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름없는 무사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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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림
작품등록일 :
2024.07.29 20:14
최근연재일 :
2024.08.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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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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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DUMMY

귓전을 때리는 폭음에 이어 대지를 울리는 드레이크의 포효가 이어지자 아랑은 땅속에서 기어나왔다.


‘이걸 이렇게 써먹네.’


카르마를 쫓아 불길을 내뿜는 드레이크를 보며 아랑은 조용히 놈에게 접근했다.


모두의 시선에서 제외된 그는 단숨에 드레이크의 머리위로 몸을 날렸다. 허공답보를 통해 드레이크의 비늘을 밟지 않고 선 그는 검강을 뽑아 단번에 녀석의 뿔을 베었다.


크아아아악!


카르마를 쫓는데 혈안이 된 드레이크의 뿔은 무방비 상태로 아랑의 검에 의해 단번에 베어졌다.


“좋아, 하나 해결했고.”


최소한의 공력으로 놈의 뿔을 벤 아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뿔을 베인 녀석이 날뛰기 시작하자 아랑은 놈의 뿔을 양손으로 안아 들었다.


“카 소협이 좋은 걸 만들어 두었군.”


드레이크의 머리를 박차고 뛰어오른 그는 놈의 뿔을 안은 채 비늘이 뜯겨진 등쪽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네 녀석 뿔이고 비늘이고 마력이 그렇게 잘 든다지?”


아랑이 선천진기를 밀어 넣자 그가 안고 있는 뿔에서 검강이 솟구쳤다. 이에 아랑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놈의 등을 향해 뿔을 내리찍었다.


콰직!


끔찍한 소리와 함께 놈의 허리가 꺾이더니 녀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졌다.


쿵!


놈의 등에서 뿔을 뽑아낸 아랑은 인벤토리를 열어 뿔을 넣어보려 했다.


“이게 들어가려나?”


수용가능한 량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클라리벨이 적어준 재료들을 보관할 정도는 되리라 생각한 아랑은 인벤토리에 뿔을 가져갔다.


츠츠츠.


뿔의 크기에 맞춰 크기가 커진 인벤토리는 드레이크의 뿔을 삼키기 시작했다.


“역시 벨 할멈이야.”


만족스럽게 뿔을 회수한 뒤 아랑은 유니코스를 향해 다가갔다.


“노인장, 괜찮소?”

“그, 그랜드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가 어디 있소?”


아랑의 물음에 유니코스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에 아랑이 그를 노려보자 유니코스는 눈을 내리 깔았다.


“으어어···”


어색하게 자리에 쓰러지는 유니코스를 보며 아랑은 고개를 저었다.


“됐으니 일어나시오. 카 소협은 괜찮소?”

“부러지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쉬울 거야. 내가 응급조치는 해 놨어.”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카르마의 상태를 살핀 아랑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뼈를 맞출 줄 아시오?”

“내가 신체변형마법의 대가인 걸 잊은 거야?”

“골육에 관해서는 도사가 따로 없겠군.”

“포션을 써서 뼈를 다 붙여 놨지만 의사에게 보여야 해.”

“멀쩡해 보이는데 뭐, 일단 성으로 갑시다.”


성벽에 올라가자 아직 남아있는 불길과 잿더미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에르를 먼저 찾아야겠어.”

“사람들이 없는 걸 보니 안전한 곳으로 피한 모양이니 너무 걱정 말게.”


아랑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유니코스는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에르!”


그의 목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을 어디로 옮겼소?”

“교회에 있을 거예요.”

“고맙소.”


교회로 들어서자 수많은 부상자와 그들을 돌보고 있는 사람들로 내부는 북새통이었다. 아랑이 카르마를 의사에게 넘기는 사이 유니코스는 환자들 사이를 누비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르!”

“마법사는 어디에 있소?”

“이쪽입니다.”


장막속에 홀로 누워있는 에르멜라의 모습을 본 아랑은 놀라 사제를 바라보았다. 서리가 내린 듯 하얗게 서린 머리카락과 창백해진 그녀의 피부에 유니코스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포션 부작용인 것 같습니다.”

“부작용이라니? 무슨 포션을 복용했길래 부작용이 생긴단 말이오?”


그의 물음에 사제는 빈 유리병을 가져왔다. 클라리벨에게서 받은 포션임을 확인한 아랑은 고개를 저었다.


