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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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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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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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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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1



새 지저귀는 소리 만발하다. 아니, 만발했다.


얇게 햇빛 투과시키며 황금색으로 빛나던 이파리들이 삽시간에 불타올랐다.


연소한 잿가루들은 화산재처럼 휘날렸다. 온 곳에 화염이 일었다.


화재의 근원지는 숲속 그리 깊지 않은 곳의 공터였다. 정확히는 공터 중앙 부근에서 일렁거리는 어느 형체로, 흡사 비어 있는 허공을 억지로 잡아 뜯은 듯 일렁거리는 균열이었다.


숲을 휘감은 화마는 그 틈새에서 기인했다. 핏물 웅덩이처럼 진홍빛으로 소용돌이치는 그것을 지옥문이라 불렀다.


그 사이로 맹렬한 불길 같은 것, 검붉게 지직거리는 전류 같은 것, 그 자체가 광채를 품은 뭉게구름 같은 것들이 흘러나왔다.


여하튼 그 앞에서 수많은 병졸들이 학살당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는데, 대략 10초 정도 되었을까.


“으아아! 난 살 거야, 시발!”


“애가 어제 태어났다고!”


“전능하신 횃불이시여 내 영혼을 가엾게 여겨 주시옵고···.”


기도문을 외던 병졸의 목이 몸통과 분리되어 위로 날아갔다. 약 20미터 정도.


그 옆에 있던 사람은 가슴 위가 잘렸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허리 위가 잘렸으며 그 옆에 있던 사람은 사타구니 위가 잘렸다.


일련의 난장판은 약 15초 전 지옥문 바깥으로 빠져나온 악마 단 한 개체에 의한 것이었다.


몸길이 6미터가량에 산양 두개골 모양 머리 골격을 지녔고, 무작위하게 배열된 열두 개의 눈구멍 속 눈동자는 누렇게 번쩍거렸다.


양쪽 손에 각각 잡힌 두 개의 거대한 칼날은 전반적으로 붉게 빛났다. 날의 끄트머리로 갈수록 노란 빛깔로 번졌으며, 불에 달군 듯 우둘투둘한 질감이었다.


표면에는 베고 지나간 병졸들의 짓눌린 살점이 잔뜩 묻어났다. 그것들은 자글거리며 익는 소리를 냈다.


“끄아아악!”


“갸아악!”


사람 몸통은 훌쩍 뛰어넘는 크기의 칼날이 바닥을 연신 난자했다. 한 획 그을 때마다 반토막 난 상반신이 몇 구씩 공중으로 떠올랐다.


“오호오오오옹 오호 와 옹.”


악마의 울음소리는 흡사 세 겹으로 겹쳐 들리는 메아리와도 같았다. 듣는 사람의 혼백을 빼 놓았으며, 병졸들은 그저 하염없이 도망칠 뿐이었다.


넘어진 사람을 밟고, 그 뒤에서 또 밟고, 그 뒤에서 또 밟고 하며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들 창끝이 허공에서 서로 부딪히며 쇳소리를 울렸다.


이는 제법 그럴싸하게 전장의 소리를 재현했다. 철기와 공포, 그리고 공포 자아내는 자가 합작한 바였다.


아우성은 조금 떨어진 위치에 나란히 서 있는 교회 기사 두 명에게도 닿았다.


“역겹군.”


그들 가운데 하나가 중얼거렸다.


눈에는 지극한 경멸이 서렸으며 낯빛은 어두웠다. 분노가 움찔거리는 안면 근육을 헤엄쳐 다니는 것 같았다.


“고귀하신 기사님들이시여! 제발 저희 좀 살려 주십셔어억!”


파란을 간신히 벗어난 병졸들은 하염없이 기사 둘 있는 방향만을 바라보며 달렸다.


그 뒤편에서는 악마의 인간 짓밟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양 집요했다.


오른쪽에 서 있는 기사는 더는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그러더니 등짝에 매달아 놓은 대검을 한 손으로 뽑아 들었다. 그 무거운 것이 한 손으로도 거뜬했다.


