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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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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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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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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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것들 (2)

DUMMY

"내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 그 애는 어린 나이에도 뭇 사내들의 애간장을 파멸시키는 재색의 기운을 벌써부터 가지고 있다고. 너도 눈치챘지? 봐라, 벌써부터 저 어린 것들이 발정난 개미핡기마냥 몰려들고 있잖아? 그 애를 더럽히러 오는 거다. 우리가 그 애를 타락으로부터 지켜줘야 해!"



달이 밝으니 이런 야밤에도 두 주먹 불끈 쥐어낸 쿠미누스의 울긋불긋한 핏줄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가 갑자기 바실리쿠스를 멈춰세우더니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세상의 타락과 더러움으로부터 늑대아이를 지키겠다고 맹세하라고 했다. 바실리쿠스는 대번에 그러겠노라 답했다.



"이제부터는 조용히 해야 한다, 바실리쿠스. 언제 어디서 놈들이 우리 목소리를 듣고 도망칠 지 알 수 없어. 반드시 현장을 붙잡고 딴소릴 못 하게 못을 박아야 해."



그렇게 높은 산을 올라가다가 갑자기 쉬고 싶어졌다. 쿠미누스는 그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가다 근처에 싱아가 보여서 몇 줄기 딴 다음 바실리쿠스에게도 주었다. 바실리쿠스가 그 애 이름은 사라라고 했더니 사제가 그러냐고 대답했다. 그들은 산언덕으로 몰려오는 밤바람을 맞으면서 함께 시원하고 새큼들큼한 맛을 즐겼다.



"잘 봐라, 바실리쿠스. 싱아는 이렇게 먹는 거야. 지금 나한테 배워놨다가 나중에 자식들 낳으면 알려주란 말이야."



쿠미누스가 바실리쿠스를 붙잡고 싱아를 손질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했다.



"저도 알아요, 사제님. 저도 이렇게 같이 먹고 있잖아요."



그들은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기에 산속의 향 좋고 먹어도 되는 온갖 버섯을 구분할 줄 알아서 근처에 몇 개를 따가지고 흙먼지만 훌훌 털고 텁석텁석 베어먹었다.



달이 청명하여 절로 늑대가 생각나는 날이었다. 쿠미누스는 젊은 시절에 사람들이 밀밭에 바람이 불면 그 속에 늑대가 있는 거라고 말하던 것을 전해듣고 친구들을 왕창 모아 밭 속에 들어온 늑대를 잡겠다며 한바탕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고 껄껄 웃으며 말해주었다. 가레랑이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 아버지인 고틀레프가 고생하던 시절인데, 지금 산 아래 들판을 보니 그 생각이 절로 난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처럼 밭 속으로 기어가는 놈들을 겁주려고 하던 말이었지. 나같은 망나니한텐 역효과였다만!"



바실리쿠스는 기분이 나서 품속에 뼈피리를 꺼내 불었다. 뼛속으로 먼 데서 오는 바람과 돼지치기의 숨결이 함께 들어갔다. 반딧불이 너머로 누가 몰래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들은 한동안 바람과 곡조를 들으면서 발로 리듬을 타다가 갑자기 원래 목적이 생각나서 돌아온 분노와 함께 싱아 버섯을 내던지고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벌써 일을 치렀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놀고있던 사이에!"


"그건 용서할 수 없어!"



사정없는 발길질에 저 아래로 흙이 터벅터벅 떨어졌다. 옷 속에서 식은 땀이 다시 버럭버럭 흘리면서 그들은 얼굴에 뒤집어쓴 복면만 빼고 다 요 아래 던져버렸다. 갓머리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시시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그리로 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두 어린 연놈끼리 나란히 앉아 아래쪽 풍광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실리쿠스와 쿠미누스는 얼마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두 아이가 돌연 입술을 쪽 하고 한 번 부딪히더니 온몸을 배배 꼬면서 얼마간 떨어져 앉는 것이었다. 못난 두 아저씨가 발그레 실실 웃는다.



"저 쪼만한 녀석들이 벌써부터 큰일인데 어쩌죠?"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겠는걸!"



그들은 시장판 쥐새끼를 향해 걸어가는 고양이보다도 은밀하게 다가가 왁 소리를 지르며 현장을 덮쳤다.



"이 발랑 까진 것들아!"


"너희들은 현행범이다!"



아이들이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얼굴에 복면을 쓴 무리가 낙엽수풀 속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악 소리도 지를 것 없이 아이들은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사라는 재빠른 늑대답게 적발당한 즉시 뛰쳐나가 자리를 벗어났지만 그 옆에 있던 소년은 뒤늦게 일어났다. 그들이 "잡아라, 잡아!" 소리치면서 다가오니 어, 어, 굼뱅이처럼 있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사라는 이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그들은 아이를 잘 보이는 곳으로 끌고 갔다. 그 얼굴을 보니 당연 못난 놈 가스파르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사라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어른들도 잊었던 화가 치밀었다.



"이런 으슥한 곳에서 단둘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어? 네놈이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분명해."



멱살을 흔들면서 험상궂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더듬었나? 몸을 더듬었지!"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아 이 꼬마야,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아. 하느님은 위증을 용서하지 않아. 이런 곳까지 여자애를 끌고 와서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바른대로 말해! 너 같은 놈이 전염병을 옮기는 거야. 거시기를 잘라버리겠어. 유대인처럼 할례를 시켜주지."


"이건 뭐야? 벌써 벙어리가 된 거냐? 얼른 말하지 못해! 우리가 없었더라면 너는 지금쯤 그 불쌍한 애를 이 더러운 손으로 마음껏 타락시키고 있었을 거야."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줄 알고?"


