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름없는 무사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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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림
작품등록일 :
2024.07.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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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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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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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DUMMY

날이 밝자 아랑은 수도교회로 향했다. 일행들 역시 복장을 정갈히 하고 그를 따라 교회로 향했다.


“스미스 님, 정말 그러고 가실 건가요?”

“이게 내 가장 좋은 옷 일세.”

“좀 사드린다니까···”

“시장의 모든 옷을 준다해도 이것과 바꿀 생각이 없네.”

“에휴, 저 고집을 어쩌면 좋아···”


교회에 도착하자 경비가 그들의 앞을 막았다. 이에 에르멜라와 카르마가 나섰다.


“푸른 탑의 제자 에르멜라입니다. 이쪽은 근위기사단의 카르마 경이시지요.”


신분패를 확인한 경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패를 돌려주었다.


“무기는 이곳에 두시면 됩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저 두 사람은 저희 일행인데 같이가도 될까요? 동대륙의 무사는 용병패가 있습니다.”

“동대륙에서 오셨다고요? 혹시 주신을 영접하셨습니까?”


그의 물음에 아랑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경비의 품에 돈주머니를 넣었다. 묵직한 감촉에 품을 확인한 경비는 살짝 열린 돈주머니 사이로 빛나는 은화를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으음··· 다음부터는 깨끗한 복장을 하고 오십시오.”


경비의 핀잔에 아랑은 죽립을 살짝 당겨 내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교회의 외부가 장엄했다면 내부는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대리석으로 내부를 만들고 귀금속 장식품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신도들 역시 이런 교회의 분위기를 맞추려는 듯 좋은 옷을 입고 교회를 방문했다.


“파티를 온건지 예배를 온건지···”

“수도교회는 상류층 교류의 장이기도 하지요. 보통 사람들은 수도 외곽에 있는 교회로 가요.”

“서방의 신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리는 것이오?”

“교리상 그렇진 않지만···”

“그럼 인간이 신의 이름을 이용해 계층을 나누는 장이 바로 이곳이겠구려.”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들어내는 그의 모습에 에르멜라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교회안에서는 그런 말씀을 자제해 주세요.”


아랑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자 에르멜라는 고개를 저었다.


“에르, 소녀들은 어디에 있어?”

“유소년이 모여 있는 장소는 따로 있을 거예요. 제가 모셔다 드리죠. 카르마 경, 스미스 님을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카르마는 아랑의 뒤를 따랐다.


“자네의 복색이 너무 눈이 띄는 것 같군.”

“어쩔 수 없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지 말게. 모두가 자네를 보고 있어.”

“새겨듣지.”


카르마의 말을 한 귀로 흘려 들은 뒤 아랑은 인파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카르마를 따돌린 그는 교회의 내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3년 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만···’


무슨 이유인지 그는 라엘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이곳에 없거나, 무언가 방해하고 있거나, 내가 약해져서 그런 거라는 건데···’


아랑이 계속 교회를 돌아다니자 사제 하나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동대륙의 무사님이시군요.”

“그렇소만.”

“수도교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주교 드피스트입니다. 무사님께서는 교회의 신도십니까?”

“신도는 아니지만 교회와 인연이 있소.”

“그러시군요. 그럼 이참에 교회와 좀 더 깊은 인연을 맺는 건 어떠십니까?”

“그냥 이정도가 좋다고 생각되오.”


그의 말에 주교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이렇게 종종 교회를 방문해 주시지요. 주신께서는 모든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기억해 두겠소.”


그가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자리를 떠나려 하자 아랑이 입을 열었다.


“혹, 성녀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겠소?”

“신도가 아닌 분은 성녀님을 뵙기 힘듭니다.”


예상된 반응에 아랑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동대륙의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의 무사요. 장문인께서는 아픈 자식을 낫게 하기 위해 대륙 곳곳에 사람을 보냈지. 그러던 중 나는 서대륙까지 오게 되었소.”


아랑의 말에 사제의 눈이 조금 커졌다.


“성녀의 기적을 눈으로 확인한 뒤 교회가 치유의 기적을 약속한다면 후에 공자와 함께 돌아와 충분한 사례를 하겠소.”


그의 말에 사제의 눈에 탐욕이 감돌기 시작했다.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동대륙에서 영향력 있는 가문의 공자를 신도로 만들 기회를 얻게 된다. 만약 그가 동대륙에 교회라도 하나 세우게 된다면···’


그것은 성자와 성녀도 하지 못한 업적. 교단은 싫어도 그 업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님이 남궁세가의 무사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남궁세가의 무공을 몇 개 보여주겠소.”


