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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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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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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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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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DUMMY

늑대아이가 보고 오겠다고 달려가더니 말없이 솔숲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서둘러 달려가보니 갑자기 "왁!" 하면서 어깨를 확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클리셰와 개니쿠스였다. 알고보니 그곳에 마을 식구들이 대부분 다 와있었던 것이다. 달려가서 하나하나 모두 손을 붙잡고 인사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문득 위를 보며 도대체 이 쟁기며 도리깨, 낫 같은 것들은 왜 챙겨온 거냐고 물었는데, 들어보니 그들은 바실리쿠스가 게랙탱의 음모로 인해 끌려갔던 사정을 모두 전해듣고 밤에 몰래 처들어가려고 오는 길이었다. 쟁기며 도리깨 하는 것들은 혹시나 해서 슬쩍 챙겨왔다고 했다.



이에 바실리쿠스가 나서서 모두 만류하고 지금까지 도대체 저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설명하자 사람들은 정말 기막힌 이야기라고 탄식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아돌아온 것이야말로 정말 호랑이 굴에서 기어나온 격이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물론 바실리쿠스가 어떤 이야기를 더 하고 하지 않았는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클리셰가 자기 등에 훌쩍 태우고 신이 나서 이쪽저쪽 걸어다니다가 무겁다고 바닥에 쿵 내려버렸다.



"아니 나흘 감옥에 갇혀있던 사람이 여전 이리 무거운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우리한테 했던 말들이 모두 허풍은 아니겠죠?" 그녀는 이번에는 말레이카를 등에 태우고 앞발을 번쩍 들면서 춤추듯 걸어다녔다. "언니는 이렇게 가벼운데 말이지. 아닌 게 아니라 나흘 굶었다고 오빠가 가벼워질 거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네!"


"그래도 나 좀 홀쭉해진 것 같지 않아?"



저렇게 눙치는 말을 들으니 바실리쿠스는 지금껏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다가 놓여난 기분이 들었다.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묻자 다들 그럴리가 있겠냐며 비웃었다.



말레이카는 민토네와 만나자마자 모녀가 하듯이 껴안고는 만나는 사람마다 다가가 정신없이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군중 속에서 혼자 앉아있는 안나를 발견하고 혹시 저 애가 또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깰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레할드(4화에서 쿠미누스를 또라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 바실리쿠스와 말레이카가 사라지자 사람들을 선동하고 여기까지 인솔해 데려온 것도 바로 그였다) 가 바실리쿠스를 옆에 앉히고 어깨에 팔을 턱 걸었다.



"네가 고생이 정말 많았다. 지들 맘대로 잡아가더니 지들 맘대로 풀어주고 순 미친새끼들이네!"



이것이야말로 이번 이야기의 교훈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말에 다들 또 한바탕 웃었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겁니까?"



군중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다들 걸어온 걸음이 뻘쭘해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그 말에 안나가 모든 일이 잘 풀렸으니 어서 집이나 가자는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큰소리나게 일부러 하품을 해댔다.



"그럼 이제 돌아갑시다."


"그럽시다!"



하고 한 무리의 변신술사들이 무릎을 끙 하고 일어나 안개에 휩싸인 산언덕을 내려갔다. 여전히 이 산속을 떠도는 영령들이 있을지 몰라 다같이 합장하고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그들에게는 지금 잡혀간 식구들이 돌아온 것 외에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는 길에 바실리쿠스가 민토네에게 다가가 웃으며 등어리를 콕 찔렀다. 빈부미는 어디있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옆에서 늑대아이가 자기가 집에서 빠져나올 때도 자고 있었다고 그 아저씨는 맨날 잠만 자는데 일어나면 우스운 얘기를 좀 하다가 다시 잠만 잔다며 웃었다. 민토네가 혀를 쯧쯧 차고 말을 받았다.



