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름없는 무사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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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림
작품등록일 :
2024.07.29 20:14
최근연재일 :
2024.08.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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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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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조금 치는 루키와 썩은 물

DUMMY

저택으로 이동한 그들은 식사자리에 함께 앉았다. 어색하게 자리를 잡은 아랑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왜 나까지···’


카르마에게 감사를 표하는 나에른을 보며 올리비아는 아랑 역시 도움을 주었으니 대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딸아이의 고집과 카르마가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자 영주는 아랑을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귀한손님이 오셨으니 심문 같은 무거운 일은 차후에 하도록 하지요.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얼마만에 하는 풍족한 식사인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 그럼 잘 먹겠습니다.”

“많이 드세요. 아저씨.”


식사를 진행하며 영주는 종종 카르마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카르마 경께서는 어디서 기사 서임식을 치르셨습니까?”

“수도에서 치렀습니다.”

“오, 그럼 왕가의 근위기사십니까?”

“말단 중의 말단일 뿐입니다.”


카르마의 말에 아랑은 슬쩍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스스로 말씀하시길 제로 브레이커시라고···”


귀족과 기사간의 대화에 평민이 끼어들면 죽임을 당해도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랑이 중요한 정보를 던지자 나에른은 그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제, 제로 브레이커라면 백대 기사 중 뛰어난 자 다섯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저 이제 빛을 보기 시작한 루키들을 이르는 말일 뿐이지요.”


그 말에 아랑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동대륙에서도 특출한 후기지수를 지칭하는 말이 있었다. 한참 자신감이 붙고 호승심이 넘쳐날 때인데도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카르마가 아랑의 눈에는 대견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인성은 바른 놈인가 보군.’


“허어, 제로 브레이커의 칭호를 얻고도 이리 겸손하시다니··· 카르마 경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나에른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던 카르마는 그와 대화가 잠시 멈추자 아랑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아랑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쇤네가 주제도 모르고 입을 놀렸습니다.”

“아닐세. 자네는 본 걸 그대로 말했을 뿐 아닌가? 그리고 자네는 영주님의 사람이니 당연히 사실과 다른 게 있으면 보고를 해야지.”


그 말을 한 뒤 카르마는 나에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참으로 좋은 사람을 곁에 두셨습니다.”

“하하, 딸아이가 목숨을 구해줘서 그런지 충성심이 넘치는 자입니다.”


나에른의 말에 카르마는 아랑을 훑어보았다.


“육체를 단련하는 것보다 마음을 갈고 닦는 게 어렵다고 하지요. 이런 자를 위병으로 쓰는 건 어떠신지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저자를 눈 여겨 보았지요. 하지만 스미스, 저자의 심성이 유독 연약하여 무예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흐음, 아쉽군요.”


작게 한숨을 쉬던 카르마는 아랑을 보며 말했다.


“스미스라고 했나? 자네, 내가 직접 검을 알려줄 테니 검술을 익혀보지 않겠는가?”


그 말에 아랑은 사래에 걸려 기침을 했다.


“켁! 콜록콜록!”


용사시절 절정에서 초절정의 고수, 이곳에서 소드 마스터라 불리던 자들도 아랑에게 가르침을 얻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보다 한참 못 미치는 애송이가 자신을 가르치겠다고 하니 아랑은 미칠 노릇이었다.


“아, 아저씨! 괜찮으세요? 여기 물이요!”


물잔을 내밀며 올리바아가 아랑의 등을 두드리는 사이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검 얘기만 들어도 저리 경기를 하니 카르마 경께서 훌륭한 검술을 가르쳐줘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저는 저자에게서 용기를 보았습니다. 여러 명의 용병과 심지어 소드 엑스퍼트의 기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았지요. 그 기개라면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나에른은 카르마가 왜 아랑을 탐내는지 알 수 없었다.


‘저리 겁이 많은 자를 왜 탐내는 건지··· 어쨌든 사람을 가르치려면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야 할 터. 제로 브레이커가 영지에 머문다면 나쁠 건 없지···’


아랑의 기침이 잦아들자 올리비아는 무릎을 낮춰 아랑의 눈을 올려보았다.


“아저씨, 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시면 돼요.”

“저, 저는 검을 배울 생각이···”


아랑의 말에 카르마는 그의 말을 잘랐다.


“스미스,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어떻게 할 텐가?”


아무리 예전의 무위를 잃었다고 해도 그런 놈들 일백이 몰려와도 아랑은 겁이 나지 않았다. 아랑이 입을 다물자 카르마가 말을 이었다.