들려 올라간 검날은 근엄하게 악마를 가리켰다. 그 끝에서 화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었다.


이내 기다란 검신 전체에 불꽃이 옮겨붙으며, 그 은은하게 발하는 빛이 기사의 부릅뜬 홍채에 실린 멸시를 선명히 비추었다.


“나의 칼날은 횃불의 칼날, 세상 그 무엇보다 찬란히 빛나시는 횃불의 존엄 아래서 광채 뿜으리라!”


기사는 침까지 튀기며 열변을 토하였다.


도망쳐 오는 병졸들 뇌리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석연찮은 예감이 스쳤다.


칼끝에 맺힌 경멸은 비단 악마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눈앞의 난장판 전체를 아울렀다.


기사들은 패주한 자들에게 구원을 베풀 생각이 없었다.


구역질 나는 악의의 표상 앞에서도 목숨 건사하는 데에만 급급한 것, 거룩함을 대행하고자 용감히 맞서려는 생각은 추호도 않는 것.


이는 교단을 대변하는 기사들에게 있어 추접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한 명의 기사도 칼을 뽑아 들며 외쳤다.


“역겨운 배교자들 같으니, 너희도 저 저주받은 악마와 다를 바 없다!”


말 끝남과 동시에 검이 허공으로 휘둘렸다. 맺혀 있던 불꽃은 그 즉시 샛노란 유리 빛깔의 거대한 참격이 되었다.


오색 빛의 참격에는 그르렁대는 야수처럼 맹렬한 화염이 실렸으며, 이는 곧바로 악마를 향해 고속으로 날아들었다.


방향 자체만은 확실히 악마를 가리켰다. 악마를 가리키기야 했는데, 딱히 피아를 가리진 않았다.


도망치며 달려오던 병졸들의 허리가 끊어졌다. 참격은 악마에게 달하기까지 그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로 방향으로 절단하였다.


불길 옮겨붙은 허리들이 바닥에 우수수 쏟아져 내리며, 남은 신체들이 앞 방향으로 고꾸라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낌새를 눈치채어 미리 엎드리길 택한 적은 수의 병졸들만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기, 기사님이시여! 어째서···!”


“몰라 묻는가?”


검 휘두른 교회 기사의 고압적인 낯에 무자비한 냉혹함이 실렸다.


그는 바닥 기는 자들을 굳이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머에 있는 거대한 형체를 노려볼 뿐이었다.


시선은 찌르는 듯했고, 그 거대한 형체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인체를 곤죽으로 다지는 데 몰두하던 악마는 털어내듯이 고개를 틀었다.


날카롭고 빽빽한 수십 개 이빨은 부싯돌 마주 박듯이 딱딱 부딪혔고, 이에 불똥이 튀며 질질 흘러내렸다.


악마의 다리 근육, 분단이 도드라지는 폭력적인 대퇴부가 발돋움을 시작하였다.


겅중거리는 뜀박질은 꿋꿋하게 교회 기사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거기에 참격을 피하려는 노력은 일말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참격은 그것에게 보란 듯 명중하였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후우오오오옹.”


날카로운 빛결은 산산이 조각나며 파편으로 흩어졌다. 교회 기사들의 냉엄한 낯에 당혹이 스쳤다.


“무슨···.”


십자 형태로 어슷하게 교차한 대검 사이로 열두 개 눈동자가 번득였다.


짓물러진 살점의 온기로 한껏 달구어진 칼날에는 생채기도 더해지지 않았다. 단단한 육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깨진 빛결의 입자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종처럼 영롱한 소리 내며 흩날렸다. 호전적으로 타오르던 화염은 악마의 가슴팍을 잠시 훑다가 산화했다. 그뿐이었다.


“호오오오오옹 우위이 우웅.”


악마는 내달리던 추진력을 폭발시키다시피 하여, 스스로를 넘어뜨리듯 몸을 내던졌다.


