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름없는 무사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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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림
작품등록일 :
2024.07.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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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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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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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DUMMY

백작과 일행들은 드레이크를 어떻게 막을지 대책을 간구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아랑은 느긋하게 포도주를 기울이며 알딸딸하게 올라오는 취기를 즐겼다.


‘그래도 영물정도 되는 놈인데 아무리 검강을 구사한다 해도 전면전은 힘들겠지.’


태화단전을 봉인한 뒤로 몸 안에 일반적인 내공이 없는 그는 오로지 선천진기로만 무공을 구사해야 했다. 위력은 강하지만 양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선천진기 때문에 내력싸움에서 밀릴 수도 있었다.


‘영물이라는 놈들은 몇 갑자씩 내공을 가지고 있으니 정면승부에서 밀릴 수도 있다. 그러니 저들이 시선을 끌어주면 이기어검술로 기습을 가하는 건 어떨까?’


드레이크의 공력이 어느정도 일지는 모르겠지만 공력소모가 큰 이기어검술만 믿고 있는 것도 위험했다. 하늘에 떠있는 드레이크를 향해 이기어검술을 시전한다면 아랑에게는 한 번 밖에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다.


‘북명신공이 있긴 하지만···’


북명신공. 대자연으로부터 선천진기를 뽑아낼 수 있는 전설의 무공. 하지만 이 세상에 약점이 없는 무적의 무공은 없었다. 특히 북명신공은 강한만큼 약점도 확실한 무공이었다.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경지 중 만독불침의 경지가 있다. 말그대로 독을 먹든 흡입하든 독이 기맥에 침범하지 못하니 기맥과 단전에 직접 독을 주입하지 않는 이상 중독의 걱정이 없는 경지.


하지만 독기가 가득한 늪지에서 북명신공을 통해 독기를 직접 흡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독기가 기맥으로 직접 흡수되니 만독불침의 경지에 올랐다 한들 중독을 피할 수 없다. 독이 묻은 암기가 기맥까지 침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만독불침과 금강불괴는 한 쌍이 되어 함께 언급된다.


독공을 대성하지 않은 이상 독기가 가득한 곳에서 북명신공을 사용하는 건 자살행위와 같았다.


마찬가지로 극한의 냉기와 화마 역시 마찬가지다. 웨버 영지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눈폭풍은 혹한의 냉기를 동반했고 이는 북명신공의 사용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이를 어쩌면 좋나···’


몸상태가 완벽하지 않으니 굳이 무리하게 나설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 겨우 재료 하나를 얻으려는 첫번째 발걸음.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회의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들 역시 성안에서 항전하는 길을 택한 것 같았다. 경험은 많지만 지식은 부족한 아랑은 계획보다는 실전과 임기응변에 강했다.


그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이 회의는 착실히 진행돼 갔다.


“결국은 성문을 닫고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드레이크가 공격해 오면 발리스타를 이용해 쫓아내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어 보입니다.”

“온몸에 발리스타도 버텨내는 비늘이 덮여 있지만 날개에는 비늘이 덮여 있지 않지요. 먼 거리라면 턱도 없겠지만 거리가 좁혀진다면 궁수로도 충분히 노려볼 만합니다.”

“거리가 좁혀진다는 건··· 놈이 불을 쏘기 위해 낮게 나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오?”

“분명 다른 상황도 있을 겁니다.”

“날개를 공략하기 위해 궁수를 성벽위에 대량 배치했다가 성벽 위로 불길이라도 쏘아대면 피해가 상당할 텐데요?”

“그렇다고 놈을 내버려두면 웨버 성 상공을 활강하며 온 영지를 불태울 게 뻔합니다.”

“그것도 맞는 말씀이네요.”

“에르멜라 양, 혹시 공격마법을 쓸 수 있소?”

“원소마법을 몇 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레이크에게 직접 피해를 줄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흐음···”


그녀의 대답에 백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결론은 발리스타를 착실히 준비해서 놈을 쫓아버리고 성에 근접해오면 궁수를 대동해 놈의 날개를 노리는 게 유일한 방법 같군.”

“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저 혼자서는 드레이크에게 타격을 줄 수 없고 놈이 하늘에 떠있는 이상 기사들이 힘을 쓸 수 없으니까요.”


대충 결론이 나오자 백작은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게 최선이겠구려. 모두 지혜를 나눠주어 고맙소.”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 일행은 카르마의 방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스미스 님은 말씀이 없으시던데 달리 의견이 있으신가요?”


아랑은 그녀의 질문에 한치의 거짓 없이 답했다.


“나는 드레이크를 본적도 없네.”

“저 역시 들어만 봤지 실제로 본적은 없어요.”

“동대륙에도 몬스터가 많은가?”

“영물이 있긴 하지만 많이 상대해 보진 않았네.”