“무예를 익히면 자기자신을 지킬 수 있고 거기서 더 나아간다면 주변이를 지킬 수 있네. 자네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아 기회를 주려는 것이니 잘 생각해보게.”


그의 말에 아랑의 얼굴빛이 흑빛이 되자 올리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카르마 경, 죄송하지만 그만해 주세요. 아저씨가 많이 힘들어 하시잖아요.”

“네. 아가씨.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올리비아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뒤 그는 아랑을 향해 말했다.


“자네의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주는 첫번째 시련이네.”


식사가 끝나고 그들은 대화를 좀 더 나누었지만 어처구니없는 카르마의 말에 아랑의 귀에는 어떤 대화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내게 주는 시련?’


그렇다 이건 그에게 시련이었다. 지난 몇 년간 무공을 멀리한 그에게 눈앞에 있는, 범인은 들어 올릴 수도 없는 긴 돌로 된 밥상 머리를 엎느냐 마느냐를 저울질하는 극한의 시련이었다.


‘별 놈이 다 나대는 군···’


애송이들이 시비 거는 것 정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 자신을 가르치려 하는 건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영주가 올리비아를 불렀다.


“올리비아, 너도 스미스라면 곁에 두기 편하지 않겠느냐?”

“아저씨가 편하긴 하지만··· 아저씨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저자는 아가씨를 위해 목숨까지 던진 자입니다. 믿을 수 있는 자를 아가씨 곁에 두고 있으면 영주님도 한시름 놓을 수 있겠지요. 저는 그런 용기를 가진 자가 왜 검을 배우는데 망설이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올리비아의 시선이 닿자 아랑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참자.’


“그런데 영주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실례인 줄은 아오나 왜 저자를 아가씨와 가까이하게 두시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영주는 아랑에게 시선을 잠시 주더니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엇험, 딸아이와의 인연도 있고 또··· 어릴 적 사고를 당해 후사를 보지 못하는 몸이라고 합니다.”

“아아··· 그런 일이···”


자신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카르마의 시선에 아랑은 한숨을 쉬었다.


“스미스, 유감이네.”

“아닙니다.”

“그런 안타까운 일이 있으니 내 더더욱 자네를 그냥 둘 수 없네. 내일부터 당장 나와 수련하세.”


그 말에 아랑은 말을 더듬었다.


“저, 저는···”


아랑이 또 거절하려 하자 카르마의 눈이 번쩍이더니 곧장 영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영주님, 만일 저자가 제 제안을 받아드린다면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카르마 경. 스미스, 어서 카르마 경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게.”


제로 브레이커 정도의 실력자는 백작가에서도 사위를 삼고 싶어하는 인재였다. 그런 인재가 아무 조건 없이, 심지어 자신의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기위해 영지에 남는다고 하니 나에른은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저는···”


아랑이 입을 때자 나에른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무언의 압박에 그가 올리비아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아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나에른을 향해 말했다.


“아버지, 너무 강요하진 말아주세요.”

“정말 큰 기회가 아니더냐? 한낱 소작농이 제로 브레이커에게 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가당 키는 한 줄 아느냐?”

“누군가에게는 전사로서 영광된 삶을 사는 게 좋을 지 몰라도 어떤 이는 평범한 농부로서 삶을 원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버지께서는 항상 영지민을 살뜰히 살피셨습니다. 그들에게 그 어떤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으셨지요. 저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오필리아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자 나에른은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나에른의 말문이 막힌 사이 카르마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목숨을 구하고 지금과 같이 곤란한 상황에서 자네의 편이 되어주는 아가씨를 지키기 위한 힘을 원하지 않는가? 자네도 사내라면···”


잠시 말을 고르던 카르마는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험험, 자네가 은혜를 안다면 검을 배워 아가씨의 곁을 지키는 게 맞다고 보네.”


그 말에 오필리아가 아랑을 바라보았다. 항상 자신을 향해 빛을 내주던 그 눈동자에 기대감이 내비치자 아랑은 고개를 숙였다.


‘딸자식을 가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미친 검귀들이 흉터가 가득한 면상에 미소를 띄우며 딸자식과 함께 색동옷을 입고 공주놀이를 하던 모습이 떠올라 아랑은 고개를 흔들었다.


‘소저가 원한다면 이 정도 치욕은 감내 하겠소···’


***


아랑이 카르마의 제안을 받아드리자 나에른은 크게 기뻐하며 좋은 옷과 검을 내주었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지! 그리고 검은 잠시 내가 맡아두겠네.”


