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름없는 무사로 살겠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서강림
작품등록일 :
2024.07.29 20:14
최근연재일 :
2024.08.30 18:2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716
추천수 :
9
글자수 :
179,874

작성
24.08.13 21:20
조회
31
추천
0
글자
12쪽

북새통

DUMMY

수도의 번화가는 온갖 물건과 사람들로 넘쳐났다. 에르멜라와 유니코스가 탄성을 자아내는 사이 카르마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저는 무구를 맡기고 오겠습니다.”

“네, 그럼 저희는 옷을 보고 있을 게요.”

“해가 지기 전까지 여관에 모이는 걸로 하면 되겠구려.”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그냥 같이 다니시죠?”

“옷에는 관심이 없소.”

“그러지 말고 좀 골라봐요! 언제까지 그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닐 건가요?”

“이게 보기 보다 귀한 옷이오.”

“누가 버리라고 했나요? 좀 화사한 옷도 입고해야 어디 가서 대접받고 그러잖아요.”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이는 에르멜라의 모습에 아랑은 한숨을 쉬었다.


“어디 구경이나 해보자구려.”

“어서 가자! 비싼 옷 골라도 돼?”

“예산 범위 안에서 사드릴 게요.”

“푸른 탑의 제자라면 돈주머니가 두둑하겠지!”


달려가는 유니코스를 보며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옷가게에 도착한 유니코스는 여러가지 옷을 입어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어때요?”

“정말 잘 어울리네!”

“정말 귀여운 아이야!”


아름다운 그의 외관에 가게주인은 오히려 더 많은 옷을 그에게 권했다. 그의 돋보이는 외모 때문에 그가 있는 가게에 손님이 몰려들자 가게주인들은 유니코스를 데려오기 위해 암투를 벌였다.


“꼬마 숙녀님! 이쪽으로 오면 옷 한 벌 서비스로 맞춰줄 게!”

“우리 가게로 오면 장신구까지 제대로 뽑아 준다!”


옷 가게 주인들이 다른 손님들은 내버려두고 오직 유니코스에게 관심을 쏟자 에르멜라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 이것 좀 계산해주세요.”

“잠깐만요. 마법사님. 아니, 장사를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어디 있어?”

“좋은 조건으로 데려가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다투는 사람들을 보며 에르멜라가 한숨을 쉬었다.


“어휴,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이목이 너무 집중된 것 같으니 나는 따로 볼일을 보고 오겠네.”


아랑이 이목이 집중되는 걸 싫어하는 걸 알고 있는 에르멜라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그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알겠어요. 그럼 나중에 뵈요.”


아랑이 사라진지 얼마되지 않아 카르마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너무 소란스러워서 와보았더니 여기 계셨군요.”

“네. 유니 님이 너무 돋보이셔서···”

“네? 뭐라고요?”


인파에 밀려 카르마와 그녀의 거리가 조금 떨어지자 그는 에르멜라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에 그녀는 확성 마법을 써서 말했다.


“유니 님 때문에 사람들이 몰렸어요!”


그녀의 말에 카르마의 시선이 유니코스에게 향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유니코스의 모습은 어느 귀족 영애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럼 이 옷은 주는 거지?”

“하하, 유니 아가씨, 이건 저희 가게에서 가장 비싼 옷입니다. 아가씨께서 입어 주셨으니 9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럼 여기 벗어두고 갈게. 안녕!”


유니코스의 말에 상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가씨! 다음은 저희 가게로 오십시오!”

“아니야! 다음은 내 가게야!”


과열된 상인들의 모습에 카르마가 입을 열었다.


“유니코스 님 덕분에 사람이 몰리긴 했지만 유니코스 님을 보느라 정작 물건을 사는 이가 없으니 당장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군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저런 것이죠. 좋아 보이고 남들이 원하니까 일단 지르고 보는 게 사람의 마음 아니겠어요?”


그 말에 순간 거리에 정적이 흘렀다. 시선이 쏠리자 에르멜라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조용히 확성마법을 종료했다.


“크흠.”


그녀가 자리를 피하자 상인들은 자신의 가게를 둘러보았다. 가게 안에는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유니코스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시장바닥에서 잔뼈가 굵어진 그들 답게 상인들은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아가씨, 이제 그만 옷을 돌려주시지요.”

“이건 주기로 한 거잖아.”

“빌려주기로 한 거지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상인의 모습에 유니코스는 당황스러워했다.


“분명 아까는 옷을 입으면 그냥 준다고···”

“계속 이런 식이면 경비병을 부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태도에 화가 난 유니코스는 받았던 옷을 그에게 던지듯이 돌려주었다.


“거짓말쟁이의 옷 따위는 필요 없어.”


그 말에 상인들이 개 때처럼 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제 옷도 돌려주시지요!”

“제 것 도요!”

“뭐, 뭐하는 짓이야!”


