휘봉으로 지도의 이곳저곳을 짚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게랙탱의 고발, 늑대의 소동, 그리고 이번 일까지... 네 눈이 진실하다면 그건 너의 착각으로 일어난 게 아니다. 돼지가 여자로, 그리고 여자가 돼지로 둔갑한 거야. 그게 어찌하여 가능한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어. 이게 단순 우연일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원장님." 하인이 얼떨떨하여 말했다. "저는 무식한 놈이라 그런 건 잘 모릅니다."



원장은 그의 말은 듣지도 않고 제 혼자 열이 올라서 펄펄 날뛰었다.



"갈수록 바실리쿠스 비스콘티에 대한 나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놈이 무슨 일을 벌이기 전에 내가 철저하게 심문해주어야지! 그 겉껍데기를 모조리 벗겨버리고 말겠어."



원장의 엄숙한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퍼졌다.



"피고는 입장하라!"



이리하여 원장을 필두로 한 채 재판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재판장에 들어서자마자 전날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방청석에는 악마심문을 구경하러 온 수사들이 몰려들었고 먼 지방에서 온 귀족도 있었다. 벽과 창문을 따라 휘장과 알록달록한 테피스트리가 쳐졌고 바닥의 카페트는 그 유명한 동방의 양탄자였는데 바실리쿠스 같은 돼지치기가 그런 걸 알아볼 리는 없고 다만 알 수 없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심증만 확실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잡아먹을 듯이 부리부리하게 눈을 뜨고 쳐다보는 뚱뚱이 노인의 눈빛이 가장 무서웠다.



'저 책상 중앙에 앉은 사람은 나를 언제 봤다고 눈을 저렇게 뜨고 볼까? 악마와 관련된 일이면 아주 경기를 일으킨다는 그 에레디오스 원장이로구나. 쿠미누스 사제님이 늘 욕하던 그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어.'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공손히 한 채 가능한 한 유순한 태도를 보이려고 했다. 아침에 감방지기한테 부탁해서 온몸을 깨끗이 씻고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데다 지저분한 머리도 깔끔하게 자르고 온 것이다. 이 때의 바실리쿠스는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지 미리 듣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뒤였다.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수도원 하인이 돼지감방에 여자가 있다고 난리를 치다 나간 뒤에 어찌저찌 늦은 아침식사를 먹고 있는데 돌연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절대 이번 재판에서 원장이 원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전날에 바실리쿠스를 재판하던 그 젊은 판사였다.



"원장은 이미 너를 악마숭배자나 우상숭배자, 아니면 이단이든 뭐든 그 비슷한 거로 보고있어. 너 그런 인간들이 어떤 처벌을 받는지 아니? 끔찍하단다. 그렇게 되기 싫으면 원장이 무섭다고 뭐라 하든 네네 하지 말고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해. 알았니? 조그만 정황이라도 나타났다간 저기 마을 광장에 검은 연기가 나는 거야. 너는 이 세상에서 끝장이란 말이다, 이놈아."



바실리쿠스는 지금까지 이 소동 때문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자면 거시기가 완전히 쪼그라든 채 판사 앞으로 개같이 끌려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해줄 거면서 변호를 해달라는 말은 외면하는 젊은 판사가 야속하기도 하고 왜 자기가 이런 꼴을 보아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뒤늦게 화가 치밀었다. 그리하여 뭐든지 올 테면 와봐라 식으로 마음은 뜨거우나 몸은 싸늘하고 차갑게, 그 어떤 매서운 질문에도 똑똑히 대처할 준비를 했다.



원장은 전날 쓰인 조서과 재판기록을 뒤적거리다가 탁자를 쿵 쳤다.



"사건 당일 숲속에 있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지!"



돼지치기를 겁 주어서 심문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려는 수법이었다. 바실리쿠스도 이에 지지 않았다.



"어떤 사건인지를 설명해주셔야 얘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원장이 소리쳤다.



"너는 나를 우롱하고 있구나. 여러분, 보셨습니까? 이놈은 되려 판사에게 따지고 들면서 우리보다 위에 서려고 하는군요. 당연히 돼지가 아이를 잡아먹는 사건이지 뭘 두고 말했겠느냐? 되려 나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구나!"


"그 일이라면 저는 물론 가레랑 영주님을 따라 숲속에 가있었습니다."


"거기서 뭘 했어?"


"기분좋은 소풍을 하고 돼지를 잡아먹었지요."


