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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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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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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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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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DUMMY

8



보통은 ‘긴장을 늦추지 마라’거나 ‘얕보지 마라’거나 ‘머뭇거릴 틈이 없다’ 같은 말이 나와야 한다.


“저놈은 마법을 다루는 법도 모르는 미숙아에 불과하다! 이 자리에서 섬멸하여 횃불께 봉사하자!”


“횃불이시여!”


“우리의 등 뒤를 영광되게 비추는 횃불이시여!”


맹목이 저들 눈을 가리는 것일까. 몸이 반으로, 혹은 그 이상으로 갈라져 죽은 형제자매의 사체들을 손수 수습해 왔을 것이다.


그 불가해한 목숨 앗아감의 현장을 목도해 왔을 텐데도 저렇게 자신만만하다.


회이던은 그것을 광기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언제나 기묘한 호승심에 들끓어 있다. 그게 막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호승심 넘치는 교인들 상대로는 시종일관 자극적인 전투가 보장되었다. 그럴수록 웃음도 많아진다. 많이 웃으니 건강도 좋아진다. 그나마 좋은 점이라 할 만하다.


그밖에는 없다. 회이던은 맹목에 눈 가려진 사람들 볼 때마다 괜히 분노만 치솟았다. 도리어 정신 건강의 악화를 염려해야 할 지경이었다.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어요. 어쩜 내뱉는 말 하나하나마다 대가리 쪼개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까···.”


“미숙한 놈, 닥치지 못할까!”


“미천한 저의 말을 매번 받아 주시는 것까지도 대가리 파괴에 대한 갈망을 샘솟게 하는구먼요.”


전기톱의 기존 톱니들은 안쪽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 자리를 대신할 톱니들이 틈새로 빠져나왔다.


조금 이질적인 모양새였다. 날카롭기보단 뭉툭했으며, 톱날 회전 방향의 역으로 굽어 있는 형태였다.


전기톱 본연의 쓰임새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절단하는 것이다. 톱날 회전에 사람 살갗 갈려 나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성과이다.


하지만 새로 돋아난 톱니들은 사람 살갗을 굴착하는 것만을 목적 삼은 듯 보였다. 그리하여 멀리 있는 죽음, 오래도록 가까이 있는 고통이 완성된다.


참으로 비윤리적이다. 진취적인 사고가 진취 달성에 부적격한 물건 제작을 맡으면 이런 결과물도 나오고 그런다.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 기능은 원하시는 시간만큼 지속됩니다! 당국을 위해 고결한 살육을 행하며 지불한 점수만큼 충당하시길 바랍니다!”


“오냐. 저기 저분들께선 고결하고 거룩한 살육이 있다고 주장하시는데, 그럼 나라고 못할 게 뭐냐.”


“그럴 일 없을 거다···!”


“아니, 그럴 일 있어. 너희가 너무 멍청해서 착각하고 있는 거란다.”


성직자들은 분개하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제대로 된 몸가짐으로부터 그들의 벼려진 정도를 유추할 수 있었다. 경험 많은 자들이다.


전투 성직자들은 일반인 기준으로는 그 모두가 살육 기계와도 같았다.


그들은 오로지 살인만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감내하며, 심지어 그것을 성결한 목적의 고행으로 여겼다.


훈련이 모질면 모질수록 감사하는 마음도 커졌다. 당장의 고통이 훗날 신실함의 발로가 되리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때문에 회이던은 전투 성직자들을 일컬어 역겨운 놈들이라 즐겨 불렀다.


그런가 하면 교회 기사는 그들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 성전에 앞장서는 정예들로 규격 외의 존재들이다.


그만큼 이명도 다양하다. 횃불을 지피는 사람, 악을 정화하는 눈부신 화염, 거룩함을 전파하는 자···.


회이던은 인간 요리사라고 부르는 것을 더 선호했다.


“오오, 횃불이시여!”


기사가 대검의 끝을 하늘로 분명하게 향했다. 번개를 연상케 하는 한순간의 섬광이 번쩍거리며 대검의 끝에 닿았다.


섬광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검의 끝에 따끔거리는 빛의 뭉치로 머무르며 환하게 발했다.


“하아아압!”


“지랄하네.”


“받아라!”


대검이 아래를 향해 휘둘렸다. 빛뭉치는 다시 번쩍거리는 섬광이 되어, 반응하기 힘든 속력으로 회이던을 향해 뻗어 나아갔다.


