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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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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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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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DUMMY

21



산 아래는 진정한 북방이었다. 그 무게는 단어와 기분으로만 전해지는 게 아니었다.


장벽 너머부터는 순수한 녹색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모든 녹색에는 짙푸른 삭막함이 섞인다. 잔디 풀이 지닌 청록색은 음험한 추위를 반영하였다.


당장 산허리 한참 아래에 펼쳐진 들판부터가 그러했다. 청록색 들판은 아득하리만치 비어 있고, 한기가 섞인 바람은 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심지어 풀이 흔들리는 소리조차 면도날이 귀 긁는 듯했다.


회이던과 나프는 우연히도 목적지가 겹쳤다. 그녀 역시 금역을 향하고 있다 말했다.


하지만 회이던은 자신의 최종적인 목적지가 그녀와 마찬가지라 털어놓지 않았다. 척파크 구릉지로 향하고 있노라 시치미 떼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금역은 무슨 목적으로?”


“모르겠네요···. 의구심으로부터 절 건져내 줄 지푸라기가 달리 없었어요.”


“그게 금역이랑 뭔 상관입니까.”


“교단의 대주교들께서 아주 오랫동안 은닉하려 공들이신 땅이잖아요···? 그냥 직감이에요. 죄악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의구심을 끝내기 위해 죄악을 범한다는···.”


회이던은 솔직한 심정으로 나프와의 동행이 영 내키지 않았다.


독실한 교인과 길을 함께하는 것은 생리적으로 무리였다. 괴상한 환각의 얼룩에 의해 온건해졌다 하여도 신앙은 신앙이라는 게 그의 사고관이었다.


반면 카에키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나프를 싸늘한 눈으로 응시하는 것도 더는 없었다. 사람을 소속과 분류가 아닌 됨됨이로 판단하니 참된 청소년이라 할 만하다.


이는 회이던이 스스로를 옹졸한 이가 된 것처럼 인지하게끔 하였다. 그마저도 자기 객관화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그는 실제로 옹졸한 호로 새끼이다. 그걸 자기만 모른다.


어쨌든 옹졸한 자기 자신을 인지하며 생각을 바로잡아 보자면, 어차피 길게 갈 수 없는 동행이었다.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경로가 달라 중간에 갈라져야만 했다.


나프는 북쪽으로 쭉 향하면 된다. 하지만 회이던은 척파크 구릉지를 여정의 중간 지점으로 끼워 넣었기에 경로가 다소 들쭉날쭉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길이 나뉘는 지점은 칼리야크 평야, 이틀 내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 정도라면야 감내할 만했다. 까짓거 한번 해 보죠.


“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너무 험준한 곳이라 혼자 여행하는 게 무서웠거든요···.”


“자처해서 택한 길 아닙니까. 그럼 견뎌야죠.”


“저··· 돈을 지불해야 하나요?”


“지불해 주시면 제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집니다.”


나프는 주머니를 주섬거리더니 은화 두 닢을 내밀었다.


회이던은 그걸 또 덥석 받았다. 게다가 영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 하나를 더 드는 것이었다. 천하의 호로 새끼 역할을 수행하며 쾌락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나프는 별수 없이 한 닢 더 내밀었다. 그제야 금액에 수긍한 회이던은 고개를 꾸벅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차는 뒷칸에 두 사람을 실은 채 굴러갔다.


나프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카에키에게 이것저것 말을 붙여 보려 했다. 하나 건성의 대답이 눈빛으로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성직자는 쉽사리 주눅 들었고 말 못 하는 소녀는 경치나 살폈으며 호로 새끼는 휘파람으로 소음을 일으켰다.



***



머리털 달린 것들 중 진정한 북방을 나다니는 존재는 대다수가 검은망토 혹은 교회 기사들이다. 그들 가운데 머리가 벗겨진 이들도 세어야 할 테지만, 하여튼 그렇다.


그들은 아예 이 험준한 곳에 진을 쳐 놓고 주둔하였다. 험준하다고 하는 게 지형 측면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생태가 그렇다.


슬슬 장벽 안쪽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으슬거림이 밤중의 침낭 속으로 급습하며 들어온다. 금역과 가까워지면 아예 눈과 얼음 낀 곳이 다반사다.


