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약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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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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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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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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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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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이는 곳-8

DUMMY

“대인! 군장 대인,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잠에서 깨어난 운유는 한순간 헷갈렸다.


익숙한 철혈용사의 음성과 익숙한 군장 대인의 호칭.


나는 이백 년 전으로 되돌아오지 않았었던가?


토인족의 피로 이루어진 호수에 잠겨서, 토인족의 시체로 이루어진 섬에 파묻혀서······.


설마 꿈이었나?


지그시 눈을 감고 자조한 운유는 메마른 목소리로 뇌까렸다.


“꿈자리가 괴이했다. 전사들은 무기를 챙겨라. 토인족은 다 갱살해 없앨 것이다.”

“웬 잠꼬대야?”


운유는 누운 채로 고개를 휙 돌렸다.


의자에 운린이 앉아 있었다.


“······.”


이백 년 전으로 되돌아왔던 건 꿈이 아니었다.


자신을 운유 님이 아니라 군장 대인이라고 부르는 이 목소리는 병장들 가운데 한 명의 목소리였다.


“잠이 덜 깼어?”

“······아니. 이제 다 깼어.”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난 그는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를 부른 병장이 예를 표하며 말했다.


“대인, 간밤에 저희 병대가 당번으로 파수를 서던 와중에 낯선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대인께서 긴히 아셔야 할 것 같아 급하게 아뢰러 왔습니다.”


운유의 명령으로 조직된 병대는 전투, 침식, 당번을 같이했다.


당번에는 종류가 있겠으나 그중 제일 막중한 것은 불침번이었다. 각 병대는 병장끼리 상의하여 순번을 정하고 파수를 세웠다.


물론 둔영의 방비를 위한 불침번은 이전부터 계속해오던 것이었다. 다만 여태까지는 서로 눈치껏 돌아가며 하던 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구릉지에 오고 나서 며칠 만에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사람이군. 어디 있지?”

“이쪽입니다.”


운유는 병장을 따라 둔영의 동쪽으로 향했다.


“동틀 녘 파수를 서던 와중에 저것을 발견했습니다.”


병장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운유가 그 방향으로 시선을 보내니, 넓게 펼쳐진 구릉지의 지평선 부근에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말을 탄 단이족이었다.


“저기서 우리 둔영을 줄곧 주시하고 있습니다.”

“음.”

“아마 이 근방의 부락에서 우리 부락을 살피러 보낸 게 아니겠습니까?”


운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내쫓아라. 어차피 거리가 멀어서 잡기는 힘들 듯하니.”

“예!”

“너무 깊숙이 쫓아가지는 마라. 자칫하면 역으로 유인에 당할 수도 있다.”


병장은 운유의 분부대로 자신의 병대에서 청년 셋을 지목하여 낯선 단이족을 내쫓게 했다.


과연 이쪽에서 단이족 청년 셋이 달려나가자 낯선 단이족은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려 지평선 너머로 달아났다.


단이족 청년 셋은 운유의 당부를 잊지 않고 그대로 추격을 포기한 채 복귀했다.


“우리를 정탐한 자들의 의도가 단지 우리를 경계함에 있는지 혹은 우리를 침노함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뭇 병장은 이동할 채비를 재촉하고 활에 시위를 걸어둬라.”


운유는 서른 명의 병장들을 소집하여 분부했다.


이제는 부락의 모두가 이 체계에 익숙해졌던 덕분에, 그의 분부는 병장들을 통해서 곧바로 병대 전원에게 신속 정확히 하달되었다.


예전처럼 모두를 불러모아 말할 필요가 없었던 덕택에 중복과 번잡은 줄어들고 명령은 세밀해질 수 있었다.


머지않아 채비를 다 마친 운유의 부락은 이동을 시작했다.


운부의 단이족들은 모두 운유의 분부대로 활에 시위를 걸어둔 상태였고, 병장들은 척후를 선발하여 주위를 정찰했다.


운유는 선두에서 운부를 통솔하며 틈틈이 병장들에게 정찰 현황을 보고받았다.


번다한 잡무를 병장들에게 맡긴 운유는 대강의 결정만 내리고 나면 따로 일일이 지시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 만족했다. 부락의 체계는 자연스럽게 잡혀가고 있었다.


“대인, 보고드립니다. 남동쪽으로는 호수를 낀 작은 숲이 있다고 합니다.”

