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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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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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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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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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DUMMY

15



슬슬 회이던 섬칼리고드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신으로부터 전기톱을 하사받는 이야기이다. 굉장히 많은 살육이 펼쳐지지만 대부분은 생략되어 피 냄새는 고작 은연한 수준에 지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평민 출신의 관리였다. 관리로 등용되기 전엔 인간 폐품이었다.


어부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가업 이을 생각은 없었다. 기껏해야 부두에서 낚싯대 띄워 놓고 낮잠이나 자는 게 전부. 아버지께서 땀 흘려 잡아 온 물고기 혀 내밀고 처먹기만 할 뿐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할 일 없이 돌아다니다 길거리 쌈박질에 끼어드는 데 허비했다. 머리에 피 덜 마른 시절 이야기라곤 하나, 그럼에도 인간 폐품의 정의에 매우 부합하는 생활이었다.


허송세월의 나날이여. 그 어떤 현인이라도 입에 쌍욕을 머금게 할 허송세월이여. 그렇게 폐품의 정신이 여러 나날에 걸쳐 올곧게 이어졌다.


와중에 어느 한 귀족이 왕국을 횡단하다 바닷가의 소도시, 회이던의 아름다운 고향을 지나는 일이 있었다.


발롬니라는 이름의 그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항상 그렇듯이 우연히도 회이던과 마주쳤고, 그때 회이던은 우연히도 불량배 열댓 명을 단신으로 때려눕히는 중이었다.


그때 발롬니 공의 눈에 비친 회이던의 움직임은 흡사 인간의 형태로 빚은 파동이었다. 상대의 수적 우위에도 주눅 들지 않는 호전적 태도, 단 일격도 허용하지 않는 타고난 반사신경.


보석이었다. 정제되지 않았으나 그렇기에 분명 비범했다.


물질을 마치고 배에서 내려 집에 돌아온 회이던의 아버지는 기절초풍했다. 아들이 웬 귀족 나으리를 대동하고 집에 앉아 있는 것 아닌가.


올 게 왔군. 조상님들 볼 면목이 없다. 저 호로 쌍놈이 드디어 집안마저 말아먹는구나. 별것 없는 집안이라곤 하나, 그래도 핏줄에 역사는 있는데!


그러나 발롬니 공은 대뜸 공손하게 인사부터 전하였다. 그러더니 기절초풍할 말을 건네는 것 아니겠는가.


‘아드님께선 사람 패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아드님께선 무급이 아닌, 유급으로 사람 패는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실제로 저렇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당시 교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던 회이던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뜻이 대충 통하긴 한다.


어쨌든 귀족의 신분으로도 직접 몸 이끌고 허름한 어부의 집을 찾아온 것인데, 그 언행과 품성으로부터 발롬니라는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렇게 회이던은 남부의 무관 학교에 입학하였으며 학비는 모두 발롬니 공의 후원을 통해 지불되었다.


‘흠···. 어디선가 평민의 악취가 나는군. 비천함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악독한 냄새로구나. 깔깔.’


단순히 무예를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었다. 장차 왕국과 교단을 선도할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귀중한 출신과 하등한 정신머리를 갖춘 귀족 자제분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대부분 둘째, 셋째, 혹은 그 이상이거나 막내··· 하여튼 가문을 이을 적자는 아니기에 외진 곳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하지만 둘째건 셋째건 그 이상이거나 막내이건 무슨 상관인가. 눈앞에 놓인 이 양아치 뜨내기는 비교적 하등한 출신인데···.


회이던에게는 몸 둘 바 없을 지경으로 갖가지 불이익과 괴롭힘이 가해졌다. 수프를 부츠에 담아 준다거나 정수리에 흙탕물 부어짐 같은 것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원체 기가 센 성격 덕에 마음까지 흙탕에 짓이기는 일은 없었다. 이게 다 심신 수양을 위한 것이겠거니 하며 마음을 비우자 많은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발꼬랑내가 구수한 풍미를 더해 주는군요.


