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4 19:2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983
추천수 :
12
글자수 :
299,870

작성
24.09.01 19:30
조회
13
추천
0
글자
26쪽

29

DUMMY

29



이름을 외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악마들만이 소리에 이끌렸다.


걷는 데 5분 걸릴 거리가 30분이나 걸렸다. 베는 행위도 더는 고양을 촉진하지 못했는데, 이제 목적이 아닌 방해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크바플로드으으! 바이타아안!”


회이던과 카에키, 세문두크 셋만 남았는데 악마들은 계속해 공급되었다.


사냥꾼들이 넷일 때야 구석에서 화살만 쏘는 카에키에게 주의가 쏠리지 않는다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금은 그녀도 악마들의 공격 망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키헨나아아! 마칼루우운! 초스토하이이임!”


“세문두크, 먼 곳에 있는 악마들까지 소리 듣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게 어쨌단 겐가!”


아시지 않나요. 회이던은 그런 눈빛으로 세문두크를 쳐다보았다.


멀리 있는 악마들까지 소문을 듣고 맛보러 찾아올 정도의 고성인데 사람 대답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이거 뭔 뜻인지 아시지 않나요.


그러나 세문두크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어 사리 분별할 상태가 못 되었다. 몸은 회이던과 마찬가지로 피범벅, 다른 점이 있다면 그중 일부는 세문두크 자신의 피라는 것이다.


그의 전투법, 공격을 위태롭게 흘려보내며 난전을 유도하는 방법이 심신 건재하지 못한 상태에선 제 살 파먹기에 지나지 않았다.


카에키 역시 지금의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사냥꾼 몸 곳곳을 덮은 부상만은 염려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회이던은 바로 그녀를 가리켰다.


“저는 관계없습니다. 하지만 카에키 안전에는 관계있거든요···.”


엄동에 굳은 잿바닥도 방금까지의 이야기다. 가는 길마다 뜨거운 피와 장기가 흩뿌려졌다. 그 자취를 누구나 눈으로 보고 따라올 수 있었다.


세문두크는 기이할 정도로 침착을 유지하는 회이던이 아닌, 그 뒤에 몸을 숨긴 카에키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카에키가 바라보는 세문두크의 표정은 미칠 듯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서 있는 사람 중 가장 어린 그녀보다 더 겁에 질려 있었다.


조금 늙은 사냥꾼은 많은 말들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자네들은 이만 떠나도 돼. 여긴 나 혼자서 어떻게···.”


“혼자서?”


“계속 찾아다녀야지.”


“계속 찾아다닌다라···.”


지금 회이던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그냥 그거다. 안녕히 계십쇼. 그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 성벽 부서진 틈으로 나간다. 카에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편이 더 낫다.


“자네는 몹시 태연하군. 자네 일은 아니란 거겠지.”


“평상시에는 표정 관리 잘하는 편입니다.”


“아니, 그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부탁이니 이만 가 주게. 나 혼자서도 충분해. 자네 여동생 안전 챙기고 싶다며. 그러니 더는 여기 있을 생각 말고 떠나달란 말일세.”


두 사람은 날 돋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계속해 걸었다. 정확힌 세문두크가 발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이었고, 회이던은 그 뒤를 따르며 말을 받는 것뿐이었다.


그때 안개의 장막이 잠긴 끝으로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초입, 건물들이 멀찍이 거리를 벌려 원형을 자아낸 공간의 입구뿐이었다. 거리가 다소 멀어서 전경은 오리무중이었다.


전경은 보이지 않건만, 표정 관리 그렇게 잘 한다던 회이던의 미간에 주름살이 끼었다. 한 뼘을 걸을수록 주름살이 한 겹씩 더 일어났다.


“시발.”


그러더니 욕지기를 내뱉었다. 하지만 카에키는 안개 너머로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흐익··· 흣··· 흐엑···.”


그때 옆에서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깝게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세문두크였다.


그의 경우 눈에 선 핏발이 제정신 아님의 척도였다. 명백하게 조금 전보다 더 망가진 모습이었다.


두 사람 모두 보이지 않는 안개 저편에서 무언가를 느껴 이러는 것일진대, 카에키는 그 무언가를 알아챌 재량이 없었다.