"이 기회에 너도 교훈을 얻었겠지?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이게 다 그 쿠미누스 사제놈이 너한테 놈들을 순순히 따라가라고 말을 해서 일어난 일들이잖아. 아니고서야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었겠어? 그놈들이 수도원 수사가 아니라 도적 무리였다면 어쩔 뻔했냐고.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들은 무턱대고 믿지 마. 그리고 쿠미누스가 하는 말이랍시고 무조건 네네 하면서 따르지도 말라고. 그 사람이 죽으라면 죽을 거야? 너도 이제 나이가 나이이니 만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살아야 할 터인데, 평생 돼지치기 짓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제 몸 하나 건사하기 바쁜 괴팍한 시골 사제한테만 붙어먹지 말고 좀 더 큰 사람들한테 알량방구도 뀌어보고, 하다못해 천한 하인이며 경비같은 것들한테도 웃으면서 잘 대해주고 어떻게든 인맥을 얻어놓아야지."



하고 가장 편한 돼지의 모습을 한 채 뒤뚱거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쿠미누스가 내려오며 바실리쿠스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잔소리를 참을 수 없었던 바실리쿠스가 그들을 먼저 내려보내고 자기는 위로 올라가 언덕 둔치에서 쿠미누스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쿠미누스는 원장이 너를 풀어주었으니 어서 따라가보라고 말을 하였는데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있어야지, 하며 수도원에서 챙겨온 빵과 말린 무화과 치즈 덩어리를 꺼내 같이 먹었다.



안개가 산속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쿠미누스는 말끝마다 원장이 얼마나 심한 변덕을 부리는 놈이며 성구보관실에서 경비를 서는 동안 늙은 수사들이 했던 별별 시답잖은 말들에 대해 불평해댔다. 어떤 수사는 이게 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하느님의 경고라면서 그를 붙잡고 몇 시간이나 똑같은 설교를 수십번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맛있게 먹으면서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일부러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쿠미누스가 그럴 바엔 어차피 늦었으니 잠시 쉬다가 가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들은 언덕 위 보기좋게 솟아오른 둥근 바위에 걸터앉아 아까 담장 안에서 헤어지고 난 뒤 서로에게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면서 시간을 보냈다. 벌써 아침이 되어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편 에레디오스의 한 차례 격렬한 분노를 경험한 뒤 잠을 못 이루며 시녀들도 물리고 아까 그 숙소에 홀로 누워있던 쉬레 백작부인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한참 대답이 없다가 한결 유순해진 에레디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고개를 밑으로 숙인 채 아까의 무례를 용서해달라고 빌러왔다며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로 서있었다. 헨나프리데는 조용히 문을 열어주고 침대에 앉도록 했다. 그러면서 그 몸짓의 태와 시선의 방향을 유심히 바라보았더니 그 잠깐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에레디오스의 내면 속에 깜짝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겉으로만 봤는데도 속속들이 알게되었다. 잠시 후 본인도 그 옆에 앉았다. 그들은 끊겼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에레디오스는 그 얼굴을 바라보니 밤에 보았던 것보다도 훨씬 늙어보였다. 그러면서 침대맡에 걸린 벽거울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이렇게 늙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축 늘어진 얼굴이 보여서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잠시 후 다시 보았더니 헨나프리데의 눈은 어느새부턴가 짙은 파란색이 되어있었다. 지금까지는 분명히 녹색이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고 잡아먹을 듯이 다가가서 다시 한 번 거의 노려보듯이 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조금 겁을 먹고 왜 그러느냐고 묻자 헛것을 보았다고 둘러댔지만, 이 일이 결정타로 작용하여 에레디오스는 그녀 앞에 완전히 고분고분하게 변해버렸다.



"그런데, 그 악마는 어찌 되었나요? 바실리쿠스라고 했었죠?"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 말에 에레디오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못 때고 있었다. 사람의 눈색이 갑자기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악마는 저였나 봅니다.



그들은 잠시 오늘 있었던 일들의 감상을 나눈 뒤에 적당한 인삿말을 나누고 헤어졌다.