하지만 아버지 혹은 발롬니 공을 욕하고 헐뜯는 순간만큼은 회이던도 참기 힘들었다. 내가 정녕 저들의 정수리에 가르침을 직방으로 꽂아 넣어야 할까. 내가 기꺼이 교육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짜릿한 유혹을 가까스로 인내했다. 가르침을 전하자니, 회이던은 정말로 책임이란 걸 지기 싫어하는 폐품과도 같은 자였던지라 그러했다.


한편 아버지와 발롬니 공은 매달 서한을 보내왔다, 눌러 적은 글씨체를 읽는 것도 심신 수양에 도움이 되었다. 사실 까막눈이라 몇 달 치 편지를 쌓아 두기만 했고, 글공부를 뗀 뒤에야 몰아서 읽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서신에는 그날 잡은 물고기 크기가 어땠다느니, 만선이었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내용만 적혀 있었다.


당신은 원래 언변이 부족한 사람이니 그럴 법했다. 같이 배 타는 사람에게 글씨 좀 적어 달라 부탁한 듯 편지는 물에 젖었다 말라 쭈글쭈글한 흔적이 있었다.


반면 발롬니 공이 매달 보내오는 편지는 글솜씨가 유려했다. 교양이라곤 없는 회이던도 마음에 어느 정도 울림을 겪었던 시 구절이 쓰여 있기도 했다.


훗날 여쭈어보니 즉석으로 써 내려간 자작 시랜다. 어쨌든 회이던은 두 유형의 편지를 모두 공평하게 좋아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흐르고··· 뉘엿거리며 흐르거나 또 흘러서 졸업의 순간이 다가왔다.


무관 학교는 철저히 성과 중심제이기에 석차를 매김에 있어 출신 성분은 고려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척도에서 최상위의 평가를 기록한 회이던은 당당히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런 결말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당연히 출신 성분을 무척 중요하게 본다. 대부분의 척도에서 최상위의 평가를 기록한 회이던은 중간 정도의 석차로 학업을 마쳤다.


그럼에도 학교 문에 처음 들어설 적, 반 정도만 인간이었던 존재는 온데간데없었다. 조금 더 장성하여 문을 나서는 자는 얼추 인간이었다.


그 뒤 바닷가의 소도시 아름다운 고향에 방문해 아버지와 해후를 즐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발롬니 공의 부름이 당도하였다. 회이던은 공이 머무르는 도시, 잔부스로 향하였다.


‘그래, 학교생활은 좀 어떠했느냐. 귀족들 가운데 쌍놈이 좀 많지?’


이때는 교양이 적절히 함양된 상태였기에 발롬니 공의 어려운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깐, 실제로 저렇게 말씀하셨단 거다.


‘과연 그렇더군요. 대가리에 칼침 놓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는지요.’


‘하하. 애석하구나. 너는 앞으로 그 쌍놈들 모시는 일을 하게 될 거란다.’


회이던은 발롬니 공의 알선을 받아 여러 가지 직업 활동에 매진하였다. 숙식은 그의 개인 저택에서 해결했다. 슬슬 흰머리가 듬성거리는 발롬니 공은 가족이 없었다.


귀족의 자제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일은 맞지 않았다. 타인을 이끌거나 교육하는 재주는 없었을뿐더러, 몇 번이고 서술하였듯 책임을 도피하는 성격은 가르침 전수와 상극이었다.


회이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을 경호하거나 혹은 한 집단을 호위하는 일이었다. 임하는 내내 감각은 날 서 있었으며 칼 휘두르는 팔은 반응보다 빨랐다.


그러는 한편 발롬니 공 아래서 수학하며 관리가 되기에 적합한 소양을 쌓았다. 그리하여 궁에 입성시키는 것이 공의 최종적인 목표랜다.