“그렇다면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있어 곤란한 경우가 많겠군. 이 방면에서는 내가 도움을 주겠네.”


마족과의 전쟁에서 숱한 마물들을 상대해 본 아랑에게 누군가 몬스터 사냥을 가르치는 건 꽤나 재밌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랑은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대인전은 나보다도 뛰어나나 하늘에 떠있는 덩치를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나? 드레이크 사냥의 가장 큰 관건은 놈을 떨어뜨리는 것 일세.”

“자네 말대로 날개를 공략하면 되는 거 아닌가?”

“놈이 바보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 화살을 맞아 주겠나? 녀석 역시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고 공세가 집중될 것을 알고 있겠지.”

“쉽지 않겠군.”

“쉽지 않네. 양동작전을 펼치려고 해도 발리스타의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놈의 먹이가 되는 셈이니 병력을 성밖에 배치하기도 힘들어.”

“놈의 날개를 노릴 확실한 수단은 발리스타 뿐이라는 거군?”

“그래. 궁수를 대동한다면 그들은 단 한발의 화살을 쏘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걸세.”

“그런 소모전으로 가면 답이 없을 거예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저항해야 할 순간이 오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별다른 성과 없이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아랑은 유니코스를 보며 말했다.


“혹, 노인장은 무슨 고견이 있소이까?”

“내가 활은 좀 잘 쏴.”


그 말에 에르멜라와 카르마의 눈이 커졌다.


“맞아! 우리에게는 유니 님이 계셨지!”

“고귀한 엘프께서 이곳에 계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내가 엘프임을 드러내면 소녀들과 친구가 될 수 없잖아.”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미친 노괴마물이···”

“스미스, 무사는 신념을 위해 죽는 거지? 나 역시 마찬가지야. 결코 밝힐 수 없는 비밀도 있는 법이지.”

“그게 무슨 미친 소리요? 그럼 어린 소녀들이 불타 죽는 걸 구경만 하겠다는 뜻이오?”

“그건 아니지.”

“그럼 닥치고 드레이크 토벌에 힘을 보태시오.”


그의 말에 유니코스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다시피 엘프의 화살은 실체가 없는 마력으로 만들어. 오러와 마법을 막아내는 드레이크에게 내 화살은 닿지 않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어.”


유니코스의 말에 아랑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또 뭐요?”

“내가 신체변형마법에만 몰두했더니 다른 마법에는 약해. 드레이크가 무시하지 않을 정도의 위력으로는 세발밖에 못 쏴.”


화살 세발이 한계인 원거리 딜러의 등장에 파티원들은 입을 벌렸다.


“궁수가 활을 세발 밖에 못 쏜다는 게 말이 되오?”

“대신 모습은 완벽하게 바꾸잖아?”


귀여운 동작과 함께 명랑하게 답하는 유니코스의 모습에 아랑은 반사적으로 검집을 풀었다.


“스, 스미스 님! 참으세요!”

“저 하등 쓸모없는 노괴마물이···”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촐싹거리며 아랑을 약올리는 그의 모습에 아랑의 머리에서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자, 모두 진정하시고요. 유니 님, 화살의 위력은 제대로 된 게 맞지요?”

“에헤헤, 너희가 아는 엘프의 활보다는 조금 약할지도?”


미소와 함께 뺨을 긁는 그의 모습에 아랑의 얼굴이 완전히 구겨졌다. 그보다 조금 나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에르멜라는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유니 님이 드레이크의 날개를 저격하는 걸 중심으로 작전을 짜야겠어요.”

“될 수 있으면 내 정체를 들어내고 싶지 않아.”

“그러니 저격을 작전으로 내걸게요. 그 정도는 도와주실 수 있으시죠?”

“에르의 부탁이니 기꺼이 도와주지.”

“나는 저 노괴마물이 화살을 쏠 수 있을지 의문이네.”

“그럼 네가 날아서 놈의 날개를 베어 떨어뜨리던지?”


아랑이 고개를 돌려버리자 유니코스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저 사특한 엘프를 믿고 작전을 짜는 건 매우 위험해 보이네만.”

“동의하네. 유니코스 님의 실력이 확실하지 않으니 유니코스 님을 중심으로 작전을 짜긴 힘들겠습니다.”


도발적으로 말하는 카르마의 모습에 유니코스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힘을 쓸 일이 없으면 좋지. 굳이 내 정체를 들어낼 필요도 없잖아?”

“끄응···”


유니코스에게 완전히 말린 카르마가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자 아랑은 인상을 썼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나설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래, 내 신념보다는 소녀들의 목숨이 훨씬 중요하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하지 말라고 해도 나설 테니 걱정하지 마.”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르마의 말에 밝은 미소로 답을 대신한 유니코스는 기분이 좋은 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럼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이정도일까요?”

