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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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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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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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UMMY

5



“빠아악!”


“아, 진짜. 너무 싫다. 진짜 너무 싫어. 너무 싫어서 나 정말 미치겠어.”


“할당량의 기준선을 충족하셨습니다! 당국이 그대의 봉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기톱을 이용해 적의를 지닌 상대를 살해할 경우 점수가 적립된다. 그것으로 여러 유용한 기능을 해금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방금 전의 적성 생명체 감지 기능 같은 거다. 황송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딱 소소한 정도로만 도움이 되었다.


강도떼와 마법사 전체 합쳐서 정산받은 점수는 약 120점가량이었다.

신께서 부끄러운 문명의 잔재라는 말씀을 하셨던가. 살육에 점수를 매겨 혜택을 준다는 점 감안하면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


회이던은 거부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다. 앞으로도 살면서 여럿 수두룩하게 죽일 텐데, 거기다 대고 혜택을 준다 하니 딱히 거부할 까닭이 없다.


막 황송하진 않고, 그냥 주니깐 받는 정도.


“슬슬 춥네. 춥구만. 추운 곳을 더 춥게 만들고 지랄이야. 남쪽이었으면 당신 좋아해 줄 사람 많았을 텐데 말이지.”


회이던은 마법사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시체는 목 위로 텅 비어 있다. 어쩌다 이렇게 엇나간 어른이 된 것일까. 교단 탓일 것이다.


어떤 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앞뒤 안 보고 교단부터 탓하면 열에 아홉은 들어맞는다.


이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 모든 악덕을 그들 책임으로 전가하면 그만이니 참으로 편안하다.


그게 뭐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교단은 한창 성전이 진행 중인 현재 모두의 정신이 합일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 바, ‘올바른’ 마법을 제외한 모든 학파의 마법을 불법으로 지정하였다.


올바르다 하는 기준이 원래부터 따로 있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교단이 허용하는 마법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불꽃을 다루거나, 혹은 얼핏 보기만 해도 빛이 막 번쩍대면서 신성해 보이거나···.


그 이외의 마법을 구사하는 이들은 죄다 탄압당하였다.


처음으로 학살당한 자들은 물과 얼음을 다루는 마법사들이었다. 물의 속성이란 게 신성한 불꽃을 거스른다는 명목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마법사들이 쇠꼬챙이에 매달린 채 불타 죽었다. 먹구름처럼 인간 태운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종국에는 치유 마법까지 불법으로 지정되었다. 인간의 운명이란 본디 신이 집필한 아래에 놓여 있을진대 그것을 인위적으로 역행하는 것이 불경하다는 논리였다.


미친 세상이 다 되었다. 그렇기에 죽은 마법사가 품었던 분노 자체는 타당했다. 회이던 역시 그 분노만은 이해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 분노가 날 향하진 말았어야지, 멍청한 놈···.”


회이던은 시체를 한 번 걷어차고는 그 뒤편에 나 있는 움막을 향했다. 뭔가 쓸만한 것이 있다면 잽싸게 챙기려는 심산이었다.


입구의 천을 걷어 발을 들이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에워쌌다.


“하하. 이런 미친.”


벽돌 모양으로 반듯이 자른 얼음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진귀한 광경이다.


얼음은 이제 너무나 귀중한 자원이 되었다. 그 까닭은 방금 서술하였으니 굳이 한 번 더 상기할 필요 없을 것이다.


회이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법적인 힘으로 생성된 얼음은 잘 녹지도 않는다.


전기톱으로 깍둑썰어 항아리에 부어 넣고, 안에다 사냥한 고기들을 보관하거나 하면 좋을 것이다.


“이건 또 뭘까나. 이건 또 뭐래.”


탁자에 은화 여러 닢이 놓여 있었다. 회이던은 그것들 모두 쓸어 담아 주머니에 투척했다.


그 옆 바구니에는 녹색깔 병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마개를 뽑아 냄새를 맡아보니 포도주였다.


회이던이 교양이라곤 쥐뿔도 없는 호로 쌍놈이라 하여도 좋은 술과 나쁜 술은 구분할 줄 알았다. 무척이나 좋은 술이었다.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분이셨나 본데. 그런데 뒈져서 못 마시죠.


바구니와 얼음 몇 덩이 챙기고서 움막 빠져나오니 자그만 수레가 하나 널브러진 게 보였다. 그것을 바로세워서 노략한 화물들을 실었다.


그뒤 공터 끝자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오두막도 기웃거렸다.


“여기엔 뭐가 있을까나.”