길거리의 양아치에 불과한 회이던에게 어찌 이리 과분한 혜택을 쏟아붓는 것일까. 그 점이 새삼 낯설어 언제는 한 번 여쭈어보았다.


‘글쎄다.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자취라도 남기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군.’


‘그럼 가족을 이루어 자식을 보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점이 내겐 곤란하네.’


‘왜죠? 성불구자이십니까?’


‘이런 대가리 깨 박살 내고 싶은 놈을 보았나.’


어쩌면 일평생 가진 적 없는 아들이란 존재를 회이던에게 겹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말하자면 가슴과 자본으로 낳은 아들인 격이었다.


발롬니 공은 기인이었다. 다른 귀족들과는 많이 달랐다. 장중한 기품이 서려 있으면서도 묘하게 경박했다.


경박하다 해도, 대부분의 귀족이 권위에 취해 휘두르는 추태와는 결이 달랐다. 성품 측면에서 그러했다.


또한 철학과 자연과학, 예술에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저술을 편찬하거나 이론을 확립하지 않았다. 그 해박함을 스스로의 머리통 안에 가두어 썩혔다.


어쩌다 귀족 집안에 태어나 돈이 많을 뿐인 필부 연기를 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어쨌든 회이던은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며 차츰 계단을 밟았다. 고관들 곁에서 수행하거나, 혹은 밖에 나가 도적 무리 혹은 악마를 쑤셔 잡는 중급 관리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쌓인 기반은 발롬니 공의 자본이었으나 그보다 더 높게 쌓은 것은 회이던 본인의 재능과 피땀 어린 노력의 성과였다.


바닷가의 소도시 아름다운 어쩌구에서 사람 패는 일을 일임하던 잡놈이 어느덧 조금의 문과 지극한 무를 겸비한 관리가 된 것이었다. 큰 박수가 필요하다.


그 뒤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다. 악마들의 출현이 빈번해졌고 왕권은 빈약해졌다. 교단은 미쳤다.


어부이신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셨으며 발롬니 공은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려 했다는 까닭으로 목이 잘려 죽었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은 여기까지다.



***



여전히 과거 시점이다. 하늘은 어둑했지만 그 아래 도시 잔부스는 밝았다.


성벽 위에서는 넘실거리는 붉은 빛이 모두 온전히 보였다. 건물들 사이에 난 거리, 널따란 광장 곳곳에 붉은빛이 만개했다.


일부는 횃불이다. 나머지는 불태우는 것이다. 주마다 두 번씩 번제하듯 사람들을 불태웠다.


붉은 색깔에는 불길한 감정과 의도가 숨어 있다. 사람 익은 악취를 머금으며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하늘의 색깔과 같으나, 붉은빛은 작은 검정이 큰 검정에 섞이지 못하도록 했다.


모두들 보라. 배교자들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저 악의 사상을 똑바로 바라보라. 눈을 떼지 말고 명심하라···. 좆 까는 소리 하고 있네.


회이던이 그 장대한 광경에 눈 빼앗기는 일은 없었다. 그는 성벽을 오른 역순대로 반대편을 내려갔다.


벽돌 틈새는 얕고 얇았으며 지면과의 거리가 넓었다. 하지만 여덟 개 손가락만 걸치고도 잘 내려갔다. 바람이 찬 밤이었다.


그러던 중 아래쪽에서 풀 밟는 소리가 들렸다. 회이던은 고개를 슬쩍 꺾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말 탄 검은망토 한 명, 그리고 잡졸 둘이서 성벽 귀퉁이를 수색하고 있었다.


“몸에 마력도 내장하지 않은 미숙아 놈 아닙니까? 어떻게 단신으로 이 정도 학살을 벌일 수 있었던 겁니까?”


말 탄 검은망토가 콧방귀를 뀌었다.


검은망토라 해도 망토를 두르고 있진 않았다. 전투 상황에는 걸리적거리는 것이 망토이니 대부분의 상황에서 제 이름값을 못 하는 셈이다.


