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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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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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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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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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DUMMY

이제서야 구멍 안쪽의 풍경이 어둑거리는 일광에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토사물과 오물 냄새였다. 쿠미누스는 닥치는대로 묻고물어 어떻게든 지하감방으로 통하는 길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입구에서부터 경비가 한손에 창을 들고 막았지만 쿠미누스가 이런저런 법령을 근거로 네놈은 지금 나를 막을 권리가 없다고 윽박지르자 한참 뒤에야 겨우 면회 자리가 마련되었다. 쿠미누스는 우선 숙소에서 잠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함께 데려갔다.



안내를 따라 어두운 길을 뚜벅뚜벅 걷다보니 수도원 귀퉁이에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이 하나 서있는 것 같았다. 주위에는 횃불을 든 보초들이 서있고 척 보아도 엄숙한 분위기인데 가까이 다가가도 이쪽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간에 있는 둥근 탁자에 이미 깨끗하게 목욕한 바실리쿠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자마자 사제가 달려들어서 우선 어디 다친 데가 있는지 확인했다.



"상처는 없는데 무슨 고문을 받았다는 게야?"


"말조심하십시오, 신부!" 감시하던 수사가 소리쳤다. "신성한 구역에서 무슨 그런 망발을 하십니까? 선생께서 그렇게 부탁을 하시기에 원래는 안되는 건데 원장께서 특별히 허가하셨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모욕하십니까?"


"모욕이라뇨, 저도 다 들은 말이 있습니다!" 신부가 맞질렀다. "그러는 당신은 내가 아무거나 주워듣고 헛소리나 하고 다닌다며 나를 모욕하는 거요?"


"부적절한 언행은 모두 원장님께 보고할 겁니다."



헛소리는 무시하고 바실리쿠스에게 지금까지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낱낱이 고하라고 했다.



"게랙탱 어디있냐." 다 듣고 난 신부가 말했다. "그 놈이 열쇠다. 그 자식 지금 어디있어?"


"저도 몰라요, 사제님." 바실리쿠스가 울면서 대답했다. "감기에 걸렸다고 재판도 안 나오고 있어요."



사제는 그 말을 듣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산 넘어 산이구나. 그렇다면 원장은 본인의 재판권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야. 이 안건이 돼지에서 악마로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수를 써야 해. 너, 뭐 책잡힌 건 없지?"


"저 같이 못 배운 녀석이 그런 건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니라고 해봤자 원장이 그렇게 위세를 부리면 얼마든지 지어내고 흉내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맹세컨데 제가 무슨 말을 하던 한 마디도 들어주지 않았다고요. 뭐든 자기 맘대로였죠." 바실리쿠스가 순간 사제의 팔을 확 잡으며 목소리를 죽였다. "사제님이 저를 위해 힘을 써주셔야 합니다. 혹시 이 사람들이 금전을...."


"예끼!" 신부가 손짓하는 바람에 바실리쿠스는 말을 멈춰야 했다. "이놈아, 그런 얘긴 추호도 꺼내지 마라. 화형의 불냄새를 앞당길 뿐이다. 너, 에레디오스가 어떤 사람인지 아냐? 놈 같은 미치광이가 저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선배 심문관과 왕의 궁둥이를 핥으면서 얼마나 많은 이단자와 이교숭배자들을 화형대로 보내버려야 했었는지는 이제 하느님만이 아실 거다. 얼마 전에 비가 와서 장작이 습기를 먹었는데 그런 나무에 태워지면 쉴 새 없이 비명 지르면서 발끝부터 천천히 가는 거야. 에레디오스는 악마가 자기 삶을 망쳤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놈한테 사람이 사람으로 보일리가 있겠니? 감형을 대가로 돈소리를 내는 건 "너는 단지 돈 뜯으려고 사람을 괴롭히지?" 하고 되려 자극하는 꼴이 된다고."


"그럼 어떡하죠?"


"나도 모르겠다!" 사제가 절망적으로 외쳤다. "게랙탱 그 놈이 파문이라도 당하면 몰라도...."