달려온 궤적을 불온하게 메운 메아리에는 타액이 아닌 휘날리는 화염이 섞였다.


거대한 몸뚱이는 제 안위를 신경 쓰지 않는 듯 바닥을 거칠게 휩쓸었다. 무기 갖춘 양팔은 길게 뻗으며 자욱해진 흙먼지와 그을음을 꿰뚫었다.


두 겹으로 겹친 거대한 칼날이 교회 기사들의 우측으로 쇄도했다. 반응이 따르기엔 너무나 급격한 일격이었다.


기사 한 명이 가까스로 방패를 쳐들어 막아내는 데 그칠 뿐이었다.


“카흐각약···!”


막기야 했다만, 갑옷의 비대한 중량이 무색하게도 충격에 튕겨 나가고 말았다.


나란히 서 있던 기사도 충격에 휩쓸렸다. 무거운 갑주끼리 엉키면서 관절 작살나는 소리를 흥겹게 흘렸고, 그렇게 사이좋은 모습으로 바닥을 굴러다녔다.


“끄악, 악, 악, 악, 악, 악···.”


“어호오오오옹 어허어엉 호오오오오이.”


주섬거리며 몸 일으킨 악마는 긴 포효를 토해냈다. 어둑한 목구멍의 안쪽에서 화륵거리는 빛이 음험하게 일었다.


흙먼지는 여전히 자욱했고, 그 사이로 완연하게 드리운 거구가 햇살을 가렸다.


악마는 지면을 울리며 두 교회 기사에게 다가섰다. 그 와중에도 아직 못다 죽은 병졸들,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거리는 사람들 하나하나 쿡쿡 찔러 죽였다.


그 행위에 무게는 실려 있지 않았다. 걸을 때 두 팔을 휘적거리듯 고작해야 무의식 정도의 무게가 실려 있을 뿐이었다.


기사는 간신히 몸 일으켰다. 공격 막아낸 방패는 못 쓸 정도로 금가 너덜거렸으며, 탈구된 어깨의 통증이 뇌 편도체를 강렬히 찔렀다.


“저주받은 존재여!”


그럼에도 기사는 노기 실린 호통을 내질렀다.


고통 따위, 하잘것없는 육신의 따끔거림 따윈 그의 의로운 분노를 조금도 꺾지 못하였다. 그런 것치곤 거동이 굉장히 불편해 보이긴 하다만, 아무튼 그러했다.


“기고만장해 말거라! 횃불의 거룩한 뜻으로 네놈을···.”


무심한 칼질이 기사를 휩쓸었다. 방패는 완전히 깨졌다.


그나마 반으로 갈라지는 죽음만은 면하였다만, 볼품없이 날아간 몸뚱이는 어디 나무에 처박히고 말았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들리는가 싶더니, 바닥으로 스르륵 흘러내리며 축 늘어졌다.


“끄윽···. 크흐윽. 끄윽···.”


악마의 여섯 쌍 눈길은 다른 쪽 기사에게 향하였다.


땅바닥에 몸 늘어뜨린 그는 이족보행에 공헌하는 관절이 망가진 듯 절지동물처럼 기고 있었다. 빛을 등진 거구가 그 앞으로 다가왔다.


짙게 포개어진 그늘 속에서는 일렁이는 열두 개 눈동자, 그 웅얼거리며 타오르는 둥그런 것들만이 분명했다. 거기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기에 더더욱 끔찍했다.


한 쌍의 대검이 정의를 욕보이듯 천천히 들려 올라갔다. 우둘투둘한 표면이 교차하며 스산한 소리를 자아냈다.


기사는 필사적으로 기었다. 기면서 생각했다. 이럴 리 없다. 내 횃불의 서약이 여기서 다할 리 없다. 나는 더 봉사해야만 해. 그러니 여기서 이런 식으로 끝날 리 없다···.


“도움 필요하쇼?”


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대검 꽂아 넣을 채비 마친 악마도 고개를 틀었다.


