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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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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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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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DUMMY

9



“미안하게 되었어요. 이거 아무래도 저로선···.”


“예에. 뭐, 그럴 수 있죠. 미안하긴 뭐가 미안합니까. 당신이 저를 산 거지 제가 당신을 산 게 아닌데.”


“그래도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


“아, 걸릴 게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저희가 돈으로 맺어졌지, 신의로 맺어진 사이가 아닌데.”


아침부터 잔뜩 경직되어 있던 코멜루의 상태는 오두막 앞에 도달하자 거의 신경증에 준하게 되었다.


사냥꾼의 몸에 징벌로서 달라붙은 화염은 완전히 그쳐 사그라들었다. 고운 모래의 입자처럼 쇠꼬챙이 아래로 떨어지는 잿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퍼졌다.


들이마시는 숨마다 꺼진 불의 냄새가 따랐고, 그 냄새가 섞인 공기 속에서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코멜루는 불 꺼진 잔해로부터 무언가를 읽은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광경이다.


그리고 회이던과의 동행은 그 미래의 가능성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된다.


지난밤 검은망토와의 합석에서 시작된 아른한 두려움이 이제야 실존적인 공포로 거듭났다.


나야 문제없지, 그런데 그쪽은? 이런 종류의 화법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별문제 없지 않을까?


그런데 실은 문제가 있다. 시답잖은 까닭으로 불타 죽은 사람을 목도한 뒤에야 지극히 문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코멜루는 이쯤에서 갈라져 홀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선금으로 받은 동전을 조금 돌려 드리죠.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내가 동전 아쉬운 사람은 또 아니거든요.”


“동전 아쉽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미심쩍은 화물을 운반합니까? 먹고 살기 빠듯하니깐 범법을 저지르는 거 아녀요. 여기, 이만큼 돌려드릴 테니 집어넣으쇼.”


회이던은 선금으로 받은 은화 세 닢 가운데 한 닢만 남기고, 나머지는 코멜루의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이러지 않으셔도 괜찮다니깐요. 저 정말 돈이 궁한 사람 아녜요.”


“아, 그러십니까. 저도 어디 산속에 성 한 채 보유하고 있습죠. 되도 않는 소리 말고 그대로 집어넣어요.”


회이던은 마법사로부터 노획한 것들을 성직자들의 짐마차에 옮겨 실었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보면 코멜루는 떠날 채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주의 사항 하나만 전달하겠습니다. 똑똑히 듣고 이행하십쇼. 아시겠죠?”


“뭔가요?”


“어디 가서 나 봤다는 얘기 하면 안 됩니다. 발설은 엄금이요. 알아들으셨습니까?”


“예··· 예에. 저 입 다무는 건 기가 막히게 탁월한 사람이거든요. 입 뻥긋하는 일 없을 거예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엄중한 말투였던지라 코멜루는 덜컥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회이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저 지금 그쪽 위협하는 게 아닌데요. 당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라고. 나와 잠시나마 동행했다는 사실만으로 사지를 잘라 죽이려 들 겁니다. 연좌제란 것은 참으로 기묘하고 좆같거든.”


“아, 그런 거였나요. 이거 감격이 북받쳐 오르네요. 하여튼 염려 붙들어 매셔도 좋아요.”


“좋아. 명심하고 또 명심해요. 이상한 마검 들고 설치는 미친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고 반응하지도 마. 성직자 놈들은 밥 먹고 하는 일이 사람 심문하는 것이라 거짓말을 아주 잘 파악한답니다. 얼굴 움찔거리기만 해도 놈들에겐 아주 좋은 단서가 된다고···.”


그리고 지난밤 전혀 관리가 안 되었던 코멜루의 얼굴 표정에 대한 일장 연설이 펼쳐졌다. 그것은 따로 서술하지 않기로 한다.


말을 마친 회이던은 전방으로 쭉 널따랗게 펼쳐진 크로위프 들판의 끝 지점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의 어두운 부분이 폭삭 내려와 지평선과 맞닿고 있었다.