“너희들, 섬칼리고드 놈이 악마 썰어 죽이는 것 본 적 있냐?”


“본 적 없습니다.”


“본 적 없으면 말을 말아라.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음식에다 독을 타 놓든가 해야 했는데···.”


오, 드물게도 날 높게 평가해 주시는 분이로구만. 회이던은 성벽에 매달린 그대로 칼을 뽑았다. 날이 금속 면을 스치는 미세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 벽돌 사이 틈에 걸린 손가락을 풀었다.


“어···.”


위에서 들리는 낙하의 음성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 잡졸 한 명이 대가리를 밟혀 죽었다. 엄밀히 말하면 대가리를 밟혀 죽은 게 아니었다. 발바닥보다 칼날이 먼저 닿았다.


날붙이가 한번 슥 하고 지나가니 종이 잘리듯 쉬이 잘리며 안에 들어 있는 피와 뇌수가 튀었다. 죽을 때는 요란한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섬칼리고···!”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잡졸이 회이던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말 마치기도 전, 수직으로 빙글 돌아간 칼날이 정확하게 겨냥하여 목을 꿰뚫었다.


연계한 두 소음에 검은망토가 고개 돌렸다. 날붙이는 검은망토가 고개 돌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치솟았다. 잡졸 목에서 빼내며 맺힌 핏방울이 채 휘날리지도 못하였다.


뭐라 외치려는 듯 벌린 이빨과 이빨 사이 입천장에 칼날이 쑤욱 들어갔다. 깊었다. 검은망토도 안구의 흰자가 붉게 물들며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본 적 있다는 놈이 이렇게 한가롭게 거닐고 자빠졌네. 뭐 산책 나왔냐?”


말 위에 올라타 발꿈치로 옆구리를 툭 찼다. 말은 울음소리를 내며 그대로 들판을 향해 달려 나갔다. 순찰조는 성문과 성벽 계단, 하수도 입구에만 편중되었다.


맨몸으로 높다란 성벽을 오른다고요. 마력도 없는 놈이 잘도 그러겠수다. 그런 대화가 머리에 선하게 그려졌다.


미친놈들아, 추기경이 군중 앞에서 목 잘려 암살당했다. 좀 만전을 기해 봐라···.


회이던은 쭉 들판을 지나 야산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뒷일은 숨 고르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늘에 떠오른 것은 달이 유일했다. 만월이 아니라 조도가 강하진 않았다. 달 표면이 퉁겨낸 가느다란 볕 받은 풀떼기에 짙은 녹색이 고여 있었다.


색깔들은 바람결에 맞춰 쓸쓸히 고개 저었다. 말발굽이 쓸고 지나가면 정신없이 휘둘리거나 했다.


회이던은 뒤를 돌아보았다. 단지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고요함과 부산함의 차이가 극심했다. 성벽 건너 가득하게 차오른 붉은 빛이 하늘에 닿을 듯하며 눈동자를 알싸하게 했다.


도시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발롬니 공이 투옥된 것은 불과 전날이었다. 궁에서 근무를 서던 회이던에게는 곧장 소식이 닿았다.


전후 사정을 가늠할 것도 없이, 올 게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그 다음으로는 그냥 쳐들어가서 뒤엎어 버릴까 하는 욕망이 치솟았다. 이후에는 인내와 자제를 향한 싸움이었다.


제자인 회이던의 돌출된 행동이 스승인 발롬니 공의 처우에 영향을 미친다. 뇌간에 부아가 스며들어 제정신 유지하기 힘들었기에, 차라리 스스로를 가택에 연금하길 택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두 시간 전에 발롬니 공의 처형이 비공개로 집행되었다. 죄목은 악마의 지식과 사상을 퍼뜨리려 했다는 것이었다.


발롬니 공은 무엇을 설파하려 했던 것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속에 해박한 바다를 품었으나 찻잔만큼 잠잠하던 사람이었다.


