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름없는 무사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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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림
작품등록일 :
2024.07.29 20:14
최근연재일 :
2024.08.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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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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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다

DUMMY

아랑. 이곳 서대륙에서 아랑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다. 크게는 마왕을 제압한 것부터 작게는 온갖 마물들을 쓰러뜨린 그는 온대륙이 경외하는 인물이었다.


“아랑이라고?”

“저놈이 정녕 미친 건가?”

“아랑의 이름을 쓴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냐?”


산적들이 스산한 기류의 변화보다 아랑이라는 이름에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름을 쓴다는 건 그 권위를 빌려 쓰는 행위. 다른 가문의 이름을 함부로 쓰면 해당 가문에게 보복을 당하고 왕가의 이름을 쓰면 반역자가 된다. 아랑의 이름을 쓴다는 건 서대륙을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근본 없는 비적때와 연극과 놀이를 하는 광대와 아이들도 용사라고 칭할 뿐. 스스로 아랑의 역할을 맡았다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스스로 아랑이라고 칭하는 건가?”


그들의 물음에 아랑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화아아악!


기류가 아랑을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자 풀과 나무가 생기를 잃고 마르며 흙과 암석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지?”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바뀌자 산적들은 당혹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사이 아랑은 손을 들어 올렸다.


‘건곤대나이’


구결에 따라 기맥에 선천진기가 퍼지자 아랑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산적들의 모든 병장기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


그들이 놀랄 틈도 없이 하늘로 솟은 검들은 곧 주인의 심장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쇄에에엑!


그와 함께 수십 명의 산적이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오직 장비를 잘 갖춘 기사 하나만 갑주에 의해 목숨을 구명했을 뿐이었다.


“마, 마법사였나?”


검과 부딪친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진 기사를 보며 아랑이 입을 열었다.


“이걸 본 자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더군. 그럼 이건 어떤 가?”


아랑이 손을 움직이자 기사와 충돌해 바닥을 구르던 검이 스스로 떠올랐다.


츠츠츠···


검이 움직이자 기사의 시선이 검을 따라 움직였다. 비록 소드 엑스퍼트 하급의 기사였지만 그 신묘한 움직임이 마법과는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걸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아랑의 코앞까지 온 검은 이내 뚜렷한 검강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기사의 눈에 경악으로 가득 찼다.


“그, 그랜드 마스터!”


그 경의로운 광경을 마지막으로 기사는 생을 마감했다.


일순간에 산적을 참살한 아랑은 올리비아를 향해 다가갔다. 놀란 얼굴을 한 채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 앞에 선 아랑은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소저, 괜찮으시오?”

“아, 아저씨···”


놀란 그녀의 모습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랑은 올리비아의 행색을 살폈다.


“다행히 상한 곳은 없는 것 같구려.”

“전 괜찮아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아랑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소?”

“네. 이해해요.”


빠르게 수긍하는 그녀의 모습에 아랑은 미소 지었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내 무위를 아는 자가 없었으면 좋겠소.”

“그,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겁을 먹은 그녀를 보며 아랑은 작게 웃었다.


“기껏 구해놓고 딴짓을 하겠소? 그러니···”


자리에서 일어난 아랑은 올리비아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꿀밤 한 대만 맞읍시다.”


***


아랑과 올리비아가 돌아오자 저택은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에른의 외침에 아랑은 준비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방랑기사들이 아가씨를 납치했습니다. 그런데 웬 사내가 나타나 놈들을 해치우고 사라졌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가! 뜬금없이 웬 사내가 나타나 큰 도움을 준 뒤 사라지다니!”

“영주님 말씀이 맞네. 스미스. 자네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 사건의 내막이 더 있을 터, 두려워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말해보게.”


그들의 추궁에 아랑은 말없이 카르마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과 침묵에 모두의 눈이 카르마에게 향했다. 그러자 나에른이 손으로 이마를 집었다.


“그래··· 내가 실수했네. 딸아이를 구하겠다고 맨몸으로 뛰쳐나간 자를 추궁하다니··· 부디 용서하게.”

“··· 누군인지 몰라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군요.”

“이런 소중한 기연을 두 번이나 겪다니, 그저 주신께 감사할 따름이네.”


나에른과 카르마가 수긍하자 아랑은 고개를 숙였다.


올리비아를 넘겨준 뒤 아랑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있었던 일의 전말을 전해들은 그는 씁쓸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필 이쪽 식량창고가 타버렸군.’


