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최근연재일 :
2024.08.22 20:35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606
추천수 :
26
글자수 :
426,357

작성
24.08.16 15:32
조회
4
추천
0
글자
11쪽

못된 것들 (3)

DUMMY

그들은 가스파르에게 시큼한 호밀빵 한 조각이라도 더 때어서 주었고, 다른 아이들이 먹을 고깃덩이를 뺏어가지고 "공부 열심히 해라!" 하며 장자 가스파르에게 하나를 더 얹어주었다. 어디 구석에 미친 약장수가 하나 와서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라도 있다 하면 속아주는 척 하면서 몇 가지를 사와 조금식 먹이면서 혹여나 아이가 어디 병에 걸려 공부라도 못 하게 되면 큰일이라 틈만나면 노심초사하였다.



근래에는 교회에서 아이들 가르쳐주는 서당에 잠시 일이 생겨 몇 주간 파하고 있었는데 그동안은 못 놀았던 것이나 실컷 놀으라고 잠시 아이를 풀어놓았지만 그래도 해 저무는 저녁까지는 돌아오도록 단속을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에 가스파르의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더니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침대에 누운 노모가 씩씩거렸다.



"네 마누라라고 하는 그 미친 괴물을 좀 봐라. 아이가 한나절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찾기는 커녕 그 여동생이란 걸 옆에 끼고 지금 어디서 게으르게 서방질 오입질을 하고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구나. 늙은 애미는 굶어 죽는 거다."


"어머니, 가스파르는 어디 있습니까?"


"그 애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 게 뭐란 말이냐. 이놈이고 저놈이고 이 늙은이를 잊어먹고 방치해둔다는데 그 어린 새끼가 어디서 뭘 하든 내 알바란 말이냐?"



그러면서 꺽꺽 소리를 내고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노모를 보살피도록 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때마침 아내와 처제가 장녀를 데리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그들 역시 가스파르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기가 막혔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각 잡고 뭐라 하자 아내와 처제도 한바탕 대거리를 하고 나섰다. 이러다가 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서 장녀가 낮에 돼지치기네 아이와 손을 잡고 밖으로 놀러 나가던 걸 보았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여자질이라니!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대번에 그들 사이에서 가스파르를 데려간 그 여자아이는 사람 잡아먹는 미친 화냥년이 되어있었다. 가스파르의 보호자들은 그 말에 기겁하여 몽둥이를 들고 "화냥년, 잡아라, 잡아라!" 하면서 헐레벌떡 아이를 찾으러 무작정 뛰쳐나갔다. 그리하여 이렇게 된 것이다. 그들은 어느 산속 깊은 골짜기에 이르러서 마침내 가스파르와 돼지치기의 딸아이가 정답게 앉아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아이들은 우물쭈물 하는가 싶더니 자기들끼리 입술을 한 번 마주치고는 사지를 비비 꼬아댄다. 어른들은 보고 웃음부터 실실 나왔다.



"역시 우리 아들이 능력이 좋아."


"저 어린 것들이 벌써부터 저런다면 큰일인데 말이지."



그렇게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단숨에 덮쳐들어 현행범으로 여자아이를 체포하였다. 멱살을 붙들고 남의 집 아들을 꾀어간 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제법 곱고 반반하나 반항적인 기색이 죽질 않아 건방지기도 하여 대뜸 잊었던 화가 치밀었다.



"성모 마리아님의 이름으로, 너 같이 발랑 까진 계집애는 도대체 누구 염통에서 기어나온 자식이란 말이냐? 그 애비가 그 자식이라더니 꾀 부리는 제주가 돼지치기놈 못지 않는구만. 이거 사람이 아니라 사람 꾀는 여우새끼구만?"



그 말에 테레사가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데 갑자기 죽은 듯 소리없이 고분고분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오직 본인들만의 화에 집중하여 할 말 아닌 말 구분 못 하고 막 해대다 보니 저쪽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감히 그런 개 같은 말을 하느냐!"



