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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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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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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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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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虎患) (2)

DUMMY

호랑이에 의한 환난, 즉 호환(虎患)의 역사는 중원의 역사와 함께했다. 드넓은 중원 대륙 곳곳에서 북방은 북방대로, 남방은 남방대로 환경에 맞게 적응한 호랑이가 인간을 습격해 왔으니 동방에 자리잡은 타국의 민족은 이런 호환을 역병과 동급의 환난으로 여길 정도였다.


웬만큼 숙련된 무인에게도 호랑이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자연 상태의 포식자는 피식자의 영기(霊気)를 흡수하곤 하니,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는 모두 필연적으로 꽤나 영험했고, 그 덕에 사냥감보다 늘 한 발 앞섰다.


그런 호랑이들조차도, 성체 말을 노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보통의 호랑이와 보통의 말이라면.


‘제아무리 호랑이라도 회영이 쉽게 당할 리가 없어. 상처부터가 심상치 않았지만, 저런 괴물일 줄은...’


야생마 무리를 향해 달려오는 형체와의 거리는 이제 백여 장 정도로 줄어들었다. 말의 몸을 얻고 부쩍 좋아진 눈에 호랑이의 정체와 생김새가 똑똑히 비쳐 왔다.


입 부근을 피로 적신 채 야생마 무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달려오고 있는 맹수. 호랑이는 호랑이였으되,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졌다.


첫째는 털의 색. 자연 상태의 짐승이 저런 빛을 띄는 건 불가능한 줄로 알았다. 청색, 시퍼런 쪽빛에 어두운 자색(紫色)이 약간 더해진,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색이었다. 숙련된 염색공조차 만들기 쉽지 않아 보이는 그 위험한 푸른 털빛 사이 호랑이 특유의 검은 줄무늬가 자리잡아, 검푸른 빛이 흉흉했다.


둘째는 눈동자였다. 검은 자위여야 할 동공이 호박색이었고, 호박색으로 빛나야 할 홍채가 검은색이었다. 그 이질적인 눈이 야생마 무리, 그 중에서도 주옥에게 꽂혀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짐승이지만 짐승을 넘어선 무언가. 즉, 환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정체가 영물인지 마물인지 가르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공포에 맞서, 주옥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키히힉-!!”


귀곡성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가 푸른 호랑이에게 뻗어나갔다. 등지고 있는 유성과 갈청은 그저 소리만 들었을 뿐이지만, 푸른 호랑이, 청호(靑虎)에게는 달랐다. 주옥의 울음소리는 청호의 머릿속을 흔들고 발걸음을 꼬아, 달려오던 그대로 넘어져 들판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사자후(獅子吼)를 개량한 천마후(天馬吼)였다. 사자후란 무공이 원체 신공 취급을 받을 정도로 절륜한 위력을 자랑하니, 말의 몸에 맞춰 개조한 무공도 청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충분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청호는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외려, 양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분명 미소였으되, 미소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끔찍한 얼굴이었다. 입이 찢어질 듯 벌어져, 그 아래 숨겨져 있던 톱날 같은 수많은 이빨들이 비수처럼 빛났다. 회영의 것이 분명한 핏자국이 수많은 이빨 사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러면서도 검은 눈동자는 광기와 함께 흥분까지 띠고 있어, 자연스레 모골이 송연해졌다.


‘젠장. 저게 진짜 호랑이냐? 아니면 호랑이 거죽을 뒤집어쓴 이매망량(魑魅魍魎)이냐?’


비록 경계를 늦춘 걸 후회하긴 했지만, 사실 본인과 무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주옥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의 덩치는 예사 호랑이와 비교해도 크면 컸지, 모자람이 없었으며, 뒷발차기는 호랑이 이상의 짐승이라도 일격사 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그러니 상대가 흔한 맹수였다면 절대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저 푸른 괴물이 호랑이가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제 가까이 다가온 청호의 모습을 보니, 덩치도 예상보다 훨씬 커서 주옥의 체장에 전혀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거구가 달려오는 속도 역시 빨랐으니, 어느 새 야생마 무리와 청호 사이의 거리는 채 오십 장도 남지 않았다. 그 속력을 보고,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달리기도 빠르다. 도망친다 해도 확실히 몸을 빼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게다가 회영도 있으니 싸울 수밖에.’


유성과 갈청을 향해 재빨리 신호를 보냈다. 이런 의미였다.


‘물러서. 친구 지켜. 고양이, 발로 차.’