다만 반응을 살피며 머릿속에 가상의 공포를 설정해 둘 수는 있다.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몸을 곤두선 채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공포에 젖은 마음속 웅덩이가 메꾸어지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세 사람은 광장 초입에 다다랐다. 그 넓은 원형의 공간은 그저 텅 비어있는 게 아녔다.


“죄다··· 죄다 죽여버려야 한다. 놈들 모두를···.”


“너를··· 여기 데려와선 안 됐는데.”


처음엔 산처럼 쌓인 나무 막대인 줄로만 알았다. 얼핏 봐선 정체를 알아챌 수 없는 앙상한 것들이 원뿔 형체로 한가득, 넷 정도 쌓여 있었다.


그 전부가 상앗빛 감도는 회색깔로 바랜 사람 시체였다. 인골, 혹은 반 정도 썩다 만 사람 사체, 혹은 퇴색한 살갗 그대로 굳어 썩지 못한 자들, 쌓이고 쌓여 인체의 산이다.


악마들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까는 기반은 정갈해야 한다. 주춧돌 되는 것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기둥은 성립할 수 없다.


그렇게 기반 삼아진 사람들은 위에서 짓누르는 압력에 오랫동안 억눌려, 그 상태 그대로 바람 맞고, 새벽즈음부터 급격히 사나워지는 추위를 맞으며 굳어갔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곤죽이 되어가고, 옆의 사체와 하나 되고, 그렇게 인간의 형상은 일부분만 간직하였을 뿐인 고기 떡이 되어 있다.


“단 하나의 남김도 없이···. 알을 까 놓으면 발로 밟아 부수고, 죽은 눈으로도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뽑아버리고···.”


세문두크는 정신 모두 빼놓은 삼백안으로 중얼거렸다. 몸을 비척거리며 조금씩 그 주변을 향해 걸었다.


회이던은 뒤를 쫓지 않고, 대신 카에키의 기색을 살폈다. 그녀 흔들리는 눈망울은 신적인 존재를 간절히 바라는 듯하였다. 아버지가 그런 꼴을 당하였음에도 불구, 횃불께서 실존하시길 바라며 그 존재가 인간종을 구원하길 바라는 눈망울이다.


“이런 빌어먹을, 크바플로드으으! 마칼루우운!”


세문두크는 울부짖으며 시체의 산 중앙에 있는 교수대를 지나쳤다.


예전에는 배교를 범한 죄인들도 목매달아 죽였다. 그러니깐 하찮은 일에 신성 모독이란 대목을 덮어씌우는 것 말고, 진짜 배교를 범한 사람들 말이다. 쇠꼬챙이 화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악마들은 교수대만은 부수지 않고 간직해 놓았다. 거기에 교회 기사들의 사체가 목매달려 있었다. 미라화하였으나 산더미처럼 쌓인 시신들보단 최근의 것이다. 아마 교단 측에서 수색을 위해 사전에 파견한 분대인 성싶었다.


“초스토하이임! 키헨나아아! 바이타아안!”


세문두크는 시체의 산 하나를 붙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회이던이 말릴 틈새도 없었다. 사고가 어떤 당착에 달한 것일까, 부하들의 시신이 그 꼭대기에 놓였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문두크! 내려오세요! 세문두크!”


“조용히 하게!”


“세문두크! 당신···!”


회이던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세문두크가 오르던 시체의 산이 갑자기 폭발하였다.


건물 높이만큼 쌓여있던 무구한 덩어리들은 그 본연의 모습이 조각난 형상으로, 혹은 신체 조각이 다른 몸에 기워진 형상으로 널리 퍼지며 날아갔다.


사람 팔다리가 우박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무게가 더 나가는 것들은, 예컨대 몸통이나 비교적 온전한 시신들은 멀리까지 날아가 건물 외벽에 부딪혔다. 세문두크도 그 빗발치는 인체 유성들에 섞여 공중으로부터 포물선을 그렸다.


회이던은 옆에 서 있던 카에키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 내달렸다. 요리조리 피하는 양옆에 바싹 마른 인체들이 마구잡이로 떨어졌다. 그것들의 굳어서 뒤틀린 표정들이 비교적 선명했다.


핏물이 범람하진 않았다. 오래된 시체들에 피는 고여있지 않았다. 마른걸레처럼 푸석해진 내장들이 길게 늘어지며 하늘에 휘둘릴 뿐이었다.


“호이이이이이이인.”


