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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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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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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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므딘의 어쌔신 (3)

DUMMY

나무 그릇이 하나 더 놓였다. 따뜻한 온기와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냄새였다. 이미 한그릇 뚝딱 해치운 테레사가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그건 아잘의 밥이야."



그 말이 그녀를 멈추게 했다. 갑자기 테레사는 입안 가득 죽더미를 집어넣은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양 손을 벌벌 떨었다. 폭력의 공포가 허기를 이긴 것이다.



"왜 내려놓지?"



옹켈의 심문 같은 물음이었다. 테레사는 꾸역꾸역 입안의 죽을 삼키면서 침묵으로 되물었다. 옹켈의 잔잔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감히 아잘의 밥그릇을 다시 붙잡을 수도 없었다.



잠시 후 옹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뭘 어찌하던 네 선택이긴 해."



짜증이 몰려왔다.



"이것까지 먹게 해놓고 고자질할 생각이지요?"


"내가." 옹켈이 되물었다. "누구한테?"


"아잘..."



그 말이 옹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게 틀림없었다.



"내가 왜 그 자의 편이라 생각하지? 아잘이 너보다 더 나은 어쌔신이라?"



테레사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정곡을 찌린 느낌이 들었다. 매일 저녁 5시 정각부터 9시까지, 그들은 약 네 시간동안 테레사를 앉혀놓고 어쌔신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주입시켰다. 문제를 들리면 호되게 허벅지를 맞는다. 죄목은 불충, 불충이 곧 고통이라는 수식이 머릿속에 각인된 그녀의 허벅다리는 맞지 않았는데도 찌릿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통증은 다리에서 시작해 배를 타고 심장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그 말에 가슴 아파하게 되었다. 두 줄기 작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훌륭한 어쌔신이 될 수 없어.'



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들어 턱으로 조용히 흘러내리도록 했다.



"밥을 뺏기는 동안에 가만히 있었잖아요."


"나는 밥을 내려다놓고 즉시 방을 빠져나온다. 나는 가져다줄 뿐 먹여주는 사람이 아니지. 그걸 어떻게 하든 너희 맘이야. 난 그저 너희 중에서 더 나은 어쌔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아. 누가 더 나은 사람인지조차... 의식이 끝나기 전까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지." 잠시 후 옹켈이 서글픈 목소리로 덧붙였다. "네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된 줄 아느냐?"


"모르겠어요."


"세 달밖에 안 됐어. 밖은 가을이다."



세 달이라는 말에 테레사는 소리내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는 얼마나 더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거죠?"


"세 달 안에 훌륭한 어쌔신이 되는 건 힘들지."


"어쌔신이 된 다음엔 어떻게 되죠?"


"그건 나도 모른다." 옹켈이 말했다. "너한테 달렸어."



납치 당시의 충격과 율리돈나에게 감금당했던 공포가 그녀의 현실의식을 둔중하게 만들고 있었다. 바깥세상에 대한 몇 마디에 어쌔신 수련자는 다시 열 몇살 배기 어린애로 돌아왔다.



"집에 보내주세요."



마스터 옹켈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테레사는 양 볼에 죽을 칠한 채 땅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소리내면 아잘이 올 걸."



울음이 뚝 그쳤다. 테레사는 두 손으로 입술을 막고 숨을 꼴딱꼴딱 넘어가며 배에 힘을 주었다. 옹켈이 탄식했다.



"한심해. 한심한 모습이야. 한심한 자는 어쌔신이 될 수 없어. 그 애는 그걸 알아. 너를 공포로 지배하고 있잖아. 그렇게 너를 계속 한심한 자로 남겨둘 생각이야. 그런데도 너는 아잘의 밥그릇이나 지켜줄 생각을 하고 있지. 밥그릇 따위 어떻게 하던 니 맘이잖아."



옹켈이 방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나라면 차라리 한 끼 굶기는 편이 맞아도 덜 아프겠다고 생각할 텐데."



그 말에 테레사의 마음에 불현듯 용기 같은 게 솟아올랐다.



'그래, 어차피 얻어맞을 거.'