“여정의 한 부분이나마 함께 한 사이니 행운 정돈 빌어 드리지요. 요 앞은 검은망토들도 가끔 나다니는 길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놈들과 도적 떼 사이의 우열은 가리기 힘든 것이라 생각한다만, 말이 그렇단 거고···.”


“네엡. 감사드립니다. 이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쯤 제 신체는 여럿으로 나뉘어져 어디 꼬챙이에 꿰여 있었겠죠. 덕분에 안전하게 여기까지 도착했습니다···.”


감사의 말을 전하던 코멜루는 회이던과 어깨 너머의 소녀를 힐끔 돌아보았다. 만감이 뒤섞여서 불안정한 표정이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며 작별을 알린 뒤 말과 수레를 이끌고 오두막 앞 피에 젖은 마당을 떠났다.


“내가 한 말 명심하십쇼! 당신 목숨을 위해 그렇게 하라고!”


회이던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을 향해 마지막으로 외쳤다. 그렇게 여자애와 둘만이 남았다.


소녀는 오두막 계단 앞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고개를 푹 파묻은 채 미동 하나 없어, 죽은 것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멈출 기세 없이 흐느끼던 녀석이 지금은 잠잠했다.


‘자,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할까···.’


정말로 뭐라 운을 떼야 할까. 근래는 조의를 표할 만한 일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조의가 오가는 상황을 제작하는 입장이었다.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조의를 표함에 앞서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는 시간부터 가졌다.


빈약한 공감 능력으로 이것저것 지껄이는 것이 입 다물고 가만있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창출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아닐 것 같은데.’


그래서 그냥 입 다물고 있기로 하였다.


“···?”


갑작스러운 음성이 소녀의 무릎을 예고 없이 툭 찔렀다. 파묻어 놓았던 고개가 천천히 들려 올라가며 퉁퉁 부은 눈이 소리 나는 방향을 향했다.


쇠줄 뽑힌 전기톱이 덜덜거리며 회전하면서 내뱉는 소음이었다. 톱날은 쇠꼬챙이의 낮은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매달려 있으면 불편하실 테니깐 말이지. 발을 쭉 뻗을 수 있게 좋은 곳에다 매장해 드리자고.”


여기저기가 불꽃 색깔로 짙게 녹슨 금속 덩이에 톱날이 닿았다.


조용한 들판에 시끄럽게 울리는 굉음은 연약한 고막에 너무나 큰 자극이었다. 지평선을 향하던 코멜루도 깜짝 놀라 뒤를 확인하였을 것이다.


절삭은 순식간이었다. 절반가량 깎여나간 쇠꼬챙이는 갸우뚱거리며 기울기 시작했다. 회이던은 적당한 시점에 톱을 거두었다.


꼬챙이는 이내 뚝 소리 내면서 부러졌다. 옆으로 쓰러져 내리는 것을 회이던이 붙잡았다. 그대로 살살 아래로 끌어 내려 살포시 내려놓자 이파리처럼 잿가루가 휘날렸다.


“집에 커다란 식탁보 같은 것 있나? 있으면 하나 가져오려무나.”


소녀의 슬픈 눈동자 안쪽에 어떤 언어 같은 게 실렸다. 왜 이렇게까지 해 주느냐고 묻는 듯했다.


거기에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담담한 눈길로 시선 맞출 뿐이었다. 여자애는 결국 엉거주춤하며 일어서는데, 다리가 바들거리는 것이 썩 안쓰러웠다.


“여길 떠날 거니깐, 챙기고 싶은 것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죄다 챙겨. 애착이 가는 물건이 몇 정돈 있을 것 아냐. 아버지 매장할 때 함께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도 들고나오고.”


소녀가 오두막 안에 들어가 있는 사이, 회이던은 사냥꾼을 묶어 놓은 쇠사슬을 풀었다. 바싹 탄 시체가 부스러질 수 있어, 섬세한 손놀림으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그것도 다 끝내고서 조금 기다리다 보면 여자애가 문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식탁보에 활과 화살통을 감싸 쥐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것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물건인가?”