“군장 대인께 보고드립니다. 서쪽 바위투성이 동산들에 한 무리의 승냥이가······.”

“보고드립니다, 군장 대인. 방금 지나쳐온 길의 북서쪽에······.”


검은 평원의 지리를 손금처럼 꿰고 있었던 운유는 몇 차례의 정찰 보고만으로도 현재 위치를 제법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아울러 그는 검은 평원 각지에서 난잡하게 얽히고설킨 여러 민족의 세력권까지도 훤히 알고 있었으므로 이 근방에 동족의 어느 부락이 있을지 금세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이 부근이면 아마 표부[豹部]의 권역이었던가. 그럼······.’


운유가 기억을 더듬던 바로 그때, 한 병장이 급히 운유에게 달려왔다. 그는 다른 사람이 함부로 엿들어 소란이 번지지 않도록 낮고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 수백의 기마가 접근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운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인? 다른 부락의 군장이 직접 거느린 전사들입니다.”


운유의 심심한 반응에 당황한 병장이 덧붙였다. 그러자 운유는 병장을 힐끗 돌아봤다. 덤덤하다 못해 심드렁하게까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병장은 순간적으로 헷갈려버렸다. 자그마치 수백의 기마가 접근해 온다는 척후쯤은 대수롭잖은 일인가? 내가 지금 별것도 아닌 일로 야단을 떨고 있는 건가?


한순간의 헷갈림에 병장은 자문자답해보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당연히 대수롭잖을 리가 없었다!


병장은 조바심을 느끼며 말했다.


“전투를 준비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장의 물음에 운유는 또 한 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 모호한 고갯짓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병장은 이내 그것을 긍정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다른 병장들에게 전하여 운부의 모든 병대에 전투를 준비하게끔 했다.


활은 출발할 때부터 이미 시위를 걸어두었으므로 단이족들은 화살촉과 창칼 도끼를 점검했다. 행렬 또한 여자와 가축들을 안으로 보내고 남자들은 바깥을 돌며 방어에 적합한 진형을 취했다.


단이족들이 부산 떠는 곡절을 조금 뒤늦게 알게 된 운린이 운유에게 다가와 물었다.


“괜찮겠어?”

“뭐가?”

“다른 부락의 군장이 전사들과 함께 우리에게 오고 있다며. 네가 저번에 죽였던 그 풋내기와는 다를 텐데······.”


현재 운유의 운부에 속한 단이족은 청년 처녀를 통틀어 이백여 명이었다. 반면 접근해 오고 있더라는 수백 기마들은 모두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전사들을 의미했으니, 그 우열은 확연했다.


“물론 네가 검은 평원 제일의 용사였다던 얘기를 못 믿는 건 아니야. 근데 그건 이백 년 뒤의 얘기고, 지금의 너는 아직 몸이 다 크지도 않았잖아.”


수백의 전사를 이끈다면 아버지 못잖은 부락의 군장일 터였다. 그래서 운린은 운유가 일말의 경각심이나마 품길 바랐다. 군장의 오판은 반드시 부락의 재앙으로 직결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운린의 심려가 무색하게도 운유는 여전히 심드렁한 기색이었다.


‘······실력에 워낙 자신이 있어서 이러는 건가?’


운린은 자못 불안했으나 더이상 무어라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 해봐야 운유가 귀담아들을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그리하여 운유를 제외한 운부의 모든 부민이 바짝 날 선 가운데, 저 먼 구릉 너머에서부터 흙먼지가 일며 한 무리의 기마가 서서히 다가왔다.


사납게 느껴질 만큼 빠르지는 않되 조심스럽게 느껴질 만큼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특히 걸맞게 형용컨대 거침없다고 할 수 있을 터였다.


수백의 기마가 가까워질수록 운부 부민들의 긴장감은 높아져만 갔다.


기마전사의 위력은 기필코 말이 달릴 때에서야 발휘되는 법이었다. 말이 달리지 않는 기마전사는 죽은 기마전사와 진배없었다.


그렇기에 단이족 청년들은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하며, 언제든 박차를 가해 달려나갈 준비를 했다.


만약 저 수백의 기마들이 멈추지 않고 그대로 돌격해온다면, 가만히 서 있다가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도 마주하여 돌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군장 대인, 저들이 더 거리를 좁히기 전에 응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병장들이 앞다퉈 청했다. 돌격하여 가속이 붙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했기에 단이족 청년들은 시시각각 저 수백의 기마들이 가까워질수록 조급해했다.