기상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장벽 너머 땅엔 악마들이 득시글거린다. 횃불의 사도를 성전 최전선의 용사라며 칭송하지만 그것은 비유 곁들인 별칭이다. 진정한 북방이야말로 성전의 최전선이라 할 만 하다.


그러나 북방을 나다니는 머리털 달린 존재들, 혹은 대머리인 존재들 가운데에는 전사가 아닌 이들도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토착 마을의 주민들이거나 혹은 코멜루와 같은 소규모 단위의 행상인들이다.


자연히 그들 노리는 도적떼도 존재한다.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다고, 그들 모두 장벽 너머의 척박한 생활 방식에 길든 야수들이다.


도태에 도태를 거듭해 결국 강인한 것들만 살아남은 거다. 회이던 일행의 진정한 북방 입성 이틀째, 마차는 그러한 도적 무리에게 습격을 받았다.


“들어와. 들어와, 이 개자식들아.”


“끄아아악! 히이이이. 호오오오오!”


“시발. 저거 설마 마검이야?”


“마검이면 어쩔 건데. 무릎 꿇고 읍소라도 할 거냐? 들어오기나 하도록.”


그러나 보이는 광경만 놓으면 어느 쪽이 습격을 가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이미 여섯의 도적놈이 반으로 토막이 나 열두 개의 조각이 되었다. 그중 하나는 아직 숨이 붙은 채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남은 생을 불태우고 있다. 멀쩡한 놈들이라곤 산개하여 수레를 에워싼 넷이 전부다.


그들에게는 양자택일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물러서거나 혹은 등 돌려 도망을 택하면 그 즉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머리통 혹은 허파 혹은 단전, 백발백중이었다.


카에키 활 솜씨는 그냥 탁월하다 수준이 아녔다. 주춤거리는 즉시 화살이 날아들어 중요 부위에 꽂혔다.


심지어 이 착한 녀석은 회이던을 배려하는지 도적들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지도 않았다. 야금야금 한 모금씩 화살 쑤셔 박는 데 그칠 뿐이었다. 마무리는 언제나 회이던 몫이었다.


조력에 더해 색다른 감흥마저 이는 만큼, 회이던은 그녀와의 협업이 몹시도 마음에 들었다.


한편 나프는 교단 마법, 불의 권능을 활용하길 꺼리는 눈치였다. 특히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에는 더더욱 그랬다.


교단에서는 죄지은 이를 쳐 죽이길 적극 권장하니 종교적 신념 탓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일으킨 불꽃 속에서 지옥의 색채를 목격하였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좀 도와야 하는데···!”


“안 내키면 그냥 가만히 있어요. 제가 돈 받은 이유가 뭡니까. 이런 껄렁한 시정잡배들 대신 줘 패려고 돈 받았지. 껄렁한 시정잡배들을 줘 팰 수 있는데 돈까지 받는다? 어찌 참아요.”


“어··· 감사합니다?”


오도 가도 못하며 정체된 도적놈들은 다급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아예 체념한 놈도 보였다. 포위한 형세는 사실 역으로 포위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차츰 전술이라 할 만한 것도 사라졌다.


“젠장! 수레 위에 여자들부터 노려!”


“아, 또 지긋지긋한 인질극의 형식을 빌리겠다 이거군. 내가 두 번이나 허용해 줄 성싶냐?”


시위에 화살을 거는 카에키를 향해 기다란 창이 급습해 들어왔다. 그러나 닿지는 못하였다. 날붙이 아랫부분에 맞닿은 손잡이가 거친 손아귀에 덥석 붙잡혀, 그 상태로 움직이지 못했다.


회이던은 창을 쑥 잡아당겼다. 사람도 덩달아 빨려 들어왔다. 때마침 톱날의 회전이 적절한 위치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빨려 들어온 아래턱은 절묘하게 맞닿아 갈려 나갔다. 비명소리는 몸 전체로 옮겨간 격렬한 진동에 맞추어 덜걱거렸다.


“끄, 아, 아, 아, 아, 아, 악, 악, 악, 악, 악, 악···.”