아랑은 자신의 첫 수확물을 세금으로 바치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기쁨은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처음 사용하는 무공을 펼쳐 보일 때와 같았다.


시커먼 잿더미가 가득한 바닥을 잠시 살피던 아랑은 사람들의 울음소리에 광장으로 향했다.


“흑흑···”


천을 덮은 희생자들을 나열해둔 광장에 들어선 아랑은 슬픔에 잠긴 주민들의 모습을 살폈다.


“엄마, 이제 아빠를 볼 수 없는 건가요?”

“필립··· 흑흑흑···”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을 고자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모습에 아랑은 한숨을 쉬었다.


저 아이들은 한동안, 어쩌면 다시는 그 명랑함을 찾지 못할 것이다.


“적당히 하다 도망칠 것이지 어쩌자고 끝까지 길을 막아서 이 꼴이 됐어!”


여인이 울부짖자 주민들이 그녀를 다독였다.


“그래도 부에슨은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 않는가?”

“정문을 지키는 자들 전부가 끝까지 저항하다 죽임을 당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망할 용병놈들···”

“누군가 그 개자식들을 전부 죽여버렸고 아가씨께서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아저씨들도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아랑은 고개를 숙였다. 저 나이 때 아이들은 때를 쓰고 어리광을 부리는 게 보통이 아닌가?


전란은 아이에게서 천진난만함을 빼앗아 간다. 슬픔을 감춘 채 어른들을 달래는 아이의 모습에 아랑은 산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 아랑은 산을 올랐다.


‘조용히 유람만 하려 했거늘···’


지금 하려는 행동은 그의 다짐을 저버리는 행위. 그 누구도 아닌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건 아랑으로서는 큰 책임과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콰콰콰!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 앞에 선 그는 쏟아지는 물을 올려다보았다. 이곳까지 온 이상 더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즉시 폭포로 들어선 그는 물을 맞으며 폭포 안쪽으로 들어갔다.


또옥··· 또옥···


젖은 그의 몸에서 물방울이 떨어지자 그 소리가 온 동굴에 울렸다. 동굴 가장 안쪽에 이르자 그는 손바닥을 벽에 댔다.


“흡!”


손바닥에 선천진기를 불어넣자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쿠우우우!


벽 안으로 들어선 그는 안에서 상자 하나를 열었다.


덜컥.


상자의 내용물이 눈에 들어오자 그의 눈은 잠시 추억에 잠겼다.


허름한 옷과 죽립, 목패 몇 개, 그리고 도반이 없이 쭉 뻗은 나무로 된 손잡이와 검집을 가진 볼품없는 검.


자신의 오래된 복장에 그는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복장을 갖추는 시간을 즐기듯 그는 천천히 의복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


“후우···”


죽립을 갖추는 것을 끝으로 그는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츠츠츠츠···


그가 발걸음을 내딛자 폭포는 그를 피해 양옆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폭포를 맞으면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올 때와는 달리 그의 옷에는 물한방울 맺히지 않았다. 그의 신발 역시 물에 젖지 않은 채 그는 수면위를 걸어 폭포밖으로 나왔다.


폭포를 빠져나온 아랑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


***


원정대로부터 들어온 급보에 막달라 가문은 소란스러워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기, 기사들이 피습을 당해 모두 전투불능 상태입니다.”

“그게 말이 되느냐!”


자작의 호통에 전령은 고개를 숙였다. 믿을 수 없는 보고에 자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놈의 보고에 목숨을 걸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제가 사태를 직접 목도하고 왔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전령의 모습에 자작은 인상을 썼다.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당장 나갈 채비를 해.”

“네. 자작님.”


시종이 문을 열자 죽립을 쓴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등장에 시종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누, 누구십니까?”

“자네는 나가 있게.”


시종을 내보낸 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막달라의 이름을 쓰지 않는 자는 자작가를 벗어 나시오. 내, 그대들에게는 원한이 없는 바요.”

“네놈은 뭐하는 놈이냐?”

“막달라 가문과 원한이 있는 자요.”

“복색을 보아하니 동대륙의 살수인가 본데 네놈은 받지 말았어야 할 의뢰를 받은 것이다.”

“뭐, 그리 대단해 보이는 실력자는 없어 보이오만?”


그의 물음에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흥, 네놈이야 말로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범인인데 기사의 검을 받을 수 있겠느냐?”