방에 틀어박혀 전전긍긍하는 회이던을 포박하고자 여러 무리의 검은망토들이 집 대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 회이던은 그들 모두를 베어 넘겼다.


그리고 길거리의 검은망토들도 모조리 베어 죽이고, 교회 기사들도 막는 족족 찔러 죽이며 교화소의 지하실로 쳐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십수 명을 추가로 살해했다.


참수당한 발롬니 공의 목을 마주한 것은 지하실 끝 왼쪽 방이었다. 최소한 고문만큼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시체는 깨끗했다.


회이던은 그 자리에 있던 성직자들을 모조리 참살한 뒤 교화소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도망치는 길에 따라붙는 것들도 죄 베어 죽였다.


표정 없이 눈 감은 얼굴을 떠올렸고, 사람 살갗을 갈라 뼈와 장기를 파헤치는 것이 관성이 되었으며 다리는 목적지 없이 움직이기만 했다.


그러던 중 단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추기경 시발새끼, 진창에 처박아 흙 구정물에 익사시켜 마땅한 새끼. 죽여버리겠다.’


회이던 섬칼리고드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예하를 노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놈은 악마가 들려 미쳐버렸습니다. 빨리 대피하셔야 합니다.


추기경은 한 무리의 호위를 거느린 채 혼비백산 도망쳤다. 회이던은 지붕 위를 내달려 쫓았다.


적당히 때를 보다가 뛰어내린 곧장 호위 둘이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그 뒤 다른 한 명은 빼앗긴 자신의 검에 몸이 꿰뚫려 벽에 박힌 채 죽었고, 나머지 하나는 높은 다리 아래로 내던져져 머리통이 박살 나 죽었다.


혼자 남은 추기경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회이던은 칼을 바닥에 질질 끌며 다가섰다. 흙 위에 칼끝이 쓸린 자국이 남고, 쓸린 자국에는 개울처럼 피가 고였다.


온몸이 사람 피로 젖은 회이던이 악마처럼 보이긴 했을 것이다.


추기경은 엄혹했었다. 불태워 죽이길 명하는 얼굴에는 신의 권위가 실려 있었더랬다.


그런데 엉덩이 바닥에 문지르며 뒤로 뒤로 물러서는 추기경은 이제서야 인간이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혹시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지 않을까 하면서···. 목이 잘렸다.


그 뒤에도 도망치는 내내 쫓아 오는 것들, 가로막는 것들을 죽이고 또 죽여댔다. 잔부스로서는 악몽 같은 밤으로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불타길, 영원한 저주 있기를. 퉤엣.”


말 타고 달리는 회이던은 경멸의 의미로 침을 한 번 툭 뱉었다. 숨 가쁨의 연속을 거친 직후라 그런지 침이 제법 점성을 띄어 쉬이 끊어지지 않았다.


입술에 타액을 대롱대롱 매달아 휘날리며 어떻게든 떨치려고 얼굴 휘둘러 대는 모습이 무척이나 추저분했다.


“저기 섬칼리고드다! 저기 있다!”


그때 멀리서 발굽 여러 쌍이 땅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함성이 들렸다.


기다랗게 침을 휘두르며 그쪽 돌아보니 교회 기사와 검은망토가 각각 둘씩 구성된 순찰조가 맹위를 두른 채 향해 오고 있었다.


회이던은 소매로 입가를 스윽 닦았다.


“이 잔악한 학살자 놈아, 네놈은 어디 갈대 무성한 초야에 비석도 없이 묻힐 게다!”


교회 기사들은 칼날에 화염을 휘감아 횃불 삼았다. 그 광원이 죽어 나간 동료들의 복수심에 불타는 검은망토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정작 기사들은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신성한 의무에 경도되어 열띤 빛은 충분히 전해져 왔다.