고개를 들어보니 복면을 쓴 두 괴한이 가스파르의 멱살을 한 쪽씩 잡고 성큼성큼 걸어오는데 누가봐도 바실리쿠스와 쿠미누스가 분명해보였다. 그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아이들을 바꿔잡고 애 교육이나 똑바로 시키라는 둥 서로를 향해 무지막지한 욕을 내뱉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서로를 향해 그 어떤 모욕과 침 뱉기를 던져대었는지 여기서 세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말싸움이 차차 주먹다짐으로 옮겨가기 시작할 즈음에 그들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 사람들은 조용히 어둠 속에서 나타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아이들을 감싸고 어른들을 잡아세우며 그들의 부끄러운 행동을 훈계하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가스파르의 아버지인 로베르가 참다못해 물었다. "비록 밤이라 서로 간에 분간이 잘 안된다고는 하나, 당신들처럼 생긴 사람들은 듣도보도 못했소! 우리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자식새끼들 교육도 못 하게 참견한단 말이오?"



말레이카가 대꾸했다.



"나야말로 자식새끼 교육을 그런 식으로 하는 부모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했어요. 아저씨들도 부끄러운 줄 아셔야죠."


"내 이름을 아십니까?"


"알던 말던 뭐가 중요해요? 애들이 밤 늦게까지 집에도 안 돌아가고 제멋대로 있던 건 분명 혼나야 할 일이 맞죠. 그렇다고 애들이 지들끼리 손발 맞으면 짝짜꿍 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뭘 불러다세워서 이렇게까지 야단맞을 일이냐구요."


"아가씨 지금 짝짜꿍 한다 하셨소? 그거 참 잘 말하셨네."



가스파르의 어머니가 따지고들었다.



"손발이 심심할 때면 손발을 짝짜꿍 하면 되겠지만 나중에 커서 가랑이가 심심해지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그건 지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죠!"



그들 사이를 개니쿠스가 중재하고 나섰다.



"자, 이제 그만들 하십시다. 피차 부끄러운 행동을 한 건 마찬가진데 누구 잘못이 더 크다 할 수 있겠소? 말레이카 너도 말을 너무 심하게 해서 사태를 공연히 키우지 마."


"아니, 왜 그런 말을... 오빠는 지금 누구 편이야? 어른 셋이서 요 쪼만한 애 하나 붙잡고 그런 말들을 해대는데 나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건 무슨 주문이지?"



뒤에서 클리셰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언니 조금만 말을 조심하자. 잠시 머리 좀 식혀요? 이러다가 큰 싸움이 나면 어떡해."



잠시 후 말레이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지 않으려 말싸움을 하다 보니 지금 자기 혼자만 신나게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치도록 부끄러웠지만 이내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너는 뭐가 어떻게 되든 싸움 하나만 안 나면 다행이겠지. 여기서 제일 정신나간 년이 나라는 거네. 클리셰 너는 애초에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이니 그렇다 쳐도 여기서 누구하나 나랑 같이 싸우고 소리를 질러주는 사람이 없는 건 내가 인생을 헛살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너희들이 그냥 나를 싫어하는 건지도. 머리를 식히긴 누구 머리를 식히라는 거야? 내 대가리는 지금 아주 냉정하고 침착해!"



그러더니 몸을 돌려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바실리쿠스가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저러다 그만두겠지."



그는 한바탕 싸운 일도 있고 오늘따라 말레이카의 성격이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난히 차갑게 내뱉었다. 만약 여기서 여인네 하나 기분 풀어주려고 달려갔다간 상대방 놈들에게 책잡히리란 계산 또한 있었다. 그런데 말레이카가 그 말을 듣고 말았다. 그녀는 클리셰의 말대로 한쪽에 앉아서 아무 말 없이 사태를 지켜만 보고 있을 작정이었는데 바실리쿠스가 그렇게 말을 하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홱 하고 일어나 단숨에 산 아래를 내려갔다.



"자, 그러면 우리 이렇게 하시죠."