할퀴어진 지면의 갈라진 틈새로 불붙은 흙이 사방에 튀었다.


“싫다.”


회이던은 측면으로 공중제비를 돌듯 두 다리를 땅으로부터 떨쳤다. 지면을 가르는 궤적이 간발의 차로 회이던 원래 있던 위치를 꿰뚫었다.


“예상대로다! 저능한 놈!”


회심을 기울인 공격을 무료하게 허비해 놓고선, 무안함을 애써 감추려는 듯 당당하게 외치는 저 목소리가 굉장히 열받았다.


그러나 마냥 헛된 일격은 아니었는지, 어느새 날카롭게 타오르는 투창이 회이던 있는 방향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몸 띄워 피하리라는 것을 예측한 듯, 정확한 위치를 노리며 날아왔다.


어디까지 내다본 것일까, 위대하신 그대들께선 저와 달리 몹시 고등하시군요. 회이던의 안구는 빠르게 회전하며 전방의 동태를 살폈다.


곧 배교자의 얼굴을 꿰뚫으며 신성한 승리를 가져다줄 투창 너머로 세 사람이 각자 다른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다.


창 쏘아 보낸 작자는 칼을 들고 있던 성직자였다. 그 옆에 서 있던 철퇴 든 성직자는 회이던이 착지할 위치를 미리 좇으며 자리를 박찬 채였다.


회이던은 체공한 그대로 몸을 뒤틀어 투창을 발로 걷어찼다. 그사이 불붙은 철퇴를 빙빙 돌려대는 성직자와의 거리는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쯤 그 절반으로 줄어들 테고, 몸의 균형을 추스르는 동안 철퇴가 사납게 회이던 대가리를 내려찍을 것이며···.


‘어쩌라고···.’


전기톱 손잡이 레버에 손가락이 올라갔다. 회이던은 애초부터 바닥에 다소곳이 착지해 줄 생각 없었다.


귀를 찢어버리겠다는 양 울리는 쇳소리와 더불어, 회이던은 한쪽 발의 끄트머리가 지면에 닿는 그 즉시 자신을 전방으로 튕겨냈다.


질주하던 성직자의 면전에 순간이동한 것처럼 회이던의 면상이 들이밀렸다. 성직자의 몸 균형은 갑작스레 떠밀리다시피 하여 뒤로 쏠렸다.


“흐어어엇, 이놈이!”


“아래나 봐. 역겨운 놈아.”


성직자는 톱날 돌아가는 소리가 자신의 내부에서 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뭉툭하고 이색적인 톱니 마디마디가 그의 복부를 성실하게 굴착하고 있었다.


내장이 뒤엉켜 곤죽이 되고, 곤죽이 된 채 혼합되고, 혼합된 것들이 바깥으로 튀어 나가고, 가끔씩 목구멍에도 차오르고···.


“커우욱허얽···!”


회이던은 전기톱을 더 들이밀어 성직자를 완전히 고꾸라지게 했다. 바닥에 드러누운 성직자의 구강으로부터 걸쭉한 혈액 기반의 무언가가 울컥거리며 솟았다.


“섬칼리고드!”


칼 든 놈이 역함을 느끼는 표정으로 회이던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잔혹한 광경 때문에 역함을 느끼는 게 아닐 것이다. 감히 성직자의 옥체에 훼손을 가하고 있단 것을 사무칠 정도로 징그러이 여기는 것일 테다.


확실했다. 회이던은 그걸 분간할 수 있었다.


“미친 새낀가?”


실시간으로 사람을 갈아대고 있는 인간이 그런 소리를 입에 담는다.


하여튼 짧은 새에도 그 미묘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 교만이 너무 짜증 나서 머리에 열이 차올랐다.


회이던은 성직자의 복부에서 전기톱을 뽑아 들었다. 놀랍게도 온통 헤집어진 성직자는 그 꼴로도 숨이 붙어 있었다.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 기능은 강제로 생을 연명시키는 약물 성분을 주입합니다! 이는 조금 더 오래도록 고통을 곱씹을 수 있게 한답니다! 당국의 적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전기톱은 별안간 묻지도 않은 유익한 사실을 떠벌렸다. 회이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파헤쳐 놓은 배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뜨끈한 그 안에서 물컹거리는 게 손에 잡혔다. 회이던은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쥐어뜯었다. 손에 들린 그대로 겨냥해 던졌다.