악마의 괴성이 들렸다. 움푹 무너진, 시체의 산이었던 것 뒤로 거대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는 대략 10미터가량, 손에는 나무를 대충 깎아 만든 방망이가 들렸다. 시체의 산을 박살 낸 것은 저 방망이일 것이다.


“그래, 여기 들어온 순간부터 눈에 훤했지. 이러지 않을 거라 기대했다면 그건 양심이 없는 거지···.”


신체 표면은 두꺼운 덩굴을 땋은 듯 매끈한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근섬유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외형이었다.


특기할 만한 게 하나 더, 양어깨 사이에 목이 있어야 할 부분이 텅 비었다. 당연히 얼굴도 없다.


회이던은 근처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추락한 세문두크가 몸 일으키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다른 시체들 위에 떨어져 몸이 성한 것일까.


알 수 없다. 회이던은 그마나 성해 보이는 가옥 안에다 카에키를 밀어 넣었다.


“호이이이이이이인.”


바깥에서 악마의 포효가 길게 울렸다. 권력자가 단상 위에서 연설할 때 쩌렁쩌렁 울리듯, 흡사 그와 비슷한 재질의 음성이었다.


나무 방망이는 바닥에 쓸리고, 기다란 다리는 어정쩡한 팔자걸음으로 암회색 벽돌 바닥에 충격을 가했다. 바닥에 널리고 널린 시신들이 들썩였다.


“활 쏘려는 생각 말고, 끝나기 전까진 절대 나오지 마라. 알겠지? 알겠다고 말해.”


카에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확인한 회이던은 그 즉시 뛰쳐나가려 했다. 그때 그의 비어있는 손이 소녀의 차디찬 손에 꽉 붙잡혔다.


“뭐? 왜?”


당연히 대답 돌아오는 것은 없고, 다만 눈썹 모양과 고개 끄덕임 뿐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눈망울이 회이던을 향했다. 거기엔 횃불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 같은 게 없었다.


회이던은 멈춰선 자세 그대로 그녀 눈을 얼마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가 한 것처럼 고개를 단호히 끄덕였다.


그제서야 그의 손을 붙든 차가운 손에 힘이 풀렸다.


밖으로 달려 나오니 악마를 향해 질주하는 세문두크의 모습이 모였다. 몸에 들러붙은 인체 찌꺼기들을 휘날리며, 오직 증오만이 들어찬 눈동자는 그 자체만으로 악마를 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이 입 바깥으로 토해졌다.


“네놈들은 당최 누구 배 속에서 태어나느냐, 만든 이도 저주받은 네놈들을 불쾌히 여길 거다!”


“호이이이이이이이인.”


“죽여버리겠다아!”


세문두크는 무작정 커다란 악마를 향해 달렸다. 악마는 시체의 산을 방망이로 마구 후리며 육편이 다시금 유성군을 이루도록 했다.


끔찍이도 쌓여 있던 시체 더미는 어느덧 고기 떡 같은 기반만 남았다. 세문두크와 회이던 둘 모두 빗발치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들을 요리조리 피했다.


한쪽은 순전히 감각에 맡겨 피하는 것이었고, 한쪽은 전부 눈으로 본 뒤에 피하는 것이었다.


“코멜루! 솜볼그가 자넬 기다리고 있잖나! 어서 여동생 데리고 꺼지지 못해!”


“제 이름 코멜루 아닙니다. 회이던 섬칼리고드라 합니다.”


“뭐···? 아니, 그게 뭔 상관이야, 어서 꺼져버려!”


“이제 세문두크, 당신에게는 감출 까닭이 없···.”


높게 쳐들린 악마의 방망이가 바닥을 내려찍으며 후속하는 회이던의 대답은 무산되었다. 경우에 맞지 않게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잔가지가 버석거리며 바닥 위로 날카롭게 튀었다. 그것만으로 성가신 부수적 피해가 되었다.


“내 말 듣게, 지금이라도 돌아가!”


민둥한 나무 사이에 놓고, 세문두크의 독살스러운 얼굴이 마지막의 염려를 전했다.


이어서 내려칠 채비를 위해 다시 들려 올라가는 몽둥이, 그 수분이라곤 조금도 없이 말라비틀어진 나무질의 표면에 두 개의 도끼날이 박혔다.


날렵하게 발한 한 쌍의 번뜩임은 안개 속에서도 매우 선명했다. 악마는 개의치 않으며 무기를 위로 거두었고, 덩달아 두 도끼를 꽉 붙든 세문두크의 몸도 딸려 올라갔다.