그들 측면에 웬 남자 한 명이 궁색한 차림새로 서 있었다.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 전신이 피투성이였고, 등에 멘 보따리를 포함해 붉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얼굴은 그에 어울리지 않게 덤덤했다. 거대한 악마가 떨치는 위압에도 전혀 위축하는 기색이 없었다.


주변 난장판을 둘러보는 시선에도 아무런 표정이 섞이지 않았으며, 뒤쪽에 널린 핏물과 뼈와 살갗, 혹은 그것으로 제작한 곤죽의 향연에도 불구 그러했다.


“재미 좀 보고 계셨나 보네. 나도 재미 좀 보다 오는 길인데.”


곧장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가 건네어졌다.


악마는 불청객을 멀뚱히 쳐다만 보았고 기사는 끙끙대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대체 무슨 소리냐···?”


“궁금해하실 것까지야. 그래서 도움 필요하냐고.”


그 대답이 기사의 마음에 부아를 치밀어 오르게 했다.


당연히 도움이 필요하지, 지금 꼴에 도움이 필요 없어 보이냐. 참을 수 없는 폭언이 목청 밖으로 우렁차게 빠져나왔다.


“네놈 눈은 옹이구멍인가?! 나불거릴 시간에 마땅한 도리를 다해라! 교회 기사가 위험에 처해 있지 않은가!”


“급한가 보네.”


“쇠꼬챙이에 매달려 불타고 싶은 건가?! 서둘러 네놈의 의무를 이행하란 말이다!”


그러나 낯선 이는 기사의 정당한 일갈에도 눈썹 모양 하나 변하지 않았다.


외려 불경하리만치 태연한 표정으로 무릎을 굽히더니, 대뜸 쭈그려 앉는 것이었다.


왜 쭈그려 앉는가. 미친놈인 것일까. 악마마저도 다소 얼빠진 표정으로 낯선 남자를 쳐다볼 뿐, 죽음의 운명을 친히 낙점 지어준 기사는 방치해 놓다시피 했다.


“그··· 뭐냐. 뭐라고 해야 하지. 당신 말투가 조금 많이 지랄맞네요.”


“뭐라?!”


“당신 말투가 좀 많이 지랄맞은 것 같습니다. 경어로 정중히 부탁해야죠. 거품 물고 개지랄할 게 아니구요.”


기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곧이라도 터질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부풀어 오르진 않았고, 다만 상스러운 욕설만 하염없이 터뜨려댔다.


“이런 미친놈, 더럽고 천하고 멍청한 놈 같으니! 지금 같은 상황에 그게 중요하단 말이냐?! 감히 교회 기사를 죽게 내버려두는 대죄를 범할 셈이야!”


“음···. 그러도록 내버려 둘까 싶습니다. 내 연약한 마음이 큰 상처를 받았거든.”


낯선 남자는 악마를 바라보더니 손을 휘저었다. 하던 거 마저 하쇼. 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깐.


악마는 그제야 눈빛을 사납게 그을리더니 욕설을 마구 내뱉는 교회 기사의 몸에다 두 겹의 검날을 처박았다.


“끄으어억···!”


거대한 획이 기사의 쇄골 부근부터 단전 부근까지 일직선으로 내려 찍혔다. 안면 근육은 섬찟하게 얼어붙었고 입 바깥으로는 토혈이 뿜어져 나왔다.


갑주는 충분히 두껍고 단단하였기에 깔끔히 뚫리진 않았다. 악마는 아랑곳 않으며 몇 번 더 내려찍었다. 그럴 때마다 기사 몸속 뼈와 장기가 파손을 거듭하였다.


낯선 남자는 아예 무릎에 팔꿈치 올려놓고 턱까지 괸 채로 가만히 관망하였다.


“저게 한 번에 안 뚫리네.”


“까아악···! 깍, 깍···!”


곧 죽을 운명의 기사는 다급하게 낯선 남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거기엔 무미건조한 표정만 있었다. 딱히 힘 실리지 않은 눈길이 힐끗하며 시선 한 번 베풀 뿐이었다.