"파문이요?" 그 말에 바실리쿠스가 "오잉?" 하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사제님 혹시...." 바실리쿠스가 귓속말로 무어라 속삭이자 사제 역시 두 눈을 크게 홉떴다.


"무어라?" 사제는 깊은 혐오와 또한 긍정적인 희망으로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게 정말이야?"



바실리쿠스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신부는 얼굴에 웃음을 개어바르고 옷자락에 손땀을 닦았다. "교구 법령으로 보아 가축을 범한 개랙탱은 그 순간부터 자동파문상태야. 파문자는 불명예자로 취급하고 모든 법적 자격을 상실하지... 증인이 있느냐?"


"대장장이 불루무스 (6화에서 바실리쿠스에게 개랙탱의 치부를 알려준 그 사람) 아저씨가 증인이 되어줄 겁니다. 대장장이가 알 정도면 그 말고도 본 사람이 충분히 있을 거예요. 놈이 이곳에 온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니 제 버릇 못 준다고 그간에 그 못된 짓을 저지른 게 한두번이 아니겠죠."


"저도 봤어요." 아이는 본인이 이곳에 있을 시간을 늘리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개랙탱이 공연히 가축우리에 자주 드나드는 건 본 적이 있지요. 그것도 견사나 닭장이 아니라 소, 양, 돼지처럼 큼직한 동물들이 사는 커다란 외양간이었어요."


"저도 봤습니다." 옆에 있던 로드렉이 거들었다. "개랙탱의 악명은 자자하죠. 항상 사타구니를 긁지 않습니까. 옴이든 사면발이든 뭐든 옮았을 거예요. 그것만 해도 확실한 물증이죠."


"왜 다들 나한테는 말을 안 했어? 여태까지 나만 모르고 있었잖아. 개랙탱 그거 평소에도 곱게 보이진 않았는데 완전히 정신나간 놈이었구만. 어쨌든 이 일로 가레랑 영주님을 화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잘 풀리면 개랙탱은 이곳에서 추방이고 추가고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좋아요, 여러분. 이대로만 갑시다!"



희망이 생기자 쾌활해진 바실리쿠스가 그간의 고통도 모두 잊고 신부 어깨를 두드리며 외쳤다. 마지막으로 신부가 넷을 한 데 모아 짧은 기도를 올리고 헤어졌다. 바실리쿠스는 다시 콩가루 사발과 본인이 쏟는 토사물이 있는 감방으로 붙들려 끌려가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쿠미누스는 "주여, 이 땅에는 너무나도 많은 용서가 필요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이가 묻자 사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신부가 원장의 알현을 겨우 허락받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직무의 차이가 곧 신분의 차이를 반영하겠지만 두 사람은 원래 아는 사이고 동갑내기인 데다 태생적인 신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은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던 학도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원장이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오자마자 윗사람이 하듯이 대뜸 왜 굳이 그런 돼지치기를 변호하냐는 식으로 따지고 들어서 쿠미누스도 기분이 나빠지는 바람에 날카롭게 대꾸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별 일 없으면서도 굳이 문앞에서 한 2분쯤 기다리게 한 것도 쪼잔하기 그지없었다.



에레디오스는 쿠미누스가 출세한 본인을 질투한다고 예전부터 생각해왔으니 두 사람 사이에 언쟁이 붙을 것은 뻔할 뻔자가 아니겠는가. 쿠미누스는 책잡힐 거리가 없도록 상투적인 질문과 대답으로 일관했지만 에레디오스는 권위와 위세를 믿고 아예 노골적인 언조로 그의 허물을 꼬집어댔다. 격렬한 입씨름을 벌이던 도중 에레디오스가 '너는 네 교구 수녀들을 타락시키지 않았더냐?' 하고 말하자 신부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교활하게 웃으며 답하길,



"모르는 척 하지 말아라, 쿠미누스.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조사능력까지 쇠퇴하지는 않았어. 네가 관장하는 수녀원에서 수녀 한 명이 담장을 넘고 탈출하는 일이 있었다는 걸 내 똑똑히 들었는데! 돼지치기에 이어 수녀까지 잘하는 짓이다."