"죄송합니다, 나리님들, 죄송해요." 놀란 가스파르가 사슴 눈망울이 되어서 손가락으로 가슴에 연신 십자가를 그었다. "그런데 여길 데려온 건 제가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이런 깊은 골짜기 구석까지 겁없이 올 수 있었겠어요. 다, 저 애 사라가 좋은 장소 있다고 데려온 거라구요, 맹세해요. 저 애는 이렇게 어두운 날에도 온 숲속을 자기 집마냥 훤히 들어다보고 있었어요. 저는 집에 돌아가려면 저 애한테 기댈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이 시간이 되도록 집에 가자고 해도 안 가고 얼버부리다가 이렇게 된 거라고요."


"사냥꾼 로베르의 아들 가스파르, 그것이 그대의 최후변론인가?" 쿠미누스의 추궁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 방금 전의 그 뽀뽀는? 그 못된 뽀뽀는 뭐였나, 가스파르? 우리가 똑똑히 봤으니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 마. 그 애가 그짓까지 시켰다고 고자질할 셈이야? 사라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입술을 부딪히고 온몸을 배배 꼴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할 셈이야? 진짜 '고자질'이 뭔지 보여줘야겠구만."



가스파르는 다시 벙어리가 되었다.



"뽀뽀만이 아닐 수도 있지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바실리쿠스가 쏘아붙였다. "어떻게 다른 짓거리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어이, 네놈 가스파르야, 더러운 짓을 했느냐? 모두의 명예를 더럽힐 만한 더러운 짓거리를 했지? 그리고 그건 네놈 소행이었지? 네놈의 지옥불구덩이 같은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었지?"


"너의 아버지가 사냥꾼이라는 걸 안다. 너는 길거리의 개들이 흘레붙고 외양간 소돼지들이 짝짓기 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어. 어떻게 부모님이 너를 잉태하였는지 그 방법이 슬슬 궁금해졌겠지. 황새가 물어줬느니 그런 대답만 들었겠지만 너는 이제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러니 직접 탐구해보고 싶어졌을 거야. 더 이상 모르는 척은 그만둬."


"너 사냥하는 걸 좋아하지? 사냥꾼들이 곰 사냥 하듯이 여인네들 사냥하는 걸 좋아하지?"



가스파르가 여전히 겁을 먹고 대답이 없자 슬슬 놀리는 것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넓찍한 돌부리에 나란히 앉아 아이를 가운데에 끼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명예롭지 못하게 이대로 그냥 넘어가려고?"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요?"


"책임을 져야지."



바실리쿠스의 두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한 여인을 더럽혀놓고 어른이 되어서는 다른 여인과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파렴치한 거야."


"사내라면 이런 일에 명예를 지켜야 해. 네가 명예를 지키는 방법은..."



잠시 후 쿠미누스가 읊조렸다.



"...지금 여기서 결혼맹세를 하는 거야."



그런데 두 사람이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아이가 대번에 그러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쿠미누스와 바실리쿠스는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들은 가스파르의 출신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대대로 사냥꾼이고 어머니는 집에서 날마다 맥주를 빚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라의 외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우리가 너 같은 맹꽁이한테 그 애를 홀랑 넘겨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가스파르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럼 뭐 어쩌라는 겁니까!"



그 때 어디선가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유혹해가지고 이런 시답잖은 일을 벌이느냐? 네가 우리 애를 다 망치는구나. 신세 좀 고쳐보려는 너 같은 년들의 수작을 모를 줄 알아? 너 돼지치기네 집 딸이지! 이런 같잖은 수를 벌인다고 우리가 유일한 아들을 너 같은 애한테 줄 일은 절대 없을걸!"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쿠미누스가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사라가 어른들에게 어깨를 붙잡히고 서있었다.



"어서 말해. 네가 우리 가스파르를 유혹했지? 그래놓고는 범해졌다고 거짓말을 쳐놓고 책임을 지게 할 생각이었지? 화냥년처럼 우리 집안을 꿀떡 잡아먹을 생각이었지?"



이들은 가스파르의 가족들이었다. 실은 이 어린아이들의 못된 행각을 보고 안절부절 못 하게 된 사람들이 바실리쿠스와 쿠미누스 말고도 몇명이 더 있었던 것이다. 그들 역시 늦은 시간이 되어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견딜 수가 없게 되어서 허겁지겁 뒤를 밟다가 여기 아무도 모르는 산까지 올라왔다.



이쯤에서 가스파르의 집안 이야기를 해야겠다. 가스파르의 집안은 대대로 사냥꾼 가문이고, 일이 없을 때는 발품 품삯이든 뭐든 팔아가면서 집안을 지탱했다. 가스파르의 아버지는 대대로 한 가지 직업에 종사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한편 어떻게든 돈을 모아 가스파르를 도시에 있는 학교에 보내 번듯한 다른 직업을 구하고 집안을 지탱시켜보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도시의 깊은 광장까지 손수 잔 피륙을 팔러 갔다가 들른 술집에서 우연히 시의 서기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아이의 교육과 서럽게 몸 쓰지 않아도 되는 '글일' 이라는 것에 크게 깨우진 이후 항상 그 생각만 하며 살았고, 유일한 아들 가스파르가 평소 말하는 것도 또박또박하고 알려준 일도 잊지 않으며 잘 해내던 것을 보고는 저 녀석이야말로 우리 집안의 희망이다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더니 대들면 때리던 것도 그만두고 어떻게 해서든 조금씩이라도 글자를 깨우치게 하였다. 이를 위해서 어머니와 아버지, 가스파르보다 나이가 많은 장녀, 그리고 늙은 노모와 얼마 전 자식없이 과부가 되어버린 아내의 여동생까지 더해서 전심전력으로 아이를 양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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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여우들 (1) 24.08.22 5 0 12쪽
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5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5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5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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