세문두크는 아주 잠깐 아래를, 회이던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악 외의 그 무엇도 읽을 수 없는 눈이다. 회이던은 속에서 문득, 지금 세문두크도 시달리고 있을 공허를 느꼈다.


전기톱의 쇠줄이 잡아당겨졌다. 회이던은 레버에 올려놓은 손가락에 힘을 두어 톱날을 회전시켰다. 오로지 거슬리는 소리를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문두크의 의중을 알기에 이외의 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다행히도 전기톱 회전하는 소리는 악마 듣기에도 충분한 소음이었다. 몽둥이에 매달린 세문두크에게 향할 주의마저 그 전부가 회이던에게만 환기되었다.


“호이이이이이이인.”


“오냐. 이쪽만 봐라. 이 지랄맞은 인신 공양의 전파자 새끼들아···.”


악마는 방망이를 회이던에게 겨냥하며 쳐들었다. 거기 매달린 세문두크는 악마의 정수리 위치, 정수리가 안 달려있긴 하나 일반적으로는 그 언저리인 위치에 달하였다.


깊게 박아 놓은 두 도끼가 비틀리며, 그 주인의 발바닥보다 먼저 거대한 양어깨 사이에 착지했다.


살점보다는 단단한 식물 가르는 감촉이 손목에 잇따랐다.


“마우리스를 위하여···!”


대가리 달리지 않은 존재에게 뇌란 어디에 달린 것일까. 모른다. 그냥 치면 뭐 나올 것 같은 부위 관성적으로 가격하는 것밖에 안 된다. 그 즉시 난도질이 시작되었다.


“마우리스를 위하여어!”


확실히 근래 목격한 악마들 가운데선 가장 거대하다. 얼굴 달리지 않았으니 감정 비슷한 것도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악에 어울리는 것은 표정 달리지 않은 얼굴이며, 증오 발산하기엔 인간성 읽히지 않는 편이 더 편안하다.


세문두크는 얼굴 없는 해당 악마에게 대표성을 부여한 것 같았다. 마우리아의 멸망을 이끈 모든 악마들의 면면을, 세상 모든 죄악을 대입하여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해방을 쫓으려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일 테다.


전날 밤 그가 뭐라 했더라, 늪과 같이 잠기게 하는 진흙에 대해 말했다. 시야가 닿을 수 있는 대지 전체가 그 정도로 질척하다면, 탈출하는 방법은 날아 오르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세문두크는 방망이에 도끼날을 박아 넣었다. 그의 두 발은 공중에 들려 땅으로부터 떨어졌다···.


“남김없이···. 단 하나도···.”


중얼거리며 침을 뚝뚝 흘리는 세문두크는 무아에 빠졌다. 세상 모든 것을 등지고 당장의 난도질만을 탐닉했다.


그러나 악마는 무자비한 난자에도 불구 별달리 타격을 입는 것 같지 않았다. 회이던을 내려칠 기세로 쳐들린 방망이가 다소 주춤거리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주의가 회이던이 아닌 세문두크에게 옮겨갔음을 의미할 뿐이다.


앙상하고 기다란 손가락이 안개를 헤쳤다. 빠를 것도 없이 부드러웠다. 소리도 없었다. 다른 세상을 유영하는 것처럼, 비교적 작은 몸으로 열심히 격동을 사는 세문두크를 감싸 쥐려 했다.


“세문두크!”


회이던은 바로 옆에 있는 시체더미를 향해 달렸다. 죽은 마법사의 고깔과 같이 그린 듯한 원뿔 형태는 흐트러졌으나, 어쨌든 건물 정도의 높이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삐죽빼죽 튀어나온 팔이나 다리는 바싹 마른 감촉이었다. 덜 단단한 나뭇가지와 다를 것이 없는 재질이 되었다. 회이던은 퇴색한 그 하나하나를 부여잡으며 시체 산의 정상을 향해 기어 올랐다.


“네 영혼이, 고통을 느끼기를! 육신 바깥에도 고통의 영역이 있기를! 마우리아의 고통을 네놈도···!”


손가락은 세문두크의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럼에도 사냥꾼은 굴종하지 않으며 제 할 일에만 신경을 기울였다.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인지, 최소한의 회피 동작조차 없다. 눈길 돌리는 것도 없으며 오로지 난도질에만 치중할 뿐이었다.