“게 서지 못할까! 반역자이자 신성 모독자이며 살인마이자 추기경 암살자 놈아!”


“오냐, 직업 윤리에 충실한 것들아. 그 충직 때문에 뒈지는 거다!”


회이던은 별안간 달리는 말에서 뛰어 내렸다. 말은 달빛 받아 우중충한 지평선을 향하여 멈춤 없이 달려 나갔다. 그렇게 넷의 기병 앞에 두 다리로 서게 되었다.


칠칠하지 못하게 침이나 흘리면서 손쉬운 사냥감을 자처하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검은망토 하나가 긴장한 기색이라곤 없이 달려들었다.


“죽어라!”


거칠게 들린 검은 요란하게 휘적거리는 것 없었다. 달리는 말의 속력이라면 갑옷 걸치지 않은 몸에 토막 새기는 것 정돈 식은 죽 먹기다.


분명 그러하다. 보잘것없는 쪽을 상대할 때는 분명 그러했다.


그러나 회이던의 보잘것없음은 외면과 평판에만 한정되어 있단 게 검은망토가 간과한 점이었다. 단조로운 칼날의 선이야 물 마시듯 가볍게 파훼할 수 있었다.


어깨를 바깥쪽으로 펴 등을 조금 젖히는 것만으로 마상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러는 일련의 동작 사이에 엉큼하게 끼워 놓은 칼날 하나, 적절한 높이와 각도로 곧추세웠을 뿐이었다.


말의 속력은 완만하게 유지되었고 검은망토의 팔꿈치 아래는 곧추선 칼날을 통과하며 살코기 썰리듯 쉽게 잘렸다.


“끄아악!”


회이던은 칼에 묻은 피를 털었다. 풀잎에 방울이 튀어 맺혔다. 그 뒤 잘린 전완근이 풀 바닥에 가볍게 떨어졌으며 검은망토는 절단면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낙마했다.


안타깝게도 고꾸라진 위치는 풀 바닥이 아녔고 그리 푹신하지도 않았다. 바닥에 맨 처음 닿은 것은 관자놀이였다. 목이 꺾여 즉사했다.


“하이고, 지랄한다. 지랄도 이런 개지랄이 없네.”


“조심해라! 상대는 회이던 섬칼리고드다!”


“멍청한 새끼야. 내가 회이던이건 말좆이건 무슨 상관이야. 저 혼자 떨어져 뒈졌구만.”


“둘러싸서 몰아붙여라! 숨 돌릴 틈을 주지 마! 연전으로 지쳐 있을 거다!”


“멍청한 새끼들. 본인들 목숨을 추측에 내맡기네. 별로 소중하지 않은가 봐.”


말대로 지쳐 있는가. 그렇지 않았다. 들끓어 오르는 분노와 살의가 혈관을 잔뜩 달궜다.


예열은 발롬니 공이 투옥되었던 전날부터 진행되어 왔던바, 완전히 식히고자 한다면 몇 명을 더 베어야 할지 회이던 자신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셋이서 회이던을 사이에 놓고 빙글거리며 돌기 시작했다.


검날에 서린 불의 꼬랑지가 말의 꼬리와 함께 휘날렸다. 하나 남은 검은망토는 그물을 휘휘 돌리더니 회이던을 정확히 겨냥하여 투척하였다.


회이던은 어쭙잖게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물망을 향해 파고들기를 택하였다.


엮여 있는 씨줄과 날줄의 출렁임이 그 짧은 새에도 전부 눈에 보였다. 그것만으로 어디를 베어야 할지, 칼날의 각도는 어떻게 할지, 어느 세기와 속력으로 휘둘러야 할지 대강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회이던이 타고난 전투 감각이었다. 발롬니 공의 안목은 과연 틀린 게 아녔다. 감각을 완전히 정제하여 의도와 상통시킬 수 있게 된 순간, 회이던은 순간을 쪼개고 쪼개어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미세하게 잘 노려 들어간 칼날이 얇은 섬유를 하나씩 툭툭 끊었다. 회이던은 그 틈새로 곧장 솟구쳐서 정면에 위치한 교회 기사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기사는 회이던이 구속되는 즉시 참격을 쏘아 보낼 생각이었는지, 손에 들린 검에는 빛멍울이 아른거리며 금방이라도 발산될 기세였다.


