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름없는 무사로 살겠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서강림
작품등록일 :
2024.07.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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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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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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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크 (1)

DUMMY

며칠동안 공사는 착실히 진행되었다. 아랑이 기사들을 꼬드긴 덕분에 당장 시급한 발리스타의 건설작업이 빨라졌다.


자신의 눈이 좋다며 감시임무를 자청한 아랑은 성벽에 자리잡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에서 카르마가 다가왔다.


“오늘 중으로 새 발리스타가 완성되겠군.”


카르마의 말에 아랑은 미소를 지었다.


“작업을 잘 하던데 이 참에 그쪽으로 진로를 변경해 보는 건 어떤가?”

“어렸을 때 충분히 해봤던 일이라 괜찮네.”


아랑은 농담으로 한 소리였지만 자칫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카르마의 모습에 아랑은 조금 당황스러워했다.


“자네, 귀족이 아니었나?”

“교단 보육원 출신이네.”

“어쩐지 성기사도 아닌데 신앙심이 깊다 했더니···”


그의 사정을 들은 아랑은 자신이 던진 농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꼬리를 흘렸다.


“누군가는 신이 없다고들 하지. 그런 자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며 보육원 출신 고아가 근위기사가 된 게 신의 도움이 아니면 가능한 일이라고 묻고 싶네.”

“나는 보육원 같은 건 구경도 못해봤는데···”


아랑이 작게 중얼거리자 카르마가 몸을 조금 숙였다.


“뭐라고 했나?”

“아닐세. 교단이 좋은 일을 했구먼.”


아랑이 혼잣말을 한 걸 종교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말로 생각한 카르마는 굳이 자신의 종교관을 깊게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 어찌되었든 나는 교단과 주신께 감사한 마음이 있네. 그럼 수고하게.”


휴식을 마친 카르마는 성벽 밑으로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에 한 번 시선을 준 뒤 아랑은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이거 일이 꼬인 것 같군.”


다른 이들은 아직 식별할 수 없는 거리였지만 그의 눈에는 이곳으로 날아오는 덩치 큰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카 소협, 뭔가 날아오네.”


그 말에 카르마가 번개같이 성벽위로 올라왔다.


“어느 쪽인가?”


아랑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르키자 카르마는 눈을 찌푸린 채 정면을 응시했다.


“확실한가?”

“방향을 틀 수도 있지만 일단 이쪽으로 오록 있는 게 맞네.”

“알겠네.”


그의 말에 몸을 날린 카르마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전방에 미상 비행체 출현! 모두 경계태세!”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종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땡땡땡땡!


종소리와 함께 병사들은 작업을 멈추고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랑의 수에 넘어가 작업을 하고 있던 기사들도 곧장 무구를 갖춰서 성벽위로 올라왔다.


“드레이크가 오는 군.”

“어느 쪽입니까?”

“정면입니다. 방향을 틀 것 같아 보이지 않는군요.”


한참 동안 카르마가 알려준 방향을 지켜보던 기사들은 곧 드레이크를 발견하곤 입을 열었다.


“아, 이제 보입니다.”

“발리스타는 준비되었나?”

“네! 준비되었습니다!”

“명령 없이는 절대 발포해서는 안된다!”

“알겠습니다!”


병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뒤 기사들은 활을 꺼내 들었다. 카르마 역시 활을 들었지만 멀뚱히 서있는 아랑의 모습에 그가 말했다.


“자네는 왜 빈손인가?”

“궁술에는 조예가 없네.”

“정말인가? 무예를 익히는 사람이 궁술을 모른다고?”

“검과 몸뚱이 말고는 다룰 수 있는 게 없다시피 하네.”

“자랑은 아닌 것 같은데···”


아랑이 눈을 감고 쏴도 이들보다 활을 잘 쏘겠지만 아랑은 활을 들고 바삐 움직이기 보다는 드레이크에 집중하고 싶었다.


내공을 이용해 장력이 강한 활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아랑은 얼마 안되는 선천진기를 그런 곳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검으로 승부를 본다.’


드레이크를 떨어뜨리는 건 이들의 몫. 아랑은 자신의 역할을 정한 뒤 차례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하늘에 떠있는 드레이크의 모습이 식별될 때쯤 지평선 너머로 먼지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몬스터 웨이브입니다!”

“몬스터 웨이브에 대비하라!”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한 무리를 이뤄 드레이크를 등지고 달려오고 있었다. 서로 포식관계이자 경쟁관계인 몬스터들이었지만 드레이크 앞에서는 놈을 피해 같은 방향으로 도망치는 처지일 뿐이었다.