계속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이던은 건네받은 식탁보를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사냥꾼의 몸을 올려 조심스레 감쌌다. 천에 싸인 시체는 마차 위에 놓였다.


여자애는 다시 오두막을 향해 비척거리더니 문 앞 계단에 힘없이 앉았다. 회이던은 그 옆으로 다가가 코멜루에게 나눠 받은 빵 한 덩이를 손에 쥐여 주었다.


“먹으려무나.”


둘은 오두막 앞에 앉아 빵 조각을 씹었다. 옆에 앉아 있자니 그러잖아도 서늘한 오후에 으슬으슬한 냉기가 물씬했다.


소녀는 식욕이 없는 듯 깨작거리기만 했다. 회이던은 물주머니의 뚜껑을 열어 목 아래로 넘기면서, 지평선 너머 멀어져 가는 행상인의 수레를 가만 쳐다보았다.


“교단은 성직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길 거다. 사람들을 더 보내겠지.”


여자애는 천천히 고개 돌려 회이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가 되었건,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마.”


“···.”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이 주변 광경을 성에 찰 때까지 바라보며 기억에 깊게 새겨 놓으라고. 훗날 영문 모를 그리움에 사로잡히더라도 곧바로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말이야.”


경험에 의거한 조언이었다.


회이던은 그의 고향, 바닷가의 소도시에 살 적 의미 없는 쌈박질이나 하고 돌아다니며 세월을 낭비하였다.


당연히도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의 아름다움을 눈에 새기려 하지 않았다.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까닭이 영영 사라져, 그곳에 발붙이지 않게 된 이래로 파도의 기억이 차츰 휘발되었다.


이제 와선 그 빛깔, 흰색과 어떤 다른 색깔이 조화롭게 얽힌 그 아름다움이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회이던을 올려다보는 소녀의 시선은 여전히, 목이 메는 슬픔 아래로 의아함을 품고 있었다. 그 의아함에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다만 파도치는 소도시에서 아버지와 둘이서만 살았던 옛 기억이 그의 메마른 감성 속에 새록거리며 떠올랐다.


먹구름의 옅은 부분이 태양 빛을 투과하는 오후였다. 빛내림이 들판의 좁은 부분을 달구려 노력하고 있었다.



***



그렇게 두 시간 정도 흘렀다. 회이던은 감은 눈을 떴다. 마차 위에 잠시 누워만 있는다는 것을, 그만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급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여자애는 어디 가지 않고, 아버지를 감싼 식탁보 앞에 얌전히 걸터앉아 있었다.


“흐아으어음···. 이제 떠나야 한다. 그 뭐야, 마음의 준비는 되었니?”


회이던은 하품이 길게 섞인 불분명한 발음으로 물었다. 소녀는 고개를 두 번 정도 끄덕였다. 끄덕이긴 했다만, 확신은 없어 보였다.


“아버지께서··· 흐어엄, 평소에 좋아하시던 곳이라도 있나? 아니면 뭐 부녀간의 애착이 서린 장소라던가···.”


여자애는 오두막 뒤편의 작은 침엽수림을 가리켰다.


“음···. 저긴 좀 힘들 것 같고.”


살던 곳에 매장하는 것이 보기 좋은 그림이긴 하다. 하지만 두 번째로 파견된 교단 측 인물들이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를 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일단 출발하자. 가다 보면 적당히 괜찮은 곳이 하나 정돈 얻어걸리겠지···.”


마차를 이끄는 데에는 말 두 마리면 족하고도 남았다. 남은 한 마리는 마구를 벗겨내어 들판에 풀어 주었다.


언덕 위를 쓸어 어루만지며 내려온 바람은 들판 위를 군마처럼 질주했다.


마차는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굴러갔다. 소녀는 애수가 서린 눈으로 자신이 나고 자란 토지를 돌아보았다.


성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을 법의 테두리 바깥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법의 테두리 바깥이건만, 생명에 위협 될 만한 요인은 법의 테두리 안쪽보다 현저히 적었다.