그러나 이제는 본인도 참격의 여파에 휘말릴 수 있는 간격이다. 평범하게 검 휘두르는 것이 강제되었다.


“이놈이···!”


두껍고 커다란 칼날이 횡으로 회이던을 가르려 들었다. 회이던은 체공한 채 무릎을 잔뜩 굽혔다.


발바닥이 아슬아슬하게 검날의 표면에 닿았다. 그 아득한 찰나의 디딤발을 바탕으로 하여 한 번 더 솟구쳤다. 덩달아 기사의 칼은 아래로 움푹 쏠렸다.


교회 기사들이 갖추어 입은 갑옷은 여간 단단한 게 아니었다. 어지간한 출력으로 칼질을 가한다 한들 찌그러뜨리는 것이 전부일 테다.


안쪽에 피멍을 선사하고 뼈를 조금 많이 부술 순 있겠지만 그건 회이던의 선호가 아녔다. 회이던은 얕더라도 베고 찌르고 들어가고··· 언제나 그런 걸 더 원했다.


그러니, 견고한 갑옷 새에도 틈은 있는 법이다. 기사의 정수리를 뛰어넘으며 몸을 거꾸로 회전시킨 회이던은 어느새 기사의 등 뒤였다.


갑옷과 투구 사이의 틈, 천갑을 받쳐 입었다 하나 단단함과는 거리 먼 맹점.


“크허억!”


극히 미세한 틈이었으나 얇은 칼날의 굵기가 정확히 들어맞았다. 기사는 목덜미에서 분수처럼 피 뿜었다.


회이던은 황급히 공중제비를 돌아 두 발로 바닥에 착지했다. 뒤이어 기사가 낙마하며 바닥을 볼품없이 굴렀다.


검은망토는 어떻게 해야 하냔 것처럼 기사를 돌아보았다.


“이제 둘이다. 시간 참 짧은데 길지?”


“시발, 이제 어떡해. 둘만 남았잖아.”


기사는 닫힌 투구 안쪽에서 증오에 받힌 채 이빨질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회이던은 웃었다.


발롬니 공이 살해당한 지 얼마 지났다고 웃음이 나오나 싶지만 그도 그럴 만했다.


이미 반쯤 실성한 상태였다. 가택에 놈들이 쳐들어온 순간부터 머릿속에 제동 걸 만한 보루는 끊어져 버렸다.


회이던은 선 자리에 가만 었다. 참격을 쏘아 보내건, 무작정 돌진하건 도망치건, 놈들의 다음 선택을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여유를 한껏 부리는 모습을 보자니 두 적수의 마음에 이윽고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완연해졌다. 그러고 보면 방금 전까지 기사며 검은망토며 할 것 없이 수십을 베어 죽인 작자 아닌가···.


“빨리 뭐라도···.”


조롱하는 말이라도 건네려 한 그때였다. 갑작스레 강한 섬광이 일었다.


기사가 참격을 전개한 것이 아녔다. 빛의 근원은 회이던의 뒤 혹은 위였다. 옅은 그림자에 덮여 있던 세 사람의 얼굴에 환하게 흰색이 번졌다.


“저건 또 뭐래···?”


갑작스런 섬광의 근원은 만월이었다. 달이 지면 근처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전근대적 사고에 따르면 밤하늘에 빛 내뿜는 동그라미는 하나뿐이니 달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녔다.


달처럼 보이는 것은 그 아래에 소용돌이와 같은 강풍을 내질렀다. 수풀에 파도가 일었고 회이던의 머리털이 휘날리며 눈 앞을 가렸다.


