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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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히트
작품등록일 :
2024.08.06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4 19: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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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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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DUMMY

24



벌판 위에 깔린 잔디는 색이 바래어 스러진 듯하였다. 누가 불을 거나하게 피운 듯한 연무가 바람에 휘날리며 종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에 길이랄 것은 없다. 발 닿는 곳이 길이라곤 하지만, 사람들 발조차 잘 닿지 않는 곳이라 길이라 할 게 없다.


그 옛날, 진정한 북방이 진정한 북방이라 불리기 전 번성하였던 도시들은 죄다 땅 위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이제는 무너진 옛 폐허의 흔적에 불과한 그것들은 얼어붙은 지옥불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직도 악마들이 그 주변을 거닐었다. 그래서 차려진 길도 없다.


“눈앞이 짙다! 그러나 악마 새끼들에게 죽음을, 그놈들은 눈깔에 불붙어 빛나기 때문에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지!”


“죽음을!”


“사냥을!”


갑작스레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연무가 나부끼는 너머로 웬 전사들의 대열이 마차의 방향을 가로지르는 게 보였다. 난데없이 어느 틈에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도 데굴데굴 굴러가는 수레바퀴의 소리를 인지한 듯 멈추어 서선 마차 쪽을 바라보았다. 회이던은 천천히 속력을 늦추었다. 낯선 무리를 바라보는 카에키의 낯에는 경계하는 빛부터 돌았다.


조금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무리를 이탈하여 마차 근처로 다가왔다. 등에는 큼지막한 양손 도끼를 매달아 놓고, 허리춤에는 독약이나 비약, 그리고 그 외의 각종 암기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갖춘 복장은 성직자나 검은망토들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 대장간에서나 단조할 수 있는 평범한 갑옷이었다.


“위험한 길을 택하였군 그려!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솜볼그까지 갑니다.”


솜볼그, 진정한 북방에 얼마 남지 않은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에서도 얼마 안 되게 번성한다 할 만한 곳이기도 하다.


까닭은 간단하다. 교단의 전초기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솜볼그로 향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회이던은 교단의 소굴에 발 들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냥 낯선 이에게 둘러대는 거짓일 뿐이다.


이 낯선 사람의 생김새를 살피자면, 관상 이론에 의거해 도적놈일 확률이 아득하게 높은 것으로 사료되는 바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반듯하고 호탕했다. 회이던은 목소리 이론에 의거하여 그가 도적놈일 확률을 약간 하향조정하였다.


“가는 길 유의하셔야겠어. 인근에 지옥문이 있다네. 악마들이 아주 득시글거리겠지.”


아, 지옥문. 요 근래 감정적으로 급격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였다만, 도망길에 나선 이래 대부분의 나날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카에키를 대동한 이래로 이런저런 곡절을 많이 겪긴 했다.


하지만 회이던에게 있어 지옥문에 들어가 악마들 피로 목욕하는 것은 그나마 윤리에 저촉되지 않는 오락거리였다. 카에키의 안전을 위해 그것을 삼가한 지도 꽤 되었다.


지옥문, 울림이 있는 단어이다.


“방금 일행분들께서 뭐라 외치시는 걸 들었습니다. 악마 사냥이라도 나선 모양이네요.”


“그게 우리 일이지. 지옥문에 쳐들어가서 한 놈도 남김없이 도륙을 낼 거야.”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현재 직업에 만족하였을 때에만 나올 수 있는 미소였다.


“그건 그렇고, 경호 필요한가? 아직은 고요하지만 언제 악마들이 튀어나와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일이네.”


“경호라, 듣던 중 감사한 말씀이군요.”


대뜸 무상으로 봉사를 베풀어 주겠다 한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황송해하는 게 맞다. 황송해하는 게 맞긴 하다만, 회이던의 삶이란 예금 대신 의심을 유구하게 저축하였던 진퉁배기의 개차반 인생이다.


황송한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으며 말은 건성으로 튀어 나갔다. 이들이 사복을 설친 교단의 끄나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이던은 아무래도 영 내키지 않아 완곡한 거절이나 전할까 싶었다. 그러나 거절을 빌미로 하여 떳떳하지 못한 신분이라는 게 들통날지도 모른다.


