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약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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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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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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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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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이는 곳-6

DUMMY

“발굽 자국을 쫓아라. 목인족들조차 서툰 솜씨로 말을 타고 지나간 길이다. 너희에게는 결코 어려운 길이 아니다.”


초원에서처럼 거침없이 달리기에는 장애물이 많은 숲이었다. 나무와 바위 같은 큰 장애물들은 둘째 치더라도 돌부리며 뿌리, 넝쿨과 덤불과 개울 따위를 빠짐없이 살펴야만 했다.


익숙지 않은 숲길에 자연스럽게 긴장한 단이족 청년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들은 운유의 훈계대로 목인족들의 흔적을 쫓으며 조심해서 말을 몰았다.


다행히 그들은 걸음마를 뗄 적부터 말을 모는 기마민족이었다. 적어도 말 타는 재주만큼은 천하에 따를 자가 없는 달인들이었다.


숲길이 눈에 익으며 빠르게 적응한 단이족 청년들은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땅이 울리며 잎사귀가 떨어지고, 새 떼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단이족 청년들이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판단한 운유는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불었다.


삐이이이익!


초원에서는 흔히 들짐승을 사냥할 때 호루라기 등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기마민족에게 사냥과 싸움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방식이든 목적이든 그 둘은 같은 것이었다.


호루라기 소리를 들은 단이족 청년들은 양옆으로 날개를 펼치듯 산개했다.


휘이익! 휘익!

삐리리리릭!


단이족 청년들이 산개한 숲 이곳저곳에서 휘파람과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인족들을 발견한 단이족 청년들은 주변에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활을 쏘아댔다.


무수한 엄폐물 때문에 맞추기가 역시 쉽지 않았지만, 말타기와 마찬가지로 활쏘기의 명수인 단이족들은 기어이 목인족 전사들을 하나둘씩 쏘아 죽여댔다.


등 뒤에서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화살과 간간이 단말마를 지르며 낙마하는 동료들로 말미암아 목인족 전사들은 적잖이 위축되었다.


자기네 땅에서 사냥감처럼 쫓기는 신세가 원통하고 분했으나 일신의 실력으로는 기마전사와 겨룰 수 없는바. 혹은 따돌리거나 혹은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으로밖에 응전할 길이 없었다.


“머리 위를 사각으로 두지 마라! 덮쳐오는 그물과 통나무를 주의해라!”


별안간 앳된 목소리가 숲을 떨쳐 울렸다.


절묘하게도 때마침 단이족 청년 한 명이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그물에 뒤엉켜 마필과 함께 나뒹굴었다.


이처럼 사상자는 쫓기는 목인족뿐 아니라 쫓는 단이족 중에서도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목인족 전사들은 쾌재를 부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갈수록 단이족 청년들의 압박이 심해져 온 까닭이었다.


“이놈들! 여기가 죽을 자리인 줄 모르고 왔구나!”

“헉!”


단이족 청년들이 압박의 수위를 높여감에 의해 이리저리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목인족 전사들은, 어느덧 저도 모르는 새에 단이족들이 유도한 방향으로 말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일찍부터 신호를 받은 단이족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으악!”

“큭!”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에 고슴도치가 된 목인족들은 낙엽처럼 스러졌다.


“와아아!”


목인족 전사들을 한바탕 쓸어버리고 나자, 단이족 청년들은 낯선 숲에서 낯선 사람과 싸워 호쾌하게 이겼다는 자부심이 마구 샘솟았다.


양 뺨이 발갛게 상기되고 숨이 들뜬 청년들은 의기양양하여 흥분으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겠다는 듯 함성을 터트렸다. 아울러 팔을 치켜들고 마구 흔들어댔다.


다각. 다각.


철마를 탄 운유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저절로 함성이 가라앉으며 침묵이 찾아왔다. 단이족 청년들은 들뜬 가슴으로 숨을 참으며 운유를 바라봤다.


단이족 청년들의 눈빛은 이전과 또 달라져 있었다. 이제 운유를 향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강한 신뢰가 담겨 있었고, 심지어 몇몇은 은근한 숭상마저 내비쳤다.


목인족들을 사냥할 때, 그가 단이족 청년들을 능수능란하게 통솔하며 적시에 조언하고 훈계했던 덕이었다.