두 마리 야생마는 즉각 주옥의 지시를 알아듣고 회영의 앞뒤를 지켰다. 그들도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반명 회영은 가만히 눈을 감고 안정적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생존을 확신할 정도는 아니어도 일단은 긍정적인 예후였으니, 이제 해야만 하는 일은 하나였다.


청호의 귀안(鬼顔)을 똑바로 마주보며, 주옥은 다시 한 번 울부짖었다.


“키아아악!!”


예의 그 흉측한 울음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활짝 웃고 있는 청호의 표정과 귀기를 밀어내 버릴 생각으로 지른 천마후였다. 하지만, 같은 수법이 두 번 통하지는 않았다.


“크아아아!!”


이번에는 청호도 맞받아쳤다. 똑같은 음공(音功), 사자는 아니어도 사자후를 지르기엔 부족함이 없는 환수였다. 천마와 호랑이의 울음이 그들 사이 어딘가에서 부딪쳐 상쇄됐다. 그 여파로 내력이 실린 바람 줄기가 몸을 덮치는 게 느껴졌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저 자식, 무공을 쓸 줄 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머릿속에, 불현듯 낯선 목소리가 침투했다.


‘재미있는 놈이구나.’


성대를 긁는 초저음의 목소리가 천마마저도 위축시켰다. 고막을 거치지 않고 곧장 머릿속으로 들어온 목소리였다. 이 역시도 무공으로 가능한 일이었으니, 다시 한 번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너무나 명확한 점이 더욱 경악스러웠다.


‘사자후와 전음입밀(傳音入密)? 짐승이?’


소리를 전달하고 있는 건 바로 눈앞의 적, 청호였다. 눈에 띄게 동요하는 주옥을 앞에 두고, 청호가 도약해 앞발을 뻗어 왔다. 그제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동요시키려고 일부러 말을 건 건가?’


동시에, 다리에 힘을 주어 뒤로 몸을 피했다. 뒤로 도약하는 거리가 역시 한 장에 가까웠다. 그 덕에 청호의 발톱은 주옥의 몸 옆면에 작은 생채기를 내는 데 그쳤다. 색이 뒤바뀐 청호의 역안(黒白)에 이채가 깃들었다. 그 이채를 보며 주옥은 생각했다.


‘지독한 사냥꾼이다. 즐거운가 본데.’


‘아직은 흥미로운 정도지.’


계속해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소리내지 않고 머릿속으로 읊은 독백임에도, 청호가 태연히 전음으로 대답해 온 것이다. 남의 머릿속에 자신의 말소리를 전하는 게 다가 아니란 의미였다. 주옥은 급히 마음속으로 다시 질문했다.


‘생각을 읽는 거냐?’


‘그렇다.’


이 질문은 명백한 실책이었다. 청호는 지금 첫 도약 공격을 마치고, 아까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청호가 대답과 동시에 휘두른 앞발에, 주옥이 긴 목을 강타당했다. 즉각 호흡이 크게 흐트러졌다. 게다가, 날카롭게 세운 청호의 발톱이 목을 깊게 할퀴고 지나가 네 줄기의 핏자국이 길게 그어졌다.


‘큭, 이 자식! 역시 날 교란시키려고···’


즉각 후회하며 몸을 빼냈다. 목의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당장 운신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냥 무시할 만한 생채기도 아니었다.


‘인간이군. 요사스런 기술을 펼치는 것도 인간과 같아.’


주옥은 일부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든 눈앞의 시퍼런 괴물 호랑이가 읽어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의 말을 듣자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려 버렸다.


‘요사스런 기술을 펼치는 인간? 무인을 뜻하는 건가?’


‘질문이 많은 것도 그 족속들과 같구나.’


청호는 대답만 하는 일이 없이, 항상 공격이 함께였다. 기묘하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 문답의 진짜 의도가 점점 명백해졌다. 주옥의 집중이 깨지고 치명상을 입을 때까지 이 도발 같은 문답이 계속 이어질 게 분명했다.


이번에 달려드는 청호의 아가리는 주옥의 앞 어깨를 노렸다. 어깨를 비틀어 피해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길고 커서 인간 시절처럼 회피할 수가 없었다. 몸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자마자, 차라리 어깨를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키며, 급박하게 내력을 실었다.


꽝!


연마해 둔 기술 중 하나, 금강고(金剛靠)가 터져나와 청호의 아가리와 맞부딪쳤다. 임기응변으로 급하게 펼친 것이라 제 위력이 나오진 않았지만, 바로 그 자리를 물어뜯으려던 청호의 이빨을 튕겨낼 정도는 됐다.


