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약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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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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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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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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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이는 곳-23

DUMMY

“견술. 너한테 잠시 둔영을 맡기겠다. 할 수 있겠나?”


토인족의 촌락을 살펴보고 온 운유는 견술을 불러 말했다.


견술은 일순 어리둥절하다가 곧 굳은 얼굴로 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운유는 모든 전사에게 무기를 갖추고 말에 탈 것을 분부했다. 전사들은 급히 말안장을 얹고 고삐를 채웠다.


“대인. 전부 준비를 마쳤습니다.”


병장들이 보고했다.


운유는 전사들을 거느리고 출발했다. 여자들은 둔영에 남아서 병자와 가축을 지켰다.


별다른 설명도 듣지 못하고 잠시나마 둔영을 덜컥 맡아버린 견술은 상당히 얼떨떨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여자들을 부렸다.


견술의 지시대로 일부는 척후가 되어 주변을 순찰했다. 나머지는 하던 대로 돌을 굽고 물을 끓였다.


그러던 와중 한 처녀가 견술에게 다가왔다. 아픈 운린을 시중들던 처녀였다.


“견술 님. 운린 님이 부르십니다.”


견술은 얼른 군장의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안은 후텁지근했다. 병자들의 천막처럼 군장의 천막에도 바닥에 구운 돌과 털가죽이 깔려있었으며, 여러 개의 화로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모피를 덮고 누워있던 운린이 콜록거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운유가 갑자기 전사들과 함께 어디로 갔다던데. 무슨 일이야?”


견술은 멋쩍게 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따로 설명을 듣지는 못해서······. 그나저나 운린 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운린은 목소리를 낼 기운도 없는 듯 고개를 미미하게 까딱였다.


견술이 도로 나가고, 운린은 두통과 고열로 정신이 혼몽한 와중 운유에 대해 생각했다. 갑자기 전사들을 이끌고 어디로 간 걸까.



+++



운유는 전사들을 이끌고 가볍게 달렸다. 그는 토인족 오백여 전사들이 숨어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곳과 충분히 떨어진 곳에 도착하여 전사들을 매복시켰다.


전사들을 매복시킨 후, 그는 아까 자신과 같이 고지에서 촌락을 살폈던 병장과 척후 둘을 불렀다.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까 그 벼랑 위에 올라가서 대기하고 있어라. 숲에 숨어있는 토인족들이 촌락을 습격해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 신호를 보내라.”

“신호는 무엇으로 보내야 하겠습니까?”

“늑대 소리로.”


예를 표한 병장은 척후 둘을 데리고 고지로 향했다.


운유는 계책을 말해주기 위해 나머지 병장들을 전부 불렀다.


그는 모여든 병장들에게 계책을 말하기에 앞서 나뭇가지로 작은 동그라미와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작은 동그라미는 큰 동그라미 안에 있었다.


“이 작은 동그라미가 토인족의 촌락이다. 큰 동그라미는 토인족의 밭과 숲의 경계다. 우리는 큰 동그라미 밖, 아마도 이쯤에 있다.”


운유는 나뭇가지로 큰 동그라미 바깥의 어느 한 곳을 짚었다.


“척후에 따르면 오백여 토인족이 저 촌락을 노리고 있다. 그들은 아마 이쯤에 있겠지.”


나뭇가지가 큰 동그라미 바깥의 또 다른 한 곳을 짚었다.


“숲에 숨어있는 토인족이 촌락을 습격하여 서로 싸우면, 바로 그때 우리가 나설 것이다. 그리하여 토인족을 다 죽이고 촌락에서 며칠 푹 쉴 것이다.”


병장들은 신중한 표정으로 운유의 계책을 경청했다.


“의견이 있다면 말해봐라.”


한 병장이 말했다.


“우리는 토인족보다 숫자가 훨씬 적으니, 시기를 잘 잡아야 할 듯합니다.”

“소상하게 말해봐라.”

“토인족들이 서로 싸우느라 힘이 다 빠졌을 때가 좋은 시기입니다. 어느 한쪽이 쉽게 이기지 못하고 팽팽하게 싸우느라 많이 죽으면 가장 좋을 텐데······. 하지만 이것은 천운을 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운유는 병장들을 돌아봤다.