옷을 돌려받는 게 아닌 강탈해 가는 그들의 모습에 유니코스는 당황스러워 차마 그들을 제지하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옷을 전부 빼앗긴 그는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입고 있는 옷도 돌려주시지요.”

“뭐라고?”

“강제로 벗기기 전에 그 옷 달라고.”


그 말에 유니코스의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졌다. 그가 폭발하려는 순간 이를 보다 못한 에르멜라가 나서서 상인에게 따져 물었다.


“애한테 옷을 입혀서 홍보를 시켜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요?”

“애가 귀여워서 한 번 입어보게 한 거 가지고 홍보는 무슨?”

“여기서 저 애가 상점가를 홍보해 주는 걸 본사람이 몇인데 그런 거짓말이 통할 것 같아요? 아줌마 말대로 경비대를 불러서 얘기해 볼까요?”


그 말에 상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경비대를 부르면 아가씨는 멀쩡할 것 같아? 나 경비대에 빽 있어! 저 아이가 옷을 구긴 값까지 받아내기 전에 얼른 옷이나 놓고 가!”

“네. 일단 경비 좀 부르고요. 카르마 경, 경비 좀 불러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경?”

“마침 근위기사단 소속 기사님이 곁에서 모든 걸 보셨으니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상인은 에르멜라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고, 아가씨. 요즘 먹고 살기가 궁해서 내가 어떻게 됐나 봐. 미안하게 됐어. 응?”

“됐고요. 여기 계신 상인분들. 저 아이에게 한 짓은 반드시 벌받게 만들 겁니다.”


그녀의 말에 유니코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올려보았다.


“에르···”


***


경비대가 도착하자 일은 빠르게 해결되었다. 워낙 보는 사람이 많았고 카르마가 있으니 경비들도 대충 하거나 뒷돈을 받고 넘어가 주는 것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사건을 처리했다.


상인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받았지만 유니코스는 힘 없이 의류거리를 빠져나왔다.


“유니 님, 괜찮으세요?”


그 말에 유니코스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에르··· 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좋아해줘서 기뻤어.”

“유니 님···”


평소에 보이던 명랑함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의 모습에 에르멜라는 그에게 위로의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나는 그만가서 쉴 게···”

“그러지 말고 다른 거리로 가서 좀 더 구경해 보시지요.”

“그냥 사람들이 미워.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데 왜 저자들 때문에 기분이 상한 채 하루를 마쳐야 합니까?”


그 말과 함께 카르마는 돈주머니를 들어 보였다.


“유니코스 님, 저 바보들이 돈을 잔뜩 줬으니 이걸로 좀 즐겨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맛있는 음식도 먹고 광대들도 구경해 보시지요.”


카르마의 말에 유니코스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래, 저 머저리들 때문에 내 기분을 망칠 순 없지··· 그리고 돈이 많다고?”

“네. 이건 전부 유니코스 님에게 드리는 보상금이니 유니코스 님이 쓰시지요.”


카르마가 돈주머니를 내밀자 유니코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돈도 생겼겠다! 그럼 고생한 너희를 위해 오늘은 내가 쏜다!”


기운을 되찾은 그를 보며 에르멜라는 작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카르마 경.”

“유니코스 님이 기운을 되찾아서 다행입니다.”

“네. 저대로 두면 또 사람들에게 휘말릴 수도 있으니 어서 따라가 보죠.”

“알겠습니다.”


그녀의 예상대로 유니코스는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또다시 상인들이 들러붙자 에르멜라가 소리쳤다.


“유니 님!”

“아아! 괜찮아! 이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 같아!”

“이것 좀 드셔보세요!”

“옷은 돌려주면 되지만 먹는 건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희는 강매 같은 거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맛있게 드시면 돼요!”

“일단 하나 드셔보셔!”


이리저리 휘둘리는 유니코스를 보며 에르멜라는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러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소저, 무슨 일이오?”

“아, 스미스 님. 그게 말이죠···”


그녀의 설명을 들은 아랑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요즘 노인장이 하는 짓이 마음에 든단 말이지··· 어떻게 찾아야 하나 했는데 이 정도 난리면 벌써 와있겠군.”

“네?”


에르멜라의 말을 뒤로 한 채 아랑은 유니코스를 향해 소리쳤다.


“노인장! 노인장이 좋아하는 양갱 사왔으니 드시오!”


선천진기를 소모해 공력을 실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아랑에게 쏠렸다.


“노인장?”

“노인이라고 하지 말랬잖아!”

“그럼 백살 넘은 양반이 노인이지 소년이요?”

“소년?”


상인들이 수근거리자 아랑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사내가 무슨 이런 옷을 입고 다녀? 제대로 된 옷을 좀 입으시오. 아무리 사고를 당해 저렇게 되었다지만 바로 이런 짓을 하고 다닐 줄은 몰랐구려.”