들판의 지하를 지배하는 것은 나무와 갈대의 뿌리들이다. 하지만 도시 군락의 지하를 지배하는 것은 불타 죽은 잿가루와 타다 만 뼛조각들이다.


묫자리조차 할당받지 못해 구덩이에 일괄적으로 부어지는 그것들은 이승보다 저승에 훨씬 더 가까운 땅 아래서마저 교단의 칙령을 설파한다.


회이던은 그 이치가 참으로 지긋지긋했다. 어쩌면 야인이 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추기경을 벤 것은 우발적인 사건이었지만, 우발에 의한 행동이라 해도 평소 정신머리의 영향 바깥에 있진 않을 테니···.


최소한 야인이 된 이후로는 생각이란 것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배가 고프면 작은 들짐승을 사냥해 잡아먹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길가의 아무 풀이나 뜯어 먹었다.


지옥문 열린 게 보이면 안에 쳐들어가 한바탕 대난장의 축제를 벌이고, 쫓아오는 사람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그 즉시 줘 패서 가르침을 주입하고···.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행위가 척수반사에 의해 행해졌다. 지성이랄 게 없는 미생물과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란 걸 해야 한다. 꼬맹이를 언제까지고 달고 다닐 순 없다. 빨리 떼어 놓을수록 더 좋다.


한시바삐 어깨에 짊어진 책임을 내려놓아야만 소박한 내면이 재차 평온함에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친척이라도 있니?”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법도 했다. 요즈음의 세태에서 도시를 떠나 벽지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가지 유형에 국한한다.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은?”


여자애는 고개를 젓는 대신, 조막만 한 손가락으로 식탁보에 싸인 시체를 가리켰다. 덩달아 회이던의 마음도 침울해졌다. 어째선지 호로새끼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소녀의 손가락이 허공을 휘저으며 다른 곳을 또 가리켰다. 회이던이었다.


“나? 왜지?”


당연히 구체적인 대답을 바랄 순 없었다. 하지만 사람 눈빛이란 게 가끔은 장황한 말 스무 마디보다 더한 진정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회이던을 경계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진 않았다.


살육을 할 때 가끔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정신이상자스러운 면모와는 상관없이, 낯선 이에 불과한 그녀 자신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해 준다는 점에서 신뢰를 느끼는 것일까 싶다.


하지만 딱히 선을 실천하여 뿌듯하다는 감상은 들지 않았다. 외려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에 앉아 있자니 심경이 여러모로 복잡해지거나 했다···.


마차는 해가 지는 방향을 함께 뉘엿거리며 굴러갔다. 융기한 지형이 나타나며 바닥이 들쑥날쑥해졌다. 매캐한 구름들은 분홍빛으로 물들었으며 그 아래의 대기 역시 황혼에 녹아 비슷한 색채를 품었다.


지형이 양분되어 갈라졌다. 절벽을 양옆에 놓은 커다란 다리가 멀찍이서 보였다. 둥글게 쌓은 탑과 같이 드높고 두꺼운 기둥이 까마득한 아래를 지탱하고 있었다.


바로 그 다리가 내다보이는 곳, 깎아지르듯 날카롭게 치솟은 절벽의 홀로 동떨어진 능각에 마차가 정차했다.


뒤로는 자작나무가 물씬하게 서 있었다. 짐승이 긁어 부르튼 것 같은 무늬가 나무껍질에 만연했다.


세상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탁 트인 세상을 전부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였다.


“여기가 적당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여자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라.”


회이던은 전기톱을 너끈하게 들었다. 삽 대신이었다. 사람 살갗도 잘 굴착하는데 지반이라고 다를까 하는 안일한 정신머리나 품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 전기톱.”


“당국에 충성을 다하는 귀하에게 머더소우 모델 47이 언제나 함께합니다! 보건처에서 정신 교정은 받으셨나요?”


“닥치고, 굴착도 혹시 가능한가?”


“적성 생명체의 몸을 굴착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됐다.”