‘운유 님의 지시에는 과연 어느 것 하나 틀림이 없었다.’

‘운유 님이 이처럼 용맹과 지혜를 겸비한 분이셨을 줄이야.’


사냥과 싸움이 생계이자 일상인 기마민족은 언제나 용맹과 지혜를 숭상했고, 그 두 가지를 고루 갖춘 어른을 우두머리로 추종해왔다. 그래야만 싸워 이길 수 있었기에.


그렇기에 단이족은 장이족을 예로부터 섬겨왔던 것이었다.


오늘 운유의 통솔하에서 청년들은 흡사 노련한 어른과 더불어 사냥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운유의 지시가 적확하게 그들을 이끌어주었으니, 기마전사들은 운유에게 감복하고 헌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수고했다. 이제 승자의 권리를 취하러 가자.”


운유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기마민족의 고고한 전사들은 일제히 예를 표하며 외쳤다.


““군장 대인의 명에 따릅니다!””



+++



운유와 단이족 청년들은 목인족 촌락을 찾아서 마른하늘 날벼락처럼 들이쳤다.


촌락에 있던 여자와 노인, 아이들은 기마민족의 급습에 아연실색하여 황급히 달아나고자 했다. 하지만 두 발로 뛰는 사람이 네 다리로 뛰는 말보다 빠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을 한복판을 가로질러 달리며 단이족 청년들은 흉포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허겁지겁 달아나는 목인족들을 스쳐 지나가며 창칼을 휘둘렀다.


피바람이 일며 시체가 도처에 널렸다.


“하하하하!”

“모조리 죽여라! 으하하!”


단이족 청년들은 노인과 아이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 가리지 않고 잔륙했다. 그들의 심미안으로 목인족 여자는 욕정조차 생기지 않는 추녀들이라 사로잡을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족을 죽이고 겁탈한 놈들이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이니 절대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죄다 목을 베어 죗값을 치르게 해라!”


몇몇 단이족 청년들은 동족의 여자가 이 마을의 목인족들에게 겁탈당했었음을 떠올리고 이를 소리쳐서 다른 청년들에게도 되새겨주었다.


비록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어쨌거나 동족의 여자가 겁탈당했었다는 사실은 청년들을 분노케 했다. 그래서 그 분풀이 삼아 단이족 청년들은 최대한의 잔인함을 발휘했다.


그들은 만삭의 산모를 창으로 꼬치처럼 꿰뚫었으며, 올가미를 던져 잡은 늙은이와 꼬마를 질질 끌고 가서는 우물 속에 빠뜨려버렸다.


가히 광란의 현장이었다.


드물게 용감한 목인족 노인과 소년, 여자들이 뭉쳐서 조악한 무기를 들고 저항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그 용기는 목인족들을 더욱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인도할 뿐이었다.


단이족들은 감히 저항을 시도한 목인족들을 차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모욕적으로 도살했다.


그것이 어찌나 끔찍했던지, 분연히 함께 떨쳐 일어서려던 다른 목인족들은 지레 겁먹어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았을 정도였다.


“베기 쉽게 얌전히 목을 내밀어라, 이놈들아!”

“양순하게 도축되길 기다리는 꼴이 가관이구나! 푸핫!”


모든 저항의 의지를 분쇄하고 조소하며 말에서 내린 단이족들은 울타리와 문을 부수고 목인족들의 집으로 들어갔다. 승자의 권리대로 약탈하여 전리품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쓸만하고 값나가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가죽 자루와 주머니에 긁어 담았다. 혹여 집에 숨어 있는 목인족을 발견한다면 그대로 죽여버린 다음 시체에서 장신구 따위를 수거했다.


“창고에 있는 식량을 남김없이 챙겨라.”


창고에는 고기, 나물과 버섯, 열매 따위 꽤 넉넉하게 있었다. 목인족들이 월동을 위해 비축해둔 식량이었다.


“안 돼! 안 된다 이놈들! 먹을 걸 다 가져가면 우리는 어쩌라고!”


단이족들이 창고의 식량들을 말안장에 실어 나르자 어디선가 숨어 있던 목인족 노인이 나타나 외쳤다.


단이족 청년들은 노인이 목인족의 언어로 무어라 지껄여대는지 몰랐으나, 그 행동과 표정을 보고 노인의 심정을 대강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여 그들은 목인족 노인의 이마에 화살을 꽂아줌으로써 걱정을 해결해주었다. 시체에는 음식이 필요치 않았으니.


