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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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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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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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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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DUMMY

27



밤이 떠들썩하다. 평소의 야영지는 회이던과 카에키 뿐, 말 아끼는 사람과 묵언하는 두 사람이 전부라 고요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객원이 자그마치 여섯이나 끼어 있으면 침묵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왁자지껄하다.


“그럼 코멜루 씨, 원래는 뭐 하던 사람이었슴까?”


“사람들 경호하는 일을 좀 했습니다. 어디 지옥문이 열렸다 하면 그쪽으로 파견을 가기도 했고요.”


“그보다 높은 관직이 더 적당한 사람 같은데···. 교단에서 손 내밀지 않았슴까?”


“저도 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상놈 같은 성격이 문턱이었겠죠.”


“하하! 상놈은 우리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하는 거 아니겠나!”


마칼룬, 초스토하임, 바이탄, 크바플로드, 키헨나···. 다섯 사람은 말도 많고 묻는 말도 많았다. 회이던은 그 야생성을 담뿍 담은 경박함이 썩 마음에 들었다.


전투에 뛰어들 때마다 외치는 함성 같은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것은 북부를 호령했던 옛 야만전사들을 흉내 낸 것이라 했다.


전쟁외침이라 하여, 무속적인 풍토가 그 땅의 원류였던 시절에는 그렇게 함성을 내지르는 것이 실제로 주술적인 효과를 발휘했다던가 그랬다. 먼 옛날의 이야기다.


지금은 그저 기분을 끌어올리는 용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무형 문화도 보존하는 겸해서 좋은 게 좋은 것 아닐까.


경건한 교회 기사들과 천박한 검은망토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을 때보단 훨씬 유쾌했다.


“잘 구워졌습니다! 적당히 그릇 들어서 퍼가십쇼!”


마칼룬이 냄비 뚜껑을 걷으며 외쳤다. 뚜껑에다 숲돼지 고기를 깔아 놓고 그 위에 허브와 포도주 솔솔 뿌려서 노릇하게 구운 요리다.


“코멜루. 자네가 제일 많이 먹어. 사냥 성공의 일등 공신이고 우리 가슴도 충만하게 해 줬으니 그럴 자격이 있지.”


“평소에도 음식의 양을 성과제로 배분하십니까?”


간만에 회이던이 직접 차리지 않은 식사였다. 애당초 그가 직접 조리하였다면 깊은 향과 같은 입맛 돋우는 현상이 발생할 수 없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카에키에게 건네는 것은 잡탕뿐이었다. 보잘것없는 잡탕을 들여다볼 때마다 내재된 두려움이 고개 내밀곤 했다.


이마저도 귀찮아져서, 나중 가선 나무껍질 벗겨다 푹 고아서 먹이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꼬마애라 한창 많이 먹어야 할 나이인데···.


“뭘 그리 생각하는 게야? 고기 속에서 세상이라도 보고 있는 겐가?”


“예? 아뇨, 냄새 맡고 있었습니다.”


사냥꾼들은 회이던을 배제한 채 저들끼리 척척 일했다. 바이탄과 키헨나가 숲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왔으며 크바플로드는 어디서 야생 허브 같은 것을 뜯어 왔다.


초스토하임은 가죽을 벗겼고 마칼룬이 먹음직스럽게 조리했다. 회이던은 마차 위에서 발 뻗고 있기만 하면 됐다.


제대로 된 요리를 입에 집어넣는 카에키 얼굴은 좋아 보였다. 평소와 같은 침울한 식사 시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와 같았다.


그러잖아도 우울에 허덕이는 아이에게 미각을 통한 학대를 가하고 있었구나. 나중에 풀 구분하는 법이나 조리법 같은 걸 물어서 받아 적어야 할까 싶었다.


식사를 끝낸 뒤에도 연회 비슷한 분위기는 도통 죽을 줄 몰랐다. 불 지펴놓은 앞에 다들 노곤히 퍼져서 술잔을 기울였다.


빈 포도주 세 병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회이던은 아직 녹지 않은 얼음까지 깨부숴서 대접했다.


“코멜루 형씨, 그··· 뭐냐,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요.”