가루 알갱이처럼 미세하게 질척거리는 살점들이 바닥에 후두둑 튀었다. 회이던 얼굴에도 사정 봐 주지 않으며 달라붙었다.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날 때쯤이면 창을 든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지며 가벼워졌다. 얼굴 반절이 사라진 채 나동그라진 놈은 미동이 없었다.


이제 세 놈 남았다. 회이던은 창을 공중에 띄워 빙글 돌려선 다시 붙잡았다. 무심하게 던진 창에 다른 한 놈의 가슴이 꿰뚫렸다. 두 놈 남았다.


그중 한 놈이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리더니 무릎을 꿇었다.


“항복! 항복한다! 옷 벗으라면 벗을 테니 목숨만 살려다오!”


“옷을 왜 벗어. 미친 새낀가.”


“그러면 당신의 아우가 되겠다! 그것도 불쾌하다면 개가 되도록 하지! 원한다면 개 울음소리도 내겠다! 나는 짐승 흉내에 재능이 있거든!”


“존댓말 써, 미친놈아. 내가 니 친구냐?”


“개 울음소리 내 보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쇼!”


“내 봐.”


“아르르르! 컹컹! 낑낑! 꼬리 살랑살랑!”


가히 정도를 달리하는 추잡함이라 할 만했다. 옆에 아연하게 서 있던 다른 한 놈도 이내 무릎 꿇으며 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회이던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프에게 물었다.


“자매님, 저렇게까지 하는데 자비를 베풀어 줄까요?”


“에··· 횃불께서는 악인을 향한 무관용을 강조하셔요···. 그러니 죽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소극적인 얼굴을 하고선 엄벌주의 강조하는 발언을 내는 모습이 부조화를 일으켰다. 회이던은 그게 썩 재미있어 실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얘들아, 여기 자매님께서는 그러시댄다. 그럼 나도 별수 없이 횃불의 뜻을 따라야겠지. 네놈들 죽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저는 물방개 흉내도 낼 줄 압니다!”


“물방개 흉내는 조금 궁금하네요···.”


“그렇죠?! 살려 주십쇼! 지금 준비하겠습니다!”


“그래도 원칙적으로는 죽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미안해요···.”


회이던은 실없이 웃으며 전기톱 쇠줄을 집어 당기려 했다. 그때 반쯤 숙이고 있는 그의 시야 구석에 걸치는 것이 있었다.


여기 들판의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고개 들어 보이는 것이라곤 구름 한 점 없이 짙푸른 색깔밖에 없었다.


들판도 하늘 못지않게 비어 있었다. 하늘 향해 솟구친 형상이 두 다리로 선 인간들 뿐으로, 나무나 언덕도 없이 풀밭 깔린 지평선과 그 위 짙푸른 하늘만이 존재했다.


언뜻 본 광경은 아름답게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위적인 양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벌판은 불가해한 비인간성을 간직하였다. 땅 전체에 감도는 은은한 추위가 햇살의 따스함마저 부정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 존재를 제일 처음 눈치챈 것은 카에키였다. 텅 비어 있어야 할 시야 구석에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 회이던이 두 번째였다.


그는 카에키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나프, 그리고 물방개 흉내를 내던 도적놈들이 차례로 고개를 돌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검은색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얼핏 구멍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구멍이 아니었다. 전기톱이 이따금 내뱉는 잡음과 같이 지직거리는 형상이었다.


그 사항을 고려하면 응집된 연기, 혹은 바닷속 물고기들의 군집에 더 가까울 것이다. 멀리 있어 제대로 가늠할 수 없으나 규모가 상당해 보였다.


“뭐야, 저거. 벌레떼인가?”


“그, 그런 것 같진 않은데요···.”


회이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웅웅거리며 뭉쳐 있는 형체들 사이에 인영 비슷한 것이 보였다. 사람이 칠흑색 연기 한복판에 서 있는 듯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를 눈치챈 나프 그리고 카에키의 표정이 흐릿해졌다.


“저거, 사람 맞죠?”


“예감이 좋지 않아요···.”


“뭐, 뭐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닥쳐, 끼어들지 마. 물방개 흉내나 마저 내고 있어.”


그때 웅얼거리는 형체 속 인영이 갸우뚱하며 기울었다. 기우는가 싶더니, 꽁무니에서 대변을 짜낸 모양새로 칠흑빛 연기로부터 빠져나와 추락했다.