우워어어어!


크고 작은 몬스터들이 성벽을 두드리자 사수들은 활을 쏘기 바빴다.


“쏴라!”


명령이 떨어지자 큰 소처럼 생긴 마바카 무리에 화살세례가 퍼부어졌다.


파바바바밧!


병사들의 화살이 여기저기 꽂혔음에도 멀쩡한 마바카들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진 병사들이 발리스타로 시선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이 시위를 당겼다.


피융!


장력이 강한만큼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가 병사들의 것과는 달랐다.


퍽!


화살에 맞은 마바카가 쓰러지자 기사들이 외쳤다.


“병사들은 가죽이 얇은 녀석들을 우선 사격한다! 특히 고블린을 집중 사격하라!”

“발리스타는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발포하지 마라!”


다른 녀석들에 비해 지능이 높은 고블린들은 덩치가 큰 몬스터들 사이에 숨어 병사들을 향해 조잡한 활이나 블로우 파이프를 쏘아댔다. 위력은 형편없었으나 재수없게 눈이나 목에 맞으면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병사들은 우선적으로 놈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병사들 지휘는 확실하게 하는 군.”

“나도 손을 거들겠네.”


카르마가 활을 들고 성벽 가까이 다가가자 아랑은 에르멜라에게 다가갔다.


“마법은 아껴둬야겠지요?”

“마법사는 기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나서는 게 아니네.”

“아카데미에서 듣던 말을 그대로 하시는 군요. 스미스 님은 마법사와 합을 맞춰본 적이 있으신 거죠?”


그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채 아랑은 에르멜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만일 드레이크가 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겠소?”

“제가 직접 타격을 주는 건 불가능해요. 놈은 마력이 다할 때까지 오러와 마법을 막아낼 거예요.”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 노인장 역시 지혜를 보태 주기 바라오.”

“알겠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패는 두 사람이오. 기사들을 믿고 지금은 창공에 떠있는 드레이크의 눈을 피해 잘 숨어 계시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을 보낸 뒤 아랑은 성벽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하나둘씩 올라와 궁수들을 노리는 커다란 거미의 모습에 아랑은 검을 뽑아 들었다.


촤악!


단번에 갈라지는 거미를 보며 놈을 상대로 고전하던 병사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고, 고맙습니다!”

“앞으로 고마워질 일이 많아 질 것 같구려.”

“무사님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꿈도 크군.”


아랑이 병사의 말에 작게 웃으며 다음 표적을 향해 이동하는 순간 눈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뭐라도 붙잡고 버텨!”


사람뿐만 아니라 몬스터들까지 갑작스러운 눈폭풍에 몸을 웅크렸다. 이들의 모습을 즐기는 듯 하늘 위에서 드레이크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크와아아아!


놈의 포효와 함께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웅크렸던 몸을 억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다 죽는다!”

“선두에 트롤이 있습니다!”

“저건 활로 잡기 힘들다! 1번 발리스타 사격개시!”


명령과 함께 발리스타가 트롤을 조준하더니 곧 기둥만한 말뚝을 발사했다.


콰직!


끔찍한 소리와 함께 말뚝에 꿰뚫린 트롤은 쓰러진 채 죽지도 않고 버둥거렸다.


“징그러운 놈···”

“다행히 첫번째에 비해 규모가 작습니다.”

“발리스타를 어서 장전하고 드레이크의 움직임을 주시하라!”


드레이크는 무슨 생각인지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놈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아랑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 후 눈폭풍이 멎자 몬스터들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거세진 공세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랑은 성벽을 기어올라온 몬스터를 정리하면서도 틈틈이 드레이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돌아간다?’


눈폭풍이 멎은지 얼마되지 않아 드레이크는 머리를 돌려 하늘위로 사라졌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봤는지 성벽위에서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드레이크가 물러간다!”

“드레이크가 물러난다고?”


고전을 하는 와중에 들려온 희소식에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늘에 찍혀 있는 점 하나가 사라져 있자 병사들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드레이크가 물러갔다!”

그 말에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몬스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놈들도 자신을 몰아붙이는 존재가 사라지자 알아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곧 몬스터마저 모두 물러서자 성벽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드레이크를 물리쳤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랑은 고개를 저었다.


***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낸 뒤 백작은 치하와 함께 감사의 말을 전했으나 아랑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카르마와 에르멜라가 격식을 갖춰 백작을 대한 뒤에야 일행은 백작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 일행은 잠시 모여 대화를 나눴다.