회이던은 덜덜 떠는 전기톱을 흙바닥에 가져다 댔다. 무참하게 휘저어지는 흙은 회이던의 옷에, 입에, 눈구멍에 마구잡이로 튀는 등 재미있고 가증스러운 재간을 부렸다.


굴착은 어렵잖게 끝났다. 회이던은 얼굴에 땀 대신 맺힌 흙가루를 거칠게 털어내었다.


수레 쪽을 돌아보면 소녀가 천을 들쳐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은 한기를 뿜었고, 그럼에도 따뜻한 온기를 품었다. 정신적 측면에서 말이다.


시신은 새까맣게 타버려 원래의 낯을 흔적조차 읽을 수 없다. 그럼에도 아버지였다. 소녀는 위태롭게 굳어버린 손을 부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되뇌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말은 하지 못하여도 눈은 감을 수 있으니.


회이던은 아무 말 않으며 그 제례 같은 장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감성에 젖을 틈일랑 없었다. 전기톱이 갑자기 뭐라 지껄이며 고요를 깨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소녀는 회이던의 시선을 뒤늦게야 눈치챘다. 허둥지둥하며 천을 다시 감싸기에, 회이던은 자길 신경 쓰지 말라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서두를 필요 없어. 나야 원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 있으니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슬픔에 젖은 그 눈동자는 수렁처럼 혼탁했다. 원이 풀릴 리 없는데, 비탄은 더 불어날 것만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회이던은 사냥꾼의 시신을 파 놓은 구덩이 안에 안치했다. 소녀는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 가슴팍에다 활과 화살통을 얹었다.


회이던은 그러는 그녀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못내 신경 쓰였는지 소녀도 시선을 맞추었다.


“아버지께선 화살 한 자루만 원하실 거다.”


어째서냐는 눈빛이다.


“실제로 그러신지는 알 수 없지. 그런데 나라면 그럴 것 같아. 딸이 이 험준한 세계에서 스스로를 호신할 수 있는 수단 정돈 갖추길 바랄 것 같은데.”


회이던은 활과 화살통을 다시 건져낸 뒤, 한 자루만을 덜어냈다. 화살은 시신을 감싼 천 위에 한 떨기 꽃처럼 얹혔다.


지는 해의 조화로운 햇빛에 얽혀 은빛으로 광을 내는 꽃이었다.


건져낸 활과 화살통은 소녀의 품에 다시 건네었다.


“분명 그러실 거야.”


소녀는 불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바람이 강하게 불어 자작나무에 매달린 가지들이 흔들렸다. 고개 끄덕이는 것처럼도 보였다.


회이던은 톱날을 이용해 흙을 퍼 올렸다. 퍼 올린 흙은 구덩이 위에 다시 덮었다. 그렇게 자그마한 봉분으로 완수되었다.


절벽 너머의 땅 건너, 가라앉는 해가 묘비를 대신하듯 그 위에 걸쳤다.



***



황혼이 흘러 나타난 밤, 그 밤이 흘러 새벽녘이 밝았다.


이제는 사람 남지 않은 사냥꾼의 오두막, 횃불을 든 두 명의 전투 성직자가 잔여한 어둠을 내몰며 주변을 살폈다.


기사와 성직자였던 것들이 불경하게 절단한 쇠꼬챙이 아래 잘게 모여 있었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반적으로 신성모독의 극치를 달리는 현장이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탈을 뒤집어썼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껍데기만 인간일 뿐, 그 속은 악마입니다.”


성직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얼굴이었다.


잔혹하리만치 행해진 도살 자체에 끔찍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잔혹하리만치 행해진 도살이 성직자들을 향하였기에 끔찍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죄인과 죄인의 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군. 그들이 뭔가 주술을 부린 것일까?”


“잘 모르겠군요. 상처의 단면을 보면 인간의 행위는 아닙니다. 필히 악마를 불러내었거나, 혹은 그들 자신이 가면을 벗고 악마로서 화한 것이겠죠.”