쿠미누스는 얼굴에 빨개져 소리쳤다. "이 등신아, 수녀원은 내 관할이 아니란 말이다! 건축이 지체되는 게 나 때문이냐?"



그 말대로 사실 가레랑 영지 아랫마을에 위치한 옹튀르 수녀원은 본래 그곳에 있을 게 아니라 더 크고 고색창연한 고장에 남자 수도원과 함께 세워져 있음이 마땅했다. 다만 공사가 자꾸 지연되는 바람에 교회 근처에 가건물을 세우고 일을 도우며 임시로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미누스가 예전부터 이를 빌미로 수없이 많은 의혹과 입방아를 당해왔던 사실을 알고 에레디오스도 일부러 신부의 화를 돋운 것이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만남에서 쿠미누스가 얻은 건 그래 니 맘대로 해라 식으로 겨우 얻어낸 변호자격뿐이다. 그것이 원했던 전부이긴 했지만 모욕에 비해 대가가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장은 방금 있었던 불복종을 빌미로 신부를 괴롭힐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거로 된 거야. 일단 저쪽에서 가진 패들을 전부 꺼내놓게 해야지. 그런 다음에 재판을 통째로 엎을지 말지 판단하자. 개랙탱에게 원한을 사지 않고도 끝낼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도 개랙탱은 감기를 이유로 재판장에 불출석했는데, 사실 이건 원장의 계략이었다. 원장은 자기가 나서서 재판을 서서히 심문으로 이끌어나갈 목적으로 처음부터 원고를 배재시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바실리쿠스의 상태도 이상해졌다. 원고측에서 발라리 (29화에서 산속을 도망치다 바실리쿠스에게 붙잡힌 그 사람. 지금 그녀는 바실리쿠스에게 배신당했다 생각하고 맹렬한 적의를 불태우고 있다) 수녀가 나와 증언을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이다.



"바실리쿠스."



사제가 옆에서 속삭였다.



"바실리쿠스! 지금 뭐 하는 거야, 정신차려! 어서 아니라고 말해! 수녀의 증언은 모두 거짓이라고 맹세하란 말이야! 지금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는 있어?"



바실리쿠스는 어째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제를 쳐다볼 뿐이었다. 잠시 후 그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뭐라?"


"발라리 수녀님의 말씀은 모두 사실이에요. 수녀님은 저보다 훨씬 나은 사람입니다. 제발 저분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아주세요. 모두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예, 저는 악마숭배자가 맞습니다. 판사님이 그러다면 그러한 것이겠지요. 혐의를 인정할게요 뭐든 좋습니다."



그러더니 양 볼에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오열했다.



울고 싶은 건 쿠미누스 쪽이었다. "바실리쿠스." 그가 바실리쿠스의 팔을 확 잡았다. 수십년 쌓아온 운동의 악력은 지금 이 순간 믿음이 산산조각나는 충격으로 강가의 갈대처럼 버들거리고 있었다. 그 눈빛에서는 믿음의 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실리쿠스를 아들처럼 생각해왔으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걸 인정하면 넌 죽어!"



판사석에서는 에레디오스가 애써 미소를 참고있었다.



"지금 발라리 수녀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이다? 그리 말하는 건가 바실리쿠스? 그럼 자네는 그 산속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은 둘째치고 밤중에 나온 수녀를 범하려 한 게야. 이것도 분명 조사할 일이겠구먼."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제 가늘롱의 연인인 수녀 발라리의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에 그녀가 그리운 자유를 찾아서 수녀원 담장을 뛰어넘고 어두운 산속을 달리다 붙잡혔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발라리는 그날 이후 줄곧 독방신세였다. 독방이라 해도 그렇게 좁지는 않고 매 끼니 밥과 물도 잘 나왔기에 불편한 점은 딱히 없었지만, 답답한 단체생활에서 놓여나 홀로 차분히 생각하고 앉아있을 시간이 많아지자 자연스레,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바실리쿠스가 나를 배신하고 꼰지른 게 틀림없어!'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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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여우들 (2) 24.08.22 2 0 13쪽
80 여우들 (1) 24.08.22 4 0 12쪽
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4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4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5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5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5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3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4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5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6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5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4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5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5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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