식량들을 몽땅 챙긴 그들은 마무리로 촌락에 불을 질렀다. 목인족들의 가옥은 숲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로 지어졌던 터라 불에 잘 탔다. 하필이면 건조한 가을이라 더더욱 그러했다.


“아아악! 살려줘! 아아아아아악!”

“아파아아아악! 차라리 죽여줘어어!”


그때까지 용케 들키지 않고 집에 숨어 있었던 목인족들은 불길에 휩싸여 절규했다.


단이족들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목인족들이 기르던 말과 가축들을 몰아 떠났다.



간신히 살아 도망쳤던 목인족들이 불타는 마을에 돌아와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은 건 그로부터 얼마 뒤의 일이었다.



+++



수레와 가축을 지키고 있던 단이족 처녀들은 만면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띤 청년들이 복귀하자 환호했다.


비록 목인족들을 사냥하면서 함정에 걸려 죽은 단이족 청년들이 여럿 있었기에 그 죽은 청년들의 누이 혹은 친구 혹은 연인들은 슬픈 안색이 되었지만, 분위기가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사냥과 싸움, 전사의 죽음을 불가분의 필연이었다. 그로써 싸움에 이겼다면 그저 족할 뿐이었다. 그것이 초원의 습속이었다.


청년들은 처녀들에게 으스대며 노략질해온 재물과 식량을 수레에 나눠 담았다. 새로 얻은 가축에는 표식을 붙였다.


처녀들은 한껏 신난 청년들의 허풍과 자랑에 기꺼이 호응해주었다. 몇몇 다정한 처녀들은 다친 청년들의 몸에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주기도 했다.


운유는 나른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대강의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이동이 재개되었다. 장이족 남매와 단이족 청년 처녀들은 동쪽으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저기 풀밭에 공터를 만들어 숙영한다.”


하루 이틀 만에 통과할 수 있는 삼림이 아니었던바. 운유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적당한 곳을 찾아서 이동을 멈추었다.


부민들은 운유의 지시대로 풀밭의 풀을 베고 여느 때처럼 둔영을 건설했다. 그들은 목인족들의 야습을 경계하여 평소보다 방비에 공을 들였다.


이윽고 숙영할 준비가 다 끝나자 운유는 부민들을 잠시 한 자리에 집결시켰다.


“기민한 움직임을 위하여 병대를 편제하고 장을 정하겠다.”


그는 손가락으로 단이족 청년들을 한 명씩 지목했다.


“너. 너. 너. 너······. 그리고 너까지.”


운유에게 지목된 삼십 명의 청년들이 앞으로 나왔다.


키 작은 사람과 키 큰 사람,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 통통한 사람과 홀쭉한 사람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그들은 운유의 기억 속에 있는 삼십 명의 용사들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그리하여 철혈을 하사받고 이백 년간 운유 곁에서 싸웠던 용사들.


‘과연 이번에도 모두 살아남을까?’


운유는 곧바로 삼십 명의 청년들에게 철혈을 하사하지는 않았다. 철혈은 아무에게나 베풀 수 있는 은혜가 아니었으니까.


한 방울의 철혈을 하사받아 일백 년의 수명을 연장하고 싶다면, 이들은 또 한 번 자격을 입증해야만 할 터였다.


‘죽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운유는 삼십 명의 청년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병장[兵長]으로서 각자 병대[兵隊]를 통솔한다. 병대는 전투를 같이하고, 침식을 같이하며, 당번을 같이한다. 포상과 처벌 또한 같이한다.”


그는 혈연관계를 고려하여 각 병대에 골고루 단이족 청년 처녀를 배속시키고, 병장으로 뽑힌 삼십 명의 청년들에게 다짐을 받아냈다.


“겨우 일고여덟 명에 불과한들 부민을 통솔하고 관리하는 책임은 막중한 법이다. 병장이 공을 세우면 남들보다 후히 상을 내릴 것이되 병대의 부민이 잘못을 저지르면 병장까지 벌할 것이다.”


삼십 명의 병장들은 한쪽 무릎을 꿇어 절하며 맹세했다.


“맡은 바에 절대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검푸른 하늘 흰 달 아래에서 병장들의 결의는 굳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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