“으하악! 이런 천벌 받을 놈···.”


둘에서 셋 정도가 뒤엉켜 혼재된 내장 조각은 달려오던 성직자의 낯짝에 보기 좋게 적중하였다. 그의 시야가 가려졌다.


성직자는 얼굴에 들러붙은 내장을 떼어내려 했다.


그런데 그럴 시간이 있으면 무작위 방향으로 칼을 난자하든가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최소한 생존 확률이 미미하게나마 상향 조정되었을 거다.


톱날 돌아가는 살벌한 소리는 순식간에 그 앞에 들이닥쳐선···.


‘···?!’


휘둥그레진 성직자의 몸 뒤에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섬광이 일었다. 배때지에 톱날을 콱 쑤셔 박으려던 회이던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었다.


샛노랗게 유리의 빛깔을 발하는 파동이 성직자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다면 회이던 역시 같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잘려 나간 몸통 너머로 불타는 대검을 휘두른 기사의 육중한 모습이 보였다.


“회이던 섬칼리고드으으으!”


“미친 새낀가. 인구 감소폭이 급격해지는 작금의 세태에도 이놈의 정신 나간 인명 경시는 고개 숙일 줄을 모르네.”


“비를루스 형제는 순교한 것이다! 너, 잔악한 악마를 섬멸하기 위함이니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여 기뻐할 것이리라!”


“그런데 얄미운 회이던은 쏙 빼놓고 비를루스 형제만 골라 죽이셨네요! 그럼 순교가 아니라 개죽음인 게지, 멍청한 것아!”


회이던은 비를루스 형제의 시체를 밟아 넘고선 본인을 다오르빅이라 칭한 기사님을 향해 발돋움했다.


다오르빅은 이빨을 꽉 깨물며 대검을 넓게 휘둘렀다. 휘날리는 잔염이 허공에 자국처럼 남으며 화려한 위압을 전달했다. 전달하긴 했는데···.


“검에 불붙이는 건 자기과시냐? 벨 거면 베고, 태울 거면 태우고, 둘 중 하나만 하는 게 체력 안배에 더 좋지 않겠니?”


목소리는 뒤에서 들렸다. 다오르빅의 콧구멍 속 점막에 가죽 그을음 냄새가 슬며시 닿았다.


회이던은 어느새 기사의 등 뒤였다. 대검의 불타는 날을 슬쩍 밟아 뛰어넘은 것이었다.


다오르빅은 격노한 낯빛으로 뒤돌아서며, 그 움직임에 대검 휘두르는 동작까지 녹여냈다.


무기와 무기가 맞물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육중한 검과 흉악한 톱의 날이 단번에 맞닿았다.


“섬칼리고드으으으···!”


“다오 뭐시기이이이···. 너 이름 뭐였지?”


회전의 진동은 검날 위 들러붙은 불길을 을러댔다. 그러자 사납게 불똥이 토해졌다. 대검은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마모되고 있었다.


톱날이 제아무리 뭉툭하다곤 하나, 고속으로 회전을 가해 오면 어찌할 나위가 없다. 외려 비교적 미숙한 전근대의 금속 주조로선 버티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한 것이다.


위에서 누르는 힘을 견디는 입장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 회이던의 표정은 지극히 태연했다. 교착을 오래 끌 생각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몸을 아래로 조금 낮추었고, 이에 대검에 실린 하중은 더 강력해졌다.


의도한 바였다. 회이던은 오른쪽 다리를 휘둘러 기사 다오르빅의 발목에 타격을 가하였다.


“끄윽···!”


단단한 몸의 균형이 기울었다. 회이던은 그 즉시 전기톱을 45도가량 비틀어 톱날의 평탄한 면이 대검과 맞닿도록 조정했다.


“으읏···!”


대검의 육중함은 양날과도 같아, 한번 하중을 실어 놓으면 쉽사리 철회할 수 없단 점이 치명적이다. 톱날이 휘어진 방향을 타며 맥없이 미끄러진 검날은 바닥을 내려찍었다.


회이던은 틈을 타 왼손으로 쇠줄을 길게 뽑아 휘둘렀다. 곡선을 그리며 휘날리는 쇠줄은 다오르빅의 뒤통수를 경유하여 그의 목 전체를 빙 둘렀다.


“무슨··· 카호옥!”