아니 위험한 길을 굳이 보호도 없이 가겠다고? 이거 범죄자 새끼로군. 네놈을 죽여 정의의 사회를 구현해야겠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의 맹점을 찌르고는, 아주 혼자서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다 하는 것이다.


이렇듯 지나친 의심은 사람을 굴레에 종속되게 한다. 예전에 교회 기사에게 뭐라 조롱하는 말을 했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사람이 이상해져. 지금 회이던이 딱 그 꼴이었다.


“···자네, 괜찮나?”


남자가 염려하는 말을 건넸다. 카에키도 생각이 멎은 채 멍하니 있는 회이던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녀가 옆구리를 냅다 꼬집자 제정신이 돌아왔다.


“아, 그냥 옛날 생각 좀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악마 사냥을 꽤나 즐겼었지요. 그 죄송한데, 어디 소속인지 좀 여쭐 수 있을까요?”


“우리는 소속이 없어. 악마를 향한 증오로 의기투합한 일개 사냥꾼들이야. 자네도 악마 사냥을 즐겼다고?”


“한때입니다. 지금은 그냥 안락한 삶 쫓아 떠나는 길이지요.”


“횃불께서 자네의 새출발을 비추어 축복하시길! 뒷칸의 여자애는 자네 여동생인가?”


“에, 뭐 대충 그렇습니다.”


혈연을 놓고 대충 그러하다며 애매하게 말하는 건 너무 이상하고 의심스럽다. 가만 듣고만 있던 카에키의 표정도 조금 알쏭달쏭하게 변했다.


“말이 헛나왔네요. 제 여동생 맞습니다. 사정이 있어 오래 떨어져 지냈더니 많이 어색하군요.”


“좋아. 안전한 곳까지만 자네 두 사람과 함께하겠네. 도중에 악마들을 만나도 너무 동요하지는 말라고. 금방 끝날 테니깐.”


남자는 대뜸 마부석에 올라오더니 회이던 옆에 앉았다. 무거운 갑옷에 매달린 노끈과 그 외의 것이 달각거리면서 고단한 소리를 짓물렀다.


저리 꺼지지 못하겠냐며 발로 걷어찰 수도 있었지만 돌출된 행동은 삼가고 싶었다. 그래서 회이던은 잠자코 있었다.


“여동생과 오래 떨어져 지냈다고. 이제 오라버니 노릇을 하려는가 보군?”


“뭐, 그런 셈이죠. 망나니 생활도 청산할 겸 해서 말입니다.”


회이던은 대답하면서 뒷칸에 눈길을 보냈다. 카에키는 고개 끄덕이더니 냉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매었다.


“아, 솜볼그는 이 타락한 땅에서 얼마 남지 않은 거룩한 마을이지. 새출발하기엔··· 음··· 뭐,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구만.”


마차 바퀴가 덜덜거리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리 지은 사냥꾼들은 총 여섯이었다. 회이던 옆에 앉은 남자가 우두머리인 듯했다.


사람들 인상을 살피면 다들 제각각이었다. 우두머리 못잖게 흉포해 보이는 얼굴이 있는 한편, 외모만이 아니라 체구까지도 유약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웬만한 장정만큼 체구가 비대한 여자도 보였다.


그 모두가 얼굴에 서글서글하고 호기로운 기상을 지녔다. 회이던은 관상 이론에 의거하여 그들이 도적 떼일 확률을 매우 하향조정했다.


도적 무리였다면 수적 우위를 틈타 앞뒤 안 가리고 약탈부터 하려 들었을 것이다. 도적놈들은 굳이 이렇게 불필요한 공을 들이진 않는다.


“세문두크라 하네. 세문두크 막토르 쿠엔하스. 자네 이름은?”


“코멜루입니다. 뒤에 여동생은 카에키라는 이름이고요.”


“코멜루, 카에키. 만나서 반갑네.”


카에키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에 답했다.


“그래서 지옥문은 어디에 열려 있다는 거죠?”


“수색하는 중이야. 위치를 미리 다 꿰어다 놓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네. 악마 놈들에 대한 목격담을 최대한 추려서 분포를 만든 뒤에 지옥문이 나타난 곳을 가늠하지. 예측하기론 이 근방일세.”


“그렇군요. 교단과는 하청 관계로 움직이시는 겁니까?”


