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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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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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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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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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DUMMY

"이놈들이 주는 것을 너무 달갑게 여기진 말자고."



용병들 가운데 누군가가 말했다.



"틀림없이 꿍꿍이가 있을 테니까."



이 같이 비루한 산적떼와 놀다가는 신세를 망치는 수가 있다. 그래서 그들도 최대한 로루아르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로루아르는 용병들이 목마르고 굶주려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로루아르는 참 교활했다. 날마다 술이며 고기며 같은 것들을 한 두어 줌씩 주면서 갈증나게 만드는 솜씨는 집요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이 가여운 이방인 무리는 하나둘씩 술과 고기 냄새에 이끌려 로루아르를 찾아갔고, 산적들은 당연히 형제처럼 맞이해주었다. 날마다 함께 불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고성방가를 지르고 벌거벗고 성기를 드러내면서 춤을 추고 살다보니 어느날은 자기들이 로루아르를 따라 인근 마을을 약탈하고 여인들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그러면 이제 거리낄 것도 없겠다!'



이리하여 이 호색한 용병 무리가 로루아르의 산적단 휘하에 합류하여, 고향에서 입고다니던 갑옷과 칼을 벗어던지고 이 고장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때쯤 그들은 곤궁하고 투박한 생활 속에 로루아르의 곱상한 외모를 숭앙하기 시작했으므로 입단 조건으로 본인들의 대장과 말 한 마리, 그리고 가져온 무기들을 내놓으라는 말에 모조리 동의해버리고 말았다. 날마다 말발굽을 신나게 달리며 이 지방 땅의 영주와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약탈품을 핥고 빨고 다니다가 얼마 전 가레랑한테 혼쭐이 난 다음 본대에서 멀리 떨어진 이 산까지 도망쳐온 것이다. 몇날이 지났지만 로루아르는 구해주러 올 생각도 없고 용병단은 고립되었다.



그날부터 거지처럼 산골 곳곳을 떠돌다가 여기 이 셀레미즈 수도원을 발견했다. 며칠 전부터 이곳의 동태를 파악하고 혹시 기회가 없을까 호시탐탐 노리던 차였는데, 그것도 정면으로 들어가자는 건 아니고 몰래 담을 넘거나 해서 술과 밥이라도 좀 뺏어오자는 것이다.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점심저녁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는구나. 특히 최근 며칠은 더 심했는데, 밥이라곤 칡뿌리에 개구리를 잡아먹고 다니던 참이라 그들도 참고 참다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사람고기라도 먹을 판이다. 그런데 오늘밤 갑자기 성벽 안쪽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헐레벌떡 뛰어나와서 "불이야, 불이야,"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한 명이 가까이 가서 보니 성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기회다!" 용병들이 하나같이 소리쳤다. "지금이야말로 저 수도원에 처들어갈 때야!"


"이새끼들 다 죽여버리자!"



총원 열 넷이었다. 이만한 사람들이 갑옷에 무기까지 들면 하나님도 두렵지 않은 것이다. 중놈들이 무슨 칼을 들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불길의 빛이 세어나오는 입구에 서자마자 조금 주춤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면으로 들어가면 초장부터 들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조용히 옆으로 한참 돌아서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넘어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따지고 보면 저건 다 나 때문이야."



그 모습을 보면서 바실리쿠스가 중얼거렸다.



"내가 아니었으면 불을 지를 필요도 없고, 저렇게 산적놈들이 처들어갈 일도 없었을 테지. 지금 나만 살자고 혼자 도망갈 수는 없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 힘겹게 내려온 그 언덕을 다시 뒤뚱뒤뚱 올라가고 있었다. 산적들은 밖에서 망을 보다가 나갈 때 사다리를 올려줄 사람을 벽 아래 한 명 남겨놓았다. 기회를 보다가 놈을 덮치려 했지만 되려 놈이 칼을 뽑아서 위기에 처하고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괴성을 지르면서 갈비 사이에 칼을 꽂으려고 달려오는데 마침 쿠미누스가 뒤에서 접근해 탄탄한 팔로 목을 감아 질식시켰다. 산적은 끽끽 소리를 내다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놈의 옷을 벗기면서 바실리쿠스가 물었다.



"기절한 건가요?"


"나도 잘 모르겠다." 쿠미누스가 가슴에 성호를 그으면서 대답했다. "오오, 숨은 쉬는구나. 기도는 해주지 않아도 되겠어. 이런 놈에게는 사치지!"


"....다른 애들은요?"


"저기 입구를 봐라. 그 애가 산적들을 보자마자 위험을 알리려고 달려갔어. 니가 살리려고 하던 돼지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가 않더구나. 그 로드렉인가 뭐가 하는 놈은 겁이 났는지 중간에 도망치고 말았지. 지금 여기는 우리뿐이다. 그거 아주 겁쟁이 녀석이더구나!"


