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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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최근연재일 :
20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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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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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노르달 3

DUMMY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섰던 데온은 무척 늦게 돌아왔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온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온이 집에 돌아온 것은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데온은 내게 너무 늦었다며 미안해했지만 괜찮았다.

하루 이틀 굶는다고 죽진 않으니까.

산에 올라간 김에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조금 따오기도 했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사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날에 꺼내야 했지만 말이다.


"산에 다녀오고 싶다고?"


어제 데온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갔다 오긴 했지만, 정식으로 허락을 받아야했다.

맡기로 한 아이가 시도때도 없이 사라지면 데온도 걱정할테니까.


"네. 먹을 것을 구해올게요."


아침으로 어제 노인에게 얻어먹었던 것과 비슷한 흑빵을 나눠먹으며 사냥에 대해 말을 꺼내자 데온의 얼굴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무언가 오해한 사람처럼.

잠시 사이를 둔 데온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것은 하지 않아도 돼.

조수로 삼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단다."


데온은 어린 내가 먹을 것을 구해온다는 의견을 부채감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무슨 오해를 산 건지 알 것 같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내가 하려는 건 고작 덫에 걸린 산짐승을 건져오는 정도다.

그리 위험한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겨울내내 데온과 흑빵만 먹고 싶지 않으니까.


"아버지가 사냥하는 데에 자주 따라갔었어요.

작은 산짐승이나 열매같은 건 구해올 수 있어요."


"산짐승을?"


"덫을 잘 놓거든요."


실제로 어제 데온 몰래 설치한 함정에는 토끼가 몇 마리 빠져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 마리는.

내 손으로 손질까진 어려워도 덫에 걸린 토끼를 건져오는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덫을?"


내 이어지는 설명에 데온은 꽤 기막힌 얼굴이 되었다.

열 살은 되었을 법한 아이가 덫을 잘 놓는다 자신하고 있으니 영 믿음이 가지 않으리라.

나라도 안 믿겠지만, 뭐 결과로 보여주면 되니까.


"하긴, 네가 건너편에서 왔다고 했지."


건너편.

즉, 하얀 산맥 너머는 거의 숲이다.

잿빛 성 자체가 하얀 산맥 너머 마물의 숲과 맞닿아 있고, 랑게르나 영지 자체가 숲이 많은 지형이다.

그러니 데온이 듣기에 건너편에서 왔다는 의미는 숲에 익숙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할 것이다.


"괜찮겠니? 내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온은 아이 혼자 보내기엔 영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약제사로서 해야할 일이 있으니 나와 함께 갈만한 여유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이야기를 꺼낸 것이기도 하다.

사냥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해오는 일거리가 생겨야 나 혼자 다닐 핑계거리가 있으니까.


노르달에서 약제사인 데온이 직접 구할 수 있는 약초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가 가장 많이 난다.

이는 올해 직접 약초를 채취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뜻.


데온의 조수가 되기로 했으니 일을 손질하는 법을 배워야하는데, 겨울이 코앞인 지금 내가 배울만한 일이라곤 데온이 이제껏 채취한 약초를 손질하는 것뿐이다.

그 일은 이전 생에 지겹게 했고 새로 배울 법한 일이 아니다.

내가 이번 생에서 데온에게 원한 것은 약제사의 조수라는 타이틀이지 지식이나 일거리가 아니니까.


지금의 내가 해야할 일은 하얀 산맥에 있다.

물론, 겨우내 흑빵만 먹어야 하는 신세를 벗어나 것은 부차적인 효과다.


"네, 괜찮아요."


"······흠."


조금 더 고민하던 데온은 결국 허락했다.

다만, 허락과 함께 이렇게 덧붙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엔 돌아와야 한다."




***




"······이걸 다 네가 잡았다고?"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 내 손에 들린 것은 토끼 두 마리와 한 줌의 산열매, 그리고 토끼 한 마리와 크기가 비슷한 자루 하나였다.