“다른 의견은?”


누군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직접······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리한 시기와 상황을······.”

“어떻게?”


병장들은 고심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럴싸한 의견을 내지 못했다.


“우리가 직접 상황을 만들고 시기를 잡으면 된다.”


운유는 의견을 낸 병장 둘을 지목했다.


“너희 둘은 발이 빠르고 활을 잘 쏘는 전사를 여섯씩 뽑아라. 우리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몰래 촌락으로 들어갈 것이다.”


병장들은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무심코 탄성을 내뱉었다.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병장들 가운데 아무도 해보지 못한 발상이었다. 너무 기발한 발상이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멍청한 발상이어서였다.


초원에서 말을 타지 않고 싸운다는 발상은 일고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으니까.


병장들은 이마를 치며 부끄러워했다. 회색 산맥을 넘으면서부터 운유는 누누이 검은 평원과 하얀 초원이 다름을 강조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하얀 초원의 생리에만 익숙해 있었다.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검은 평원에서 아직 한 해조차 보내지 않았음을 참작한다면 너희가 딱히 못난 셈은 아니야.”


운유는 웬일로 병장들을 격려해주었다.


“그저 내가 너무 잘났을 뿐이지.”

“······.”

“······.”


병장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직접 촌락에 들어가서 적시에 신호를 보내겠다. 명적을 쏘아 올리면 그때 모든 전사가 들이쳐서 토인족들을 죽여 없앤다. 이해했나?”

“예!”

“그럼 가서 준비해라.”


병장들은 각자 병대의 전사들에게 운유의 계책을 설명하고 분부를 하달했다.



+++



병장과 척후 둘은 벼랑 위의 고지에서 촌락을 지켜봤다. 산바람이 모질어서 적잖이 고역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자 추위는 더욱더 심해졌다. 병장과 척후 둘은 어서 빨리 숲의 토인족들이 움직여주길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되었다.


어두컴컴한 오밤중. 토인족들의 촌락에서 마구 북을 치는 소리가 벼랑 위까지 들려왔다. 숲에서는 토인족들이 쏟아져 나왔고, 촌락은 원문이 활짝 열렸다.


달빛 아래에서 괴성을 지르며 촌락으로 달려가는 오백여 토인족들.


병장은 운유의 지시대로 늑대를 흉내 내어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


멀리서 늑대의 포효를 닮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숲에서 매복하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운유는 두 명의 병장과 활 잘 쏘는 전사 열두 명을 데리고 촌락으로 향했다.


자세를 낮추고 촌락으로 접근하자 활짝 열린 원문이 보였다. 안쪽에서는 토인족들의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원문의 문루에는 죽은 파수꾼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촌락을 습격한 오백여 토인족들은 따로 원문을 지킬 토인족을 남겨두지 않았다. 토인족들이 퇴로를 허술하게 남겨둔 덕에 운유는 아무 방해 없이 안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원문에 전사 둘을 남겨둔 운유는 병장 둘과 전사 열을 거느려 토인족들의 고함과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움직였다.


언제든 활을 쏠 수 있게 시위에 살을 메고, 어둠과 움막 뒤에 몸을 숨기며 발소리를 죽이고 걷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사냥꾼이었다.


“우아아아아아!”

“죽여라! 죽여라아아! 저놈들을 죽여어어!”

“끄아아악!”


머지않아 운유와 전사들은 토인족들이 우글우글하게 뭉쳐서 싸우는 곳까지 다다랐다.


움막의 지붕 위로 기어올라서 머리만 빼꼼 내민 운유는 토인족들의 싸움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달빛이 별로 밝지 않았음에도 그는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다.


촌락의 토인족들이 습격자들에게 확연히 밀리는 중이었다.


움막 아래로 내려온 운유는 전사들에게 손짓하여 그들을 넓게 퍼뜨렸다.


저마다 움막 뒤에 몸을 숨긴 전사들은 운유가 첫 살을 쏘자 뒤이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어억!”

“컥!”

“끅!”


화살에 맞은 습격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뭐, 뭐야!”

“화살이다!”

“어떤 놈들이 활을 쏘는 거야?”