회이던은 왼팔을 어깨 바깥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쇠줄이 다오르빅의 목둘레를 옭아맨 채 강하게 조였다.


목이 졸림과 동시에 갑주와 투구 사이, 그 어딘가의 미세한 틈으로 수렴하며 날카롭게 파고들기까지 하였다.


동시에 여전히 회전하는 톱날이 갑주에 닿았다. 절삭력이 덜할지언정 전근대에 주조된 미숙한 금속을 어그러뜨리는 것 정돈 거뜬하였다.


무거운 쇠철로 된 갑주가 움푹 들어가고 찌그러지며 다오르빅의 흉부에 강한 압박을 강하였다. 숨 쉬는 것도 버거울 것이다.


“크으으읏···!”


“조금 전부터 신음 말곤 아무것도 입 밖에 내지 못하네. 그 점이 조금 우습군요.”


목을 졸리며 흉부의 압박을 받는 다오르빅은 어떻게든 대검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았다. 회이던의 오른쪽 발이 대검을 밟아 눌러, 바닥에 박힌 그대로 고정해 놓고 있었다.


매캐한 가죽 그을음 냄새가 두 사람 점막에 닿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맹렬히 타오르던 대검의 불꽃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신께 도와 달라고 빌어 봐.”


“크··· 으윽···. 횃불이시여!”


“하하. 미친놈. 하란다고 진짜 하네.”


회이던은 쇠줄을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살갗을 파고든 금속의 곡선 아래로 핏줄기가 부슉 뿜어져 나오더니 갑옷의 안과 바깥을 가리지 않고 스며들었다.


다오르빅은 쇠줄을 풀려고도 해 보고, 회이던에게 두 손을 뻗치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가리지 않았다.


한데 뭔가를 할 거라면 오롯이 하나에만 집중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투구 안, 회이던은 관측할 수 없는 그의 눈알이 서서히 뒤집히는 중이었다.


“으극, 끅, 끄으극···.”


슬슬 풀어도 될까. 10초만 더 기다리자. 그렇게 영원과 같은 26초가 흘렀다. 그제야 회이던은 목 조르던 쇠줄을 거두어 도로 수납하였다.


다오르빅은 그 자리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구멍 뚫린 물주머니처럼 뿜어대는 핏줄기가 흙을 적시거나 했다. 그는 몸을 꿈틀거릴 뿐 달리 움직이지 못했다.


회이던은 그 위에 깔고 앉았다. 갑옷을 고정한 혁대를 풀어 헤쳐 분리하니 넓은 등짝이 훤하게 드러났다. 받쳐 입은 천갑옷의 목깃 부분은 피에 잔뜩 물들어 있었다.


“일어나쇼.”


회전하는 톱날을 노출된 등짝에 살짝 가져다 대었다. 기사는 아주 좋아 죽으려 하면서 마구 날뛰었다.


“으아아악! 크으아아악!”


“저기 불타고 계신 분께서 당최 무슨 죄를 짊어지신 것일까나. 쇠꼬챙이에 묶여 화형까지 이르게 된 타당한 까닭이 너무나 궁금한걸.”


“흐아아악, 흐악, 이 악마 같은 놈!”


“대답.”


톱날을 조금 더 깊숙이 들이밀었다. 사람 신체의 내부 구조를 굴착하는 음정에 맞춰 경쾌한 비명소리가 절묘한 높낮이로 지저귀었다.


약 10초 정도 지속된 사람 목청 한계의 심도 깊은 고찰이 끝나니, 기사는 초주검인 상태로 숨을 헐떡이며 제정신 차리질 못했다.


“허억···. 허억···.”


“대답?”


“저 사냥꾼은··· 배교를 범했다···.”


“이런 시발, 길 가다 똥만 쳐 밟아도 배교를 범했다며 불태워 죽이잖아. 이렇게 두루뭉술한 대답을 하면 나의 따스한 마음이 차가워질 수밖에 없어.”


회이던은 전기톱에 재차 회전을 일으켜 파열된 등 근육 안쪽에 다시 밀어 넣었다.


고통스런 비명이 울리는 동안 막간의 휴식을 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사이에 스낵과 음료 같은 것을 준비해 와도 좋았다···.


“자, 제대로 말할 기회를 베풀어 주마. 사냥꾼의 죄목을 분명하게 읊어 봐.”


“주··· 주일 예배에 불성실했다···. 모습을 비추지조차 않더군···.”


“시발.”