눈이 부셔서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아아!”


교회 기사는 별안간 탄성을 내뱉으며 투구를 벗었다. 그러더니 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찬미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눈이 멀 듯한 섬광을 어떻게든 분명히 응시하려는 것처럼, 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붙들어 매는 것이었다.


회이던은 그를 미친놈 쳐다보듯 보았다. 옆에 있는 검은망토는 그걸 따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눈치를 보았다.


“신께서 내려오셨다! 신께서 저 모독자의 불온함에 분노하셨다···!”


기사의 외침에는 밝은 확신이 서려 있었다.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는데 생리 작용인지 북받쳐 오른 것인지, 어느 쪽이건 회이던 보기엔 제법 꼴사나웠다.


“저 신성 모독자, 추기경 살해자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신이라고? 그럴 리가···.”


“닥쳐라! 신이시다! 드디어 광명을 이끌고 이 땅에 도래하셨다! 우리 뒤에 꺼지지 않는 횃불을 비추소서!”


“그럴 리가!”


지금껏 그 많은 살육과 번제를 외면해 놓고서 이제 와 신이 관측될 리 없잖은가. 그것이 회이던의 생각이었다.


혹은 정말로 회이던의 살육에 분노한 것일까. 오늘 너무 많이 죽이긴 했다.


하지만 고작 그것 가지고 신벌을 내리려 행차한다니, 교단이 매주 날 잡고 사람들 불태우는 것은 더더욱 유구했으며 쌓이는 시체 질량도 훨씬 많았다. 그건 학살이 아닌가···?


달에서 웅웅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기사의 간증하는 목소리도 더 커졌다.


어느덧 검은망토도 말에서 내려 무릎을 조아렸다. 말들은 굉음이 두려워 평원으로 달려 도망쳤다.


“불길을 쏘아 보내 주시옵소서! 저 배교자에게!”


화답하듯 요란한 천둥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동시에 눈을 따갑게 하는 섬광이 연신 발생했다. 회이던은 눈을 가리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귀를 먹게 하는 굉음이 그치니 간증하는 소리도 멎었다. 회이던은 얼빠진 얼굴로 기사와 검은망토 있던 자리 돌아보았다.


곤죽이 된 육편의 무더기가 질게 땅바닥을 칠한 것 말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갑자기 달빛, 혹은 무엇이 되었던 그 섬광의 광도가 낮아졌다. 그러나 섬광에 눈이 흐려진 상태였기에 그 본래의 모습을 관찰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달이 아니었다. 무슨 어항 같은 것이었다. 광택이라곤 없는 검은색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꼭대기에는 풍차 같은 것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데, 그것이 날갯짓 소리와 강풍을 일으켰다. 뒤에 달린 기다란 꼬리에도 조그만 바람개비 같은 게 들러붙어 계속 돌아갔다.


어항은 아래로 천천히 강하하더니 지면에 달라붙었다. 그러자 풍차와 바람개비 같은 것도 서서히 멈추었다. 회이던은 경계하는 자세로 칼날을 겨누었다. 신이 아닌 악마 같은 것인가.


측면의 철판이 벌어졌다. 안에서 사람 형상의 누군가 내려왔다.


“회이던 섬칼리고드!”


그 목소리를 듣자 회이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인데 이제는 존재해선 안 되는 목소리. 기억 저장하는 공간에 내장된 수많은 기억부터 반응하였다.


내린 사람은 발롬니 공이었다. 바라보는 회이던의 얼굴에 당혹과 놀라움, 그리고 반쯤 공포에 가까운 경외가 번졌다.


“발롬니 공···?”


“그래. 날세. 우선 이 안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공께서 돌아가신 모습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회이던 섬칼리고드. 시간이 없어.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해 줄 테니 어서 타도록 해.”


“뭡니까?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이건 또 뭡니까?”


“아아, 이건 헬리콥터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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