회이던은 문을 살짝 열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은은한 촛불 조명 덕에 그리 어둡진 않았다. 다만 괴이하게 푸른 빛깔로 일렁이는 촛불의 색깔이 낯설긴 했다.


발을 내뻗으니 얼음이 밟혔다. 바닥에 얼음이 잔뜩 껴서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쩌적거리며 갈라지는 소리가 따랐다.


오두막 안쪽 거의 모든 기물에 얼음과 성에가 꼈고, 천장에는 고드름이 매달린 채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히이이···.”


“뭐야, 누구야.”


벽면 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 돌아보니, 웬 사람 하나가 목에 사슬이 감긴 채 웅크려 앉아 있었다. 사슬은 벽에 연결되어 단단히 묶인 채였다.


“미친, 이렇게 추운 곳에 사람을 방치해 놓다니···.”


회이던은 구속되어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열여섯 남짓 되어 보이는 앳된 여자애였다.


그녀는 한껏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본인 목을 묶은 사슬을 풀려 안간힘이었다. 회이던은 다가가길 멈추며 여자애를 진정시켰다.


“얘, 구해주러 왔다. 나 구해주러 온 사람이야. 나쁜 놈은 죽었으니 두려워 않아도 돼. 지금 바로 풀어 주마···.”


엄밀히 말하자면 구해주러 온 게 아니긴 하다. 값비싼 물건을 더 노획하겠다는 불순한 욕망을 품고 안쪽에 몸 들인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솔직하다고 좋은 건 아니다. 회이던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거짓부렁부터 내밀었다.


그런데 아이에게 자신의 무해함을 납득시키기엔 손에 들린 전기톱부터 걸림돌이었다. 피가 잔뜩 들러붙은 게 교육적으로 심히 좋지 못한 모양새니 그렇다.


회이던은 거기 관해선 구태여 거짓말하려 들지 않았다.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지? 나쁜 놈을 이걸로 처치한 거야. 그러니 나의 정의로운 내면을 믿어 줬으면 좋겠구나···.”


회이던은 소녀 목에 감긴 사슬에 천천히 두 손을 가져갔다. 여자애의 눈이 몸 둘 바 모를 불안에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막 저항하지는 않았다.


사슬은 손가락 살갗이 들러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이 정도 추위에 방치되었다면 몸 상태가 정상일 리 없다.


원래 살던 곳 데려다주기도 전에 운명을 달리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왔지? 집으로 데려다 주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름은?”


마찬가지로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일부러 회이던의 말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여자애는 계속해 입을 뻐끔거렸으나 입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막힌 듯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따금 의미 품지 못한 쉰 소리만 연약하게 삐져나왔다.


“알겠다. 알았어. 일단 여긴 너무 추우니 바깥으로 나가자. 바깥이라고 따뜻하진 않다만 최소한 여기보단···.”


회이던은 여자애를 일으키기 위해 두 팔을 붙잡았다. 붙잡은 순간, 온 몸에 오한이 돋았다. 무릎부터 시작한 한 차례의 떨림이 전신을 훑고 정수리 위에서 분해되었다.


소녀의 몸이 너무나 차가웠다. 추운 곳에 오래 있었으니 그렇겠지, 하며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녔다.


시체가 이보다 더 온기를 지녔다. 시체에 손을 가져다 대면 서늘할 뿐이다.


그러나 소녀의 체온은 서늘함을 넘어 아릿했다. 조금 전 운반하였던 얼음 벽돌을 손에 쥐었을 때만큼 차가웠다.


“너··· 괜찮아?”


괜찮으면 이런 체온일 리가 없으니, 멍청한 질문이다. 소녀는 고개를 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눈으로 회이던을 응시하였다.


“마법사가 네게 뭔 짓을 한 건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벽면에 온통 즐비한 양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알 수 없는 문양과 기호들이 새겨져 있다. 바닥에는 실험에 쓰인 듯한 용기들이 얼어붙은 용액을 품은 채 넘어져 있다.


‘혹시··· 죽이지 말았어야 했나?’


무슨 미친 짓이 일어난 것인지 알 방도가 없다. 마법사가 뭐라고 했더라. 분명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 돼, 내 말을 끝까지 들···.


‘미친놈아, 목 잘리기 전에 빠르게 말하던가.’


회이던은 소녀를 업어 오두막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서늘한 바깥은 오두막 안쪽에 비하면 남쪽 포도 과수원의 더운 열기나 다름없었다.


햇빛은 나뭇잎에 가려지는 것 따윈 없이 공터에 내리쬐었다.


소녀는 저 안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을까. 햇빛을 쬐자 감정이 북받친 듯 회이던 등짝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 눈물방울마저 피부가 아리게 시렸다.