소녀는 나무그릇을 집어들더니 배가 고픈 만큼 단숨에 집어삼키고 남는 건 오물통에 쏟아부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바닥에 대고 깨버렸다. 사방에 죽 묻은 조각이 떨어졌다. 아잘이 그 소리를 들었을까? 그 망할 것이 청각은 그녀만큼 밝지 못하다. 혹시 아잘이 기척을 숨긴 채 숨어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도 구석에 숨어 나를 보려보고 있지는 않을까? 소녀는 심장소리, 호흡과 근육이 꿈틀거리는 소리를 탐지했다. 잠시 후 테레사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잘은 이곳에 없다. 마스터 옹켈도 사라지고 없었다. 테레사는 그 자리에 쓰러져 흑흑느꼈다.



'이제 아잘이 올 거야.'



그녀는 이빨을 딱딱 부딪혔다. 아잘은 그녀보다 어둠 속을 잘 볼 수 있었다. 테레사는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녀만큼은 다른 어쌔신들처럼 그녀의 위치를 파악하고 또렷한 방향으로 걸어온다. 아잘은 어둠시를 가지고 있다. 테레사가 그녀를 분간할 수 있는 건 소리, 소리뿐이다. 아잘은 테레사가 볼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 암흑을 헤엄치다가 온다. 그 주먹에 맺힌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피 냄새로 덮히기 전에, 아잘의 주먹에선 미약한 군중, 사람들의 냄새가 났다. 그 속에는 젠의 냄새도 났다.



'아잘과 젠은 친구 사이일까? 젠이 이 사실을 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젠은 그녀에게 아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젠도 아잘처럼 어둠시를 가지고 있다. 깜깜한 구석에서 그녀를 먼저 찾아낸 것도 젠이다.



테레사는 아잘의 어둠시가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잘은 그녀의 신체 구석구석의 위치를 매번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격노에 휩싸여 다른 감각이 혼란한 와중에도 그녀의 어둠시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잘은 방안의 사정을 파악한 즉시 전에 없이 매서운 주먹으로 테레사의 복부를 가격할 것이다. 아잘은 테레사의 어둠시가 형편없음을 안다. 기껏해야 한순간의 윤곽을 파악하는 정도에 불과한 테레사의 눈은 바로 앞에서 아잘이 증오서린 눈빛으로 노려보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아잘은 소리없이 걸어와 구타를 시작하는 첫 주먹을 복근없는 아랫배에 꽂을 것이다. 조금은 복근이 생겼을까? 테레사는 아랫배를 만져보았다. 설령 복근이 있다 해도 아잘의 주먹 앞에서 그것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아잘은 돌연 기척을 숨기고 사라져서 그녀가 폭력이 끝났다고 생각해 안심하는 지점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 뒤에 온몸의 긴장을 풀고 울고있는 테레사의 턱주가리에 온 체중을 가해 돌려차기를 먹인다. 기절해 깨어나면 언제나 그렇듯이 마스터 우굴의 잔잔한 목소리가 자비없는 수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아잘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년은 언제나 게으름만 피우죠. 영원히 자도록 내버려두세요."



돌조각이 날아왔을 때에야 테레사는 아잘의 폭력이 멈췄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마스터 어쌔신이 오기 전까지는 아잘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그녀는 확신할 수가 없다. 마스터 웅켈은 방을 떠났지 않았더라도 그녀를 돕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나마의 기댈 구석도 기대하지 못하게 완전히 이 방을 떠나버렸다.



작은 생쥐만한 크기의 마스터 웅켈은 부드러운 품 속에 칼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소리를 내지 않는 어쌔신의 천천한 발걸음으로 열 일곱 걸음을 걸었고, 낮고 좁은 출구로 빠져나가서는 빛이 들지 않는 복도로 묵묵히 사라졌다...



...테레사는 두 눈을 떴다.



'...어떻게 내가 그걸 알 수 있었지?'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리도 시야도 불분명한 곳에서 어떻게 옹켈이 사라진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어느새 옹켈이 보이지 않는 부분의 어둠 속을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좁아보이던 방안이 지금은 두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만큼 넓어보였다.