도끼질이 마냥 성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덩굴 엮은 것 같은 피부가 갈라지고 터지며 그 안쪽이 드러났다.


하지만 보라색 속살 안에는 두 팔을 잇는 기다란 쇄골뼈가 보일 뿐, 뇌 같은 기관은 거기 없었다. 세문두크는 낙심한 기색도 없이 한 번 더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앙상한 일곱 손가락이 그를 부드럽게 거머쥐었다.


“무슨··· 놔라! 놔라아!”


놓을 리 없다.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세문두크는 거머쥔 손아귀에 실려, 어느덧 악마의 가슴팍 아래 정도 높이였다.


그는 천천히 쥐어짜이기 시작했다. 일곱 개 손가락과 드넓은 손바닥 사이의 거리가 차츰차츰 좁아졌다. 세문두크의 몸은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흘렸다.


“끄으으으으윽!”


악마는 그 오밀조밀한 손장난을 통해 재미를 느끼지 않았다. 얼굴 없기에 열락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러니 얼굴 없는 악, 관성이다. 이처럼 가끔은 자각 없이 악을 행하며, 행하기에 단연 악 자체인 존재들이 있다···.


그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뼈 문드러지는 소리와 귀를 찢는 비명 사이에 끼어들었다. 화살 한 자루가 악마의 쇄골 부근, 세문두크가 정성을 다해 두들기고 찢어 드러나고 만 상처 부위에 닿았다.


“호이이이이이이이이인.”


광장 전체가 쩌렁쩌렁한 악마의 포효에 휩쓸렸다. 화살 쏘아 보낸 카에키는 어느덧 건물 바깥으로, 안개마저 몰아내는 포효의 풍압을 견디며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거머쥔 손아귀에 힘이 풀리며, 전신의 뼈가 망가진 세문두크는 그 높디높은 위치에서 나풀거렸다. 고기 떡 위에 부딪히자 힘없이 나동그라질 뿐, 그 뒤에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카에키는 곧장 화살을 하나 더 쏘아 날렸다. 잘 쳐줘야 성가신 수준에 지나지 않을 조그만 화살은 악마의 영혼에 적중하여 구멍을 뚫었다.


결국 저주받은 존재는 생각이란 것에 사로잡힌다. 저 조그만 생물은 죽어야만 한다, 영혼에 새겨진 상처가 그렇게 부르짖었다.


카에키는 뒷걸음질 쳤다. 이제 와서 달린다 한들, 저 기다란 다리는 몇 걸음만에 카에키가 숨찰 때까지 달린 거리를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다···.


그때였다. 악마의 존재하지 않는 얼굴 왼편에서 짐승이 그르렁댔다.


“그르르···.”


쇠줄 잡아끌어 당겨지며 전기톱이 재차 깨어났다. 회이던은 으르렁거리며 전기톱의 배기음, 구름 속에 맺힌 천둥의 소리를 흉내 냈다.


“전기톱, 주의 끌 만한 큰 소리 좀. 점수 차감에 대해선 생략하고, 뭐라도 한 소절 뽑아.”


“알겠습니다! 당국의 영광을 품은 음악이 구비되어 있지요! 당국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밝은 아침을 찬미하는 음악이랍니다!”


“뭐? 아니, 그런 것 말고 듣기 거슬리는 걸···.”


전기톱은 회이던의 마지막 말은 무시한 채 지지직거리는 잡음을 뱉었다. 그것도 잠시, 모두의 정신을 활짝 깨울 만한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내뿜어졌다.


기교 없이 날카로운 음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음색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단어에 대한 모욕 수준이다. 듣기만 해도 격렬한 짜증이 솟구치는 연주였다.


“아, 듣기 거슬리는군.”


“그런 종류의 발언은 위험한 소지가 다분···!”


“닥쳐. 쉿, 조용.”


그렇게 두 존재의 눈높이가 얼추 맞춰졌다.


시쳇더미의 정상을 밟고 선, 양손에 전기톱을 든 볼품없는 남자와 그보다 몇 배는 커다란 괴물이 서로를 마주했다.


감도는 안개는 격동을 반기는 듯 넘실거리며 정오 부근의 차가운 공기에 부응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텅 빈 중간 지점은 짜증 나는 나팔 소리가 메워 놓았다.