'놓아주자. 바실리쿠스를 놓아주자!' 원장은 층계참에 서서 잠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속으로 외쳤다. '그녀석을 풀어주는 거야!'



헨나프리데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문간에 서서 계단을 내려가는 에레디오스의 축 늘어진 어깨를 바라보다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며칠 후 쉬레에 도착하자마자 편지를 작성해서 밀봉했다. 그것을 얼마간 간직하고 있었다가 세상이 온건하고 좀 더 따뜻한 계절이 왔을 때 좋은 길일을 골라 셀레미즈로 전송하고 본인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편지는 봄날이 따듯한 4월 16일에 도착했다. 망초 개망초 엉겅퀴가 무성해지는 시기였다. 봉인을 뜯으니 말 타고 오느라 안에 들어갔던 하얀색 망초꽃잎들이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원장은 받아든 편지를 읽으면서 몇년이 지났는데도 마음은 그날 그때의 그곳으로 돌아간 채 집중해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한 자 한 자 읽어내릴 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 읽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이럴수가, 바보같이 서로의 뒤꽁무늬만 쫒아다니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뭐가 그렇게 웃긴 지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어버렸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이 편지를 받고 당신이 두려운 마음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에레디오스, 당신은 또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어요. 허나 그 이상 심란한 마음을 더해드렸다간 마음에 상처를 입고 병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주저하였으니, 이런 저를 비난하지 않으시겠지요. 그 생각만 아니었더라면 저는 그날 당장에라도 당신을 붙잡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뒤 우리 모두의 커다란 짐을 내려놓을 속셈이었어요. 오프레드는 죽은 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저를 괴롭히고 있지요.



그 사람의 이름이 나와서 놀라셨나요?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형님에 대한 당신의 존경을 꺼트리지 않도록 기도하며 말하건데, 아쉽게도 오프레드 역시 우리의 수십년 간 이어온 기만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이에게 빚을 진 셈이지요. 참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 전까진 침대에 누운 채 자기 아들딸도 못 알아보고, 끙끙 앓으면서 용변만 지리던 그 사람이 죽기 사흘 전날밤이 되어서는 요양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채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그 고백을 듣고 마음이 상한 건 아니었지만(무조건 아니라 하면 거짓말이겠죠) 지금껏 살아오면서 생각해보았는데, 결혼한 후는 물론이고 결혼하기 이전에도 자신은 그렇게 헨나프리데 당신을 사랑한 것 같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겁니다. 기가 막혔지요.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언제부터였나 물으니 14살 쯤 부터라고 하는 건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그래서 틈만나면 여자를 부르고 놀아났냐며 제가 따지고 들었겠다 생각하셨겠죠? 저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물을 흘릴 분별은 있는 여자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화가 난 건 나중이었죠.



그 때 이 사람이 깜짝 놀랄 말을 했어요. 자기가 나하고 결혼을 했던 건 모두 에레디오스의 탓이라고요. 왜냐하면 오프레드는 그간에 당신을 정말 무서워했거든요. 당신은 그이보다 키도 크고 근육질이었으니까요. 오프레드는 당신에게 얻어맞고 형의 체면이 무너질까봐 언제나 두려워하고 있었대요. 그이가 형으로서 권위를 세울 수 있었던 건, 에레디오스의 서툰 손길에 아파하는 헨나프리데를 지켜주러 달려갈 때 뿐이었어요. 나를 괴롭혀줄 에레디오스가 없어지자 헨나프리데의 매력은 온데간데 없어졌다는 결말이에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며칠간 곰곰히 생각해보았어요. 내가 그놈의 무덤에 몰래 침을 뱉었다는 사실을 지금 당신한테만 알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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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여우들 (2) 24.08.22 2 0 13쪽
80 여우들 (1) 24.08.22 5 0 12쪽
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5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6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8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6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6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8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6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6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6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5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5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5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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