“교단과는 관계없어. 말했잖나. 오직 악마 놈들에 대한 증오만으로 의기투합했다고. 하지만 횃불을 향해 헌신하는 마음만은 의심할 바 없네. 그러니 위대하신 분께서도 주일 예배를 빼먹는 것 정돈 눈 감아 주시겠지!”


“횃불께서 우리의 등 뒤를 비추기를!”


마차를 따라 걷던 사람들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회이던과 카에키의 조용한 여정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카에키는 몸 둘러싼 모포를 더 꽉 동여맸다. 하지만 회이던은 개인 공간을 침범당하였음에도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근래 목소리 일부러 낮게 깔고선 무게 잡으며 거들먹거리는 인간들만 봐왔던지라, 호방한 인간 군상 사이에 껴 있는 것은 썩 괜찮은 느낌이었다.


“따로 수입이랄 게 없을 텐데요.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 없나요?”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된다네!”


“아, 그렇군요.”


회이던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거기다 대고 뭐라 첨언할 인간은 못 된다. 길가의 풀떼기나 나무껍질 채취해서 푹 고아 먹던 미친 인간은 말 얹을 자격이 없다.


그때 마차 앞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앞에 세 마리! 세 마리 나왔다!”


“아아!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군그래!”


세문두크는 기다렸다는 듯 좌석을 박찼다. 등에 멘 양손도끼를 어느새 손에 거머쥔 그는 땅바닥에 거뜬히 착지했다. 무거운 몸집에 비해 운동 능력은 상당히 날쌔 보였다.


“횃불께서 우리 등 비추리라! 악마 놈들에게 무자비한 구타와 치욕을!”


“우햐아악!”


“끼익! 끼익!”


“규하아악!”


참고로 전부 악마가 아닌 인간들이 낸 목소리다. 전방에 나타난 악마 세 마리는 비교적 조용히 크르릉거리기만 했다.


회이던은 사냥꾼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내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썩 즐거워졌다. 카에키는 다소 질색하는 표정이 되긴 했다만, 아마 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 것일 테다.


악마 가운데 둘은 혈귀라 불리는 종류였다. 새하얗디새하얀 살갗에 성인 가슴팍 정도 오는 왜소한 몸집을 지녔다. 눈은 거의 퇴화하다시피 하여 콧구멍보다 작은 점 두 개 찍힌 수준이었다.


놈들의 금속마저 부식시킬 정도로 강한 독성 지닌 혈액을 속에 품고 있다. 주된 공격 수단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톱인데, 자해를 통해 제 혈액으로 범벅을 해 놓기 일쑤였다.


그래서 혈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조무래기 악마들 가운데선 성가신 부류에 속했다.


다른 악마 하나는··· 뭐 하는 놈인지 설명하기도 전에 도끼질 두 방으로 목이 날아가 뒈졌다. 사냥꾼 두 명이 큼지막한 도끼날을 잘도 휘두르면서 곤죽 만들 기세로 쾅쾅 찍어댔다.


다른 넷도 각각 둘씩 나뉘어 혈귀 둘을 상대했다.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의 여지를 주지 않는 솜씨에서 혈귀 여럿 상대해 본 노련함이 엿보였다.


사냥꾼들은 추가 달린 사슬을 머리 위로 빙빙 돌리다 바닥을 휩쓸었다. 발목에 사슬이 휘감긴 혈귀들이 균형을 빼앗기며 넘어졌다.


“매타작 시간이다!”


기다렸다는 듯 사냥꾼들 모두가 달려들었다. 단단한 군홧발들이 왜소한 혈귀 두 마리에게 집단 폭행을 가하였다.


신체가 뭉개진다면 혈액이 터져 나와 야단법석이 될 테니 격앙의 정도를 각별하게 조절하는 모습들이다. 어쨌든 눈으로 보기에는 격앙된 광경이긴 했다.


혈귀들은 마지막 단말마를 내뱉더니 걸레짝이 되어 뒈졌고 사냥꾼들 그 누구도 맹독성 피를 뒤집어쓰지 않았다.


“횃불께 영광을! 더 밝게 비추라!”


“영광을!”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 불을 더 밝게 비치자!”