마칼룬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슬슬 벌게지는 얼굴은 모닥불 앞이라 더 붉어 보였다.


“말만 하십쇼. 대놓고 인격을 모독하는 말만 아니라면야.”


“형씨의 마법을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이번엔 가까이서 말이야.”


“마법···? 아, 마법 말이죠. 안 될 게 있나요.”


거짓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었다. 포도주와 모닥불의 안온한 분위기에 마음까지 녹아내리고 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한껏 풀어져 있다간 스스로가 불러들인 업보에 목 졸리기 마련이다.


회이던은 기꺼이 오른손을 들어 전기톱을 호출했다. 텅 빈 허공에 윤택이 있는 검은색 입자들이 사르르 모이더니 면을 형성하고, 이내 입체가 되었다.


모습을 드러낸 기계의 검은색 매끈한 몸체가 일동에게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가까이서 보니 더 신기하게 생겼구만. 거 참 신기한 모양이란 말이지.”


“대장장이가 이런 걸 단조해 낼 수 있겠어? 신의 작품이야, 신의 작품. 돈 제일 많이 버는 대장장이도 이 정도로 복잡하고 흠결 없는 물건은 못 만들어.”


신의 작품이··· 맞긴 하다. 신 이야기가 나오니 발롬니 공, 혹은 데브루인에 대하여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발롬니 공은 저 구절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예전에는 예술가를 겸한 대장장이들도 있었다. 그때 그 시절엔 복잡하고 흠결 없는 물건들이 절찬리에 단조 되었다.


그러나 교단의 제창 아래, 투박함이란 지향해야 하는 것을 넘어 단 하나의 올바른 기준점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그 어떤 대장장이도 흠결 없는 예술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문명이 퇴보하고 있구나. 이쪽 차원이 보유한 부끄러운 문명의 잔재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문화 전반의 손실이지. 발롬니 공이 대충 뭐 그런 식으로 설교하는 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모양이 마치···.”


또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도 품평은 계속되고 있었다. 초스토하임이 딸꾹질을 하며 동료들의 말을 받았다.


“···마검 같기도 하구만요.”


“야 이 자식아, 대놓고 모욕하는 말은 하지 말라잖아.”


세문두크가 부하의 머리를 가볍게 후렸다. 초스토하임은 무안하게 웃으며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회이던도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정상적인 반응이라 딱히 불쾌하고 그런 것도 없어요.”


“그렇다네요.”


“그렇긴 뭐가 그래.”


초스토하임의 대가리가 한 대 더 후려졌다. 웃음꽃이 피었다. 옆에선 카에키도 거의 나오지 않는 쉰 목소리로 어떻게 수줍은 웃음을 흘렸다.


잠깐, 왜 수줍게 웃는 걸까나. 얼굴은 벌게져 있고 딸꾹질까지 해댄다.


“누가 얘한테 술 먹였나요?”


눈을 멀뚱하게 뜬 크바플로드와 키헨나가 손을 들었다.


“딱 한 모금만 따라 줬슴다···?”


“야 이 자식들아, 묵언 수행 중이라잖아. 술 취해서 수행 깨지면 니네가 책임질 거냐?”


세문두크는 그 둘의 대가리도 한 대씩 후렸다. 카에키는 한 모금이 대수냐는 듯 까르르 웃으며 회이던의 어깨를 밀쳤다.


즐거워 보이면 된 건가. 즐거우면 된 거지. 다들 한바탕 웃고, 회이던도 소리 없이 미소 지으며 한 잔 더 기울였다.


온기란 것은 참 괜찮았다···. 비단 모닥불의 온기만이 아니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내뱉는 입냄새, 혹은 술에 취한 사람들의 뜨끈한 체온. 그런 것들···.



***



밤은 더 깊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천천히 깜빡거렸다.


풀벌레 우는 소리는 별들의 깜빡임과 묘하게 박동이 맞아서, 가만 듣다 보면 하늘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곯아떨어졌다. 회이던과 세문두크 둘만이 풀린 눈으로 얼음 담긴 물을 홀짝였다.