***



“아 돌아오셨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냥 혼자서 도망쳐버릴까 했습니다. 멀리서 뭐가 부서지고 깨지고 하는 소리가 법석이길래···.”


“믿음을 좀 가지십쇼. 아니다, 시의적절한 말이 아니구나. 쉬이 맹목을 가지지 않는 그 태도는 상찬을 받아 마땅하군요.”


“뭔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 아이는 누구죠?”


“낸들 알겠습니까. 하여튼 자세 똑바로 펴요. 숲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으니깐.”


회이던은 소녀를 코멜루의 수레 위에 앉혔다. 구조된 소녀 얼굴에 안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 만했다. 그냥 납치당한 것도 아니고, 자그마치 인체 실험을 당하였다. 그럼 제정신 붙이고 있는 것만으로 용했다.


얼음 벽돌과 포도주 담긴 바구니도 차례로 코멜루의 수레에 옮겨졌다. 그러는 사이 코멜루는 여자애에게 말을 붙이거나 했다.


당연히 어떠한 대답도 돌려받지 못하였다.


“이 아이, 말이 없는데요? 묻는 말에 대답을 하나도 안 합니다.”


“그럴 법도 하죠. 어린 녀석이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코멜루가 쫄래쫄래 회이던 옆에 와서 속삭였다.


“괜찮은 것 맞나요?”


회이던도 여자애가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히 안 괜찮지 않나요?”


“그럼 어쩌죠? 애가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데···.”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닌 것 같군요. 제가 박정한 건지 그 영역까진 책임감이 샘솟지가 않아서···.”


암흑에 포위당한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시간의 역할이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이웃에 불과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곱게 가족의 품으로 되돌려 보내주는 것이다···. 그게 회이던의 견해였다.


전기톱 들어 사람 썰어 재끼고, 그러다가 가끔은 웃기도 하는 양반이 상처받은 아이를 향해 어떤 의무감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코멜루가 직면한 회이던의 눈은 그런 질문을 품고 있었다.


물론 눈빛만으로 그 오묘한 뜻이 전달될 리 없다. 회이던은 그를 멀뚱히 바라보는 코멜루를 향해 은화 한 닢을 튕겼다.


“어허억, 이렇게 큰돈은 왜요?”


“제멋대로 구는 호위를 잠자코 기다려 주셨잖습니까. 나는 모 집단과는 달라서 신의에는 신의로 보답하고 싶어 하는 편이야. 보통의 경우에는 그렇습디다.”


“아이구, 이거 감사합니다. 혹시나 싶어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는 제가 막 끌려다닌다 해서 불만 같은 거 없어요.”


“그럼 다행이군요. 제 머릿속에 애처로운 불안과 걱정이 송골송골 솟아오르던 참이었으니···.”


둘이서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수레 위에 앉아 있는 소녀는 가열하게 썰려 뒈진 강도들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망울에 실린 것은 반 정도가 두려움이고 나머지 반은 울분이었다.


여자애는 갑자기 수레 아래로 슬쩍 내려왔다. 오랫동안 걷지 못하여 얇고 창백해진 다리가 바들거렸다.


듬성듬성한 발걸음으로 향하는 곳은 강도들의 시체가 밀려나 있는 숲길의 한구석이었다.


“엇, 얘야! 거기 가면 못 써!”


코멜루는 여자애를 만류하기 위해 그녀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이내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손을 잽싸게 거두었다.


떠오른 표정에는 여자애 다리와 마찬가지로 창백함이 실려 있었다.


“애, 애 피부가 너무 차가워요···!”


“그렇게 대놓고 놀라진 마쇼. 애가 상처받잖아···.”


소녀는 강도들의 시체에 침을 뱉었다. 침에도 차가운 한기가 웅성거리며 맺혀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얇은 제 다리로 힘껏 밟아대거나 하는데, 힘에 부쳐 보였다.


“마법사가 저 여자애를 데리고 뭔가 꺼림칙한 실험을 한 것 같더군요. 강도들이 여자애를 납치해 마법사 새끼한테 조달했겠죠. 보수 대신 짜릿한 배반을 건네받을 것이라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괜찮은 거 맞나요?!”


“하나도 안 괜찮다니깐. 입 뻥긋 말고, 다른 사람이 여자애 근처에 가지 못하게 하쇼.”


금지된 마법을 부린 것만으로 화형을 낙점받을 수 있지만, 괴랄하게도 금지된 마법의 피해자 역시 화형을 낙점받을 수 있다.


그 까닭을 설명하려고 하면 정신이 이상해진다.