“에르멜라 양이 틈틈이 놈을 견제하고 나머지 병력은 날개를 공략, 놈이 떨어지면 기사들이 일제히 덮치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카르마의 말에 유니코스가 입을 열었다.


“방법이 하나 더 있어!”

“뭔가요?”


기대감에 찬 에르멜라와 카르마를 보며 그가 말했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드레이크가 나타나지 않길 기도하는 거지!”

“··· 좋은 생각이군요.”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봅니다.”


그들의 말에 아랑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소. 헛된 곳에 시간을 쓸 바에는 차라리 발리스타 건설작업을 도우시오.”

“네. 그게 낫겠네요.”

“아, 성내에 아직 할 일이 더러 있으니 일손을 보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래, 기도는 정말 할 일이 없을 때나 하게.”


아랑의 말에 인원들은 성내 작업에 일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근위기사께서 어찌 이런 일을···”

“드레이크의 화염이 기사와 병사를 가리겠는가?”

“손님으로 오셨는데 이런 험한 일을 하시다니요··· 백작님께서 아시면 경을 치실 겁니다.”

“백작님께서 도움을 요청하셨으니 그에 응했을 뿐이네.”


카르마가 나서자 체통을 지키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은 작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이자 지식인인 에르멜라는 자신의 지혜를 나눠주어 작업의 능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유니코스는 아이들 사이에 섞여 그들이 명랑함을 잃지 않도록 다독여주었다.


한편 아랑은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대련을 청해도 되겠소?”

“드레이크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쓸데없이 힘 빼지 마시오.”


아랑의 말에 그는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겁을 먹은 거요?”


퍽!


그 말과 함께 기사는 맥없이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예고도 없이 공격하다니! 동대륙에서는 대련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오?”

“대련은 무슨. 시비를 걸길래 패 줬을 뿐. 서대륙에서는 시비를 거는 자를 이렇게 다루지 않는 것이오?”


그 말에 기사들의 얼굴이 벌게지자 아랑은 하품을 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성벽위로 자재를 하나라도 올리시오.”

“기사는 그런 일을 하지 않소.”

“카 소협이 들었다면 서운해 했겠구려.”


입을 다무는 기사를 보며 아랑은 한숨을 쉬었다.


‘고사리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에 뭐하는 짓인지···’


결국 마음을 먹은 아랑이 입을 열었다.


“드레이크가 오기전에 발리스타를 하나 완성시킬 때마다 그대들과 대련해 주겠소. 물론 그대들이 직접 공사에 참가해야 하오.”


그 말에 기사들의 표정이 구겨지자 아랑은 말을 덧붙였다.


“이것 외에는 대련을 해주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앞으로는 시비를 걸어오는 자에게 손속에 정을 두지 않을 것이오.”


아랑이 살기를 피우자 기사들은 감히 그의 눈을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력이 하나도 없지만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아랑의 등장에 기사들은 호기심과 호승심을 숨기지 못하고 그에게 대련을 청했다.


시비를 걸어서라도 아랑을 나서게 하려 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의 차이를 깨달은 그들은 아랑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그와 대련할 유일한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기사들은 발리스타 착공작업에 참가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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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평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24.08.30 7 0 12쪽
30 드레이크 (4) 24.08.29 10 0 12쪽
29 드레이크 (3) 24.08.28 14 0 12쪽
28 드레이크 (2) 24.08.25 19 0 11쪽
27 드레이크 (1) 24.08.24 15 0 12쪽
» 전운 24.08.23 14 0 13쪽
25 웨버 백작 24.08.22 15 0 13쪽
24 웨버 성으로 24.08.21 22 0 12쪽
23 기사단 24.08.20 24 0 12쪽
22 정보 24.08.18 27 0 12쪽
21 그날의 기억 24.08.17 28 0 13쪽
20 부패 24.08.15 27 0 12쪽
19 도적의 여왕 24.08.14 29 0 13쪽
18 북새통 24.08.13 31 0 12쪽
17 신뢰와 상처 24.08.12 30 0 15쪽
16 도움 24.08.11 34 0 12쪽
15 현자를 찾아서 24.08.10 36 0 15쪽
14 푸른 탑 (3) 24.08.09 37 0 14쪽
13 푸른 탑 (2) 24.08.08 39 0 14쪽
12 푸른 탑 (1) 24.08.07 49 0 13쪽
11 남의 대륙 후기지수 양성 24.08.06 47 0 12쪽
10 여정의 시작 24.08.05 52 0 12쪽
9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24.08.04 59 0 13쪽
8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다 24.08.03 67 1 12쪽
7 무위를 드러내다 24.08.02 75 1 16쪽
6 가문의 위기 24.08.01 75 1 11쪽
5 함정 24.07.31 71 1 13쪽
4 조금 치는 루키와 썩은 물 24.07.30 95 1 13쪽
3 싸움구경 24.07.29 128 0 13쪽
2 웅크리다 24.07.29 176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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