사냥꾼들은 막 광신도들이나 할 법한 말들을 내뱉으며 환희에 취했다. 그걸 듣고 있는 회이던도 제법 흥취를 느끼며 생글거렸다.


기분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카에키 혼자 눈을 끔뻑거릴 뿐이었다. 세문두크는 차림새를 정리하면서 다시 마부석으로 올라왔다.


“혹시 물 좀 얻어 마실 수 있겠나?”


“물 좀 꺼내 드려라.”


세문두크의 요청에 회이던은 관성적으로 카에키에게 말을 건넸다. 카에키도 관성적으로 물병을 꺼내 마부석으로 건네었다.


물병 받아든 세문두크는 목을 꿈틀거리며 참 시원하게 넘겼다. 물 넘기는 모습이 참 시원시원해서 보기 좋긴 한데, 그것과는 별개로 회이던과 카에키 둘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카에키는 급히 자기 손을 담요 안으로 쑤셔 넣었다. 회이던은 급하게 세문두크의 낯을 살폈다. 달리 떠오른 기색은 없었다.


세문두크는 회이던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 자신의 시선도 돌렸다.


“자네도 좀 마실 텐가?”


“아, 예.”


물병을 손에서 손으로 넘겨받을 때, 분명 알싸한 냉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내색이 없다. 카에키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설마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



어느덧 마차 뒷칸에도 세 명이 올라탔다.


카에키는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맨 채 구석에 찌그러졌다. 아무리 꽁꽁 싸매어 놓는다 해도 괴이한 냉기는 바깥으로 새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을 회이던이나 카에키나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사냥꾼들은 그 누구도 여자애가 뿜어대는 한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 몸을 벌벌 떨지도 않았다. 아예 냉기에 무감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쯤에서 의심암귀가 또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냥 온도에 무감한 것이라면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모르는 채 구는 것이라면, 그게 회이던에게 우호적인 의중은 아닐 터이다···.


“좀 춥지 않나요?”


회이던은 일부러 떠 보는 말을 던졌다.


“춥다고? 자네 어디 출신이지?”


“그 어디냐···. 바닷가의 소도시가 제 아름다운 고향입니다.”


“아, 남쪽 출신이로군? 그럼 춥다고 느껴질 수 있겠구먼. 하지만 북방에선 말야, 따뜻하다의 기준이 아랫지방과는 다르게 적용된다네. 이 정돈 평균이야, 평균.”


장황하게 기온에 대한 지론까지 설명하는데, 속에 마뜩잖은 생각을 품은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럼 정말로 온도에 무감한 것뿐일까.


회이던은 눈짓으로 카에키에게 슬쩍 신호를 보냈다. 너무 막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긴장 풀어. 그런 의미였다.


그래도 카에키는 담요를 들추지 않았다. 다만 그녀 얼굴을 물들인 뻣뻣한 경직은 조금이나마 완화되었다.


“나무 상자에 포도주가 좀 있습니다. 적적하면 한 병 따서 나눠 드시든가 하셔도 됩니다.”


“오, 그래도 될까요?”


“당연히 안 되지, 이것들아. 술에 꼴은 채로 악마들 상대할 셈이냐?”


“껄껄 껄껄껄.”


그리고 왁자지껄해진다. 나쁘진 않았다. 조용한 나날이 있으면 시끄러운 나날도 있어야 삶과 우주의 균형이 얼추 맞추어지는데, 근래에는 감정적으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였건만 주변 소음의 정도는 딱히 균질하지 못했다.


코멜루, 그리고 나프를 떠올렸다. 두 사람 모두 말을 막 시끄럽게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 슬슬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지만 그런 고통도 어떤 즐거움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게 부랑자 생활의 묘미이다···.


사냥꾼들은 시끄럽게 떠드는가 하면, 담요에 파묻혀 얼굴만 빼꼼 내민 카에키를 적잖게 귀여워하기도 했다. 이것저것 말을 붙이며 녀석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카에키는 벽지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왔던 만큼 사람 셋 이상 모인 자리를 낯설어하는 눈치였다.


“카에키는 사정이 있어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예? 뭔 사정이요?”


“묵언 수행 중이라서요. 수녀원에서 수련하던 녀석을 사정사정해서 빼 온 것이라.”


“아, 독실한 아이구만요. 기특하기도 해라.”