“몬스터 웨이브를 수월하게 막아내다니··· 오늘 정말 대단했어요.”

“성벽을 끼고 있는 전투라 그리 어렵진 않았습니다. 몬스터가 성벽을 향해 돌진하는 경우는 드문데 드레이크의 위용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멀리 있어서 잘 보진 못했지만 정말 꺼림칙한 존재였어요.”

“좀 징그럽게 생기긴 했어.”


일행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소?”

“무슨 일인데 그래요?”

“드레이크라는 놈은 몬스터를 몰고오더니 하늘 위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전투양상을 지켜본 뒤 돌아갔소. 드레이크라는 놈들이 지능이 뛰어난 족속이오?”

“용의 후예라는 명성에 걸맞게 뛰어난 지능과 마력을 가지고 있어요.”

“확실히 선봉을 보내고 전투양상을 지켜보는 지휘관과 같은 느낌이 있긴 했지.”

“발리스타의 사거리를 확인해 보려는 듯 첫번째 웨이브에서 발리스타를 사용하지 않으니 트롤을 보내 결국 사격을 유도했지요.”

“으으, 생긴 것도 하는 짓도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머리가 좋은 놈이 왜 인간의 성을 치겠다고 난리인 거야?”


유니코스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몬스터를 통해 간을 볼 정도면 스스로도 이 공세가 무리인 것을 안다는 건데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요?”

“단순히 인간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성밖에 있을 때를 노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성을 노리고 있다는 건 뭔가 이상합니다.”

“드레이크가 웨버 성에 집착한다···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소?”

“몬스터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요?”


에르멜라의 말에 유니코스가 입을 열었다.


“집착이라는 건 욕망과 관련이 있잖아. 놈은 이곳에서 뭘 얻고 싶어하는 걸까?”

“보통의 몬스터는 생존욕구가 대부분이겠지만 드레이크는 조금 다를 거라 생각됩니다.”

“몬스터가 부귀영화나 더 강해지는 것 따위를 원한다고 하진 않겠지요?”

“드래곤도 금은보화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드래곤은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존재잖아요. 드래곤이 몬스터면 인간은 짐승 이하 취급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어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 아랑의 머리속에 뭔가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드래곤이라 했소?”

“네. 드래곤은 위대한 존재로, 드래곤을 몬스터 취급하는 건 인간을 짐승과 동일시하는 것보다 못한 짓이에요.”


에르멜라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린 뒤 아랑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단어를 붙잡으려 노력했다.


‘드래곤과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 용의 후예···’


그리고 웨버 영지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상기후. 이것이 조합되자 아랑의 머릿속에 뇌리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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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평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24.08.30 7 0 12쪽
30 드레이크 (4) 24.08.29 11 0 12쪽
29 드레이크 (3) 24.08.28 14 0 12쪽
28 드레이크 (2) 24.08.25 19 0 11쪽
» 드레이크 (1) 24.08.24 16 0 12쪽
26 전운 24.08.23 14 0 13쪽
25 웨버 백작 24.08.22 15 0 13쪽
24 웨버 성으로 24.08.21 22 0 12쪽
23 기사단 24.08.20 24 0 12쪽
22 정보 24.08.18 27 0 12쪽
21 그날의 기억 24.08.17 28 0 13쪽
20 부패 24.08.15 27 0 12쪽
19 도적의 여왕 24.08.14 29 0 13쪽
18 북새통 24.08.13 31 0 12쪽
17 신뢰와 상처 24.08.12 30 0 15쪽
16 도움 24.08.11 34 0 12쪽
15 현자를 찾아서 24.08.10 36 0 15쪽
14 푸른 탑 (3) 24.08.09 38 0 14쪽
13 푸른 탑 (2) 24.08.08 39 0 14쪽
12 푸른 탑 (1) 24.08.07 49 0 13쪽
11 남의 대륙 후기지수 양성 24.08.06 47 0 12쪽
10 여정의 시작 24.08.05 53 0 12쪽
9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24.08.04 60 0 13쪽
8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다 24.08.03 67 1 12쪽
7 무위를 드러내다 24.08.02 75 1 16쪽
6 가문의 위기 24.08.01 75 1 11쪽
5 함정 24.07.31 71 1 13쪽
4 조금 치는 루키와 썩은 물 24.07.30 96 1 13쪽
3 싸움구경 24.07.29 128 0 13쪽
2 웅크리다 24.07.29 176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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