그 차가운 물이 한밤의 으슬거리는 공기 속에서도 잘 넘어갔다. 옆에 서 있으면 절로 으슬거리는 여자애를 데리고 다니기에, 그 감각도 새로 사귄 친구처럼 익숙해지던 참이었다.


“자네 고향은 남단이랬지? 남쪽 어디인가?”


“바닷가 쪽에 있는 소도시입니다. 거기서 어부이신···.”


말을 하다 말았다. 묻지도 않은 것까지 주절거릴 필욘 없다.


당신들은 어디 출신입니까? 그렇게 되물어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래서 좋을 게 없다.


남방, 얼어붙은 지옥불의 도시들. 그 어딘가 출신 아닐까 하는 짐작이 확신에 가까웠다.


호기롭게 외치는 전쟁의 함성 하며, 악마들을 향해 보이는 특출난 증오심 하며···. 북방을 배경으로 한다면 그린 듯한 결론이 도출된다.


침공의 생존자들이 결탁해 악마들을 사냥하고 다닌다. 그런 그림이다. 현재를 즐기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 굳이 과거 끄집어내서 우울을 환기할 필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근방에도 저주받았던 도시가 하나 있던가. 이제는 지도 속에서도 사람 사는 곳이 아닌 우회 요하는 곳으로 표기된 곳이다.


숲 너머로는 높은 언덕만 보였다. 달빛이 텅 빈 언덕을 비추었다. 밤안개가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그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라보던 세문두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일 비가 내리려나 본데.”


“연회 분위기 바로 직후에 찬물이라니, 처량하군요.”


“그래, 북부의 비 내리는 날씨는 참으로 처량하다네.”


건조하게 정보 전하는 목소리가 아녔다.


“어째 술기운이 돌 때에만 들을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크헤헤. 이 친구가···.”


세문두크는 너털거리며 웃는데, 그렇게 웃는 것도 금세 멎었다.


조금 전의 염려는 필요 없는 것이었다. 들뜬 연회 분위기가 소강하면서, 우울은 예기치 못하게 급작스러운 발걸음을 한다.


물을 몇 번 홀짝이는가 싶더니 한층 무거운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여기선 비 머금은 흙에 살얼음이 낀다네. 밟으면 그냥 질척거리는 정도가 아니지. 발목 위까지 움푹 빨려 들어가거든. 늪처럼 말야. 발 빼내는 것도 고역인데, 그 위를 계속 걸어야 하잖나.”


“듣기만 해도 짜증이 치솟습니다, 그려.”


“허허허···. 가끔은 그게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진흙 늪은 운명처럼 느껴지고, 파묻힌 나의 발은 나 자신이야.”


“악마 사냥, 즐기시는 것 아녔습니까?”


“즐기기야 하지. 그런데 나날은 반복되고,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사냥도 끝없이 이어지기만 해···.”


“들녘에서 살아가는 몸 아니신가요. 책임질 것은 적은데 자유를 떨칠 만한 빈틈은 많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지 행하실 수 있을 텐데요.”


“그게··· 잘 모르겠군. 진흙 늪은 쭉 이어져 있어. 발 빼놓을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질 않네. 사냥을 도저히 멈출 수 없어.”


목소리에 우울감은 섞이지 않았다. 그저 건조했다.


“나는 이 운명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모양이야. 지난번 사냥은 어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심지어 이번이 몇 번째 사냥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네.”


실향민의 애환이다.


터전이 파괴된 사람들은 가끔 증오할 대상을 쫓는다. 없으면 만들기라도 한다. 자연재해로 고향이 파괴되었을 때, 분노는 어쩌면 신을 향할지도 모른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성직자들을 사냥하고 다닐 수도 있다. 그건 정상적인 사고 회로가 아니다.


하지만 악마들이라는, 실체 지녀 증오할 수 있는 존재들에 의해 갈 곳을 잡아먹힌 이들은 어떨까. 참을 수 없는 마음에 휩싸이는 것을 정상 범주의 바깥으로 여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갈 곳은 가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바닷가의 소도시는 아름다운 고향이었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그럴 까닭이 없어 한 번도 발걸음한 적이 없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잔부스에 돌아갈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회이던은 굳이 일부러 증오에 몸을 내맡기려 노력하진 않지만, 그럴 상황이 들이닥치면 거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떨까. 일부러 몸을 내맡긴 사람들, 세문두크와 그 휘하의 사냥꾼들이 일견 우스꽝스런 함성을 내지를 때 그 원천이 되는 심정이란···.