유니코스가 아랑의 무위를 언급하지 않았으니 아랑 역시 그가 엘프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취향존중! 취향존중 모르냐!”

“아무리 시대가 바꿨다고 하지만 일 백이 넘은 양반이 이건 좀···”


아랑의 말에 상인들이 그에게 물었다.


“정말 저 아이가 사내요?”

“나이가 일 백이 넘은 사내요. 그렇지? 기사 양반?”


사람들의 시선이 카르마에게 쏠렸다. 유니코스가 일백이 넘은 남자임은 확실하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분이 일 백이 넘은 사내임은 확실하오.”


그 말에 상인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연못인가 안개에 휩쓸린 노인이 정신이 나간 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어.”

“그게 진짜였다니···”

“치매에 걸린 것 마냥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니 위치를 알 턱도 없고 그저 전설로만 치부됐는데 실제로 저런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딱하구먼···”

“에이씨. 진짜 노인네야?”


상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아랑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들 가시오. 그대들은 왜 남아 있는 것이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그 말과 함께 아랑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남자의 명치를 향해 지풍을 쏘았다.


“꺼어어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남자를 보며 아랑은 미소 지었다.


“허허, 재밌는 말을 하시는 구려. 그딴 말을 하니 천벌을 받지.”


사람들이 흩어지자 아랑은 유니코스를 향해 다가갔다.


“양갱 좀 드시오.”

“으으··· 이거 먹으면 노인네 같잖아!”

“젊은 사람도 잘 먹소만.”

“나도 좋아하긴 해···”


유니코스가 양갱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자 아랑은 카르마와 에르멜라에게도 양갱을 권했다.


“이 난리가 양갱을 먹으면서 끝나다니···”


그 말에 아랑이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대로 끝날 것 같진 않소. 험한 꼴 보기 전에 나오게.”


그 말에 거의 벗다시피 옷을 입은 여자가 그들의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등장에 에르멜라는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스스로를 껴안았다.


‘머리가 셋 달린 괴물!’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 헐벗은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묘하게 몸이 흔들리는 걸음걸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숙녀에게 너무 거칠게 구는 거 아니야?”

“칼을 잡았으면 무인 일 뿐, 강호에는 남녀노소가 존재하지 않지.”

“아까는 노인장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치더니?”

“말이 그렇다는 게지.”


아랑이 검을 뽑자 여자는 자신의 어깨 끈을 잡아당기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왜? 이것도 끊어 버리게?”


그녀의 태도에 아랑은 인상을 구겼다.


“나는 무인 행세하는 요녀가 정말 싫네.”

“아저씨를 보고 있으면 꼭 누군가가 생각난단 말이야? 같은 동대륙 무사라서 그런 가?”


사내를 유혹하는 미소와 고혹적인 몸짓으로 거리를 좁히는 그녀를 보며 아랑이 입을 열었다.


“또 손가락 꺾이기 싫으면 그만 멈추시게.”


그의 말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뭐, 뭐라고? 당신 설마···”


여자의 반응에 아랑은 그녀를 향해 검을 쭉 내밀었다.


“그 이상 말하면 목을 베겠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차라리 이름없는 무사로 살겠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평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24.08.30 7 0 12쪽
30 드레이크 (4) 24.08.29 11 0 12쪽
29 드레이크 (3) 24.08.28 14 0 12쪽
28 드레이크 (2) 24.08.25 19 0 11쪽
27 드레이크 (1) 24.08.24 16 0 12쪽
26 전운 24.08.23 14 0 13쪽
25 웨버 백작 24.08.22 15 0 13쪽
24 웨버 성으로 24.08.21 22 0 12쪽
23 기사단 24.08.20 24 0 12쪽
22 정보 24.08.18 27 0 12쪽
21 그날의 기억 24.08.17 29 0 13쪽
20 부패 24.08.15 27 0 12쪽
19 도적의 여왕 24.08.14 29 0 13쪽
» 북새통 24.08.13 32 0 12쪽
17 신뢰와 상처 24.08.12 30 0 15쪽
16 도움 24.08.11 34 0 12쪽
15 현자를 찾아서 24.08.10 36 0 15쪽
14 푸른 탑 (3) 24.08.09 38 0 14쪽
13 푸른 탑 (2) 24.08.08 39 0 14쪽
12 푸른 탑 (1) 24.08.07 49 0 13쪽
11 남의 대륙 후기지수 양성 24.08.06 48 0 12쪽
10 여정의 시작 24.08.05 53 0 12쪽
9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24.08.04 60 0 13쪽
8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다 24.08.03 67 1 12쪽
7 무위를 드러내다 24.08.02 75 1 16쪽
6 가문의 위기 24.08.01 75 1 11쪽
5 함정 24.07.31 71 1 13쪽
4 조금 치는 루키와 썩은 물 24.07.30 96 1 13쪽
3 싸움구경 24.07.29 128 0 13쪽
2 웅크리다 24.07.29 176 2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