횃불에게 무척이나 신실한 사냥꾼들은 카에키를 더 귀여워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그 연쇄가 언젠가 목을 조를 것이다.


그러건 말건 회이던은 빵조각을 질겅거리며 그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겼다.


부산스러운 가운데 세문두크만이 조용했다. 주변 초목과 지도를 번갈아 살피는 것을 보아 현재 위치를 가늠하고 있는 듯했다.


회이던은 거기다 대고 나지막히게 한 마디 건넸다.


“어디까지 동행해 주실 생각입니까?”


“갈라질 만한 적당한 위치를 생각하고 있네. 악마 놈들이 더는 보이지 않는군.”


“주변에 지옥문이 자리 잡은 게 확실한가요? 잔불이 나무에 옮겨붙으면 굴뚝 연기라도 나야 하는데, 하늘은 흐릿하다만 그 아래는 깨끗합니다.”


“그러게 말야. 하지만 이 주변이 분명해. 자네도 방금 악마 놈들을 보았잖나?”


“예. 이상한 일이네요.”


“이상한 일이군···. 어쨌든 조금만 더 나아가면 지옥문 예상 위치의 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거기까지만 자네들과 함께하도록 하겠네. 새로운 정착을 위해 떠난다면 무릇 그 여행길은 안전해야 해.”


“이거 고마워서 어쩌죠. 원하신다면 포도주 몇 병 들고 가셔도 됩니다. 좋은 술이거든요.”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네. 솜볼그에 정착할 때 그곳 주민들에게나 몇 병 돌리라고. 환심을 미리 사 두면 텃세도 덜하지 않겠나.”


“대장, 저희는 술을 몹시 즐기는데 말입니다요.”


“경박한 것들에게 고급술은 어울리지 않아. 네놈들은 나무 옹이구멍에 삭혀 놓은 과일 즙액이나 마시도록.”


악마의 출몰이 강력하게 예상되는 지대인데도 분위기는 어울리지 않게 전원적이다.


카에키는 어느덧 주변 분위기에 적당히 스며든 모습이다. 가끔 속절없이 터져 나오는 미소가 예쁘다며 짓궂은 칭찬을 들었을 땐 얼굴을 담요에 뒤집어쓰기도 했다.


꼬마에게는 저렇게 수줍은 모습이 더 어울린다. 풍파에 휩쓸려 죽을상을 한 얼굴이 본연이어선 안 되는 거다. 회이던은 새삼 개탄에 젖거나 하는 자신이 늙은이가 다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생 녀석이 교회 출신이라고 했지. 어쩌다 저 어린 녀석을 이끌고 이렇게 위험한 곳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마음먹은 겐가? 남단에는 더 살기 좋은 곳이 많을 텐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로 도통 진정되지 않더군요. 차라리 인적이 드문데 사는 것은 적당히 나쁘지 않은 곳에 눌러앉아 심신 수양이나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지요.”


“그런 요량이었군. 솜볼그는 나쁘지 않은··· 음··· 그래, 나쁘진 않은 선택일 걸세. 성직자들도 많으니 자네 여동생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진 않겠지.”


일말의 교묘한 진실을 섞은 거짓부렁이 막힘도 없이 술술 나온다. 이러다 나중에 말 꼬이기라도 하면 그 꼬인 매듭이 목을 조르면서 자업자득을 실현하고 아주 난리가 날 것이다.


“말씀 감사합니···.”


회이던은 마저 털어 넣은 빵을 씹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우물거리던 이빨질도 멎었다. 세문두크는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짓는 그를 염려스럽게 쳐다보았다.


“···또 옛날 생각 떠올리고 있는 겐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녔다. 다만 곧 일어날 예정이었다.


“지열이 유난히 뜨겁네요. 이 위쪽은 추운데.”


“지열?”


“그리고 희미한 소리도 들립니다. 웅웅거리는 음성이요.”


멍하니 앞 바라보는 회이던 얼굴은 세문두크에게 심상치 않은 예감을 전해다 주었다. 그는 뒷칸의 부하들에게 고함을 쳤다.


“다들 조용! 조용히 해봐!”


세문두크의 외침에 왁자지껄하던 목소리들이 단번에 그쳤다. 대화를 즐기던 사냥꾼들의 얼굴에 즐거움은 사라지고, 다만 그 잔재인 상기된 낌새만이 남았다.