“그래서 자네가 부럽기도 해.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어느 하나를 택했지. 그 모든 피범벅을 뒤로 하고 한적한 곳으로 향하는 길 말이야. 나는 자네가 참으로 부럽다네···.”


거짓은 목을 옭아맨다. 회이던은 자신도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노라 말할 수 없었다. 삼킨 말은 목청 속에서 부딪히고 부딪히며 메아리로 울릴 뿐이었다.


밤은 거기서 더 깊어갔다. 어쩌면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잠든 회이던은 무언가 볼을 두드리더라도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



“마칼룬!”


“크바플로드!”


“마칼루우운!”


외치는 소리가 귀를 두들겼다. 회이던은 눈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부슬거리는 비가 피부에 닿는 듯 안 닿는 듯 내렸고, 야영지 중앙의 모닥불은 꺼진 흔적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찰박거리는 진창 위에 서서 대답 돌아오지 않는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기상하셨습니까. 마칼룬과 크바플로드가 보이질 않는구만요. 일어나 보니 둘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요.”


“둘이서 소변보러 간 건 아니구요? 술 많이 마시면 방광도 한계치까지 차오릅니다.”


“자기네들 무기까지 들고 가버렸는데요.”


오줌 싸다 숲돼지 어미 만나면 큰일이니 무기도 들고 갔겠지요. 그런 농을 던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회이던도 누운 풀밭에서 주섬거리며 일어났다.


밤새 내린 이슬비에 흙바닥은 질척했다. 꺼진 모닥불을 가로지르는 발자국이 회이던 누워 있던 자리를 지나 숲 안쪽까지 찍혀 있었다.


“대장님께서 한 번 둘러보시겠다고 저 안쪽까지 들어가셨습니다요. 망할 놈들이 기다리고 기다려도 돌아오질 않으니, 어디 발자국 따라서 쭉 걸어보시겠다고···.”


“일단 짐부터 싸 놓겠습니다. 대장님 기다려 보고, 성과 없으면 그 즉시 마차 끌고 발자국 따라가 보죠.”


“예이입.”


회이던은 야영에 사용한 자재들을 적당히 간추려 수레 뒷칸에 실었다.


그 위에서 침낭 뒤집어쓰고 자던 카에키도 눈 부비며 일어나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이마에 손바닥 가져다 댄 모습이었다.


회이던은 그 옆에 앉아서 세문두크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카에키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당최 뭔 일이냐 묻는 몸짓을 했다.


“잘 모르겠다. 우리 자는 사이에 사냥꾼 둘이 숲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대로 사라졌다는데.”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숲 안쪽에서 세문두크의 모습이 나타났다. 커다란 덩치 옆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냥꾼들이 앉은 자리에서 뛰쳐나가더니 저들 대장을 맞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슴까?”


“안 보인다. 어느 순간 발자국이 뚝 끊겼어. 이 망할 놈들, 대체 뭔 일이래···.”


“그럴 만한 징조는 없었습니까? 아예 무기까지 챙겨 떠날 정도라면 작정한 걸로 보이는데요.”


세문두크는 회이던의 물음에 고갤 저었다.


“마땅히 생각나는 것은 없네. 애초에 우리 모두 부끄럼 없이 속 터놓고 지내는 사이야. 탐탁잖은 기색이 있었다면 감추려 해도 눈에 다 보였을 걸세.”


“뭔 일이 난 게 맞는 것 같구만요. 이거 야단이네···.”


“대장, 일단 발자국 끊긴 곳 뒤로도 쭉 가 봅시다. 숲 빠져나가면 뭐라도 좀 보이지 않겠슴까.”


회이던은 마차 마부석에 올라탔다. 원래라면 아침밥 먹고 깔끔하게 여기까지, 여러분 상당히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앞으로의 사냥에도 횃불이 비추길, 뭐 이런 인사나 할 계획이었다.