테레사는 눈앞에 손바닥을 펼쳐 흔들었다.



앞이 보이고 있었다.



벽이 보이는 곳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그곳에 벽이 만져졌다. 깨진 죽그릇이 보이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 깨진 나무조각과 미지근한 귀리반죽이 만져졌다. 그녀가 보여서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곳에 실제로 그것들이 놓여있었다. 테레사는 일어나 얼마간 걸어보았다. 아무리 걸어도 그녀는 벽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았다. 벽이 보이는 곳에 정확하게 벽이 있었다. 갑자기 벽의 위치를 확신할 수 있게 되면서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펄쩍 뛰었다.



'이게 어둠시(示)야!'



구석에 놓인 오물통을 제외하면 방안은 부스러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모든 면이 매끄러운 회색 돌로 정확히 정육면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출구가, 출구가 보인다!



테레사는 출구까지 기어가 긴 복도 밖으로 머리를 뺐다. 근처를 지나가던 어쌔신 한 명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를 무시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버렸다. "소녀가 어둠시를 얻었도다..." 킥킥거리면서. 미궁 속은 평평하고 깨끗한 사암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테레사는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어두운 곳을 깨끗하게 관리하려면 얼마나 새심한 빗자루질이 필요할까?


그녀는 옆구리를 움켜잡았다. 아잘의 발가락이 아직도 등어리에 박혀있는 것처럼 아팠다.



'아잘이 올 거야.'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손으로 더듬지 않고도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깨달았다. 이렇게 어쌔신으로 한 걸음 다가간 걸까? 어쌔신이 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나가는 어쌔신들은 그녀가 방을 빠져나왔음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눈치였다. 이곳에 사는 쥐들은 모두 어쌔신이다. 그들은 본인들만이 아는 규율에 매진하며 살았다.



미궁의 구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궁은 넓었고, 넓고 넓었다. 어쌔신들은 발에 채일 만큼 많았고, 곳곳을 제 집마냥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정해진 장소에 기거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방에서 잠을 자다가 어느 날은 그냥 복도에서 잠을 잤다. 마스터 우굴이 말한 규칙이 떠올랐다.



'네가 숙원을 이룰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이 그런 뜻이었단 말이야."



바보처럼 같은 방안에 갇혀있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왜 그걸 몰랐을까? 근처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에 테레사는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소리가 아닌 두 눈의 똑똑한 시야로 마스터 웅켈의 쪼막만한 쥐새끼 모습이 오른쪽 발목 뒤에서 보이고 있었다. 웅켈의 빛을 반사하는 짐승의 눈에서 기쁨의 빛이 번뜩였다.



"잘 했어."



그러면서 테레사의 발목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려주었다.



'내가 그 나쁜 자식을 엿먹였어!'



한참 뒤에 아잘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테레사는 그 속에 섞인 당혹을 즐겼다. 어둠시를 활용해 미로 구석구석을 갈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도망친 사냥감을 쫒듯이 성난 목청소리가 미궁 속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테레사가 그 방을 빠져나오고 한참 지난 뒤였다. 구석에서 어쌔신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그녀는 좁은 방 안에 숨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곳에 처박힌 이후 들었던 중에 가장 감미로운 음색이다. 이 신나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젠을 찾아갔다. 잠시 후 젠이 들어왔다. 달려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내가 그 망할 자식을 어떻게 엿먹였는지 들어봐!"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왔다. 볼에 닿는 굳은살의 감촉이 익숙했다. 아잘의 주먹이었다.



'젠장, 발걸음을 착각했잖아!'



테레사는 어금니만큼은 빠지지 말라고 기도하면서 입안을 악물었다. 아잘은 그녀가 바닥으로 기어가 웅크릴 때까지 주먹을 날렸다. 사정없는 발길질이 날아왔다. 그렇다면 젠은 지금 어디있을까? 어서 이 소식을 알려주어야 할 텐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대화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테레사는 미소를 지었다. 아잘의 어둠시는 거기까지 밝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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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5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6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6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6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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