어둠 속에서 엘로이즈가 옥구슬처럼 또르르 둘러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이 애들이 둘 다 경솔한 짓을 했다 치고요. 서로 본인 아이들을 단단히 훈계하겠다 약속하고 이쯤에서 헤어져요. 우리 모두 내일의 할일이 있는 사람들인데 조막만한 애들 때문에 이 밤에 다 같이 힘을 빼는 건 능사가 아닐 겁니다. 애들 때문에 어른들이 싸워대면 이게 무슨 이치인가요?"



로베르와 일행 역시 아이 문제가 아니면 평소 정답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대번 그러자고 했다.



엘로이즈가 힘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이에 앙금이 풀리지 않은 듯 하니 길 가다 서로 밀치닥거리는 수가 있지 않겠어요? 따로 떨어져서 내려가도록 합시다. 우리 일행의 아이가 먼저 내려간 듯 하니 이쪽은 우리가 가고 로베르 아저씨는 다른 길을 찾아서 내려가보도록 하세요."



이 때 바실리쿠스가 클리셰를 쿡 찔렀다.



"엘로이즈 누님은 언제 여기까지 오셨대?"



찔린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이 사람 좀 봐! 다짜고자 어디를 찔러대는 거야."



알고보니 클리셰가 아니라 코넬리아 (25화에서 말레이카와 잠시 언쟁을 벌였던 그 사람 ) 였다. 바실리쿠스 역시 화들짝 놀라 두 손을 들고 빌었다.



"절대로 넌줄 알고 그랬던 건 아니었어. 그렇다면 클리셰는 어딜 간 거지?"


"공연히 사람 옆구리를 찔러놓고 왜 딴청을 피워요? 아저씨는 정말 부끄러움도 없는 거야."



바실리쿠스가 웃으면서 얼렁거렸다.



"내가 언제 딴청을 피웠다고 그래. 나도 너 못지 않게 놀라서 그런 거였어. 미안하다, 미안해! 그런데 정말 클리셰 이 애는 어딜 간 거지 갑자기 보이지를 않네. 엘로이즈 누님이 제작년에 결혼을 하셨는데 갑자기 여기 오셔서 이상해가지고 물으려던 거였어."



코넬리아가 빈정댔다.



"그걸 아직도 모른단 말이에요?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좋은 얘기 아니니까. 지금 한 번만 말해줄 테니 똑똑히 듣고 어디 가서 내가 말했다고 그러지 말아요. 저 언니가 어느 사내 하나랑 눈이 맞아서 인간세계로 훌쩍 떠나버렸던 건 기억하시죠?"


"그래, 그건 분명히 기억해. 여기서 오십 킬로미터를 걸어가면 나오는 산림마을로 가셨지. 꽤나 외지고 으슥한 곳이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축하하면서 눈물을 흘렸었는데."



코넬리아는 길게 장탄식을 했다.



"작년에 그토록 원하던 아이 하나를 속에 뱄는데 악마가 끼어들었는지 결국에는 낳지 못했죠. 그러다 남편마저도 병을 얻고 죽어버려서 청상과부가 된 거예요. 그동안 거기 사람들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지 살갑게 지내지는 못했는가봐요. 아마도 무슨 요괴나 사람으로 둔갑한 신령이랍시고 좋은 말을 듣진 못했을 거예요. 그러다 며칠 전에 죽어도 사람세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여기 다시 돌아와 우리들이랑 같이 살게 된 거예요."



바실리쿠스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런데 어찌 이 멍청한 놈은 여태까지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며칠 전에 같이 인사를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건 오랜만에 고향집에 들르는 정도인 줄 알았지 그런 사연이 있었는 줄은 정말 몰랐어."



코넬리아가 그를 비웃었다.



"그렇게 남 사정에 어둡고 눈코귀 딱 막고 있는 양반이니 다른 사람의 심정따위 알고 다닐리가 없죠."


"아니 너는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글쎄요? 내가 왜 이러는지 한 번 맞춰보던가?"



그러면서 돼지 발굽을 톡톡 하듯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 때 그들의 뒤를 붙잡고 왁살스레 지껄이는 사람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1 여우들 (2) 24.08.22 2 0 13쪽
80 여우들 (1) 24.08.22 4 0 12쪽
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4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5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5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3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5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5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5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6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5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4 0 11쪽
59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4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4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5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5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