굳이 횃불 덧붙이는 것은 하루의 즐거움을 마련해 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고 어쩌구···.


“마차에 타십쇼. 숲 나가는 길까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겠나? 고맙네.”


“뭘요. 바닥이 질척거리지 않나요. 미리 힘 빼놓을 필욘 없으니깐···.”


비가 억수처럼 쏟아진 것은 아녔기에 바닥은 적당하게만 질었다. 아직 날씨가 개지도 않아 얼어붙을 유예도 없었다. 바퀴마저 처박히는 진흙 늪이랄 것은 아녔다.


말 모는 회이던 옆에는 전날처럼 세문두크가 앉았다. 뒷칸은 떠들썩하다. 떠들썩하긴 하다만, 찬물을 끼얹은 듯하다. 오가는 담화는 없으며 대답 돌아오지 않는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만 만연했다.


“숲 너머에 뭐가 있는진 알고 계시나요?”


“뭐가 있지?”


“언덕이 나옵니다.”


“언덕, 언덕이라. 주변이 다 내려다보이겠어. 그나마 다행이군.”


언덕 뒤에 뭐가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은 것일까.


사람들 모두 달의 뒷면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며 또한 두려워했다. 당최 무엇이 있길래 저렇게 가려 놓은채 영영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언덕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숲에 울리는 짧은 고성들은 새들을 퍼덕이며 날게 했을 뿐이다. 노루들도 놀라 달아났다. 그러다 보면 일관되게 앞을 걷던 두 쌍의 발자국은 완전히 끊겼다.


이상한 일이다. 이래선 걷다가 도중에 공중으로 솟구쳐 날아가 버린 모양새다.


말은 숲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조금의 공간밖에 할당받지 못한 들판 너머, 장벽처럼 막막하게 선 언덕이 높게 펼쳐졌다. 그건 숲 초입의 야영지에서도 보일 정도 높이였다.


물길 거스르듯 오르막을 향하던 안개는 아예 하늘까지 닿으려는 심산인지, 허리를 기이하게 꺾은 형상으로 굳어 있었다. 비탈의 경사를 정면으로 돌파할 순 없었다.


다행히 누가 마련한 것인지 혹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절묘하게 형성된 것인지, 대각선으로 길게 뻗은 소박한 오르막이 하나 보였다. 덜컹거리는 마차는 그 길에 진입해 위를 올랐다.


뒷칸의 사냥꾼들은 굳은 얼굴로 절벽 아래를 두리번거렸다. 안개가 껴 있긴 하지만 사방 분간할 정도의 시야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


길 걷는 사람은 보이질 않았을 것이다. 회이던은 고삐 붙잡으며 앞만 바라보는 중이라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마차는 정상에 달했다. 사냥꾼들 입에서 탄식이 빠져나왔다.


“대장, 저건···.”


“아.”


그 주변에만 안개가 벽처럼 겹겹들이 둘러싸여 있다. 그 어딜 둘러보아도 암회색뿐, 균일한 규격의 암회색 벽돌이 빼곡하게 들어찬 건물들은 곡면을 몰라 네모반듯했다.


그러나 성벽은 부서지고 구멍이 뚫렸다. 그 틈새로 침범한 안개 아래에 희멀건한 잿더미가 얼음처럼 굳어 있다.


무너진 탑들은 지붕 없다. 한때는 죽은 마법사들처럼 고깔과 같은 원뿔형 지붕을 지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성을 청소 당한 도시이다. 인간의 자취를 나타내는 것은 모조리 절제 당했다. 도시의 상징을 새긴 깃발, 일부러 가꾼 나무···.


심지어 사람 떠난 폐허를 으레 잠식하기 마련인 덩굴과 덤불 등 식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이 어느 사람들의 터전이었다는 흔적은,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는 암회색 벽돌이나 혹은 그 벽돌들이 부서진 잔재뿐이다.


세문두크와 휘하 사냥꾼들의 입에서 장송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얼어붙은 지옥불의 도시 마우리스, 눈과 마른풀의 경계를 가른 대도시, 그들의 아름답지 못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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