저놈의 청호가 무인을 죽여 왔다는 얘기인가? 그럼 무공이 없는 민초들은 얼마나 죽인 거야? 어디까지가 이능이고, 어디까지가 무공일까? 무공을 얻은 경로는?


수많은 의문이 동시에 떠올랐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비웠다. 자신의 집중이 흐트러진다면 저 괴물이 그 순간을 놓칠 리 없었다. 청호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조차 미리 계획을 세워둘 수 없는 상황에서 집중마저 흩뜨리는 건 자살행위였다.


‘본능에 맡긴다. 가장 적절한 움직임으로 대응하는 거야.’


‘역시. 인간처럼 대응하는구나.’


청호는 만족스러운 듯 다시 입을 쩍 벌리고 웃었다.


* * *


광동(廣東)의 중모현(仲謀縣) 사람들은 자신의 고을에 대해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졌다. 천 년 전 천하를 삼분했던 호걸 손중모에서 마을 이름을 따올 만큼, 그들은 동오(東吳)를 계승한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했다.


실상 손중모가 살아있던 삼국지연의 시대, 이 지역은 중원에 막 편입된 미개척지에 불과했으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손오의 풍요로움이 이곳 중모현에 충만하게 깃들어 있었으니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쓰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명 왕조가 들어선 이래 이곳 중모현의 해안은 무역에 이용되어, 중모현은 많은 돈과 물건이 모이는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근 한 달만에, 풍요롭고 너그럽던 중모현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고 서늘하게 변했다. 현민들이 키우던 닭이나 개가 어느 날 영문 모르게 사라지기 시작한 게 한 달 전이었다. 가축의 실종은 점점 더 심해져, 이제는 비싸고 우마(牛馬)도 흔적없이 사라지다가, 사흘 전 급기야 사람이 실종된 것이다.


지역 포쾌들의 우두머리인 총포두 증천(曾辿)은 착잡한 심경으로 현내를 순찰했다. 작은 가축이 사라질 때까지만 해도, 멋모르는 산짐승이 주제넘게 민가를 건드린 게 분명하니 금방 잡아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였다.


하지만 우마가 사라진 이후부터는 사태가 심각해졌다. 중모현처럼 큰 고을에서 우마를 습격하여 끌고 가는 산짐승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일은 외딴 마을에서야 가능했지, 밤에도 곳곳에 호롱불을 켜놓는 중모현 같은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리 하여, 처음엔 사람이 벌인 짓이 아닌가 더 의심을 받았다. 증천 역시 짐승보다는 사람을 더 의심했지만, 실종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단서가 마음에 걸렸다. 푸른 털이었다. 비록 발견된 위치는 외양간이나 마구간과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모든 실종 사건에서 일관적으로 그 털이 발견됐으니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마을 처자 장녹아(張綠娥)가 사라진 뒤로는 사태의 심각성이 크게 격상됐다. 그녀는 어부 장씨의 딸로, 어머니를 여의고도 스무 살이 되도록 억척스럽고 똑부러지게 집안을 지켜 온 처자였다. 그 미모가 경국지색은 못 되어도, 그녀의 혼기가 다가오자 괜히 가슴설레 하는 마을 청년들이 서넛은 넘었다.


증천 입장에서 그녀는 이웃에 살며 자라 오는 모습을 지켜봐 온 조카 같은 존재였으니 두 배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홀린 듯 사건을 되짚으며 중얼거렸다.


“푸른 털은 녹아가 사라진 현장에서도 발견됐다··· 하지만 핏자국은 없었어. 마소 때와 마찬가지로.”


증천은 지체없이 중모현의 장(長)인 지현에게 푸른 털이 발견된 사실을 보고했지만, 지현은 여전히 인간의 범행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현내의 염색공들을 조사해 보라는 지시가 내려올 정도였으나, 증천은 도저히 그 지시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 털은 옷이나 장식품 따위에서 묻어나온 게 아니야. 짐승의 털이 확실하다. 하지만 짐승의 짓이라는 증거도 없으니 지현이 틀렸다고 하기도 애매하군.’


맹수가 가축을 습격하는 경우, 반드시 남는 흔적들이 있었다. 습격당한 가축의 핏자국, 습격한 맹수의 발자국 등이었다. 그런데 핏자국은 어떤 현장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발자국이라고는 사라진 가축의 것만이 이어지다 마을 어귀에서 끊길 뿐이었으니 이런 근거들을 보자면 지현이 오판을 내렸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젠장할. 짐승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면 뭐란 말이야. 귀신이냐, 요물이냐···”


순찰을 하는 증천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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