회이던의 말대로 바닥이었다.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기묘한 지열이 규칙성과 불규칙성을 넘나들며 맥동 같은 소리를 투과시켰다.


아래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게 무슨 느닷없는 온천수 같은 게 아닐 것이다.


“지옥문은 땅굴 속에 나타난 건가!”


그 순간 맥동 너머로 무언가 꿀렁이며 땅이 부들거렸다.


회이던은 급히 마차의 방향을 틀어 옆길로 빠졌다. 뒷칸에 타고 있던 사냥꾼들의 얼굴, 떠나간 자리에 즐거움이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손에 무기를 꽉 쥔 채 난간을 넘어 땅바닥에 착지했다.


“뭔가 솟아오른다! 대비해!”


세문두크도 지도를 구겨 넣으며 양손에 도끼를 치켜들었다. 땅바닥의 거죽이 뒤흔들리는 세기는 점차 심해지더니, 폭쇄하는 굉음과 함께 흙과 퇴적물들이 간헐천 물처럼 빗발쳤다.


“궤에에에에엥.”


지렁이인지 칠성장어인지, 그 중간 언저리쯤 생김새의 악마가 대가리를 곧추세우며 울부짖었다.


웬만큼 자란 나무처럼 두꺼운 몸 둘레를 지녔고, 숯처럼 새까만 몸에는 번득이는 균열 같은 게 아른거렸다. 그 균열은 악마제 금속 주괴가 그러하였듯 잔불처럼 샛노랬다.


입은 둥그런 형태였다. 이빨이 둥그런 표면 전체에 걸쳐 빽빽하게 나 있었다. 사람 눈동자처럼 흰자와 검은자가 분명한 안구 일곱 개 정도, 입 주변을 둘러쌌다.


“궤이이이이잉.”


그렇게 당장 눈에 보이는 커다란 것, 즉 마차를 향해 척 봐도 단단해 보이는 대가리를 내려찍으려 했다. 몸 날려 피한다 한들 불쌍한 말들은 몸 으깨져 죽고 말 것이다.


그럼 회이던은 빡쳐서 지옥문에 혼자 쳐들어가고, 카에키 얼굴에 웃음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회이던은 마부석 앉은 자리를 박차 도약했다. 먼저 발구르기 하듯 말의 등짝을 한 번 푹신하게 밟았다. 밟은 그대로 위를 향해 솟구쳤다.


그의 비어 있던 오른쪽 손에는 어느샌가 모습 드러낸 전기톱이 붙들려 있었다. 말들이 하릴없이 살해당하는 일 따윈 없었다.


다만 어슷하게 저며진 지렁이 악마의 대가리 조각 일부가 먼 곳까지 솟구쳤으며, 이내 어딘가의 나무에 처박혀선 주르륵 흘러내렸을 뿐이었다.


“오오! 코멜루!”


“이야아!”


뒷칸에서 마부석으로 넘어온 카에키가 말고삐를 급히 붙잡았다.


비처럼 내리는 핏물이 바람에 섞이며 연무가 검붉게 물들었다. 검붉게 물든 연무에 세문두크를 비롯 사냥꾼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퍼지며 진홍빛으로 투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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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4.08.27 11 0 22쪽
23 23 24.08.26 14 1 27쪽
22 22 24.08.25 49 0 19쪽
21 21 24.08.24 18 0 23쪽
20 20 24.08.23 15 0 18쪽
19 19 24.08.22 16 0 22쪽
18 18 24.08.21 15 0 22쪽
17 17 24.08.20 18 0 26쪽
16 16 24.08.19 19 1 21쪽
15 15 24.08.18 21 1 28쪽
14 14 24.08.17 21 1 17쪽
13 13 24.08.16 19 0 19쪽
12 12 24.08.15 18 0 18쪽
11 11 24.08.14 18 0 18쪽
10 10 24.08.13 21 0 20쪽
9 9 24.08.12 24 0 23쪽
8 8 24.08.11 29 0 19쪽
7 7 24.08.10 36 0 16쪽
6 6 24.08.09 35 0 26쪽
5 5 24.08.08 35 0 18쪽
4 4 24.08.07 52 0 23쪽
3 3 24.08.06 64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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