아랑이 무공을 펼치려 하자 사제는 손사레를 쳤다.


“교회안에서 무공을 펼치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저는 무공을 봐도 그것이 해당 가문의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무사님께서는 무공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요?”


그의 말을 잠시 곱씹은 뒤 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나는 남궁세가의 무공을 펼칠 수 있소. 이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소이다.”


서대륙에서 무공이란 가문의 기사에게도 쉽게 전수해주지 않는 귀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사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밤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원래는 귀족들도 성녀님을 뵐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 말과 함께 아랑은 돈주머니를 꺼냈다.


“헌금함을 찾지 못하겠는데 사제 양반이 수고 좀 해주시겠소?”


그 말에 사제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물론입니다.”


아랑이 자리를 옮기자 그를 찾고 있는 카르마의 모습이 보였다. 많은 인파와 선천진기 밖에 없는 그의 특징 때문인지 카르마는 순간 그를 놓쳐서 지금까지 그를 찾고 있었다.


에르멜라의 잔소리를 들을 그의 모습을 생각하니 안쓰러워 아랑은 카르마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뭐하나?”

“아! 여기 있었나? 찾고 있었네.”

“내가 애도 아니고··· 이만 가세.”

“여기까지 왔는데 예배를 드리지 않고 가려고?”

“내가 신도도 아니고···”

“하지만 나는 신도일세.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그냥 갈 수는 없네.”

“그럼 먼저 나가 있지.”


그 말에 카르마는 한숨을 쉬었다.


“자네를 혼자 보내면 에르멜라 양이 나를 가만 두겠나? 정 가야겠다면 함께 나가겠네.”


카르마가 양보를 하는 상황에서 아랑이 고집을 부리면 연장자이자 무학 선배로써 위신이 서지 않았다.


‘이 녀석이 은근히 고단수야···’


결국 아랑은 고집을 꺾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그럼 예배가 끝나면 가는 걸로 하지.”

“고맙네. 스미스.”


결국 예배장 자리에 착석까지 하게 된 아랑은 반쯤 넋이 나간 채 자리에 앉았다. 에르멜라가 다가오자 카르마가 입을 열었다.


“유니코스 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 마침 아네스 합창단의 성가예식이 있어서 참가하게 됐어요.”


그녀의 말에 카르마는 유니코스가 노래를 부르던 때를 떠올렸다.


“연습도 하지 않은 사람을 예식에 참가시키는 건 이례적이지만 유니코스 님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지휘사제가 매우 좋아하더군요.”


잠시 잡담을 하고 있는 사이 예배가 시작되었다. 소녀들로 이루어진 아네스 합창단이 들어오자 교회내부가 조용해졌다.


이어서 성가가 시작되자 에르멜라는 유니코스를 찾기 시작했다.


“저기 계시네요.”

“잘 할 수 있으실 겁니다.”


합창단의 목소리는 아이들 답게 기교는 부족했지만 더 없이 맑고 순수했다. 신도들의 마음에 신앙심이 차오를 때 유니코스가 양손을 모으더니 한 발 앞으로 나서 홀로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여, 나를 건지소서···”


처음보는 소녀의 무대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저리도 어린 소녀가 이런 무대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천사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넋이 나간 채 유니코스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아버지? 세계수를 모시는 양반이 주신에게 아버지?”

“스미스 님! 사람들이 듣겠어요!”

“다들 넋 놓고 있구먼.”


홀로 툴툴 거리던 아랑의 목소리는 이내 묻혀버렸다. 유니코스의 무대가 끝나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감동적인 성가예식은 처음입니다.”

“천사가 저 아이의 모습으로 우리 교회에 오신 게 분명해요.”

“천사가 아니라 백살 넘은 남자 엘프···”


에르멜라에게 저지당한 그는 인상을 쓰며 딴청을 피웠다.


교회에서 공연을 관람한 것처럼 환호하고 박수를 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고위사제들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유니코스의 무대에 깊은 감명을 받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찬사에 유니코스는 그들을 향해 치마를 당겨 인사했다. 얼굴을 상기한 채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그의 모습에 아랑은 작게 웃었다.


***


예배는 말 그대로 지루했다. 경지를 거듭한 뒤 거의 잠을 잘 필요가 없게 된 아랑이었지만 사제가 몇 마디 말을 뱉자마자 그는 졸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에르멜라가 그의 흔들자 아랑은 눈을 떴다.


“이제 가요.”