“횃불의 가호가 있기를, 이 용감한 이들에게 횃불의 빛이 비치기를···.”


그때 작달막한 침엽수림 안쪽에서 사람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두 성직자는 급히 등 돌려 횃불과 철퇴를 소리의 근원지에다 겨누었다.


“웬 놈이냐. 정체를 드러내라!”


“진정들 하십시오.”


늙었으나 힘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옅은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회 기사, 그리고 그의 시종으로 보이는 늙은이였다.


“무기를 거두십시오. 추기경의 등대이자 횃불의 사도이신 마테오크 윌딤 공이십니다···.”


숲에서 나타난 기사의 갑주에는 붉은색의 부조가 튀어나와 있었다.


보통의 교회 기사들이 사용하는 갑주에는 붉은색을 새기지 못하게 되어 있다. 붉은 부조는 악에 대항하는 성전의 최전선, 횃불의 사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였다.


성직자들은 그 즉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몹시 당황하였던 기색은 단숨에 사라져 버리고, 깍듯한 경의가 대신 자리 잡았다.


“저희 비천한 횃불의 형제들이 존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마테오크 윌딤은 겸양을 부리지 않았다. 향해 오는 격식을 굳이 물리지 않았다.


그의 시종과 마찬가지로 건조한 얼굴을 하고는, 이런 의례가 지면 위에 머무르는 공기와 같이 당연하다는 듯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리도 드높으신 덕인지 좀처럼 입을 열지도 않았다. 늙은 시종이 그의 입을 대신하여 말을 전달할 뿐이었다.


시종은 긴 삶을 살아온 듯 보였다. 그의 얼굴에 껴 있는 주름과 수염이 살아온 길쭉한 세월을 대변했다.


하지만 강건해 보이는 외모와 체구는, 오히려 늙은 육신이기에 더 역력했다. 횃불의 사도가 거느린 시종이기에 단연 그러했다.


“형제들께선 이 외진 황야에 어쩐 일이십니까?”


성직자들은 사냥꾼이 살던 오두막을 가리켰다.


“이 오두막에 은거하던 사냥꾼과 그의 자식은 선을 멀리하며 악을 숭상하는 대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들의 죄를 불사르고자 다오르빅 공께서 용맹하게 출정하셨지만, 어째선지 시간이 지나도 귀환하지 않으셨죠.”


“죄인의 처단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군요.”


늙은 시종은 잘린 쇠꼬챙이 아래의 신체 파편들을 힐끔 바라보며 읊었다. 성직자들은 면목이 없단 듯 고개를 낮추었다.


“잔부스의 추기경께서 살해당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으셨겠지요?”


“멀리 있는 저희에게도 소식이 닿았습니다. 부디 존귀하신 분의 영혼이 횃불에 보탬이 되기를.”


시종은 살해당한 이들의 시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허리를 낮추어 살갗을 패고 가른 상흔을 확인하니, 지금껏 숱하게 봐 온 낯섦이었다.


살갗을 가르고 파헤친 흔적, 그것은 추기경 살해와 그 외 기타 중범죄를 저지른 이가 도망친 길에 남은 수많은 시체들의 것과 같았다.


시종은 고개 돌려 자신의 주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윌딤 공께선 추기경의 살해자이자 신성 모독자, 그리고 악마를 공공연히 숭배하며 수많은 기사를 죽음으로 내몬 대역 죄인을 쫓고 계십니다. 마검의 사악한 기운에 취한 자이기도 하지요.”


“들어 보았습니다. 회이던 섬칼리고드라고···.”


“여기 잔악하게 살해당한 형제님들의 주검에도 마검의 자국이 남아 있군요···. 섬칼리고드가 악마 숭배자들을 규합하려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다, 주인님?”


마테오크 윌딤은 대답이 없었다. 여전히 멸시 어린 눈으로 오두막이 바라보는 방향, 회이던이 떠난 쪽을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해가 떠오르는 반대편, 아직 못다 간 어둠이 빛에 저항하는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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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24.08.22 16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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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24.08.17 21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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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24.08.08 34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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