"로드렉은 원래 그런 애였죠. 녀석이 용감해지는 순간은 불을 지를 때 뿐이에요. 평소답지 않게 대범해진 걸 보고 짐작했어야 하는 건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겁을 내고 도망치는 것이 놈의 본성이에요!"



바실리쿠스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저는 사람들이 뒤에서 녀석에 대해 수근거리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죠. 그것들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부정하지는 않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잘한 일이었네요."



사제는 도망친 로드렉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다만 대답없이 축축해진 눈망울로 미소를 지으며 바실리쿠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사제님?"



사제는 방금 전 목을 감아서 사람을 질식시킨 팔로 바실리쿠스의 퉁퉁한 팔뚝을 강하게 두드려주었다.



"바실리쿠스, 바실리쿠스야! 지금 내가 너에게 진실로 감동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첫째는 너의 용기 때문이야. 둘째는 너의 신앙 때문이지. 셋째는 너의 정직 때문이고 넷째는 바로 나의 의심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아까 네가 갑자기 원장 앞에서 죄를 시인하는 바람에 어느정도는 너를 의심하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 네가 보여준 행동이야말로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라는 인간의 순수를 보여주는구나."



그는 갑자기 안색을 바꾸더니 엄숙하게 선언했다.



"수도원은 하느님이 머무는 곳이다. 망설임 없이 달려온 너의 용기를 축복하겠다. 너는 분명히 지옥보다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을 것이야. 사제인 내가 보장해! 평소 행실을 보아하니 천국은 무리겠지만 연옥까지는 틀림없어! 내가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다는 것만 명심해라."



그렇게 돌연 찾아온 본인 감정에 흠벅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 바실리쿠스의 마음 속에 공연한 반항심이 싹트고 말았다. 그렇다면 말레이카나 민토네 사부님은 지옥행이라는 말인가?



"그렇게 말하신다 이거죠. 저는 연옥에 처박아놓고 본인은 천국에서 호의호식하겠다는 수작이네요. 그렇게 저를 배신하려는 속셈을 모를 줄 압니까? 사제란 사람들이 다 그렇죠, 뭐. 저는 안 속아요. 사제님 맘대로 그리 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아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사제님을 천국에서 끌어내려드리지요. 맹세하겠어요."



사제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바실리쿠스의 팔을 쥔 손에 꾸드득 힘이 들어갔다.



"너는 정말 나를 미치게 해!" 그가 바실리쿠스의 어깨를 부여잡고 막 흔들었다. "나를 미치게 해! 똥오줌을 구분하지 못하고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구나, 바실리쿠스....! 넌 지금 돼지의 신분으로 사제인 나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어. 이런 일의 결말이 항상 어떻게 끝나는지 네가 모르는 게 아닐 텐데? 말해봐라, 내가 뭘 어떻게 너를 속였다는 거지!" 지금 수도원 안쪽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 말의 어떤 요소가 너에게 그런 삿된 인상을 주었단 말이냐,이 돼지치기야. 냉큼 말하지 못해?"


"항상 그런 식입니다. 사제님은 항상 그렇게 본인이 다 안다는 식으로 굴어요. 그러니 작은 힐난을 들어도 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것이 아니라 되려 성질을 내고 상대방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격입니다. 허나 제가 배운 대로면 그건 아주 큰 오만이거든요. 거기다 따지고 보면 저를 돼지치기로 만든 것도 사제님이시죠. 그 작은 꼬마애 하나 가지고 딴지를 걸더니 저를 경비 자리에서 파면시켰잖아요. 제가 잊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오만!"



자기가 방금 들어놓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제는 두 눈에 핏발이 서고 양 손은 꽉 쥐면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만이라! ....그것만으로도 이 쿠미누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모욕이야. 인정하마, 바실리쿠스. 너는 나를 몹시 화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 내가 사제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너의 지방과 살코기는 도륙되었을 것이다. 이 사실 네가 모르는 네가 불쌍할 정도야. 내가 그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지금 너는 산적들의 공포로 정신이 나간 나머지 사리분별을 못 하는 게 분명해. 이 새끼, 나보다 산적이 무서운 거지!"


"물론 알고 드리는 말씀인데요. 따지고 보면 사제보다 산적이 무서운 게 세상 상식 아닙니까? 왜 그걸 모른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사제님은 언제나 저 같은 놈은 대번에 목뼈를 꺾어버리실 수 있으시지요. 사제님이야말로 제가 그런 것도 모르고 생각없이 내뱉는 놈으로 저를 모욕하신 줄은 아세요? 이로써 피장파장입니다. 사제님에게 그런 일을 할 배짱이 있는가는 둘째로 치자고요. 말씀하신 바를 생각해본 결과, 사제님보다 제가 더 많은 배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크다는 결론이 나오는군요. 요 퉁퉁한 배를 잘 보라고요." 바실리쿠스는 양 손으로 쫙 펴서 자기 배를 리듬감있게토도동 두드려보였다. "제가 사제님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너는 지옥행이야!" 사제는 본인에게 그걸 결정할 권위가 있다는 듯이 말을 바꿨다. "사제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지옥행을 면할 수 없어!"