카르마가 검을 향해 손을 뽑자 아랑은 본능적으로 검을 뽑으려 했다.


‘헉!’


카르마의 행동이 너무 느려서 망정이지 그가 조금만 더 높은 경지에 있었다면 아랑의 손에 진작 목이 떨어져 나갔을 터였다.


턱.


카르마가 검을 낚아 채자 나에른과 올리비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대단한 신위요!”

“저는 카르마 경의 움직임을 보지도 못했어요!”

“하하, 별 거 아닙니다.”


카르마가 검을 가져가자 아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이 떨어질 뻔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카르마는 나에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훈련에 앞서 일단은 몸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기초체력을 다듬고 그 뒤 검술을 가르치려 합니다.”

“오오, 정말 기본부터 봐주시려나 보군요.”

“네. 아랑류를 가르칠 생각이니 기초부터 제대로 해야지요.”

“아랑류!”

“저, 정말 아랑류를 가르치신다고요?”


경악하는 두 사람을 보며 카르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 최강의 검께서 말씀하시길 아랑류는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하는 자가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랑류를 배우는 대가로 전승자들은 왕국을 떠돌며 이런 의인을 찾아 아랑류를 전수하는 의무를 부여 받지요.”

“오오, 정말 고귀한 검술입니다.”

“과연 용사님의 의지를 잇는 검술이라고 불릴 법하군요.”


‘제발 내 이름 갖다 붙이지 마···’


그들의 대화에 아랑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왕국최강의 검이라고 했으니 아마 그 망할 영감일 거다···’


언젠가 그 망할 영감탱이를 손 봐주겠다고 다짐한 뒤 아랑은 양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아랑류를 익히는데 신분이나 성별, 재능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랑류는 오직 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검술이니 말입니다.”


‘세상에 그런 검술이 어디 있나?’


겉멋만 든 애송이들이나 할법한 소리에 아랑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나에른과 올리비아는 카르마의 말에 감동을 받은 듯 계속해서 찬사를 쏟아냈다.


“검술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가문들은 집안의 검술이 유출되는 걸 극히 꺼립니다. 가문의 기사에게도 검술의 일부만 가르치니 그 폐쇄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왕국 최강의 검께서 만든 검술을 평민에게 전수하다니··· 정말 그 그릇의 크기를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어요.”


올리비아의 말에 카르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게 타대륙에서 건너와 이곳의 악을 처단하기 위해 희생한 용사 아랑소드의 행적을 존경하는 마음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나에른과 올리비아가 깊이 고개를 숙이는 사이 아랑은 자신만의 생각에 잠겼다.


‘검술을 쉽게 전수해주는 건 이곳의 기준에서는 혁신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는 시장에서 3류 무공서적 하나 구하지 못하는 이곳의 현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랑은 검술을 널리 알리는 건 좋은 행보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검술이 발생하고 대륙 전체 검술의 질이 올라갈 거라 믿었다.


한참동안의 찬사가 끝나자 카르마는 밝은 미소와 함께 아랑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일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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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웨버 백작 24.08.22 15 0 13쪽
24 웨버 성으로 24.08.21 22 0 12쪽
23 기사단 24.08.20 24 0 12쪽
22 정보 24.08.18 27 0 12쪽
21 그날의 기억 24.08.17 28 0 13쪽
20 부패 24.08.15 27 0 12쪽
19 도적의 여왕 24.08.14 29 0 13쪽
18 북새통 24.08.13 31 0 12쪽
17 신뢰와 상처 24.08.12 30 0 15쪽
16 도움 24.08.11 34 0 12쪽
15 현자를 찾아서 24.08.10 36 0 15쪽
14 푸른 탑 (3) 24.08.09 38 0 14쪽
13 푸른 탑 (2) 24.08.08 39 0 14쪽
12 푸른 탑 (1) 24.08.07 49 0 13쪽
11 남의 대륙 후기지수 양성 24.08.06 47 0 12쪽
10 여정의 시작 24.08.05 52 0 12쪽
9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24.08.04 59 0 13쪽
8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다 24.08.03 67 1 12쪽
7 무위를 드러내다 24.08.02 75 1 16쪽
6 가문의 위기 24.08.01 75 1 11쪽
5 함정 24.07.31 71 1 13쪽
» 조금 치는 루키와 썩은 물 24.07.30 96 1 13쪽
3 싸움구경 24.07.29 128 0 13쪽
2 웅크리다 24.07.29 176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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