“어디 구경이나 시켜주시겠소?”


그의 말에 기사가 자작을 바라보자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사는 검을 뽑으며 말했다.


“소드 엑스퍼트 중급에 이르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그의 검에서 검기가 이르자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저것이 판금갑옷도 베어버린다는 오러!”

“과연 엑스트라 경··· 대단한 경지입니다.”

“오러라니··· 정말 신묘한 자태입니다.”


주변의 찬사를 즐기던 엑스트라의 눈에 살기가 들기 시작했다.


“이런 걸 어디서 본적은 있을 지 모르겠군. 지금이라도 바닥에 엎드려 사죄한다면 고통 없이 목을 베어주마.”


그 말에 남자는 죽립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


‘좆됐다.’


갑작스러운 검기의 등장에 아랑은 당혹감에 죽립을 매만졌다.


‘어떻게 쓰는지 생각나지 않아.’


그가 경지를 거듭하면서 검기를 사용하지 않은 지 수십년이 지났다.


절정의 고수가 구사하는 검사만 뽑아도 소드 마스터의 등장이라며 무릎을 꿇는 게 서대륙의 기사들이니 검강을 선보인다면 기절초풍해 바지적삼을 적실 게 분명했다.


아랑이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자 엑스트라의 목소리가 커졌다.


“기회를 줬음에도 바닥에 엎드리지 않다니! 그렇다면 양다리를 잘라 엎드리게 해주마!”


기사가 달려들자 아랑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아!’


이류 고수를 상대로 현경에 든 그가 발을 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자존심이 도망, 아니 단 한발자국이라도 뒤로 가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경의 경지에 들었음에도 호신강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검기를 맞는 건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럼 일단 호신강기로 시간을 벌어야겠군.’


선천진기가 기맥을 따라 흐름에도 호신강기는 그의 몸을 감싸지 않았다. 이 역시 그의 자존심이 이류 무사와의 일대일 정면 대결에서 호신강기를 사용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막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부럴.’


그가 고민하는 사이 검기는 그의 코앞에까지 다가왔다. 닥쳐온 위기에 아랑은 눈을 감았다.


‘이것도 수련이다.’


한 발 높은 경지에 닿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지금 하지 못하는 걸 해내는 것을 경지를 뛰어 넘었다고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도 한다.


검기를 뽑지 못하고 있는 아랑에게 이것은 또 다른 시련이자, 깨달음의 기회였다.


‘검기를 뽑지 못하면 죽는다.’


이제 것 겪어왔던 수많은 위기들. 하지만 그 위기는 항상 자기보다 강한 상대나 불리한 상황에서 찾아왔다.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황. 절대적인 하수에게 실력을 맞추기 위해서 그는 목숨을 걸었다.


‘이것으로 나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깨달음을 얻은 아랑은 눈을 뜨며 검에 선천진기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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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드레이크 (1) 24.08.24 16 0 12쪽
26 전운 24.08.23 14 0 13쪽
25 웨버 백작 24.08.22 16 0 13쪽
24 웨버 성으로 24.08.21 22 0 12쪽
23 기사단 24.08.20 24 0 12쪽
22 정보 24.08.18 27 0 12쪽
21 그날의 기억 24.08.17 29 0 13쪽
20 부패 24.08.15 27 0 12쪽
19 도적의 여왕 24.08.14 29 0 13쪽
18 북새통 24.08.13 32 0 12쪽
17 신뢰와 상처 24.08.12 31 0 15쪽
16 도움 24.08.11 34 0 12쪽
15 현자를 찾아서 24.08.10 37 0 15쪽
14 푸른 탑 (3) 24.08.09 38 0 14쪽
13 푸른 탑 (2) 24.08.08 39 0 14쪽
12 푸른 탑 (1) 24.08.07 49 0 13쪽
11 남의 대륙 후기지수 양성 24.08.06 48 0 12쪽
10 여정의 시작 24.08.05 53 0 12쪽
9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24.08.04 60 0 13쪽
»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다 24.08.03 68 1 12쪽
7 무위를 드러내다 24.08.02 76 1 16쪽
6 가문의 위기 24.08.01 75 1 11쪽
5 함정 24.07.31 72 1 13쪽
4 조금 치는 루키와 썩은 물 24.07.30 96 1 13쪽
3 싸움구경 24.07.29 128 0 13쪽
2 웅크리다 24.07.29 17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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