정상적인 사고관으론 이해할 수 없는 논지이다. 억지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간이 세뇌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여튼, 소녀의 존재 자체가 교단에게 있어 부정한 것이다. 코멜루의 불안에 질린 낯 역시 거기서 기인하였을 것이다.


어째 교단에게 붙잡히면 좋지 못한 사람들끼리 삼인조를 이루게 되었다···.


“난 여자애 구해준 것만으로 예상치 못한 도덕적 책무는 완수했고, 나머지는 저 여자애 가족들의 몫이야. 그러니 지도 좀 꺼내와 주시죠. 애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손가락의 도움이라도 받아야지.”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회이던은 숨을 헐떡이는 여자애를 번쩍 들어올렸다. 성큼거리는 걸음으로 수레까지 걸어가 그 위에 앉혀 놓으니, 코멜루가 그 앞에 돌돌 말린 양피지를 좍 펼쳤다.


“집이 어디인지 짚어 보려무나. 그럼 그쪽으로 곧장 데려다 주마.”


소녀는 지도를 눈으로 이리저리 살피더니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다행히 척파크 구릉지대로 향하는 코멜루의 경로와 일부 겹쳤다.


“가는 길이 일부 겹치네요.”


“다행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면서도 애를 집에 데려다 줄 수 있겠군요.”


“가족에게 곧장 데려다줄게. 이제 무서운 건 다 끝났단다.”


코멜루는 여자애를 안심시키려는지 한마디 건네었다.


하지만 소녀의 얼굴에 눈에 띄게 기뻐하는 기색은 없었다. 간신히, 혹은 억지로 옅은 미소를 띄우더니 고개 끄덕일 뿐이었다.


코멜루는 그런 모습에 크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회이던은 그러려니 하며 크게 신경 기울이지 않았다.


강대한 무력은 다음과 같은 맹점이 있다.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열등하게 만든다. 왜 우는 거지? 줘 패면 되잖아. 이런 멍청한 생각이나 일삼다 보면 차츰 바보가 되어 간다.


회이던은 그 정도까진 아녔다. 소녀 마음에 깊숙이 눌러앉은 공포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인생 경험이 반오십도 채 되지 않은, 즉 마음이 단련되지 않은 여자애가 감내하기엔 생애 가장 두려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소녀의 머릿속에 펼쳐진 그녀만의 작은 지옥 정돈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것을 인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회이던이나 코멜루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여자애 마음에 낀 우중충한 먹구름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시간과 여자애 가족들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러려니 하며 절로 신경을 끄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공감 능력이 박살 난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무서운 건 끝났다라···.”


회이던은 저도 모르게 코멜루의 말을 곱씹었다. 코멜루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예? 왜 그러시죠?”


“그냥 혼잣말입니다. 일일이 반응하면 부끄러우니 그러지 말아 주십시오.”


낙관적인 전망에다 대고 찬물 끼얹고 싶은 것은 아녔다. 그냥 무서움의 종막이라 하니 평소 곱씹던 생각들이 떠올랐을 뿐이다.


악마와 성직자라는 양쪽 극단의 집단이 각기 대척되는 까닭으로 사람들 불태운다. 가는 길목마다 무상으로 죽음을 배부하고 다닌다.


각종 무서움 끝나는 날이 오기는커녕, 도리어 날이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회이던이야 삼십 년 세월 넘게 살았으니 곧 뒈진다 하여도 오래 산 축에 속한다. 그러나 이제 막 세상에 나온 풋내기들은 공포를 아주 오래, 길게, 그리고 천천히 맛보며 살아갈 것 아닌가.


그 흐름은 어쩌다 섭리 비슷한 것이 되어버려서 일개 개인이 거역할 수도 없다. 일개 개인의 힘으로는 결코 걷잡을 수 없는 파도, 그와 같은 운명이 진정 무서운 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끝나지도 않는다···. 이런 빌어먹을···.


“···괜찮으십니까? 표정이 어두우신데요.”


“배고파서 그럽니다.”


“아, 그럼 뭐 좀 먹고 출발할까요?”


“아뇨. 사실 배 별로 안 고픕니다. 그런데 여자애는 배가 많이 고플 것 아냐. 뭐라도 좀 먹인 뒤에 출발하도록 하죠.”


이상의 무작위한 발상들을 꼬마애 앞에서 내뱉을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감수성이 고장 나 있지는 않다.


그저 소녀의 앞날에 좋은 기억 될 만한 순간이 둘셋은 넘을까 싶어 측은할 뿐이었다. 울적함에 젖은 얼굴을 보다 보면 기분이 이렇게 근본 없는 감성에 물들기도 하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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