토끼 두 마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데온은 내가 내민 자루를 들여다보니 의아한 듯 물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아과(兒果)니까.


"이건 왜 캐온 거냐?"


"먹을 수 있으니까요."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데온의 얼굴이 한층 더 괴상해졌다.

데온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그 표정은 좀 웃겼다.


"아과를······ 식용으로 쓴다고?


아과(兒果)는 감자와 닮은 식물로 뿌리가 웅크린 아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식 이름은 얀바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아니, 얀바라는 이름을 굳이 외우지 않아서 일지도.

아과라는 이름이 훨씬 직관적이니까.


"네. 먹을 수 있어요."


뿌리 식물을 잘 먹지 않는 북쪽 지방에서는 생소한 식물.

그러니 이런 게 지천에 깔려있어도 먹어보려 해보지 않았을 테지.

나도 몰랐다.

직접 먹어보기 전까지는.


"어떻게?"


"허브 몇 가지랑 같이 삶으면 독성이 없어져요.

생으로 먹으면 안된댔어요."


아과를 이용한 음식은 스바루크 지방에서 용병질을 할 때 알게된 음식이었다.

생으로 먹으면 약한 독이 있지만, 삶으면 독성이 사라지기에 스바루크 지방을 포함한 남쪽 지방에서는 꽤 즐겨먹는다.


랑게르나를 포함한 북쪽 지방 전체에는 아과가 먹을 수 없는 작물로 알려져 있기에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몰랐다.

직접 먹어보기 전에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인지 몰랐고, 아과가 하얀 산맥에 전체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먹어봤니?"


이런 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뜻이었다.

곧이곧대로 대답할 수 없으니 나는 잠시 고민하다 내뱉었다.


"집에 상단이 자주 다녀갔거든요.

거기서 얻어먹었어요."


이건 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식료품이 늘 부족한 북쪽 지방의 특성상 대형 상단이 정기적으로 다녀간다.

그리고 마을 어디든 한동안 자리를 잡고 머문다.


상단이 머무는 동안 여러 정보가 교환되었으므로 아과에 대한 이야기를 상단에게 얻어들었다는 것은 영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


내 말이 데온에게도 설득력있게 들렸는지, 그는 의심하지 않고 호기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데온 자신이 약제사이니 아과를 잘못 먹고 탈이 난다고 해도 그걸 고칠 약제를 스스로 제조할 수 있었다.

모험을 해볼만하다고 해야할까.


"그럼 한 번 먹어보자.

뭘 넣어서 삶으면 되지?"


역시나 데온은 아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세이지나 회향이요.

없으면 곁보리 줄기도 괜찮고요."


보리를 닮은 곁보리는 보리를 흉내낸 것 같은 모양의 잡풀이었지만, 아과의 독성을 중화하는데 필수적인 풀이었다.

용병질을 할 때 아과를 직접 캐먹으면서 세이지나 회향은 허허벌판에서 갑자기 구하기 어려우니, 보통 훨씬 구하기 쉬운 곁보리 줄기와 함께 삶았다.


"그래서 같이 캐왔구나."


데온은 자루 안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내가 아과와 함께 곁보리 줄기 또한 같이 캐왔기 때문이었다.

세이지도 회향도 데온의 약장에 있는 약초지만, 곁보리처럼 아예 쓸모없는 잡풀이 효용이 있는 걸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과가 식용 가능하다는 걸 데온에게만 알려줄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이 사실은 데온 입을 통해 널리 퍼져야하는 사실이다.

그래야 이번 겨울 노르달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없어질 테니까.


데온은 흔쾌히 내가 건넨 아과를 받아 솥에 삶았다.

감자처럼 먹으면 된다고 했으나 간단하게 삶아볼 요량인 것 같았다.

오래지 않아 내가 캐온 아과가 모두 삶아졌고, 데온은 삶은 아과를 건져 식탁에 올렸다.