“도회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는 작자가 주일 예배에 참여하지 않는다니··· 이는 필히 은밀한 숲속에서 마주한 악마의 지식에 매료되어, 자신을 팔아넘긴 것으로밖에 해석할 길 없지 않은가···?”


딸내미가 납치되어 정신 차릴 새가 없었을 것이다.


소녀는 어디서 납치되었을까. 말 못 하는 그녀에게 답을 들을 순 없다.


어디에서 납치되었건, 사냥꾼은 그 주변을 해매며 이름을 애타게 불렀을 게다. 그리고 그 너머로도 향하고, 그 너머로도 향한다.


대답 들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름을 외치거나 한다. 언젠가는 답이 돌아올 수도 있다.


혹은 이런 방법도 있다. 교단 측에서 적극 권장하는 방법이다. 세속적인 수단에 너무 의존하지 마세요. 그보다는 교회에 방문해 신께 기도를 올리세요.


따르지 않으면 불태워 죽여버리겠습니다.


“···전기톱?”


“당국에 충성을 다하는 귀하에게 머더소우 모델 47이 언제나 함께합니다! 부르셨나요?”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 기능 해제.”


“당국의 적들에게 연민을 품으신 것입니까? 안타깝군요! 심리 상담과 정신 교정이 필요하다면 당국 보건처에 문의하셔서···.”


“입 닥쳐. 해제.”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 기능이 해제되었습니다! 언제나 당국을 위해 봉사를 아끼지 말아 주세요!”


당초 계획은 신명난 고통을 가하며 분노를 해소하려는 작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째 의욕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전투에 임할 때만 해도 한껏 달아올랐던 육신은 순식간에 하강하며 차갑게 식었다.


톱날의 회전이 교회 기사의 목덜미에 닿았다.


“끼히요오오오올!”


얼굴에 피떡이 튀건만 회이던은 표정에 변화 하나 없다.



***



언덕을 내려가는 뜀박질은 단박이었는데 되짚어 올라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느릿느릿했다.


회이던은 비탈을 오르는 내내 정답 없는 고심을 떠올리며 뇌세포를 혹독하게 조졌다.


제 아버지 시체를 애한테 보여 줘야 하는가?


여자애 상태가 가뜩이나 좋지 못한데, 아예 손 쓸 수 없이 망가져 내리는 결과가 창출될 확률이 높다.


한데 그렇다 해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자신의 어깨에 무거운 책무를 스스로 싣는 셈이 되었다.


회이던은 책임이란 단어를 기피하는 인간이다. 인생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숱한 문제들을 외면하며 편한 길만 택해온 파탄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대뜸 무연고의 아이를 맡자니, 그것은 지극히도 회이던의 역량 바깥이었다.


“오, 오셨네요.”


“옙. 왔습니다.”


코멜루는 식은땀으로 세안을 한 마냥 넋을 빼놓은 낯짝이었다. 사람 둘 죽이고 온 회이던이 그보다 더 침착한 얼굴이다.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언덕 너머까지 닿았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 기사가 부리는 마법이 워낙 요란했던지라 코멜루도 저 아래서 벌어진 전투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여자애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자리에 가만 붙어 있던가요?”


“뛰쳐나가려는 걸 계속 붙잡았어요. 많이 불안해 보이던데요···.”


“잘하셨습니다. 귀 좀 가져다 대십쇼.”


회이던은 오두막 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상하게 풀어 놓았다.


사냥꾼이 괴이한 까닭으로 화형당한 것부터 해서 전투 성직자들과 교회 기사를 살해한 부분까지, 전부 말하는 데 15초 걸렸다.


행상인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도 정확히 그만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 맙소사.”


“정말 맙소사다. 그죠?”


“그럼 아이는 어쩌죠? 아버지가 그렇게 되었는데···.”


이제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비겁하고 짜릿한 도피를 택할 수 없다.


그런 선택지는 봉쇄되었고, 꼼짝 없이 올바른 사회인으로서 책무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일평생 내내 책임의 소지를 피해 도망치는 행각만 반복해 온 회이던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


수레 짐칸의 여자애는 무릎 감싼 채 쪼그려 있었다. 얄상한 몸이 오들거리며 불안함에 떨어댔다. 회이던은 그 옆에 대뜸 걸터앉더니 여자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의 서두를 어떻게 떼는 게 좋을까···.


“네 아버지께선 살해당하셨다.”


여자애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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