한데 운유는 묵묵부답이었다.


“대인. 저들이 속도를 늦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군장 대인, 부디 명령을!”


병장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단이족 청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른침을 삼키며 달려오는 기마들을 응시했고,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도록 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그렇게 조마조마함이 극에 달하자 기어이 몇몇 단이족 청년들이 참지 못하고 몸을 들썩이더니, 멋대로 뛰쳐나가고자 했다. 바로 그때 운유가 별안간 뇌까렸다.


“아직이다.”


수백의 기마가 땅을 울리고 흙먼지가 휘날리는 와중이었음에도 그 나직한 한마디는 신비하리만치 선명하게 꽂혀 들었다.


정녕 하늘이 아끼는 천손답게 바람이 단이족들의 귓가로 그 목소리를 실어 날라준 듯했다.


운유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히자 분별없이 뛰쳐나가려던 단이족 청년들은 움찔하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그 한 가닥 목소리에 실려 그들을 사로잡았다.


“어······. 아······!”


두 주먹을 꼬옥 쥐고 달려오는 기마들을 예의주시하던 운린이 불쑥 탄식을 내뱉었다.


모두가 마음속으로 그어놨던 선을 넘기 직전, 달려오던 수백의 기마들이 급격히 속도를 늦추었다.


선두에서부터 후미까지 수백의 마필이 서로 뒤엉키고 부딪히는 일 없이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달음질을 멈췄고, 구릉을 떨게 하던 말발굽 소리가 거짓말처럼 빠르게 잦아들었다.


이에 운부의 부민들 사이에서는 안도하는 탄식과 탄성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속도를 늦추는 게 몇 호흡만 늦었어도 저 기마들은 마음속의 선을 넘었을 테고, 운부의 전사들도 응전하고자 돌격해갔을 테니, 실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하여 운부의 부민들은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먼지구름에 휩싸여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기마들을 적개심 담긴 눈으로 노려봤다.


저들이 이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을 꾸며내어 그들을 놀라게 만든 그 뜻이 과연 어디에 있으랴. 그들을 얕잡아 업신여기고 겁주고자 함이 아닐 수 없었다.


휘이이이잉!


문득 한바탕의 큰 바람이 불어와 먼지구름을 날려버렸다. 먼지구름에 가려져 있던 기마들의 모습이 비로소 드러났다.


그들은 원숙하고 노련한 장년과 팔팔하고 혈기왕성한 청년이 고루 섞여 있는 무리였다.


주로 가벼이 무장한 그들은 초원과 의상 복색이 거의 똑같아서, 길게 기른 머리를 자유롭게 묶거나 땋았으며 여우와 담비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었다.


더불어 손에는 전사답게 한 자루씩 뿔활을 쥐고 있었는데, 초원보다 비가 많이 오는 평원의 기후 때문인지 습기를 고려하여 제작된 특징이 돋보였다.


운부의 부민들은 유심히 그 모습들을 관찰하며 동질감과 이질감을 함께 느꼈다. 초원과 평원, 멀고도 가까운 땅에서 살아온 동족들의 모습은 묘한 감흥을 가져다주었다.


운린은 내심 상상해 보았다.


‘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검은 평원에서 장차 살아가게 된다면······.’


불현듯 그녀는 고개를 돌려 운유를 바라보았다. 그는 대여섯 명의 병장만을 대동한 채 저 기마들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운유가 대여섯의 병장들과 더불어 앞으로 나서자 맞은편에서도 같은 수의 기마가 마중하듯 나아왔다.


이윽고 목 아프게 외치지 않아도 서로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릴 만큼 가까워졌을 무렵, 쌍방은 고삐를 잡아당겨 멈춰섰다.


철마를 타고 나온 동족을 대면한 운유는 희미한 웃음기를 머금었다.


“나는 표부의 군장. 표인이다.”


노란 점박이 가죽을 어깨에 두른 장이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범처럼 묵직하면서도 탄탄하고 날렵한 몸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운부의 군장. 운유다.”

“회색 산맥을 넘어온 하얀 초원의 떨거지로군.”


혼잣말치고는 너무 또렷한 목소리로 남자가 뇌까렸다.