기괴하게 휘날리는 관절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살점 없이 뼈만 남은 것이었다.


“이런 젠장, 자매님 예감이 들어맞네요.”


회이던은 전기톱을 입자로 되돌리며 마부석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레 당긴 고삐에 놀란 말들이 거칠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에 남겨진 도적놈들의 동물 흉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건, 이제는 관심 밖이었다.


“자, 잠깐만···!”


완전한 형태의 인골을 뱉어내고도 한동안 그 위치에서 웅웅거리던 군집은, 일순간 그 전체가 움찔거렸다.


그 한순간의 들썩임이 기점이었다. 정해진 형체 없는 그 덩어리는 무서운 속도로 지면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시발, 뭐야! 뭐냐고!”


“으아아악!”


마차 뒤에서 도적놈들의 혼비백산한 지껄임과 땅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회이던은 고삐를 한 번 더 당겨 마차 바퀴에 속력을 붙였다.


“살려 줘! 살려 주십시오, 형님! 우리도 좀 태워 주십쇼!”


“꺼져! 이쪽으로 오지 마! 다음 생애가 있다면 그토록 애호하던 개나 물방개로 태어나거라!”


흡사 칠흑의 먹구름이 낮은 고도에 머무른 듯, 지면에 닿을락 말락 한 군집은 마차 뒤를 쫓는 도적 두 놈을 쫓았다. 웅웅거리는 소음이 도적놈들의 아우성을 삼켰다.


회이던은 앞만 바라보고 있지만, 뒷칸에 앉아 있는 카에키와 나프는 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일렁이는 심연의 구멍이 넓게 퍼져 있는 것처럼, 제대로 된 인상을 종잡을 수 없이 마냥 불길하기만 한 광경이었다.


도적 한 놈은 달리고 달리다 결국 힘이 빠졌다. 아주 살짝 속력이 늦추어진 그 순간 군집에 삼켜져 버렸다.


비명소리는 그 입이 군집 속에 포함되기 전까지만 거셌다. 몸이 칠흑색 사이에 완전히 포개어진 순간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웅웅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군집은 다시 고도를 높여 위로 떠올랐다. 그 안쪽에서 살갗이 찢기고 근육이 도려내지며, 뼈는 분쇄되고 내장이 뻥뻥 터지는 소리가 뒤섞였다.


언뜻언뜻 보이는 인영은 폭풍 속에 휩싸인 무력한 나뭇가지처럼 춤을 추고, 또 춰 댔다. 관절 노쇠하여 고정되지 않고 달랑거리는 목각인형 같았다.


“으아아악! 나 좀 태워 달라고!”


절규하는 목소리는 점차 멀어졌다. 군집이 웅웅거리는 소리도 멀어졌다. 말들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젠장, 자매님. 저런 것 본 적 있으십니까?”


“아, 아뇨···! 저런 기제의 악마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그럼 악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악마가 아닐 수 없지 않나요···?”


카에키의 대화 방식, 눈빛은 급박한 상황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는 그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뒤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눈을 떼어 놓을 수 없었다. 포식하는 먹구름 안에서 춤을 추던 도적놈은 이내 뼈만 추려낸 모습이 되어 아래로 배설되었다.


군집은 입맛을 다시는 듯 높은 고도에 잠시간 멈추어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무서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하강하였다. 뒤에서 희미하게나마 계속 들리던 외침도 어느 순간 멎어버렸다.


지금은 그저 빠르게 달려 사정권 내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중요했다. 저 괴물 뭉치는 회이던의 마차가 아닌 도적놈들의 토막이 난 시신들을 노릴 것이다.


그저 두 도적놈의 숭고한 희생을 감사히 여기며 달려야만 했다.


“장벽 넘어서자마자 환영식이 요란하군요. 어딜 가나 이 꼴이려나.”


“서, 섬칼리고드 님과 동행해서 정말 다행이네요···.”


“예? 톱으로 벌레를 벨 순 없죠. 제가 아니라 말에게 감사하십시오.”


“아, 네···.”



***



다행히도 그 먹구름인지 벌레인지 뭔지 모를 게 뒤쫓아오진 않았다. 목적지 설정 않고 달리기만 하던 마차는 그제야 속력을 조금 늦추었다.