습격자들은 느닷없이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운유를 포함해서 열세 명의 빼어난 활잡이들이 연거푸 활을 쏘자, 마치 수십 발의 화살이 여기저기에서 날아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습격자들이 나무 활을 쏘고 돌을 던지며 응수하고자 했으나 운유와 전사들은 움막 뒤에 숨어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반면 습격자들은 화살을 쏠 때마다 어김없이 맞고 죽으니, 금세 혼란이 번져 나갔다.


운유는 다시 움막 지붕으로 기어 올라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습격자들은 앞쪽 무리와 뒤쪽 무리의 상황이 달랐다.


앞쪽 무리는 촌락의 토인족들과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데 반해 뒤쪽 무리는 화살을 피하느라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계속하면 뒤쪽의 혼란은 점차 앞쪽으로도 옮겨가서 촌락의 토인족들에게 숨통을 틔워줄 성싶었다.


‘조금만 더 쏘다가 잠깐 멈춰야겠어.’


촌락의 토인족들이 간신히 숨만 쉴 수 있게 해줘서 습격자들과 최대한 오래도록 싸움을 이어가게 만들어야 했다. 운유는 노련하게 그 완급을 조절했다.


한데 그때 습격자들 사이에서 어림잡아 칠십 명쯤 되는 토인족이 갈라져 나왔다.


갈려자 나온 칠십여 명의 토인족들은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운부의 전사들이 활을 쏘며 저지했지만, 칠십여 명의 토인족들은 아랑곳하지 않게 용감하게 달려왔다. 칠십여 명 중에서 거의 스무 명 가까이가 죽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운유는 휘파람을 불었다. 병장들은 전사들을 챙겨서 신속하게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화살을 쏴서 견제를 빼먹지 않았다.


“저놈들이 도망한다! 쫓아라! 잡아서 죽여!”


오십여 명의 토인족들이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운유와 전사들은 촌락의 원문까지 빠르게 물러났다. 원문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전사도 합류했다.


원만 밖으로 나온 그들은 전력을 다하여 눈밭을 질주했다. 이 같은 상황을 대비하여 발 빠른 전사들을 뽑았고 차림새도 가볍게 했기에 토인족들과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숲까지 달려라! 너는 먼저 가서 알리고!”


달리기가 제일 빠른 전사는 미리 지시했던 대로 앞서나갔다. 숲에 매복해 있는 전사들에게 준비를 시키기 위함이었다.


눈밭을 절반쯤 가로질렀을 무렵, 운유는 어떤 묵직한 것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제자리에서 멈춰 서며 시위에 살을 메어 당김과 동시에 허리를 틀었다.


뒤처진 전사를 향해 날아오는 돌멩이. 운유는 그 돌멩이를 화살로 쏘아 맞혔다.


“헉!”


운유가 별안간 자기를 향해 활을 쏘자 뒤처졌던 전사는 놀라며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그러나 운유의 화살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며 등 뒤에서 날아오던 돌멩이를 맞추자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운유는 연이어서 화살을 날렸다. 돌팔매질해오는 토인족을 쏴 죽인 그는 숲까지 쉼 없이 달렸다.


토인족들은 의심 없이 운유와 전사들을 쫓았다. 어둠 속에서 화살을 쏘던 활잡이들이 고작해야 열댓 명에 불과함을 알게 된 토인족들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이놈들! 이 겁쟁이들아! 냉큼 이리 와라! 잡아서 죄다 머리 가죽을 벗겨주마!”


활잡이들을 쫓아 숲까지 들어온 토인족들이 의기양양하게 고함질렀다.


그 순간 달빛이 숲의 한구석을 내리쬐었다.


토인족들은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낯선 발굽 짐승들을 마주했다. 발굽 짐승은 발굽 짐승인데, 해괴하게도 사람의 몸뚱이가 그 위에 붙어 있었다.


“······어?”


발굽 짐승 위에 붙어 있는 사람의 몸뚱어리들이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토인족들 머리 위로 화살비가 퍼부어졌다.


오십여 명의 토인족들은 변변한 저항조차 못 하고 모두 죽었다.


물을 마시고 화살을 보충한 운유는 열댓 명의 전사들과 더불어 촌락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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