"보기에는 그럴듯한데······."


다른 곳에서는 잘 먹는 음식이라도 원래는 먹지 않던 것에 낯섦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독이 있는 식물이라 알려진 것은 더더욱.

나 또한 아과를 식탁에서 처음 봤을 때 그렇게 느꼈으니까.

이럴 땐 경험자가 먼저 나서는 게 최고다.


"앗, 아직 뜨거워."


데온이 말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과의 껍질을 벗겼다.

잘 삶아졌는지 껍질은 살짝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잘 벗겨졌다.

얇은 껍질을 벗기자 아과의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음······."


내가 덜 식은 아과를 식히기 위해 입으로 호호 부는 꼴을 보는 데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감자처럼 파슬거리는 식감에 붉은 속살.

아과가 잘 익었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확인한 내가 손에 든 아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에라."


열 살 아이보다 겁을 내는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진 걸까.

나와 마주 앉은 데온의 양 귀 끝이 붉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데온은 곧 망설이던 손을 뻗어 다른 아과를 집었고, 그대 껍질을 벗겨 크게 베어 물었다.

주먹만 한 아과의 절반에 달하는 양이었다.


'퍽퍽할 텐데.'


이제 막 익혀 부드럽긴 해도 아과는 보통 흑빵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정도다,

물 없이 그냥 삼키기엔 꽤 버겁다는 뜻.

아니나 다를까 한참 우물거리던 데온은 결국 물을 찾았다.


"후우."


물 한 컵을 한 번에 비운 데온은 입안에 있던 아과를 모두 씹어 삼킨 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약간 감탄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먹을만 한데?"


"그렇?"


고작 이틀이었지만, 흑빵과 물만 내리 먹은 나 또한 같은 심정이었다.

며칠 또 아과만 내리 먹으라면 또 감상이 달라지겠지만, 오랜만에 먹은 따뜻한 음식은 굳은 뱃속을 풀리도록 하는 데에는 적격이었다.

노르달에 도착한 이후는 물론이고 잿빛 성을 벗어난 이후로 마른 식량으로 연명했던 내겐 아주 오랜만에 따듯한 식사였으니까.


"······이 정도면······."


어느새 손에 쥔 아과 하나를 다 먹어 치운 데온이 고민에 빠졌다.

아마 추가적인 식량으로서 아과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이리라.


아과는 뿌리를 캐야 했기에 땅이 얼기 시작한 지금 저장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주식량이 아닌 보조 식량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캔다면 넉넉하진 않아도 겨우내 배를 곯지는 않을 테니까.


"세이지, 회향, 곁보리 중 하나랑 같이 삶으면 된다고 했지?"


"네. 구워도 되고요. 감자랑 비슷하댔어요."


난 기억을 더듬어 데온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꾸했다.

대부분 어떻게 조리해 먹느냐는 종류의 질문이었다.

어떻게 먹느냐.

내가 아는 것도 그 정도까지였다.

아과를 재배해 본 적은 없으니까.


"고맙다. 좋은 걸 알았어."


데온의 말에 난 한껏 미소 지었다.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다.

아과에 대해 알려준 것은 데온 뿐만 아니라 날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무리 먹을 게 없고 내가 거기에 적응을 했어도, 겨우내 흑빵만 먹는 건 좀 괴로우니까.


"재주가 좋구나."


데온은 손에 든 아과를 마저 씹으며 내가 잡아온 토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 마리 다 꽤 큼지막한 크기라 고기는 물론이고 가죽도 잘 벗기면 쓸 곳이 아주 많이 보였다.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네요."


하루가 채 가시기도 전에 내 가치를 증명한 것 같아 뿌듯해졌다.

이것으로 마음의 짐은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아과와 내가 간간이 구해오는 사냥감이라면 나와 데온은 물론이고 이웃집의 노인까지 식량을 보충하기에 넉넉할 테니까.


이번 겨울은 아무도 굶어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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