앞에는 웬 병영 같은 것이 보였다. 목책을 빙 둘러 만든 교단의 시설이었다. 다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이미 초토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목책은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고, 막사는 날카로운 것에 분쇄된 것처럼 잔뜩 찢어져선 바람 부는 대로 나풀거렸다.


사람의 곡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런 폐허에 마땅히 어울리고도 남을 연기 같은 것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교단의 제1원칙이 경건함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도 지나치게 적막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익히 가늠할 수 있었다.


“하, 한번 들어가 봐요.”


“왜죠?”


“안에 사람들이 걱정돼서···.”


“저는 별로 걱정되지 않습니다만.”


“아, 그러시겠네요. 그럼 돈을 조금 더 드릴까요···?”


“···아뇨, 됐습니다. 들어가 보죠.”


마차는 그나마 너덜거리지 않는 목책 앞에 정차했다. 바닥을 디디니 퍼석거렸다. 청록색의 풀밭은 서리 부서지는 듯한 감촉이었다.


안에 들어서 방해 없이 바라본 진지는 더욱 처참한 광경이었다.


깎여나간 목책을 비롯, 땔감으로 사용한 장작이나 깃대, 천막 지지대 같은 것들이 잘게 부서진 채 온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사이사이마다 인간의 뼈 혹은 갑옷의 파편 같은 것도 눈에 띄었다.


회이던과 카에키는 눈을 조금 찌푸리는 데서 그쳤다. 하지만 나프는 메스꺼움을 느끼는 듯 표정이 훨씬 좋지 않았다.


시각적인 충격 탓은 아닌 듯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교인들이 악마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당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역함을 느끼는 것일 테다.


“영광스런 횃불의 전사들께서 속수무책으로 당하였군요.”


“악마 격퇴에는 이골이 난 형제자매들인데··· 이 정도로 무력하게 당할 수가···.”


카에키는 눈을 찡그린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뭔가를 찾은 듯 회이던의 옷소매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녀 손가락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향하니, 막사의 잔해 사이에 누워 있는 교회 기사가 보였다.


나프가 먼저 헐레벌떡 달려갔다. 회이던과 카에키는 산보하는 듯한 발걸음으로 뒤따랐다.


“형제시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세상에···.”


“꺼흑···. 꺽···. 자, 자매여···.”


견고한 갑옷이 종잇조각 움켜쥐어 뜯어낸 듯 군데군데 찢겨나가 있었다. 그 사이로 부서진 뼈와 꿈틀거리는 장기가 들여다보였다.


얼굴을 전부 가린 투구도 마찬가지로 일부 찢겨나가 눈 한쪽이 드러나 있었다. 철판 뒤집어쓴 평소의 면모에선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 엿보였다.


격렬한 고통에 오히려 각성이 찾아온 것처럼 부릅뜬 눈이다. 깜빡거리지도 못하여 시뻘겋게 서 있는 핏발은 공포를 대변했다.


“그··· 그 악마들은 불태워 죽여도 자꾸··· 끄윽··· 꺼어억···.”


“자꾸 다음에 뭐. 끝까지 말하고 죽어.”


“끄흑··· 꺽··· 꺽···.”


“형제님! 형제님!”


“꺼흑··· 꺽···.”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항상 그러하듯, 교회 기사는 비교적 중요해 보이는 부분을 말하다 말고 숨이 넘어가려 했다.


“형제님! 그다음은 뭐죠?!”


“이런 젠장. 너무 지랄맞네···. 어이, 전기톱.”


“당국의 적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는 그대에게 영광됨이 기다리기를! 부르셨나요?”


입자가 뭉치며, 늦으려야 대답하는 전기톱이 회이던의 손에 실렸다. 그는 스산한 진지를 휘감고 있는 기온만큼이나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 뭐야, 예전에 사용했던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 기능 말이지. 그거 사용하니깐 사망까지의 시간을 늦추는 약물도 분비해 줬잖아. 기능을 작동시켜.”


“단 1점을 차감하겠습니다! 당국의 적들에게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매분 매초를 분명히 느끼며 후회와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기를!”