그렇게 애절하게 쳐다봐서 어쩔 건데. 당신 이미 생환할 수 없는 몸이랍니다. 차라리 인생 마지막 자극이 될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즐겨 보려 노력하는 게 어떨까요. 뭐 이런 말 전하는 듯했다.


고통은 분노마저 초월했다. 기사의 마지막 눈빛에는 호기가 조금도 실리지 않았다. 뭔가를 바라는 것 같긴 한데 그건 낯선 남자가 알 바 아녔다···.


그렇게 두꺼운 갑옷마저 꿰뚫렸다. 달구어진 대검의 끄트머리가 신체를 온통 휘저으며 내용물들을 볶았다.


기사의 눈에 실린 생명의 빛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더니··· 그 상태 그대로 멎었다.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낯선 남자는 다소 냉소적인 감상을 제시했다.


“그래도 비교적 존엄하게 돌아가셨구만. 이 정도면 호상이지···.”


그는 천천히 무릎 들어 올리며 몸 일으키더니 어깨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그 뒤 안쪽에 든 물건을 꺼내었는데, 그것은 뭔지 모를 모양의 무기였다.


역시나 피투성이로, 양동이째 끼얹은 양 들러붙은 핏물이 식지도 않은 채였다. 형체는 톱 모양이라 해야 할지 생김새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쇠붙이로 된 톱날보다 그 아래의 손잡이 부분이 훨씬 비대했다. 무기 삼아 휘두르기엔 매우 비효율적인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피범벅이었다.


“그런데 나는 존엄한 죽음 베풂에 있어선 문외한이란다. 미안하게 되었어.”


낯선 남자는 나직하게 두 마디 뱉었다. 그 앞에 우두커니 선 묵직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그늘 속 십 수개 눈깔이 악의를 번쩍였다. 입에서는 그을음과 아른거리는 불꽃, 조그만 아지랑이가 화산처럼 피어올랐다.


오른손에 들린 대검이 높게 치켜 올라갔고, 이는 별 감정 없이 올려다보는 얼굴을 겨누며 내려 찍혔다.


바람이 열풍으로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른거리는 열기는 궤적으로 남았다.


대검이 바닥에 강하게 처박히며, 타들어가는 숲에 둔탁한 소리와 더불어서 뜨거운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보다 더 뜨거운 혈액이 움찔거리며 최초 한 번 튀어나오고, 그 직후에 폭포와 같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악마는 자신의 팔뚝을 쳐다보았다. 절단면이 너덜거렸다. 뼛가루와 근섬유, 혈관이 제멋대로 뒤엉킨 채 걸쭉한 혈액을 토해냈다.


대검은 낯선 남자의 한참 뒤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다. 잘린 팔뚝 아래는 여전히 손잡이를 붙든 채 대롱거렸다.


“하하. 하하하. 허허.”


낯선 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더 시끄러운, 귀를 찢어발길 정도의 굉음에 먹혔기에 들릴 수조차 없었다.


소음의 원천은 그의 손에 들린 무기였다. 우뚝 서 있는 톱날이 미친 듯 회전하는 것이었다.


톱니 사이마다 맺힌 혈액이 온 곳에 흩뿌려졌고, 공기마저 갈아버리며 시뻘겋게 가열했다.


“좆같은 악마 놈아···. 성대한 지랄은 여기까지란다.”


낯선 남자의 이름은 회이던 섬칼리고드라 한다.


그리고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무기, 악마 혈액이 자아낸 열기마저 절삭하며 피 좀 더 달라고 고함치는 것은 전기톱이라 부른다.


회이던 몸을 적신 핏물 가운데 본인의 것은 단 한 방울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전체가 숲을 배회하던 다른 악마들의 것이었으며, 지금 막 눈깔 열두 개짜리 악마의 것이 조금 더해졌다.


전기톱이 작동하며 일으키는 요란한 소음은 아름다운 새들을 놀래켜 달아나게 만든다.


숲에는 새 지저귐이 만발했었다. 전기톱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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