“벨 할멈의 포션이 어째서···”

“에르··· 흑흑···”

“아무리 훌륭한 포션이라도 남용하면 부작용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법사님은 냉기포션 중독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선택을 한 거요···”


아랑의 말에 사제는 고개를 저었다. 이에 그는 유니코스를 붙들어 물었다.


“소저가 왜 포션을 남용한 것이오?”

“흑흑··· 블리자드는 4서클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야. 이 간극을 채우기 위해 냉기포션을 대량 복용했을 거야.”

“그 뜻은···”


아랑의 시선이 에르멜라에게 향하자 유니코스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에르의 심장이 얼어붙고 있어.”


***


충격적인 말에 아랑은 장막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그저 불뱀으로 에르멜라를 감싼 뒤 그녀의 곁에서 울고 있는 유니코스를 뒤로 한 채 그는 교회 밖으로 나갔다.


‘이게 무슨···’


자신의 단전을 고치기 위한 여정. 이 여정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오만하고 한심한 자신의 모습에 아랑은 고개를 숙였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 그에게는 자책의 시간도 사치였다. 이대로 있으면 에르멜라는 죽을 게 뻔했기에 그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고민에 빠지는 것도, 행동만 앞서 나가는 것도, 지금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그는 일단 미아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뒷골목에 들어선 그는 바닥에 주저 앉은 채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곧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에게 접근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냉기포션에 중독된 마법사가 있네. 해결 방법을 찾아야하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부탁하네.”

“네.”


도적이 사라졌음에도 아랑은 그저 자리에 앉은 채 유니코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소저가 얼마나 버티겠나?’

‘잘하면 하루를 조금 넘길 수 있을 거야···’

‘화염포션으로 중화하면 좀 어떻겠는가?’

‘동상에 걸린 자리를 불로 지진다고 치료되는 건 아니잖아···’


유니코스에 의하면 에르멜라에게 남은 시간은 하루정도. 그가 직접 경공을 펼쳐 가장 가까운 순간이동 마법장까지 간다고 해도 이틀은 걸릴 것 같았다.


‘몸만 정상이었다면···’


빈약한 선천진기 때문에 그는 장시간 무공을 사용할 수 없었다. 웨버 지역의 냉기를 벗어날 때까지 북명신공을 사용할 수도 없었기에 운공을 반복해 웨버를 빠져나가던가 말을 타고 이곳을 빠져나간 뒤 전력으로 달려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래서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그의 머리로는 미아에게 기대를 거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해가 높게 뜨고 어둠이 물러간 뒤 마을에 드레이크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기쁨을 누렸다.


“와아아아!”

“드레이크가 죽었다!”

“이제 성밖으로 나가도 돼!”


높게 뜬 태양아래 환의에 찬 사람들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빚어진 새날의 눈부신 축복을 누렸다.


마치 태양빛처럼 아무 대가 없이 모두에게 찾아온 평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일 같이 찾아오는 새 아침처럼 그들은 대가 없이 평화를 누렸다.


사람들이 평화의 기쁨을 누리는 사이 아랑으로부터 뻗어 나온 그림자는 길게 거리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낯익은 발걸음에 아랑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은 아랑의 그림자가 발에 닿자 걸음을 멈췄다.


“아저씨, 불쌍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일어나.”

“직접 온건 가?”

“마친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미아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꼬았지만 아랑은 그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방법은 찾았나?”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남은 시간이 하루도 안된다는 건 알고 있겠지?”

“어. 일단 벨 할멈이 중화제를 준 건 맞지?”


그녀의 물음에 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있어서 지금까지 버틴 거네.”

“4서클 마법사가 블리자드를 시전하다니··· 보기보다 무모한 아가씨네.”

“그녀의 희생 덕분에 드레이크를 잡을 수 있었네.”


아랑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자.”


아랑이 미아의 뒤를 따르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웨버로 오기 전에 우리가 밑밥을 깔아야하니 시간을 달라고 했던 기억나?”

“기억하네.”

“그래, 그 때 소문을 내면서 얻은 정보가 있어.”

“이 사태에 도움이 되는 정보인가?”

“아니면 말도 안 꺼냈어.”


미아가 인상을 쓰자 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게.”

“웨버 성 일대의 이상 기후에 관한 정보야. 정보를 취합해보니 영원한 겨울이 활성화된 거 같아.”

“그게 무엇인가?”

“웨버가문의 보물이자 저주인 영원한 겨울은 기후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한 아티팩트야. 대대로 무골인 웨버가문은 영원한 겨울을 통제할 힘이 부족했어.”