가뜩이나 정신 차리지 못하던 나프는, 옆에서 막 포용과는 거리가 먼 미친 발언들의 향연이 펼쳐지니 눈을 초당 5회씩 깜빡여 댔다.


그러나 하는 말만 놓고 보면 교단의 무관용 원칙과 상통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니 눈만 멍청히 깜빡거릴 뿐이었다.


어쨌든 톱날 속에서 뭉툭한 톱니가 솟아올랐다. 그 즉시 살벌한 회전이 시작되었다.


“뭐, 뭐 하시게요?”


“물러서십쇼. 얼굴에 튑니다.”


“얼굴에 튄다뇨? 저, 저기···!”


회전하는 톱날이 숨넘어가는 교회 기사의 살갗에 닿았다. 생기를 잃어가던 눈에 선 핏발이 더욱 격렬한 모양이 되었다.


눈동자에는 고통으로부터 기인한 활력이 돌아오고, 동시에 이를 꽉 앙다문 고통의 아우성이 세 사람의 귀를 찔렀다.


“아윽윽윽윽윽윽끽꺅꺅!”


“히이익···!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자, 말하고 죽어.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뭔데? 말은 마저 마치고 죽어라.”


“으아각각각각각각! 이런 씨발새끼···!”


완성된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 악마들은 죽여도 죽여도, 아무리 불태워 죽여 잿더미로 만들더라도 어디선가 다시 나타난다.


그것은 산 자가 모두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탐식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금역이 우리에게 보내온 앙갚음인가···.


길기도 하다.


교회 기사는 그 뒤로도 5분 46초를 더 살아 있었다. 전기톱의 바람대로 강제로 연명을 당하는 매 순간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화룡점정은 시체에다 대고 침을 퉤 뱉는 카에키였다. 마치 쌍룡과 같이 위풍당당한 신성 모독의 향연에 나프는 뭐라 토도 못 달고 쩔쩔매기만 했다.


“꽤 격렬했네요. 이거 미안합니다.”


“예··· 예에? 예? 아, 예?”


“정신 차려요.”


둘러볼 것 다 둘러본 진지를 나가려는 참이었다. 카에키가 회이던의 소매를 한 번 더 붙잡더니 흔들었다.


그녀가 가리킨 쪽에는 말들을 매어 놓는 말뚝들이 여럿 박혀 있었다. 말들의 사체도 그 앞에 즐비했다. 거기에 입에서 피를 뿜는 청년 하나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세 사람은 그 가까이에 다가섰다. 카에키와 나프 사이의 연령으로 보이는 청년은 아직 앳된 티도 다 벗지 못한 모습이었다.


성직자의 복식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천갑옷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찢어지고 해진 그 사이로 부서진 늑골과, 부서진 늑골에 찔려 파열된 허파가 보였다.


팔 한쪽은 없다. 정확히는 팔을 감싼 근육이 없으며, 뼈는 그대로 남아 어깨에 붙어 있었다. 텅 빈 눈은 텅 빈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을 인지하지도 못한 듯 목구멍으로 꿀렁거리는 소리만 냈다.


회이던은 한숨을 쉬더니 허리춤의 단검을 뽑았다. 청년의 심장을 겨누어 꽉 밀어 넣자, 피를 뿜던 청년은 놀란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이내 목구멍으로 피를 끌어 올리는 것을 멈추었다.


“가엾게도···. 징용된 분이신가 봐요. 이 머나먼 땅까지 와서···.”


“전선에 서기를 자원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랬을까요?”


알 수 없다. 치기 어린 얼굴을 보며 느낀 직감이었다. 아마 동네에서 칼 좀 휘두른다 하는 녀석이었을 텐데, 전투 성직자가 되기엔 가방끈이 짧았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들을 향한 분노와 머릿속의 혈기는 억누를 수 없었을 테다.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하다만 그런 인상이었다.


과거 회이던도 진정한 북방, 문명은 죄다 망가지고 비문명만 남은 불모의 땅에서 싸워 주지 않겠냐는 청을 받은 적 있었다. 그때 그는 악마 사냥하기를 좋은 여가로 삼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거절하고 잔부스에 남은 것은, 전투를 즐겼으나 영원한 전투는 별로 달갑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그 제의에 응하였을지도 모를 청년은 눈 뜬 채로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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