표정과 시선 없는 악마는 회이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영혼에 새겨진 상처 못지않게 짜증 나는 것은 바로 저 거슬리는 연주였다.


“네놈 안쪽의 충동을 무시하지 마···.”


적개를 한껏 담은 중얼거림에 방망이 휘둘림이 화답했다. 궤도가 가리키는 것은 시쳇더미의 정상, 회이던이다.


그는 선 자리에서 도약을 위해 발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 발재간에 밀려난 시체 몇 구가 능선을 우둘투둘하게 구르더니 안개 아래로 사라졌다.


이내 몽둥이의 타격이 시쳇더미의 정상을 휩쓸었다. 죽은 육신들이 투석기에 실려 있던 돌덩이처럼 제각각의 높이로 포물선을 그렸다. 건물의 석벽, 혹은 그보다 더 멀리 있는 광장 너머까지 날아갔다.


그러나 낮게 도약하였던 회이던은 그 무리에 포함되지 않았다. 세문두크가 그러하였던 회전 없는 톱날을 나무 몽둥이에 깊숙하게 박아놓고, 두 다리로 버티며 선 자리가 휘둘리는 압력을 버티는 것이었다.


궤적은 말미에 달했다. 몸에 가해지는 압력도 덜해졌다. 그 즉시 톱날을 떼어낸 회이던은 바싹 마른 나무 표면 위를 달렸다.


악마의 손아귀를 밟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를 박차고 뛰어넘은 그는 날파리를 쫓아내듯 아무렇게나 휘둘리는 기다란 팔 어느 부분에 전기톱을 꽂았다.


그때 멀리서 화살이 한 대 더 날아왔다. 그 고통이 악마로 하여금 울부짖게 했다. 미친 나팔 소리, 전기톱 덜덜거리는 배기음 소리와 악마 울부짖는 소리에 유일하게 섞이지 않은 것은 톱날 돌아가는 소리.


아직도 회전은 그 위에 머무르지 않았다.


“세문두크 막토르 쿠엔하스, 아직도 이름 전체가 기억나는 사냥꾼과 한때 아름다웠을지도 모르는 그의 고향을 위해, 개자식아 죽어라···.”


악마의 주의가 쇄골 어느 즈음에 꽂힌 냉기의 고통에 흐트러졌다. 그러는 사이 회이던은 질주를 재개하였다. 세문두크가 그리 집요하게 파고들던 자국까지 단번에 도약했다.


뇌는 그 위치에 도사리고 있지 않다. 하나 위치를 짐작할 수 없다 하여도 좋은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가까스로 양어깨 사이에 닿아 하반신을 미끄러뜨린 회이던은 그대로 악마의 등 뒤쪽으로 넘어가 낙하를 시작하였다. 전기톱 레버에 손가락이 올라갔다.


흩뿌리는 트럼펫 음악과 더불어 갈아대는 회전의 음성이 악마의 척추뼈를 그리는 선을 타며 낙하의 속력을 한껏 늦추었다. 중간중간 뼈의 단단한 마디가 덜걱거리며 걸리더라도,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척수가 뒤엉키고 잘리며 문드러지면, 악마의 전신을 유지하는 체계 역시 엉망진장이 되었다. 회이던이 악마의 둔부 부근에서 전기톱을 빼내어 둔탁하게 착지하였을 때쯤, 그 체계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악마는 뒤로 갸우뚱하더니 몸을 바로 세우지 못하며 쓰러졌다. 하필이면 그 거구가 몸 뉘는 자리에 위치해 있던 건물도 폭삭 주저앉았다.


“대략이나마··· 끄으읕.”


악마는 죽은 건 아니었다. 숨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그것은 위협이 될 수도 없다.


회이던은 전기톱을 도로 입자 형태로 흩어 놓았다. 가까운 곳에 세문두크가 보였다. 고기 떡 위에 덩그러니 추락하여, 으스러진 온몸을 움직일 여력 없는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허윽··· 끅···. 꺼어억···.”


눈물방울은 고기 떡의 어느 한 부분에 떨어져 내렸다. 퇴적물로서 오랫동안 존재하여 인간의 형상은 자취로만 읽을 수 있는 그곳, 하룻밤 새 익숙해졌던 두 얼굴이 붙어 있었다.


크바플로드와 초스토하임의 납작해진 생김새였다.


“허윽···. 헉···.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세문두크.”