그렇게 자기들 못난 성격대로 말싸움을 시작하느라 수도원 안쪽으로 들어가는 시기가 늦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쓰러진 산적의 옷을 모조리 벗겨서 무기로 쓸 만한 것들을 빼앗고 속옷바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주워입지 못하게 낭떠러지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런 다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 나중에 온 놈들이 쓰지 못하도록 넘어뜨렸다. 아직까지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칼을 한 자루씩 쥐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한편 수도원 입구에서 한창 물바구니를 나르던 수사들은 갑자기 왠 여자 두 명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오는 김에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할까 아니면 금남의 구역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위협을 해야할까?'



그런데 먼저 다가와서 지금 여기 산적들이 들어왔으니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여간 쌩뚱맞은 소리라 원래라면 웃어넘겼겠지만 지금은 워낙 비상사태고 안쪽에 불이 난 바람에 다들 머리 속의 위기회로가 발동했다. 그래서 확인해 보지도 않고 "불이야, 불이야," 하는 소리가 "불이야, 산적이야," 하는 소리로 금세 바뀌었다. 수사들은 불을 끄다말고 화들짝 놀라 몇몇은 여전히 물을 뿌리기로 하고 나머지는 헛간이든 곳간이든 아무대나 우르르 몰려가 쟁기며 도리깨, 장작 패는 도끼와 파이 자를 때 쓰던 마체테를 들고나왔다.



"이새끼들 감히 우리 수도원을 약탈하러 처들어오다니, 죽여버리겠어!"



평소 성질을 죽이고 살던 버릇이 원인일까 어찌나 화가 났는지 차마 성직자로서는 입에도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고 단체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벌써 세 놈이나 잡아서 때리고 옷을 모조리 벗겨놓은 것이다. 지금 마주친 몇 놈은 되려 칼을 들고 위협하면서 수사놈들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강짜를 놓았는데, 이것이 괘씸한 나머지 너무 때리다가 숨이 끊어지고 피부가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다들 그 모습을 보고는 무서워서 줄행랑을 쳤다.



남은 산적들은 이 사정도 모르고 여전히 식당 지하 고기칸에서 몰래 소시지를 까먹거나 성난 수사의 떼거리를 피해 보물이 있을만한 구역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점점 원내의 소란이 커지자 이들도 사정을 파악하고 다시 패를 규합한 다음 머리를 굴렸다.



"이러다가 다 죽겠다. 인원을 분배해야겠어. 지금 우리 남은 인원이 아홉이니, 일곱 명이 주의를 끌어서 밖으로 도망치는 시늉을 하자. 나머지 둘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숨어있다가 돈 될 만한 것들을 다 뽑아서 가져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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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여우들 (2) 24.08.22 2 0 13쪽
80 여우들 (1) 24.08.22 5 0 12쪽
79 가을밤의 산송장들 (3) 24.08.21 5 0 13쪽
78 가을밤의 산송장들 (2) 24.08.21 5 0 12쪽
77 가을밤의 산송장들 (1) 24.08.20 5 0 15쪽
76 네놈을 파괴할 거다 24.08.18 6 0 12쪽
75 흠모의 정이 피어올랐다 24.08.17 6 0 13쪽
74 오르베스쿠와 아르파니엘 24.08.17 6 0 12쪽
73 네놈들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24.08.17 4 0 12쪽
72 요 째리는 눈매 좀 보게나 24.08.17 7 0 12쪽
71 못된 것들 (3) 24.08.16 5 0 11쪽
70 못된 것들 (2) 24.08.15 6 0 11쪽
69 못된 것들 (1) 24.08.15 6 0 11쪽
68 느므딘의 어쌔신 (3) 24.08.15 6 0 12쪽
67 느므딘의 어쌔신 (2) +2 24.08.14 7 0 14쪽
66 느므딘의 어쌔신 (1) 24.08.14 5 0 12쪽
65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3) 24.08.13 5 0 12쪽
64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2) 24.08.13 5 0 12쪽
63 바보같은 이야기의 결말 (1) 24.08.13 7 0 11쪽
62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24.08.12 6 0 11쪽
61 당신이 무서웠어요 24.08.12 6 0 12쪽
60 이게 다들 참 어떻게 된 일일까 24.08.11 5 0 11쪽
» 여기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겠구나 24.08.11 5 0 13쪽
58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24.08.11 5 0 11쪽
57 누이야 내 말 좀 들어보렴 24.08.10 6 0 12쪽
56 저는 어리석고 소견없는 여인이라 24.08.10 7 0 11쪽
55 저는 악마숭배자입니다 24.08.10 6 0 12쪽
54 바실리쿠스가 고문을 받고 있어요 24.08.09 6 0 11쪽
53 콩가루 고문 (2) 24.08.09 4 0 12쪽
52 콩가루 고문 (1) 24.08.09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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