대뜸 모욕을 당한 운유 곁의 병장들이 발끈했다. 하지만 운유는 별로 괘념하지 않는 기색으로 손을 흔들어 병장들을 제지했다. 그리고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표부군 표인.”


운유는 희미하게 웃음 띤 얼굴 그대로 물었다.


“너는 한 줌의 떨거지가 무서운 거냐?”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것 같은 애송이의 맹랑한 도발. 표인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뭐라?”


천적 없는 포식자의 사나운 웃음이 애송이를 향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정작 애송이는 표인의 사나운 웃음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조곤조곤 말했다.


“우리가 네 땅을 빼앗을까 봐 지레 겁먹었을 테지. 가엾게도. 그래서 이처럼 텃세를 부리는 거야. 안 그런가?”


애송이의 망발에 표인의 측근 전사들이 고리눈을 뜨며 으르렁댔다. 그리고 표인은 애송이의 깜찍한 말버릇에 피식피식 실소했다.


“너, 저기 저쪽의 삼림을 통과해서 오지 않았나?”

“그랬지.”

“안타깝군. 그 숲을 지나오면서도 겸손을 배우지 못했다니. 너 같은 풋내기들이 주제 파악을 할 수 있게끔 일부러 그 버러지 같은 목인족들을 놔둔 건데 말이야.”


운유는 가슴팍의 청동 거울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꼴같잖게 말 타는 흉내를 내던 그 목인족들? 나한테 이걸 선물해주던데.”


표인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그는 운유의 얼굴과 가슴팍의 청동 거울을 번갈아 보더니, 좀 전의 실소와는 사뭇 다른 미소를 지었다. 마치 기특해하는 듯한 미소였다.


“훌륭한 용사들을 데리고 있나 보군. 아니면 네가 계책을 쓴 건가? 좌우간 자신만만할 법도 했겠어······. 허나 그래도 그 나불대는 말버릇은 고쳐야 할 거다.”


한층 누그러진 말투로 표인은 타이르듯이 말했다.


“목인족 따위를 쳐부수고 득의양양한 심정이야 이해한다만, 내 땅에서마저 그리 건방 떨지는 마라. 검은 평원에서 그랬다간 백 년도 못 살고 죽을 거다. 평원은 초원보다 척박하고, 전사를 더 혹독하게 길러내니까.”


평원이 초원보다 척박하고 전사를 더 혹독하게 길러낸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자부심이 짙게 깔려있었다. 숱한 고난을 이겨내며 살아 남아온 자의 자부심이었다.


“마치 검은 평원이 모두 네 땅인 듯이 말하는구나.”

“하얀 초원이 운부, 우부, 풍부의 땅이듯, 검은 평원은 표부와 호부, 견부와 랑부의 땅이다. 그리고 그 땅 가운데 내가 자리한 한 귀퉁이를 아무도 넘볼 수 없지.”


운유는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표인이 의아하여 물었다.


“무엇이 틀렸다는 거냐?”


운유는 표인의 착각을 일깨워주었다.


“이 땅에 아직 너의 자리는 없다. 검은 평원은 모두 나의 것이고, 나는 너의 자리를 허락해주지 않았으니까.”


잠깐 침묵이 흘렀다. 표인이 이 농담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잠깐이었다. 그 잠깐이 지나고, 표인은 결국 농담을 이해하지 못해서 재차 물었다.


“검은 평원이 왜 너의 것이지?”

“그야 내가 갖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다시 잠깐의 침묵. 그리고 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어디 가서 농담하면 안 될 것 같구나. 끔찍이도 재미가 없어.”


긴 참나무 자루 끝에 청동검을 붙인 창을 쥐며, 표인이 말을 몰아 천천히 나아왔다.


“스스로 뉘우치지 못할 성싶으니 내 손수 네 말버릇을 고쳐주마. 당돌하다 못해 교만한 아이야.”


표인이 나아왔지만, 측근의 전사들은 따르지 않았다. 하여 운유도 말을 몰아, 홀로 마주하여 나아갔다. 병장들은 뒤에 남겨둔 채. 청동검과 구리 도끼를 쥐고.


운유의 가슴팍에 달린 청동 거울이 햇빛을 반사했다.


표인의 가죽 갑옷에 주렁주렁 달린 청동 단추들이 휘황하게 반짝였다.


질주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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