“알겠네.”


교회 밖에서 잠시 기다리자 유니코스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어땠어?”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유니 님,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래?”


한 것 미소를 짓던 유니코스는 아랑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너는 어땠는데?”

“사람들 사이에서는 빼어났지만 엘프치고는 영···”

“뭐, 뭐라고? 인간 따위가 내 노래를 비평해?”

“엘프가 주신에게 아버지라 칭하며 찬양한 건 장로 양반한테 말해 두겠소.”

“자, 장로님을 네가 안다고?”


사색이 된 그를 보며 아랑은 기분 좋게 웃었다.


“한 낯 인간 따위의 말을 장로 양반이 믿겠소?”

“자, 잠깐만, 너라면 진짜 장로님을 알 것 같아.”

“장로 양반한테 점프 뛰라고 하니까 좋아 죽던데?”


그 말에 유니코스는 머리를 쥐어 뜯었다.


“아는 거 맞잖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에르멜라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스미스 님의 정체가 뭔가요?”

“동대륙의 무사요.”

“해 주실 말씀은 그것 뿐인가요?”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없소.”


에르멜라에게 답해준 뒤 아랑은 유니코스를 보며 말했다.


“노인장, 내 농을 한 것뿐이니 마음 쓰지 마시오.”

“누가 봐도 약점으로 잡고 흔들겠다는 거잖아···”

“알면 잘 하시오.”

“무서운 놈···”


유니코스가 도끼눈을 뜨자 아랑의 눈이 커졌다.


“어? 눈깔이 왜 그렇소?”


그 말에 유니코스는 즉시 눈을 내리 깔았다.


“뭐, 뭐가 들어가서 그래!”


상황을 즐기는 듯한 아랑의 모습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잠시 웃고 있던 아랑은 곧 유니코스를 향해 말했다.


“노인장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이오? 이곳에 남겠소?”

“여기 남아?”

“보아하니 천직을 찾은 것 같은데 원한다면 여기에 남아도 좋소.”


그 말에 유니코스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잠깐 행복을 맛보았지만 나는 아직 소녀들 사이에 섞일 수 없어. 완벽한 소녀가 되기 전까지는 소녀들과 온종일 일상을 공유할 수 없어.”

“좋소. 아직 이곳에 볼일이 남았으니 좀 더 생각해 보시오.”


그의 말에 유니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시간이 있으니 각자의 시간을 가지지. 나는 여관에서 좀 쉬겠네.”

“그럼 나는 교회에 좀 더 있을래.”

“저도 무구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남으니 교회에 있겠습니다.”

“저는 쇼핑을 좀 할 게요.”

“그래, 그럼 각자 시간을 즐기고 나중에 보게.”


여관으로 간 아랑은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오늘 밤 자리를 마련한다 했으니 교회로 가면 성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랑은 이미 그녀를 만나 무엇을 할지 정해 두었다.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며 그는 예배시간에 못다한 잠을 마저 청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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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평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24.08.30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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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드레이크 (1) 24.08.24 15 0 12쪽
26 전운 24.08.23 13 0 13쪽
25 웨버 백작 24.08.22 15 0 13쪽
24 웨버 성으로 24.08.21 21 0 12쪽
23 기사단 24.08.20 23 0 12쪽
22 정보 24.08.18 26 0 12쪽
21 그날의 기억 24.08.17 28 0 13쪽
» 부패 24.08.15 27 0 12쪽
19 도적의 여왕 24.08.14 28 0 13쪽
18 북새통 24.08.13 31 0 12쪽
17 신뢰와 상처 24.08.12 30 0 15쪽
16 도움 24.08.11 34 0 12쪽
15 현자를 찾아서 24.08.10 36 0 15쪽
14 푸른 탑 (3) 24.08.09 37 0 14쪽
13 푸른 탑 (2) 24.08.08 39 0 14쪽
12 푸른 탑 (1) 24.08.07 49 0 13쪽
11 남의 대륙 후기지수 양성 24.08.06 47 0 12쪽
10 여정의 시작 24.08.05 52 0 12쪽
9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24.08.04 59 0 13쪽
8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다 24.08.03 67 1 12쪽
7 무위를 드러내다 24.08.02 75 1 16쪽
6 가문의 위기 24.08.01 75 1 11쪽
5 함정 24.07.31 71 1 13쪽
4 조금 치는 루키와 썩은 물 24.07.30 95 1 13쪽
3 싸움구경 24.07.29 127 0 13쪽
2 웅크리다 24.07.29 176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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