“무골가문이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뭔가?”


그의 물음에 미아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확한 건 몰라. 하지만 오래 전 큰 공을 세워 왕가의 신뢰를 얻은 웨버가문에게 왕가가 봉인된 영원한 겨울을 지키라고 명했다는 게 중론이긴 해.”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을 보니 상당히 오래된 물건이가 보군.”


뼈가 있는 말에 미아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래, 수백 년 동안 봉인돼 있었던 아티팩트가 갑자기 날뛰니 정보가 부족했어.”

“자네니까 이정도의 정보를 모을 수 있었겠지.”

“칭찬인 척해도 소용없어. 어쨌든 하루 안에 마법사를 살리려면 영원의 겨울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

“그 위험한 물건을 어떻게 쓰려고 그러는가?”


아랑의 물음에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심장에 때려 박아야지.”

“자네 제정신인가?”

“미안하지만 영원한 겨울은 이런 식으로 사용된 게 맞아.”

“기상을 뒤바꾸는 물건을 사람의 몸에 이식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본래 용도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라고 하던데?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 뒤 이식한다고 해. 이식에 성공하면 냉기 마법을 강화하고 마법사의 서클을 하나 올려주는 효과가 있어.”

“서클을 하나 올려준다?”


검사로치면 경지를 하나 뛰어넘게 해주는 대단한 아티팩트였다. 아랑의 반응에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높은 수준의 마법사일수록 탐낼 수밖에 없는 물건이지. 7서클 아크메이지가 단번에 8서클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엄청난 아티팩트야.”

“이게 세상에 드러나면 마법사들의 갈등이 촉발되겠군.”

“특히 탑주들의 눈이 완전히 돌아버릴 거야. 마법사의 분열은 곧 인간의 큰 위기지. 이를 노리고 마족이나 드래곤이 영원한 겨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미아의 말에 아랑은 죽립을 매만졌다.


“지금 중요한 건 그 물건의 배경이 아니라 어떻게 그걸 확보할지가 문제네.”

“웨버 백작도 무슨 소동인지 모르는 눈치던데 그럼 일이 복잡해져.”

“백작을 직접 만나야겠네.”


아랑이 앞서 나가자 미아가 그를 붙잡았다.


“어쩌게?”

“분근착골을 써서라도 정보를 얻어야지.”

“그, 그런 짓을 백작에게 하겠다고?”

“협조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분근착골의 위력을 알고 있던 미아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백작을 적대시하는 건 좋지 않아. 내가 방법을 찾아볼 게.”

“뾰족한 수가 있는가?”


잠시 머리를 굴리던 미아의 귓가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빼 거리를 내다보니 카르마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손사레를 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미아는 미소를 지었다.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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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24.08.30 8 0 12쪽
30 드레이크 (4) 24.08.29 11 0 12쪽
29 드레이크 (3) 24.08.28 14 0 12쪽
28 드레이크 (2) 24.08.25 19 0 11쪽
27 드레이크 (1) 24.08.24 16 0 12쪽
26 전운 24.08.23 14 0 13쪽
25 웨버 백작 24.08.22 16 0 13쪽
24 웨버 성으로 24.08.21 22 0 12쪽
23 기사단 24.08.20 24 0 12쪽
22 정보 24.08.18 27 0 12쪽
21 그날의 기억 24.08.17 29 0 13쪽
20 부패 24.08.15 27 0 12쪽
19 도적의 여왕 24.08.14 29 0 13쪽
18 북새통 24.08.13 32 0 12쪽
17 신뢰와 상처 24.08.12 30 0 15쪽
16 도움 24.08.11 34 0 12쪽
15 현자를 찾아서 24.08.10 37 0 15쪽
14 푸른 탑 (3) 24.08.09 38 0 14쪽
13 푸른 탑 (2) 24.08.08 39 0 14쪽
12 푸른 탑 (1) 24.08.07 49 0 13쪽
11 남의 대륙 후기지수 양성 24.08.06 48 0 12쪽
10 여정의 시작 24.08.05 53 0 12쪽
9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24.08.04 60 0 13쪽
8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다 24.08.03 67 1 12쪽
7 무위를 드러내다 24.08.02 76 1 16쪽
6 가문의 위기 24.08.01 75 1 11쪽
5 함정 24.07.31 71 1 13쪽
4 조금 치는 루키와 썩은 물 24.07.30 96 1 13쪽
3 싸움구경 24.07.29 128 0 13쪽
2 웅크리다 24.07.29 17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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