"돼지를 먹었다? 돼지를 잡아먹었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겠다? 여기 게랙탱의 증언에 따르면.... 너는 그 잡아먹힐 운명의 돼지 한 마리를 살리려다 영주의 위병한테 들켜서 주먹다짐을 하고 사람을 팼다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여러분, 보십시오. 저 돼치지기는 돼지를 지키려고 사람을 때리는 자입니다. 사람보다 돼지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러니 가여운 아가의 목숨보다 돼지의 굶주림을 가엾게 여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바실리쿠스, 너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아이의 잘못은 부모에게 따져야 하고 노예의 잘못은 주인에게 따지면 돼지의 잘못은 누구에게 따져야 하는가?"


"돼지는 사람처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누구에게도 따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돌보는 돼지들은 걸어서 몇 시간은 걸리는 그 물레방아 근처에는 가는 일이 없으니 더더욱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 날 제가 키우는 돼지들은...."



바실리쿠스는 방청석에서 젊은 판사가 눈을 질끈 감는 것을 보았다.



"저는 저런 식으로 스스로를 변호하는 자들이 어떤 부류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원장이 바실리쿠스의 말꼬리를 잘랐다. "지금 저 바실리쿠스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지리한 답변으로 판사를 힘들게만 하고 있지요. 자 들어보자 바실리쿠스.... 사람에게는 돼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다? 그럼 너는 뻔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돼지치기로 살아왔던 뻔뻔한 놈이로구나? 그 말대로면 돼지가 아이를 잡아먹는 이 구슬픈 사건이 퍼져나가는 와중에도 너는 두 다리 뻗고 잠을 자며 그 퉁퉁한 배를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너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돼지가 일으킨 사건 가지고 나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돼지한테 살인을 교사한들 내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 너에게 살인 심증이 없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원장님, 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바실리쿠스는 화가 나서 내뱉었다. "제가 아는 유일한 건, 저는 너무 미천한 놈이라 원장님이 어떻게 괴롭히시던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말을 듣고 원장은 말하려던 입을 꾹 닫은 채 바실리쿠스를 노려보았다. 확실히 이 반격은 효과가 있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심문으로 바실리쿠스를 괴롭히는 것은 그만두고 증인들을 불러서 절대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게랙탱이 오늘 아침부터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출두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정은 무덥고 답답해지기만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롤마르부터 끌고 나왔지만 그 역시 바실리쿠스에 대한 모함증언만을 내뱉을 뿐 육하원칙에 의거한 정황정보며 자살한 과부와의 악연관계같은 것들은 뾰족하게 증언해내지 못했다.



원장의 눈썹에 땀구슬이 진하게 맺혀 떨어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로 앵앵거렸고, 증언이 계속될수록 말을 더듬거나 캥기는 듯 우물거리는 태도가 늘어나는데 아직 조사가 부족한 참이라 이런 증언만으로는 사람을 화형시킬 수도, 먼 곳으로 유배보낼 수도 없었다.



방청석에서도 지루한 나머지 고의적인 한숨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윽박과 유도심문은 통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원장은 이쯤하여 법정을 파하고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허나 바실리쿠스의 진정한 고생길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감방으로 돌아온 바실리쿠스는 말레이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밥 주는 사람이 들어오자 말을 뚝 그치고 벽으로 돌아앉았다. 너네 같은 것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겠다는 심보였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사람이 나가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아주 평온하게 생긴 남자가 나무 사발 하나를 들고 서있었다.



은구슬처럼 똑또르르 맑게 돌아가는 그 눈과 마주보면서 바실리쿠스는 꼼짝없이 심장을 죄이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남자는 말없이 쳐다보다가 감방 안에 나무 그릇을 놓고 물러났다. 바실리쿠스가 이게 오늘의 밥인가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안에 든 것을 보니 날콩가루였다. 날콩가루라니? 난데없으나 미리 말해두지만 이 날콩가루의 풋내는 여간 지독한 것이 아니다. 작가 역시 몇달 전에 냉장고에서 날콩가루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본 적이 있는데 헛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실리쿠스가 킁킁 냄새를 맡다가 무작정 입에 넣어보았는데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나면서 아침에 먹는 것까지 모조리 토할 뻔했다. 도저히 사람 먹을 것이 아니다.



이때 문밖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에레디오스 원장이 천천히 돌계단을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뒤에는 방금 전의 그 남자와 함께 몹시 추하게 생긴 상놈이 하나 더 서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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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6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6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6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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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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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 콩가루 고문 (1) 24.08.09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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