목멘 입에서 꺽꺽대는 소리를 내는 세문두크는 비참한 낯으로 회이던을 올려다보았다. 내려다보는 회이던의 얼굴은 여전히 연민도 무엇도 없는 무표정이었다.


회이던에겐 두 가지 길이 남았다. 하나는 죽어가는 이의 손을 붙잡고 임종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문두크, 당신은 메아리입니다.”


회이던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의식하고 그런 것은 아녔다. 생리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한 번 깜빡였을 뿐이다.


그렇게 눈 깜빡인 새, 발치에 처참한 모습으로 늘어져 있던 세문두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찬 공기와 몇 방울의 눈물 자국뿐이었다.


“이제 당신의 이름을 잊을 테니, 당신께서도 부디···.”


카에키가 먼발치에서 급히 회이던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홀로 선 회이던을 바라보며 세문두크는 어디 있느냐고 몸짓을 통해 물었다.


회이던은 고개 들어 그녀 얼굴을 바라보았다.


길게 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세문두크, 마칼룬, 초스토하임, 키헨나, 바이탄, 크바플로드, 그들 모두 번성하였던 옛 마우리아에 정착한 전사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과거에 새겨진 역사에 따라, 마우리아에는 악마들의 대대적인 침공이 가해졌을 것이다.


성벽은 결국 뚫렸을 것이고, 암회색의 벽돌들이 폭포수처럼 움푹 팬 곳으로 쏟아져 내렸을 것이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학살당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섯 전사들은 마지막까지 결사의 항전을 벌이다, 결국 나머지 모든 사람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육신은 얼어붙은 지옥불의 도시, 여기 안개 속에 남았다. 누군가는 기반에 깔려 고기 떡이 되었고, 누군가는 방금 빗발친 인체 유성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영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죽었으니 더는 없다.


다만 원념이 남았다. 원념은 마우리아가 속한 땅 어딘가에 남아 그들 넋의 주인을 흉내 냈다.


도시 하나 분량의 원념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 그들 원래 주인은 진흙밭이 아닌 마룻바닥이라는 선택지도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다채로운 방향성은 찌그러지고 압축되어 납작해져선, 유쾌한 악마 사냥이라는 언제까지고 지속될 숙명에 사로잡히고 만다.


메아리는 갈수록 희미해진다. 그들 역시 메아리와 같이 희미해져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운명이지만, 도시 하나 분량의 원념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


수도 없이 반복된 지난 나날을 기억하지 못하며 언제까지고 유쾌한 악마 사냥을 이어 나갈 것이다.


눈치챈 것은 지난밤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 아직 포도주의 취기가 남아 있었으며 즐거웠던 여운이 어쩐지 아릿한 그들의 과거에 속하려 하는 때.


안개가 올라가는 언덕을 바라보지만 그 너머는 바라보지 못하는 세문두크의 눈빛 속에서.


이렇게 길게 풀어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이던은 한 마디만 남겼다.


“···그들은 메아리였거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기톱 소드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32 24.09.04 9 1 21쪽
31 31 24.09.03 11 0 17쪽
30 30 24.09.02 13 0 17쪽
» 29 24.09.01 14 0 26쪽
28 28 24.08.31 10 0 16쪽
27 27 24.08.30 14 0 19쪽
26 26 24.08.29 12 0 16쪽
25 25 24.08.28 16 0 21쪽
24 24 24.08.27 11 0 22쪽
23 23 24.08.26 15 1 27쪽
22 22 24.08.25 49 0 19쪽
21 21 24.08.24 18 0 23쪽
20 20 24.08.23 16 0 18쪽
19 19 24.08.22 17 0 22쪽
18 18 24.08.21 16 0 22쪽
17 17 24.08.20 19 0 26쪽
16 16 24.08.19 19 1 21쪽
15 15 24.08.18 22 1 28쪽
14 14 24.08.17 21 1 17쪽
13 13 24.08.16 20 0 19쪽
12 12 24.08.15 18 0 18쪽
11 11 24.08.14 18 0 18쪽
10 10 24.08.13 22 0 20쪽
9 9 24.08.12 24 0 23쪽
8 8 24.08.11 30 0 19쪽
7 7 24.08.10 36 0 16쪽
6 6 24.08.09 35 0 26쪽
5 5 24.08.08 35 0 18쪽
4 4 24.08.07 52 0 23쪽
3 3 24.08.06 64 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